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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예정웅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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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민족끼리 작성일17-07-28 01:44 조회5,9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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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지금 서방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북조선핵문제의 발생시점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선포
한 20세기 90년대초로 알고있다.

이것은 너무나도 일면적인 견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왜냐하
면 조선핵문제란 곧 북의 핵보유문제가 아니라 북에 대한 미국
의 핵위협문제이기때문이다.

북이 아무 리유없이 핵보유를 선택했을리는 없다. 북조선이 핵
을 가지려고 했기때문에 북핵문제가 터진것이 아니라 미국이 지
난 세기 중엽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핵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시작되였다고 보아야 한다.

1) 조선핵문제의 근원

□ 핵문제의 력사
지구상에 핵문제는 핵무기가 출현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고 말
할수 있다.
20세기를 문어구에 둔 1898년 프랑스의 빠리에서 큐리부부는
장기간의 심혈끝에 우라니움보다 센 방사능을 가진 라디움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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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견하였으며 이것은 20세기 원자핵연구에 광명을 가져다주었다. 당
시 큐리부부는 자기들의 발명이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세계
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를 념원하였다.

그로부터 수십년후 원자에네르기를 리용한 인간의 첫 창조물
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에게 평화와 복리가 아니라
무서운 참화와 악몽을 가져다주었다.

1945년 7월 16일 5시 30분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호드의
항공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자탄의 첫 폭발이 일어
났다.

대낮의 태양보다 몇배나 강한 불빛을 발산하는 버섯형태의 둥
그런 불덩어리가 1만ft(피트)의 높이로 떠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이 새형의 폭탄이 가지고있는 위력은 당시 가장 크다고
알려진 1t짜리 폭탄 1만 5 000~2만개에 맞먹었다. 이 미지의 무
기가 안고있는 거대한 파괴력과 살상력은 그후 단번에 수십만의
생명을 앗아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의 대참사를 통
하여 온 세계를 경악케 하였다.
인류는 그때에야 핵무기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핵무기는 인류를 멸망시킬수 있는 그야말로 《악마의 무기》
였다.
이 《악마의 무기》의 출현과 동시에 핵문제가 지구상에 생겨
나게 되였다. 핵무기의 전략적균형을 보장하는 문제, 핵무기경쟁
과 핵전파를 막는 문제, 핵위협을 종국적으로 제거하는 문제, 핵
무기철페문제 등 《악마의 무기》의 출현과 함께 생겨난 수많은
핵문제들이 인류에게 그 해결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초기에는 핵무기의 전략적균형을 보장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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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기되였다.
미국의 핵무기보유로 하여 대국들간의 전략적균형이 파괴되자
이전 쏘련을 비롯한 대국들은 저저마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
로 나갔다.
이전 쏘련에서는 1943년부터 핵무기개발이 시작되였으며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한 이후에는 쓰딸린이 크레믈
리에서 저명한 원자물리학자들을 만나 미국을 따라잡을데 대한
지시를 주었다.
쏘련이 붕괴된 후 1995년에 로씨야에서는 《쏘련에서의 첫 원
자탄제작》이라는 도서가 출판되였다. 이 책에서는 미국에 맞서
이전 쏘련이 핵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때를 놓고 이렇게 쓰
고있다.
《…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재촉하지 않을수 없었다. 미국의
군수공업종합체는 끊임없이 발전하였고 미국의 침략계층은 쏘련
의 가장 큰 쎈터들과 도시들에 핵타격을 가하기 위한 계획을 작
성해놓고 자기의 핵무기로 위협하였다. …
모두가 다 나라에 필요한 자체의 핵방패를 제작함으로써 미국
의 독점적핵지위에 맞서기 위해 원자탄제작을 빨리 그리고 성과
적으로 완성할것을 진심으로 념원하였다. 쏘련사람들은 자기 나
라를 보위하기 위하여 상실을 각오하고 자기희생을 각오하면서
의식적으로 이 길을 걸었다.》
이전 쏘련은 힘겨운 로정끝에 1949년 원자탄시험에 성공하
였다.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내흔들던 핵무기에 대한 워
싱톤의 독점은 이전 쏘련의 핵폭탄시험으로 4년만에 끝장나고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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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뒤를 따랐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전야까지만 해도 서방세계에서 미국, 도이췰란드, 일본,
이딸리아와 함께 6대강국에 속하는 나라들이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서방의 6대강국중에서 전패국들인 도이췰란드, 일본,
이딸리아뿐아니라 전승국들인 영국과 프랑스까지도 강국의 지위
에서 떨구어버렸다.
한때 세계최대의 식민지제국으로 군림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우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시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방세계에서 지배적
인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파쑈도이췰란드에 강점되였던 프랑
스의 처지는 더 한심하였다.
핵무기의 위력을 알게 된 영국과 프랑스는 대국으로서의 지위
를 다시 찾는 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핵무
기개발에 뛰여들었다. 그리하여 1952년에는 영국이, 1960년에는
프랑스가 핵보유국의 대렬에 들어섰다.
신생국가인 중국도 핵보유의 필요성을 느끼고 경제형편이 어려
운 속에서도 전력을 기울여 핵개발을 다그침으로써 1964년 가을
간난신고끝에 드디여 첫 핵시험에서 성공하였다.
핵무기는 그것을 보유한 나라들에 대국의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이전 쏘련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초대
국으로 될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완전히 조락될
번 했던 영국이 《대영제국》이라는 이름가운데서 《제》자는
잃었지만 《대영》자를 보존할수 있은것도 핵보유의 덕이였다.
1960년에 핵시험에서 성공하자 당시 프랑스대통령이였던 드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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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오늘 아침부터 더욱 강대하고 긍지
높은 나라로 되였다.》고 웨쳤다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
다. 한때 《형》과 《동생》사이였던 이전 쏘련과 중국의 관계가
《평등》한 대국관계로 전환되고 중국의 숙적이였던 미국이 베이
징에 손을 내밀게 된것도 1964년에 중국이 핵시험을 성공시킨 결
과라고 볼수 있다.
핵보유국들의 련속적인 출현은 핵무기전파를 방지할데 대한 문
제를 제기하였다.
핵렬강들의 립장에서 보면 핵보유국이 하나라도 더 많이 나오
는것이 좋을것이 없었다. 그만큼 자기 핵무기의 위세, 핵보유국
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기때문이였다.
또 비핵국가들의 립장에서 보아도 인류의 생존을 참혹하게 위
협하는 핵무기가 많아지고 핵보유국들이 많이 나오는것은 결코
리롭지 않았다. 그만큼 핵전쟁발발의 가능성이 많아지고 핵피해
를 입을 우려가 증대되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이러한 리해관계의 일치라고 할가 어쨌든 핵무기전파를 억제
해야 한다는 공통된 심리로 하여 1968년에 핵무기전파방지조약
(NPT)이 나왔다. 이 조약의 서문에 《이 조약의 체약국들은 핵
전쟁이 전인류에게 가져오는 참혹한 피해와 이러한 전쟁의 위험
을 피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며 인민들의 안전을 보장하
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것이 필요하다는것을 고려하면서, 핵무기
의 전파가 핵전쟁의 위험을 현저하게 증대시킬것이라고 간주하면
서, 핵무기가 널리 퍼지는것을 방지할데 대한 협정을 체결할것을
요구한 유엔총회 결의들에 따라서…》라고 언급된것이 그러한 심
리의 반영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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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체결문제가 처음 제기된것은 1958년 아일
랜드가 이 문제를 유엔총회에 상정시킨 때부터였다. 그후 1963년
8월 쏘미영 3개국이 부분적핵시험금지조약을 체결한 다음부터 핵
무기전파방지론의는 광범히 진행되였고 쏘련과 미국사이에 조약초
안작성과 관련한 여러차례의 협상이 진행되여 1968년 3월에 조약
초안이 완성되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초안은 그해 6월 12일 유
엔총회 특별회의에서 채택되였으며 7월 1일 조약기탁국들인 쏘련
과 미국, 영국의 수도들에서 조인되여 1970년 3월 5일부터 효력
이 발생되였다.
이 조약의 제9조 3항에서는 핵무기국의 정의를 《<핵무기국>
이란 1967년 1월 1일전에 핵무기나 기타 핵폭발장치를 제작하여
폭발시킨 나라를 말한다.》라고 규정해놓았다. 이미 핵무기를 보
유한 5개 나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핵무기보유국으로 될수 없
다는것이다.
그리고 조약의 제1조와 제2조에서는 핵무기국들과 비핵무기
국들의 전파방지의무를 규정해놓았으며 제5조에서는 전면적이
고 완전한 핵군축에 관하여 성실한 협상을 진행할것을 약속하
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 발효됨으로써 비핵국가들의 핵무기보유시
도에 빨간등이 켜졌다.
그러나 이 조약 하나만으로 핵전파가 완전히 차단된것은 아니
였다.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들속에서 핵무기보유국들이 나
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인디아, 파키스탄이 그 대표적실례라
고 할수 있다.
적지 않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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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와 리비아,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
중근동에서 이라크, 발칸반도의 이전 유고슬라비아 등도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체약국들가운데서도 자기의 리해관계에 따
라 핵전파를 몰래 도와주거나 핵보유를 은근히 시도하는 나라들
이 생겨났다. 이 조약 기탁국들중의 하나인 미국이 이스라엘에
핵기술과 핵물질을 넘겨주면서 핵보유를 도와주었다는것은 비밀
이 아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나 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대답
하고있다. 핵전파방지의무를 지닌 미국이 앞장에서 조약을 위반
하고 핵전파를 조장시켰던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불투명한 조약인데다 그 기탁국이라고 하는 미
국이 앞장서서 조약을 위반하고있으니 핵전파방지문제가 제대로
해결될리 만무하다. 핵전파방지문제는 의연 해결을 기다리는 문
제들중의 하나이다.
핵보유국들간에 핵우세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핵
군비경쟁을 막을데 대한 문제도 제기되였다.
핵군비경쟁은 미국과 이전 쏘련을 두 축으로 하여 맹렬히 벌
어졌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리념상에서의 대립관계가 핵무기분야
에서도 서로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경쟁을 낳았다.
미국은 핵무기분야에서 기어이 이전 쏘련을 압도할 야망밑에
보다 위력한 수소폭탄제조에 달라붙어 1954년 3월 1일에는 태평
양상의 비키니섬에서 첫 수소탄폭발시험을 진행하였다.
미국은 핵무력으로 이전 쏘련을 포위타격하기 위하여 대륙간
탄도미싸일, 잠수함발사탄도미싸일, 전략폭격기 등 3대전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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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를 기둥으로 하여 이것을 미국본토와 이전 쏘련주변의 기지들에
배비하고 새형의 성능높은 핵무기들을 대대적으로 개발생산하였
다. 1967년에 미국은 3만 2 5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였는데 이
것은 량적지표에서 최고였다.
이에 대처하여 이전 쏘련도 핵무기생산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리하여 이전 쏘련의 핵무기는 1986년에 4만 5 000개로서 수량상
으로 제일 앞서게 되였다.
미국과 이전 쏘련의 핵무기고들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탄 100만개와 맞먹는 핵무기들이 저장되여있었는데 그것들의 폭
발에네르기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사용된 모든 폭발에네르기의
2 700배에 달하는것이였다.
만일 미국과 이전 쏘련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지구의
멸망까지 초래할수 있었다.
미국과 이전 쏘련의 무모한 핵무기경쟁은 인간의 생존과 지구
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것으로 하여 세계 진보적인류는 그 방지
요구를 제기하였다.
이로부터 이전 쏘련과 미국은 마침내 회담탁에 마주앉아 핵무
기제한협상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1972년에 《쏘미전략무기제한협정》이 체결되였고 1987년
12월에는 쏘미사이에 유럽지역에 있는 두 나라의 중거리 및 보
다 짧은 거리 미싸일철페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였다. 1991년 7월
에는 《전략공격무기의 가일층 축감 및 제한에 관한 협정-1》
이 모스크바에서 체결되여 7년안에 체약쌍방이 전략공격무기
운반수단(대륙간탄도미싸일, 잠수함발사탄도미싸일, 전략폭격기)
은 1 600기로, 그에 적재되는 탄두는 6 000개로 축감할것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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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의하였으며 1993년 1월에는 로씨야와 미국사이에 《전략공격무기
의 가일층의 축감 및 제한에 관한 조약-2》가 체결되여 로미쌍
방이 전략공격무기핵장약의 총수를 2003년 1월 1일까지 3 000~
3 500개로 축감하고 개별조종다탄두대륙간탄도미싸일은 전부 페
기한다는것, 잠수함발사탄도미싸일의 핵장약수를 1 700~1 750
개로, 중폭격기장비핵장약수를 750~1 250개로 제한할것을 합의
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로미사이에 새로운 전략무기축감조약이
또 체결되여 쌍방은 각기 1 500개정도의 핵무기만 보유하기로 하
였다.
그러나 이 협정과 조약들이 그대로 실천되였다고 보기는 어렵
다. 핵무기제한협상들은 두 핵대국간에 상대방의 전략핵무력을
약화시키려는 서로의 리해관계에 따라 진행된것으로 하여 근본
적인 핵무기철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여러차
례의 협상에 의해 많은 핵무기가 철페되였다고는 하지만 두 핵
대국들은 어떤 경우에도 핵패권을 절대로 내놓으려고 하지 않
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2015년 6월 15일 핵무기보유국들의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데 의하면 2015년초 로씨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인디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보유하고있는
핵무기의 총수는 약 1만 5 800여개인데 그중 4 000여개는 군부
대들에 배비되여있으며 약 1 800개는 완전한 전투준비상태에 있
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매개 핵보유국들의 핵보유실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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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 나라명 핵탄두총수 배비된것 보관된것
1 미 국 7 260 2 080 5 180
2 로씨야 7 500 1 780 5 720
3 중 국 260 260
4 영 국 215 150 65
5 프랑스 300 10 290
6 인디아 90~100 90~100
7 파키스탄 100~120 100~120
8 이스라엘 80 80
계 15 805~15 835 4 020 11 785~11 815
※ 여기서 《배비된것》은 미싸일에 장착되였거나 작전기지들에
있는 핵탄두를 의미한다.
여기서 볼수 있는것처럼 랭전시기에 비하여 핵탄두총수에 있
어서는 적지 않게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미국과 로씨야의 핵우
세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과 로씨야를 제외한 다른 핵
보유국들인 영국, 프랑스, 중국의 핵탄두도 각각 215개, 300개,
260개로서 랭전시기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랭전은 멎었지만 핵전쟁의 위험성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
로 하여 핵전쟁의 위험성은 없어지지 않고있다.
핵문제에는 이밖에도 핵보유국들이 비핵국가들을 핵무기로 위
협하지 말데 대한 문제, 핵무기완전철페문제 등과 같은 문제들
이 제기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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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그러나 이러한 핵문제들은 비핵국가들의 리해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하여 국제적인 론의의 대상이 별로 진행되지 못했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조차 핵보유국들이 비핵국가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조항자체가 없으며 핵군축도 협상한다는 정도
로 그치고 핵무기완전철페라는 표현마저 넣지 못했다.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핵무기없는 세계》에 대하여 요란하
게 광고하였지만 미국핵무기의 완전철페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않
았다. 반대로 미국군부내에서는 현존 핵무기의 현대화소리가 귀
아플 정도로 튀여나오고있다. 미국만이 핵무기를 가지고있는 세
계, 미국의 핵독점이 실현된 세계를 오바마는 《핵무기없는 세
계》로 본것이다.
이렇게 핵문제의 력사를 더듬어보느라면 미국의 존재를 다시
금 생각하게 된다. 모든 핵문제의 근저에는 미국이 있다. 핵무기
를 처음으로 개발하여 핵문제를 발생시킨것도 미국이고 핵군비경
쟁문제, 핵위협문제 등 심각한 핵문제들을 발생시킨것도 미국이
다. 미국은 지구상에 핵문제를 발생시킨 주범이며 따라서 지구
상의 핵문제는 곧 미국핵문제이다. 미국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서는 핵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수 없다는것이 력사의 답이다.
□ 조선반도의 핵문제
현시기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서방의 언론들은 하나와 같이
북조선이 오래전부터 핵무기개발을 《시도》하여왔으며 북의 핵보
유가 《랭전종식후의 세계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있다고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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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란적인 선전공세를 펴고있다. 이를테면 조선반도에서 핵문제를 산
생시킨 주되는 장본인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북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핵개발시도》가 지역정세의 악화와 국제사
회의 우려를 초래하는 근본요인으로 된다는것이다.
조선핵문제를 이렇게 보는것은 너무나 편견적이고 치졸한 견해
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왜냐하면 《북핵문제》를 산생시킨 근원
은 슬쩍 가리우고 현상적인 측면도 남쪽것은 못 본체 하면서 북
쪽것만 요란한것처럼 광고하기때문이다.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북의 핵문제는 《북핵문제》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핵문제라고
해야 정확하다. 단순히 《북핵》만이 아니라 남조선에 끌어들인
미국핵과 북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 등이 종합된것이 조선핵문제
이다.
북핵문제는 이렇게 종합적으로 분석하여야만 문제해결의 방도
를 찾을수 있다.
그러면 조선반도의 핵문제의 발생시점은 언제이며 어떻게 되여
핵문제가 발생하였겠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1990년대초 조선의 핵
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로부터 시작된것이 아니라 1950년대
조선전쟁시기 이미 생겨났다는것이다.
지금 북과 남에는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가 있는데 이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대다수가 바로 조선전쟁시기 원자탄바람에 갈라
진 사람들이라는 점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1950년말에 미국이
조선의 북부지구에 원자탄을 떨군다는 소문이 퍼지자 핵공포증
에 사로잡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을 데리고 혹은 자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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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식을 남으로 내려보냈는데 그들이 전쟁이 끝나고 전선이 고착되
는 바람에 눌러앉고말았다.
실지 미국은 1950년말 《북진》이 실패하게 되자 원자탄사용
을 시도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1월 30일 기자회견에
서 조선에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미국이 일찍부터 필요
한 수단을 써왔》듯이 《조선에 대해서도 정부는 필요하다고 생
각되는 수단을 쓸 용의가 있다.》고 하였으며 그에 대해 한 기
자가 《그 필요한 수단에는 원자탄이 포함되는가?》라고 묻자
《우리들이 보유하고있는 모든 무기의 사용을 포함하고있다.》,
《원자탄의 사용에 대해서는 늘 적극적인 고려》상태에 있으며
《원자탄은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될 때는 사용된다.》고 대답하
였다.(워싱톤 1950년 11월 30일발 AP통신)
2013년에 새롭게 발굴된 미련방수사국의 1951년 4월 20일 보
고서 《방사능전》에 의하면 트루맨의 《원자탄사용성명》이 나
간 이후 미극동군 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그해 12월에 《북중
접경지역에 원자탄 30~50개를 투하할 계획이 있다.》고 하면서
《조선북부에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는 방사능복도지대를 형성
할것이다. 그 지대안에서는 60년 혹은 120년동안 생명체가 소생
하지 못할것이다.》라고까지 발언하였다. 미국은 조선전쟁이 장기전
으로 넘어가자 조선반도를 가로지르는 지역에 플루토니움과 핵페
기물을 비롯한 대량의 방사능물질을 살포하여 누구도 접근할수
없는 《비인간지대》를 형성하려고 하였던것이다.
일본잡지 《아사히져널》도 조선전쟁당시 미국의 핵공격계획을
폭로한바 있다. 《아사히져널》 1982년 8월 6일호는 《미중앙정
보국의 내부자료나 백악관성원들의 회상록 등에 의하면 미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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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발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하여 세번의 원자폭탄투하를 준비
하였다. 그 첫번째는 조선전쟁개시 반년후인 1950년 12월이였다.
이해 11월 30일 트루맨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권고를 받아들여
<원자폭탄사용을 고려중>이라고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리하
여 1950년 12월 인천앞바다에 정박하고있던 미항공모함에 은밀히
핵무기가 반입되였고 핵탄두를 적재한 함재기는 최후의 발진명령
을 기다리고있었다.》고 썼다.
미국은 그후에도 전쟁에서 막다른 골목에 빠져들 때마다 여러
차례 원자탄사용을 시도한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사용가능성을 검토확인하기 위하
여 원자력위원회를 동원하여 미국 유타주의 핵시험장에서 1952년
까지 무려 65차례나 그와 관련한 야전실험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트루맨에 이어 1952년 12월초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 아이젠하
워도 조선에서 《원자탄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담화를 발표
하고 《우리가 조선에서 보다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가자면 원
자탄을 사용하여야 할것이다.》는 발언도 거리낌없이 하였다. 그
리고 1953년 5월 13일에는 《돈으로 계산한다면 조선에서 상용
무기를 계속 사용하기보다 원자무기를 사용하는편이 더 유리하
다.》고 하면서 핵무기사용의 《유익성》까지 늘어놓았다고 한다.
미국의 계획대로 되였더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인간이 살수
없는 황페화된 불모지로 되였을것이다.
일본에서의 핵참사가 빚어진지 불과 몇년밖에 안되던 때에 미
국은 조선에 핵재난을 들씌우려고 하였다.
핵재난을 피해보려는 사람들의 이동에 의하여 오늘날 조선에
는 수많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이 생겨났고 수십년동안이나 소식
-21-
1) 조선핵문제의 근원
조차 모르고 지내면서 서로의 상봉을 희망하고있다.
미국의 핵공갈에 의해 인위적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가
생겨난것이다.
다시말하면 1950년대 조선전쟁시기부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이 시작되였고 북핵문제, 조선반도의 핵문제가 발생하였던것
이다.
이것은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반세기전부터 조선반도의 핵문
제가 발생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1950년대 후반기부터 미국이 남조선에 핵
무기를 실전배비함으로써 더 크게 부상되였다.
미국은 일본에서의 반핵운동이 고조되는것과 관련하여 일본
에 배비하였던 핵무기들을 남조선에 이동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말하자면 일본을 《비핵화》하는 대가로 남조선을 핵무장화한다
는것이였다.
그 실행을 위해 미국은 1957년 6월 군사정전위원회 제75차회의
에서 신형무기반입을 금지한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의 페기를 일
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7월에는 남조선주둔 미군의 《핵무장화착
수》를 선언하였다.
자료들에 의하면 미국은 1957년에 벌써 남조선에 전술핵무기인
《오네스트죤》을 배비하고 1958년 1월 29일에 그 배비를 공포하
였으며 2월 3일에는 미1군단 비행장에서 《오네스트죤》실물을 공
개하였다. 뒤이어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핵탄두유도탄인 《마타
돌》미싸일장비를 공개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각종 핵무기들과 핵
장비들을 남조선에 대대적으로 배비하기 시작하였다.
로씨야신문 《빠뜨리오뜨》 2013년 제5호는 《전쟁도발자》라
-22-
1. 조선핵문제의 발생
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지금으로부터 55년전인 1958년 1월 29일 미국은 조선반도 남
쪽에 핵무기를 끌어들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조선반도에서 핵문
제가 발생한것이다. 1950년-1953년의 조선전쟁을 도발했다가 참
패를 당한 미국의 정객들은 조선전쟁시기 《원자탄을 사용하지
못한것이 한》이라고 하면서 전후 핵전쟁준비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조선반도가 핵무기사용대상에 해당되는 《전략상요충
지대》니, 《핵전쟁의 시험장》이니 뭐니 하고 공공연히 제창하면
서 남조선에로의 핵무기반입을 다그쳤다.
남조선에로의 미국핵무기의 반입을 시사한 자료들은 적지 않다.
그중의 일부만 보기로 하자.
∙ 1975년 5월 당시 미하원 의원이였던 로날드 딤렁즈가
《미국은 남조선에 핵무기 1 000개와 핵폭탄운반용비행기 54대
를 보유하고있다.》고 발언.(워싱톤 1975년 6월 3일발 《합동》통신)
∙ 《남조선에 배비된 핵무기의 수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미하원에서 진행된 1976회계년도 국방예산심의(1975년 5월)
에서인데 이때 남조선에는 1 000발의 전술핵무기와 54대의 핵적재
비행기가 배비되여있다는것이였다.》(일본잡지 《군사민론》 1982년
제27호)
∙ 전 미국방장관 슐레징거가 1975년 6월 기자회견에서 《남
조선에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여있다.》고 발언.(《에이션 아
메리칸 뉴스》 1984년 3월 25일)
∙ 《남조선주둔 미군이 보유하고있는 전술핵의 량에 대한 각
종 정보를 종합하면 <F-4>전투폭격기용폭탄, 미싸일탄두, 야포
포탄, 핵지뢰 등 합계 600~700개라고 추측되고있다.》(《마이니찌
-23-
1) 조선핵문제의 근원
신붕》 1977년 5월 19일부)
∙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1979년에 《남조선에 최소한 650~
1 000개의 핵무기가 배치되여있다.》고 발표.(《통일평론》 1982년
2월호)
∙ 《남조선에는 현재 56개의 중성자탄이 있다.》(모스크바 1985년
12월 2일발 이전 쏘련의 따쓰통신)
이상의 자료들만 보아도 미국이 1970년대까지 남조선에 1 000
여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반입하고있었음을 알수 있다.
1991년 12월 남조선이 《핵부재선언》을 발표하고 1992년 7월
에는 당시 부쉬(1세) 미국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아시아에 배비한
모든 전술핵무기를 완전히 철수하였다고 공언하였지만 그에 대
해 확인된것은 없다. 수십년에 걸쳐 반입한 1 000여개에 달하는
방대한 핵무기를 단 1~2년안팎에 완전히 철수한다는것도 믿기
어렵지만 핵무기철수정형을 본 사람은 더구나 없다. 검증이 되
지 않은 핵무기철수공포를 말 한마디로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
겠는가.
오히려 그후에도 많은 전술핵무기들이 남조선땅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자료들이 속출되였다.
남조선 월간잡지 《말》 1992년 9월호와 2005년 10월호는 남
조선《국회》에 제출된 미군핵수송 및 배치현황도는 미국과 남조
선의 《핵부재선언》이후에도 춘천, 오산, 서울, 대전, 부산, 대
구, 광주 등지에 핵무기가 여전히 비축되여있으며 새로운 핵잠수
함기지가 계속 운영되고있다는것을 밝히고있다. 2010년 12월에 공
개된 미군비밀문서에도 2005년 4월 춘천미군기지에 핵무기가 배
비되여있은 사실이 밝혀져있다고 한다.
-24-
1. 조선핵문제의 발생
핵무기의 종류만 해도 비행기투하용핵폭탄, 핵미싸일, 핵포탄,
핵지뢰, 핵배낭 등 다종이다.
다종의 방대한 핵무기가 무엇에 필요했겠는가?
미국과 조선은 오래전부터 서로 적대국으로 되여있다. 1950년
대 조선전쟁의 종결과 함께 정전협정이 체결되였지만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바뀌여지지 못한채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미국의 행정부는 여러차례 바뀌였지만 대조선정책에서
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변화가 있다면 적대시정책이 보다 더 강
화되였을뿐이다.
미국은 사회주의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바라지 않았다. 조선
반도에 평화가 깃들게 되면 남조선주둔 미군의 존재명분이 상실
케 되며 그렇게 되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미국의 통제적역
할이 약화될수 있다. 조선반도의 평화는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하
는 일본과 남조선의 대미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도 초래할수 있다.
이러한 리해관계로부터 미국은 조선반도정세를 계속 긴장시키
면서 조선을 기어이 굴복시키려고 하였다. 조선의 사회주의체제
를 남조선형의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뒤바꾸어놓고 전조선반도
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클린톤행정부말기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적대의도를 가지지
않을데 대하여 선언하였지만 빈말에 그치고말았다.
미국의 핵무기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위해서 필요한것이다. 북
조선을 핵무기로 부단히 위협하고 일단 유사시에는 핵무기를 써
서라도 기어이 정복하려는것이 미국의 전략적의도이다.
교전일방인 미국의 심각한 핵위협을 수십년동안이나 받아온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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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핵문제의 근원
이 21세기에 들어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국과 서방이 말하
는 《북핵문제》도 생겨났다.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선반도의
평화를 지향하였더라면 《북핵문제》라는것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동북아시아의 평화도 이미전에 보장되였을것이다.
이처럼 《북핵문제》의 근원은 미국에 의한 핵위협과 남조선
에로의 핵무기반입에 있으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북이 핵무기를
가지게 되였다. 다시말하면 《북핵문제》란 조선반도의 핵문제로
서 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수십년동안이나 교전상태에 있는 조미
사이에 생겨난 문제이며 미국의 극심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
물이다.
이 력사의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 서방의 언론들은 마치도
《북핵문제》가 1990년대초 조선의 NPT탈퇴선언으로부터 생겨났다
거나 당시 핵사찰을 둘러싼 조선과 국제원자력기구사이의 마찰
에 근원이 있는듯이 오도하고있으며 조선이 핵시험을 단행함으로
써 핵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있다.
력사의 진실은 결코 불로 태울수도 없고 먹으로 지울수도 없다.
서방의 보도진이 아무리 갖은 수식사를 써가며 조선의 《핵
위협》설을 부각시키려고 해도 지나온 력사는 조선반도에 수많은
핵무기를 반입하고 핵위협을 가하여 핵문제를 산생시킨 주범은
북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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