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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권이 없는 식민지》 (1) 일본의 조선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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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민족 작성일15-12-29 08:37 조회4,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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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권이 없는 식민지》 (1) 일본의 조선강점

 

남조선의 인터네트에 군사주권마저도 미국에 송두리채 내맡기고 《한미동맹》의 올가미안에서 종노릇을 하고있는 남조선당국의 사대매국적정체를 폭로하는 글이 실리였다.

글은 먼저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봉건왕조가 농민들의 한을 풀어줄 대신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탄압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데 대해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외세를 끌어들인 조선봉건정부의 선택은 엄청난 실수였음이 몇해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라고도 할수 있다. 무능한 왕실의 구원요청을 받고 들어온 청군은 정작 할 일이 없었다. 정작 큰 사건은 다른쪽에서 벌어지고있었다. 청군의 조선주둔에 일본이 개입한것이다. 일본은 《제물포조약》과 《한성조약》의 내용에 따라 조선에 체류중인 자국의 상인을 보호하고 청나라와의 합의내용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군대를 들이밀었다.

군산지방에 주둔했던 청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곧바로 제물포에 군대를 상륙시켜 한성을 무력으로 장악해버렸다. 그리고 조선봉건정부를 협박하여 청나라와 조선의 긴밀한 관계를 끊어놓았다.

그후 1894년 음력 7월 22일 일본과 조선의 《군사동맹》이 체결된다. 불과 한달사이에 청나라와 일본의 립장이 완전히 뒤집어진것이다. 이 결과로 일본과 청나라사이에 전격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이것이 바로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또 《조일군사동맹》을 통해서 조선반도의 세력권을 쥐게 된 일본이 우금치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을 전멸시킴으로써 조선내의 저항세력도 일소하는 효과를 거두게 되며 이 땅에서 저들의 립지를 확고히 한다.

고종의 우매한 판단으로 청나라군대가 들어오고 그것을 빌미로 일본군이 상륙하며 그 다음 순서는 청일전쟁 그리고 조선이 일본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고만것이 1894년 한해에 일어난 사건의 전말이다. 일제의 침략은 이미 우리스스로가 빌미를 제공한것이였다. 백성의 고통이나 한을 풀어주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은 얼마든지 자국령토에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외국군대까지 동원하여 백성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살륙할수 있다는것을 력사는 보여주고있다.

1905년은 일본, 미국, 영국의 합의에 따라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한 해이다. 이들 세 나라는 동맹국이였지만 경계선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서로간에 조약을 맺는것을 잊지 않았다. 7월에 일본과 미국은 《가쯔라-타프트밀약》을 맺었고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 그리고 9월의 포츠머스조약에 이어 마침내 11월에는 조선과 일본간에 《을사륵약(을사5조약)》이 체결되였다. 외교권의 접수 다음의 순서는 군사권을 박탈하는 차례이다.

일본은 로일전쟁의 와중인 1904년 2월 23일 전문 6조의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여 조선령토내에 일본군의 주둔이 가능하게 이미 분위기를 조성해두었다. 결국 1907년 7월 24일 《정미7조약》이 조인될 때 첨부되였던 비밀각서에 의해 7월 31일 조선군 8 800명이 해산되고 다음날인 8월 1일 조선군의 해산식이 일제의 삼엄한 경계속에 이루어졌다. 그때 제1련대 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고 이를 계기로 조선군과 일본군간의 전투가 남대문을 중심으로 두시간동안 전개되여 조선군 200여명(사망 68명), 일본군 90여명(사망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조선군대의 병사들은 대거 의병활동에 참여한다. 사실 1907년에 군대가 해산됨으로써 조선은 멸망해버렸다고 보아야 한다. 외교권과 군사권이 없는 정부를 어떻게 국가라고 할수 있겠는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은 합법을 가장한 《조약》이라는 미명하에 이처럼 착착 진행되였다. 물론 미국과 영국과의 외교적인 절차도 함께 병행되였다. 조선과의 《정미7조약》체결 이듬해인 1908년에는 《루트-다까히라협정》을 맺어 미국과의 관계설정을 분명히 했고 조선병탄 다음해인 1911년에 영국과도 제3차 영일동맹을 조인하였다. 미국과 영국 두 나라의 묵인 혹은 승인하에 조선은 확실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여버렸다.(계속)


주체104(2015)년 12월 28일 《우리 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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