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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5]조선-중국-러시아 접점 등 5곳기행(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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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10-09 01:04 조회20,9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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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취재진(노길남,손세영, 김백호,김중산,유창환)은 왕청의 김일성항일유격대 사령부 자리를 참관하고 우리나라 지도 오른쪽 맨 윗쪽에 위치한 두만강을 낀 (1)방촌지역의 <일안3>에서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을 바라보았고, 이곳에서 길림으로 이동하여 김일성주석께서 소년 시절 재학했던 (2)육문중학교를 비롯하여 근처 천주교를 방문하였고, 인근 <북산공원>을 찾아 항일투쟁시기 김일성주석께서 비밀공작 활동을 전개하던 곳을 찿아 그 발자취를 찾아보았고, 이어서 (3)하얼빈의 역전으로 이동하여 안중근의사가 이등방문을 저격한 현장을 탐방한 후에 장춘으로 이동하여 한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인근 (4)카륜으로 옮겨 김일성주석과 청년애국자들이 카륜회의를 마치고 1930630<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였던 지역을 탐방했다. 그리고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은 (5)하얼빈 중앙대가 끝자락에 위치한 송하강 강변도 참관했다.[민족통신 편집실]

 

*관련 동영상 보기

일안삼국 육문중학교 하얼빈 등

https://youtu.be/gTuB-_GPJYA


 

 


[기획-5]<카륜회의>자리 5곳기행

 

[연길/룡정/화룡=민족통신 공동취재진]민족통신 취재진(노길남/손세영/김백호/김중산/유창환)은 이어서 왕청지역을 탐방하고 두만강변 방촌지역의 <일안3>, 길림의 육문중학교와 북산공원, 하얼빈의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곳,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한 카륜회의가 열렸던 지역 등을 탐방했다.

 

(1)일안3국에서 두만강 건너 조선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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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운데가 중국이고 두만강 왼쪽이 러시아, 그리고 그 오른쪽이 조선이다

 

우리나라 지도 오른쪽 맨 윗쪽에 위치한 두만강을 낀 (1)방촌지역의 <일안3>에서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을 바라보는 민족통신 취재진 성원들의 마음은 착잡하면서도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소원하는 마음은 뜨거웠다.

 

우리 취재진 일행은 이곳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여 우리민족이 분단을 종식시키고 통일조국을 이룬다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얕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 땅에 불고 있는 반한바람,반조선 바람도 우리민족이 통일하지 못하고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아픔으로 생각되었다.

 

  

(2)길림 육문중학교,북산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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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길림의 조선식당 <은방울>에서 점심을 먹고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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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련원 선생(47,연고자 가족)이 김일성주석과 길림에 관한 일화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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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일성주석이 육문중학교 시절 교회 숙소에서 잠시 기거하였던 추억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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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길림 북산공원-김일성주석께서 항일투쟁시기 비밀공작활동하던 추억의 사찰


이곳에서 길림으로 이동하여 김일성주석께서 소년 시절 재학했던 (2)육문중학교를 비롯하여 근처 천주교를 방문하였고, 인근 <북산공원>을 찾아 항일투쟁시기 김일성주석께서 비밀공작 활동을 전개하던 곳을 찿아 그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동북3성 그 어느 것을 가나 김일성주석의 항일투쟁 발자취가 어려 있었다. 김일성주석이 민족주의자들의 군관학교라고 볼 수 있는 <화전의숙>을 그만두고 길림으로 옮겨 육문중학교를 선택했던 것은 그 당시(1927~1930)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미래의 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 김일성주석의 생각으로 분석된다. 김주석은 어려서부터 부친 김형직선생의 영향을 받아 오는 한편 육문중학교의 상월선생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19261017일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하여 새로운 청년조직을 육성하여 왔다.이것이 발전하여 오늘의 주체사회주의 조선을 이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기획]김일성 주석과 길림《육문중학교》- 현지방문 취재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13#c_8115



 

 

(3)안중근 이등박문 역전서 저격

 


기획5-사진들12.jpg[사진]김중산 논설위원과 손세영 편집위원이 안중근의 이등박문 저격을 회고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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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요즘 한창 보수공사중인 하얼빈 역전-
그 왼쪽에 안중근 기념관이 있고 바로 뒤에 저격장소가 있다.

 

이어서 (3)하얼빈의 역전으로 이동하여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19091026)한 현장을 탐방했다.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이곳 역전이 개건보수사업에 한창이었다. 저격현장과 바로 건너편에 있는 기념관을 들어갈 수 없었다.

 

 

안중근의사(1879 9 2 ~ 1910 3 26)는 카톨릭 신자로서의 양심을 지킨 인물이었지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을 저격한이유에 대해서는 15가지 이유들을 들어 항변했다그러나 그의 만민평등주의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당시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그는 국제법에의해 처리되지 못하고일본에 넘겨져 일본법에의하여 처리되어야 하는 운명에 봉착해  결국에는 처형이언도 되었고, 끝내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등박문을 저격한곳은 하얼빈 역전이었다. 그 당시 러시아가 중국에 철도부설권을 가지고 집행관리하여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러시아 영향권이   매우 컸다고 한다. 하지만 1905년 러-일전쟁의 후유증도 작용한것으로 보인다. 결국 만국형법이 아닌 일본 형법에 의해 안중근의사는 무려 12차례의 심문을 받았다. 그 때마다 안중근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행위는전쟁을 한 것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그의 저격 동기는 칸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계속 감옥 안에서도'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작년에 노길남 특파원이 탐방하여 취재한 기사를 아래에 소개한다.

 

[기획]《안중근 이등박문 쏘다》현장 하얼빈 탐방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37


 

(4)<조선혁명의 진로>가 발표된 카륜회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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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장춘으로 이동하여 한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인근 (4)카륜으로 옮겨 김일성주석과 청년애국자들이 카륜회의를 마치고 1930 630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였던 지역을 탐방했다. 돌이켜볼수록 10대의 시절에 조국과 혁명의 만년미래를 담보하는 위대한 진리를 밝히신 김일성주석의 걸출한 위인상에 경탄을 금할수 없다.

 

세계의 위인사를 보아도 김일성주석처럼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지는 불멸의 사상을 창시하고 오직 주체의 한길을 따라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영도해온 그런 위인은 없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비범한 사상이론적예지를 완벽하게 지니신 김일성주석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공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5)하얼빈의 송하강 강변을 따라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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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은 (5)하얼빈 중앙대가 끝자락에 위치한 송하강 강변도로를 참관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그곳 마지막 자리에서 만난 송하강의 물줄기는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그 강물은 웬지 다정다감하게 느껴온다. 우리민족의 정기가 어려있는 백두산에서 흘러 흘러 이곳을 지나가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민족이 자주적 통일을 이룬다면 이 강물은 한층 더 돋보이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세상 그 누가 뭐래도 우리민족은 위대하다. 미국을 비롯한 대국들이 한패가 되어 고립압살 정책을 전개하여 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싸우며 자기 운명을 그들에게 맡기는 사대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며 자기 힘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여 온 조선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미제국주의의 식민지 노예의 처지에서 70여년을 보내왔지만 그 속에서도 자주적 통일을 갈망하여 투쟁하여온 한국의 자주,민주, 통일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자주역량과 한국의 자주,민주,통일역량이 있기에 우리민족의 미래는 밝고 창창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제 최후의 승리는 눈앞에 있다. 뿐만아니라 조선이 지구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인류평화의 전망도 밝다는 것이 우리 민족통신 취재진의 결론이다


[기획-8] <9.18역사박물관> 탐방후 작별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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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7]동북3성과 <세기와 더불어대담(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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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6]<압록강> 바라본 조선(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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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5]조선-중국-러시아 접점  5곳기행(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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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4]<김일성항일유격대 사령부>자리 탐방(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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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연변혁명열사릉원> <무명영웅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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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민족통신 취재진 장울화가족 대담(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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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민족통신 취재진 중국 동북3 탐방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925

 

[초점]미당국의 조선여행금지의 허구성을 극복하자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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