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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 박사, 통일포럼서 겨레핵 유용론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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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09-27 09:52 조회13,903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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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 박사는 9월26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통일포럼에서 북미사이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연대별로 간추려 정리한 다음  이러한 북미간의 역사를  크고  눈으로 바라본다면 북핵은 겨레의 으로 간주하여 남과 북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때 우리 겨레가 결정할  있어한다고 강조하면서 조국의 평화체제도 겨레가 힘을 합쳐 처리해야 한다”는 북핵의 겨레핵 유용론을 펼쳤다. 이날 마지막 순서에는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대부분 참석자들은 북이 핵을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는 소리가 압도적이었다.[민족통신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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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한반도평화통일포럼(조경미회장) 주최한 926 정오부터 3시까지 ()한인노동연대 회의실에서 진행된 통일포럼에서 오인동 박사(의사) 코리아반도 문제가 마치도 북핵문제처럼 거론되고 있는 사실은 한반도문제 역사와 오늘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북핵문제를 단순히 미국정부 당국이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긴장의 원인으로 것이 아니라 겨레의 핵우산으로 간주할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시사해 미국언론들이나 일반 한국언론들이 보도하는 것과는 크나큰 시각차를 보였다.


오인동 박사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한반도, 조선반도의  중요한 축인  북미관계가  전쟁을 잠시멈춘 정전협정(1053.7.27)이후 62 동안 진행된 -미관계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들을 연대별로 하나 하나 간추려 소개하면서  양자간의 수많은 협정들이나 합의사항은  당국이 어기어 왔다고 분석하는 한편 북측이 비핵화를 갈망해 왔지만 미당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고립압살정책에 의해 불가피하게 핵보유국이 밖에 없었다고 풀이하면서 헌법으로 핵보유국으로 선언한 이상 이것을 일방적으로  비핵화하라고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날 발표를 시작하면서1953 정전협정이 맺어지면서 3개월 외국군 철수와 평화체제가 약속되었으나 미국측은 정전협정 2개월뒤 한미방위조약 통해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미군을 주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은 1960 남측에 있는 외국군철수를 요구하면서 평화협정을 촉구했고, 남측은 1974년에 북에 불가침조약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남측이 이를 보장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거부하면서 미국측에 평화협정을 제안했고, 1976 미국측은 북측의 평화협정제안을 무시하고 팀스리트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고, 1984년에는 북남불가침조약, 북미평화협정이 북측에 의해 제안되었으나 이때에는 미국과 남측에서 불응했고, 1992 남과 북이 유엔동시가입되면서 북측은 다시 미군철수와 평화협정을 요구했으나 미국측은 이를 외면했다고 설명했다그의 발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

 

 1992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지만 같은 10월에 미국은 한미합동 전쟁연습 재개하면서  코리아반도를 긴장으로 몰고 갔다. 미국은 이듬해인1993 북측의 핵개발 의혹을 문제삼아 북미관계가 긴장국면으로 들어갔을때 북측은 이에 반발하여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94 북미기본합의가 이뤄졌다. 대신 북의 중수로 핵발전소가 동결되고 1백만 킬로와트의 경수로 2기와 중유를 제공하고, 경제제재를 풀고, 관계정상화한다는 조건에서  북미간에 합의가 이뤄졌으나 이것도 서명 2주일도 안되어서 고아가 되었다고 평가한 보스워스 총장의 말을 인용하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1998 8 미국의 북측에 대한 합의이행의 압박이 심화되자, 북측은 장거리 로케트를 발사했고, 이듬해인 1999 9 북미미사일합의-발사중지-제재완화하는 방향으로  북미관계가 전개되었고, 2000 6.15남북정상회담 선언으로 코리아반도에는 화해/협력 분위기로 전환되었고, 영향으로20029 북일수교를 전재로 평양선언이 발표되었다. 바로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미국측은 켈리를 앞세워 우라늄고농축(HEU) 의혹이 제기되었고, 북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때문에서 북미기본합의도 파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리온 시걸은 북미합의를 어긴 것은 미국(U.S. did not live up to the AF)이라고 고백한바 있었다. 결과 2003 NPT(핵확산방지조약)에서  그탈퇴하게 된다. 이후 2005 2 북측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 연장 선상에서 미국은 북과 9.19공동성며을 통해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발표했으나 바로 이틑날 마카오 은행사건을 거론하면 다시 긴장이 조성된다. 사건은 나중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2006 7 북측은 장거리 로케트를 발사한다. 그것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4 기해..그리고 10월에  북측은 1 핵무기시험을 전개한다.

 

북미관계는 또다시 2007  2.13북미합의로 핵봉인-10.3핵불능화-2008 냉각탑폭파 등의 수순으로 양자합의 수순을 밟아 갔으나 이것도 결렬되고 말았다. 이어서 2007 104 남북정상간의 평화번영 선언이 선포되었으나  이듬해 집권한 이명박 보수정권에 의해 비핵-개방-3000’이라는 반북정책이 제시되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경색화 되고 말았다. 2009 오바마 미정부당국 북과 직접대화 시도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북측은 이어서  인공지구위성, 2차핵시험으로 유엔제재를 받게 되었다. 북측은 당시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 공표한바 있었다.

 

이어서 2010 3 숱한 의혹을 담은 천안함 침몰사건 터졌다. 5.24조치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경색되고 말았다. 미국은 이러한 흐름을 타고 오바마 대통령에 의한 대북정책으로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측의 대미정책은201212 인공지구위성이 발사되었고,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를 가했지만  북측은 2013년에 3 핵시험에 들어가 다종화된 핵시험을 전개한다. 북미 핵대결시대로 전환되었다. 정전협정은 백지화되었고, 비핵화공동선언도 무효화되고 말았다국제사회는 미국의 =평화, 북핵=위협이라는 모순된 도식을 확산시켜 왔다. 이에 대해 북측은 핵보유국을 헌법에 못박고 핵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진노선을 국가의 주요정책으로 천명하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측은 핵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대북적대시정책 종식과 자주권, 생존권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핵문제도 해결할 가능성을 여러차례 시사한바 있다. 2014 외무성의 수장인 리수용 외무상이 언급한바 있었고, 금년 2015 1 당국이 군사연습 중지와 북측의 핵시험 중지라를 제안이 나왔으나 이에 대해 당국은 무반응으로 임하고 있다.

 

오인동 박사는 북미사이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연대별로 간추러 정리한 다음  이러한 북미간의 역사를  크고 눈으로 바라본다면 북핵은 겨레의 으로 간주하여 남과 북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때 우리 겨레가 결정할 있어한다고 강조하면서 조국의 평화체제도 겨레가 힘을 합쳐 처리해야 한다 제안한다.

 

이날 마지막 순서에는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대부분은 북이 핵을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는 소리가 압도적이었다. ()



(2015)년 9월 24일 중앙텔레비죤 17시보도

https://youtu.be/ne_QhrKl1js



(2015)년 9월 25일 중앙텔레비죤 20시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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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존경하는 오인동 박사님의 말씀 적극 지지합니다.

몃해전 주권방송에 나와서 하신 말씀 듣고 감동 몃백번 먹었습니다.!!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그리고 기사와는 상관없지만.

답답한 한국정치현실과 무능한 현재 야당에게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적어보았습니다.

--------다음-------
<훈계>야당이 매일 깨지는 이유

 갑자기 뜬금없지만,

생각해보니 그나마 한국의 유일한 대안은 현 야당일수 밖에 없어서,

작금의 민족과 한반도의 존망이 걸린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껏 야당이 왜 맨날 깨지고 질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자리를 빌어 알리고자 한다.



야당은 먼저 배경지식으로 민주화 운동의 변천사를 알아야 한다. 뭐 이제는 다지난 이야기일지는 몰르지만.

1960~1970년도의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청년들의 순수한 외침이였다. 그당시 민주화운동은 진실과 진리를 외치는 순수한 어린청년들의 순수한 외침이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수많은 희생속에서도, 박정희의 유신이 통과되어 영구독재가 가시화 됬을 무렵, 민주화운동은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진리와 진실보다는 국민대중이 공감하는 대중적 이슈를 찾아내 대중적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였고.
그것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결실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 또다시 군사정권의 그늘을 벋어날 수없게 된다.

그리하여 민주화운동은 또다시 변화할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소위, 적과의 동침과 논개작전이라고 불렸던.
실제 정치에 파고들어 권력의 중심부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나가는것이였다.

즉 한편에서는 대중적 참여를 게속 유지하고, 한편에서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적과의 동침 혹은 논개작전을 펼침으로서, 반민주 세력의 틀어쥐고 있던 권력을 무력화 하는것이었다.

그리하여 건국 최초로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다.


지금현재의 야당이 맨날 깨지고 선거에서 질수 밖에 없는것은, 1960-1970년대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극자본주의하에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대다수90%의 대중들은 진실과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해도 그 진실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것이 문제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진실을 캐내고 진실을 알리는데만 급급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들은 공부하는 선비도 아니고 학생들도 아니다.

그들은 지식이 필요한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줄것 같은 힘있는 강자를 원하는것이다.
또한 대중들은 기득권세력에 대해 두가지 마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번째가, 질투와 비도덕적이지 못한것에 대한 공감과 비난이라면.
그 두번쩨가, 자신들도 기득권세력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함께 존재 한다는것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반이 선하고 반이 악하다고 봐야 한다. 즉 반반의 석과악이 혼재하며, 그들의 선악은 그들의 이익에 따라 표출된다는것도 알아야 한다.

그런면에서 보았을때 여당의 선거전략은 아주 적절했고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봐야한다.

기득권세력인 여당의 기득권 이미지가 많은 대중들에게 결코 마이너스가 아닐수도 있다는것이다.
적절히 포장하고 그 기득권을 대중들도 누릴수 있게 그 문을 열어준다 혹은 그것을 통해 대중들의 삶의질을 올릴수 있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것을 나누고 풀어주겟다. 라는식으로 대중들에게 들릴수도 잇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편승하는 대중들이 양심적인 대중들보다는 적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50%의 지지만으로 야당이 승리할수 없슴을 알아야한다.
과반수가 아니라 과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특히 민주 야당은 그래야 겨우승리할수 있다.
즉, 많은 40% 서민들에게는 확고한 신뢰를 얻어야 하며, 20% 중간층 (기회주의자들) 도 잡아야만 60%를 얻을수 잇고 , 거기에 약 10%(중산층)까지도 얻어 70%의 지지를 끌어내야만 승리할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층의 확고한 신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전략과, 나머지 전략은 분산시켜 20%의 기회주의 계층 10%의 중산층까지 휘어 잡을 수 있어야 승리 할수 있는것이다.

이 세가지 그룹의 공통점은 생계와 경제이다.  진실과 진리가 아니라는것이다.

서민의 절대적 소망은 생계이다. 서민층은 그것만 확실히 보장해준다해도 거의다 밀어 준다. 그리고 야당도 그렇게 할수 있다는 힘과 자본을 보야주어야 한다.
기회주의 계층과 중산층은 말할것도 없다. 그들의 소망은 경제 활성화로 자신들의 자산을 증식 시키는것이다.

즉, 한국의 대중들은 자신들의 생계와 경제를 활성화시켜 줄수 있는 당을 찍는다는것이다.
아무리 욕을하고 비난해도, 그 두가지를 확실히 챙기고 지속시켜줄것 같은 당이라면 적당히 부도덕하고 적당히 부패하고 설령 일부 뻔뻔하더라고, 욕만하고 비난만 하지, 실제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리고 우기고, 잘 포장에서 속이면 또 속아 넘어가주는것이 한국 대중의 특수성이다.

한국대중의 특수성을 잘 알고 적절히 대처해나가는것은, 현 여당이 더 잘한다고 봐야한다.

야당은 그 특수성을 이해하고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그것은 건국역사와 극자본주의 체제에 플러스 식민지와 다름없는 한국의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하자는대로 끌려가서도 안되며.

좀 심하게 비유하면, 말안듣고 땡강부리는 자식을 계속 얼른다고, 계속 어린자식한테 고개 숙이면 어린자식은 승질내며 부모  얼굴 할퀴고 부모 머리 끄덩이 잡아당기 뺨까지 때리고 하는것이다.


야당은 진실과 진리는 가슴속에 일단 묻고, 현실속에서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진실과 진리는 그후의 문제인것이다.

만약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야당은 영원히 집권할 수 없을것 같다.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참 그리고, 북핵 비핵화는 약 20년전에 클린턴 정부에서 한때 써먹었던 것으로, 지금은 전혀 의미가 없는 대북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효기간 지난것 가지고 지금 미국정부에서는 북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오만적인 외교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과 평화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고 싶다면, 핵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일단, 북에 찾아가 신뢰를 북과 신뢰를 쌓아야죠. 카터 대통령이 그랫던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이 그렇게 떠드는것처럼 중국과도 G1 G2로 서로 상생화 협력의 관계로 갈수 있다고 그렇게 떠들수 있다면, 왜 북과는 그렇게 못한다는것입니까?

G1 G2 G3관계로 서로 화홥하고 상생 협력하는 관계로 가면 되지요.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북과 형제국이라는 중국과는 그렇게 어깨동무하면서 협력 동반자 관계처럼 떠들면서, 북녁한테는  쥐여밖고 때리려고 하는 미국이 과연 중국에도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마치 한반도를 둘로 갈라놓고, 한쪽은 동맹 한쪽은 죽여없애야할 적이라고 하는것과 뭐가 다른 상황인가요?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오인동박사님을 비롯한 민족통신 선생님들께!

다음은 제가 오랫동안 틈틈히 고민해온것을 적어 본것입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민족을 생각하시는 여러선생님들이 한번쯤은 고민해야할 문제인거 같아서 여기에 적어봅니다.


--다음--

다음은 우리 민족 민주 통일 진영에서, 꼭 풀어내야할 숙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북녁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불가능합니다.

현제 UN을 중심으로한 국제외교마당에서만 보더라도 북녁의 영역은 너무나 협소하며 본인들의 안전을 담보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이상황에서, 오로지 힘을 보태줄수 있는것은 남한밖에 없습니다.

즉 남한의 민주세력이 집권을 하여, 국제무대에서 남북의 평화를 같이 외치고 다니면,  지구상의 그 어느국가도 시비를 걸수가 없는것입니다.

남과북이 한목소리로 남북을 서로칭찬하면, 지구상의 그 어느국가도 북의 인권을 시비걸어 한반도에 전쟁의 재앙을 불러 일으킬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결국, 남과북은 운명공동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남한에서 집권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또다른 6.15를 만들고, 그다음엔 통일연방정부를 구성하고,

그다음엔!!!

바로 자신의 권력을! 그냥 집어 던질수 있는! 엄청난 지도자!가 한국에서 나와야 합니다.


한국에 과연 그런 지도자가 누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민주 민족 통일 진영에서 매일매일 고민하며,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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