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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선분 선생 서거,'민족통일장'거행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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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08-05 02:29 조회6,014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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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열사 김선분 선생 민족 통일장 치르기로
6일 오후 7시 시민사회단체 추도식 예정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5 [16: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 평생을 조국과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해 일해 오다 명을 달리한 통일애국열사 김선분 선생 장례를 '통일애국열사 김선분 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자주통일 시민사회단체는 5일 김선분 선생에 대한 장례 절차를 논의해 통일애국열사 김선분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이 같이 결정했다.

 

장례위원회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과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의장을 공동대표로 결정했다.


호상은 통일광장 임방규 선생, 범민련 김영옥 선생, 양심수 후원회 김호현 선생이 맡기로 했으며 집행위원장은 범민련 남측본부 원진욱 사무처장과 김익 양심수 후원회 사무국장이 선임돼 일하게 됐다.

장례는 4일장(8월 4일~7일)으로 하고, 입관은 5일 오후 2시에 치렀다.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는 추도식은 오는 6일 오후 7시 빈소가 마련 된 국립중앙의료원 302호에서 
'통일애국열사 김선분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이라는 이름으로 거행된다.

 

추도식에서는 김선분 선생의 약력이 소개 되고 조사. 조시. 츄모공연, 추도사. 추모영상. 호상인사등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행되며  오전 10시 벽제 서울시립 화장장인 승화원에서 화장 후 통일광장 선생들이 모셔진 납골당에 안치 된다.

 

▲ 민족의 딸이자 어머니로 살아 오신 김선분 선생님의 빈소는 자주통일 단체의 관계자들이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았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약력

조국의 딸, 불굴의 애국투사 김선분 선생님 걸어오신 길

 

1925. 2. 14. 경기도 양주 퇴계원에서 아버지 김춘호님과 어머니 박점예님 사이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심.

 

1945. 8. 15. 조국해방을 맞아 서울로 옮겨 미용사 등 일을 하면서 의식있는 좋은 분을 만나 학습.

 

1948. 3. 1. 3.1절행사와 관련 홍보선전물을 배포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풀려남. 그 뒤 서울 중구 필동의 여성동맹위원장으로 활동하심.

 

1950. 전쟁시기 여맹활동을 하셨음. 9월 인민군 후퇴기에 함께 북행. 평안북도 (오늘의 자강도) 강계까지 이동.

 

1951. 조직의 추천으로 평북 의주에 있는 학교에 입학. 다시 개성 금강학원에서 6개월 수료.

 

1952. 조국통일 염원 안고 인천항 거쳐 서울로 돌아오심.

 

1952. 5. 공안당국에 체포. 서대문형무소 수감. 이 때 박정숙, 한기명 선생님을 만남.

 

1952. 11. 국방경비법(32조) 등 위반혐의로 10년형을 선고 받음. 이후 마포형무소 거쳐 박정숙 선생님과 함께 전주형무소로 이감.

 

1962. 만기출소 하심. 이 때 1년 전에 출소하신 박정숙 선생님이 수소문하여 찾아오심. 이후 늘 함께 계심.

 

1963. 두 분은 온갖 궂은일을 하시던 끝에 만화가게를 꾸려 의식주를 해결하심.

 

1972. 7.4남북공동성명 발표에 크게 고무 받으시고 옛 동지들과 의기투합하심.

 

1975. 뜻있는 동지들과의 만남 등으로 다시 반공법 등 위반혐의로 두 분을 포함한 여러분이 체포되어 2년간 옥고 치르심.

 

1992.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심.

 

1993.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활동하심.

 

1995.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에 참가하심.

 

1995. 11.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대탄압 시 범민련 지키기에 혼신을 다하심.

 

1996.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현재까지 활동하심.

 

2000. 통일광장 회원으로 현재까지 활동하심.

 

2001. 11. 박정숙 선생님과 함께 제 7회 불교인권상 수상하심.

 

2005. 7. 범민련후원회 주관 금강산기행에 다녀오심.(박정숙 선생님과 함께)

 

2005. 10. 광복60년 기념 평양문화유산 참관차 평양행.(평양, 묘향산 등을 참관. 박정숙 선생님과 함께 4박5일)

 

2008. 범민련후원회 주관 개성 민족유산 답사 하심.

 

2011. 이후 박정숙 선생님 낙상하시어 입원치료, 요양 등을 하시고 김선분 선생님께서 간병을 하심. 이 때부터 활동을 적극 못하심.

 

2011. 7. 16. 양심수후원회 갈현동모임 주최로 박정숙, 김선분 선생 동고동락 60년 기념후원모임.

 

2015. 7. 평소 앓으시던 간경화 등 질환악화로 녹색병원에 입원.

 

2015. 8. 4. 오후 7시 30분. 평생 염원이셨던 통일세상을 보시지 못한채 영면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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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한생을 살아온 통일애국자 한분이 또 별세. 남녘 통일운동 진영에서 한평생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김선분 선생이 4일 향년 91세로 서거했다. 남녘의 진보언론 자주시보와 통일뉴스가 그의 운명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두 보도자료를 원문 그대로 아래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통일 원로 김선분 선생 운명

한평생 조국통일에 바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4 [20: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한 자매처럼 동고동락하며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김선분 선생이 오늘 운명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박정숙 선생,오른쪽이 김선분 성생     © 사진 통일뉴스

 

여성 통일 운동가로 한평생을 조국과 민족에 바쳤던 김선분 선생(향년 91세)이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운명했다.

 

김선분 선생은 지난 토요일 백수 잔치를 했던 통일할머니 박정숙 선생과 동고동락하며 분단 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 왔다.

 

김선분 선생은 1925년 2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해방후 반제국주의 운동과 통일운동에 전념했으며 1948년 서울시 중구 필동 여맹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50년 9월 월북했다. 북녘 의주에서 수학 한 후 남쪽으로 내려왔으나  1952년 체포, 10년의 옥고를 치뤘다.

 

또한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과정에 함께 했으며 각종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한길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오다 지병으로 얼마전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다 오늘 명을 달리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빈소는 국립의료원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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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할머니' 김선분 선생 별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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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4  21: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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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운동가 김선분 선생이 4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만기출소한 이규재 범민려 남측본부 의장의 출소 환영식에서 카랑카랑한 웅변조로 환영사를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범민련 할머니’ 김선분 선생이 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녹색병원에서 지병인 간경화 등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언니, 동생 사이로 60여년 고락을 함께해 온 박정숙(99세) 선생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을지로 국립의료원에 차려질 예정이며, 장례절차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인은 1945년 해방공간에서 서울 필동 여맹위원장을 맡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후퇴시기에 북으로 가 중등교육을 받은 뒤 1952년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돼 10년 옥고를 치렀다.


1962년 출소한 고인에게 옥중에서 인연을 맺어 평생 그 인연을 이어가게 되는 박정숙 선생이 찾아왔고, 이후 1975년 반공법으로 나란히 구속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는 양심수후원회와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박정숙 선생과 함께 활동해왔고,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당시 함께 고문으로 추대됐다.


   
▲ 2011년 7월 박정숙 선생(왼쪽)과 함께 '동고동락 60년 축하연'을 맞은 김선분 선생.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에는 금강산과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2006년 박정숙 선생과 나란히 불교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정말 한평생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살아오셨는데 끝내 보지 못하고 가셔서 너무 안타깝다”며 “박정숙 선생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65년 가까이 함께 하셨는데 먼저 가시게 돼서 특히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추도했다.


권 명예회장은 “누구보다 투철하시고 젊은 후배들에게 조국사랑, 겨레사랑 다짐을 많이 해주신 선생님”이라며 “90수를 넘겨 천수하셨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편안하게 보내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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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지난 토요일(8월1일) 60여년 가까이 동거동락한 고인의 감옥동지 박정숙 할머니 백수잔치가 열렸는데 그 행사에도
김선분 선생은 건강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안타까와 하시다가 끝내 8월4일 오후7시 30분 눈을 감으셨다.

후진들이 마련해준 백수잔치를 받았지만 이제 박정숙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워 하실까. 가슴이 아프다. 지난 토요일 백수
잔치를 맞이하신 박정숙 할머니께 올린 양희철 선생의 헌시를 아래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양희철 선생은 100수를 맞이하신 박 선생님에게 헌시를 바쳤다.
 
박정숙 선생의 100수를 맞아
맑게개 인 초원의 산들바람인 듯
일하는 일꾼 시원히 땀 시켜주는
새하얀 입성으로 단아이 앉은 모습
은은히 풍겨주는 백합꽃 향기더라
 
등성의 푸르른 솔 비바람에 씻기워
푸프러 더 푸르러 변함없는 저 푸름
말씀 없으셔도 가만히 계시기만 하여도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
자상히 일러주는
우리의 스승 박 정 숙 선생님
 
강원이 준령 기상 맑은 물 정기 받아
예쁘디예쁜 여전사로 자랐고
일제의 만행
미제의 악랄
맞받아 싸웠으라.
흘러 일월과 함께 흘러
분단조국 쓰라린 아픔 온몸으로 받아 안고
오늘도 싸운다 통일을 위하여
 
한 세기 긴긴 나날 잊고 싸웠다.
허리 잘린 내 조국 통일 절절한데
제국주의 악발 이들이 갈수록 분탕인데
안일을 찾았으랴.
생일을 챙겼으랴.
범민련 말살 책동 온몸으로 막았고
통일의 대열 선봉에 서셨던
민족의 기상 드높임에 언제나 앞장섰어라
살 저미는 아픔과 죽음의 고비 넘을 때마다
우러러 한별 보며 참아내고
민족 앞에 조국의 명령 앞에 떳떳할 것을
맹세하며 살았어라
 
우리의 어머님 박정숙 선생님
당신의 한생 아름다움의 연속이었고
당신의 일생 투쟁. 헌신 . 봉사의 나날인
오! 당신은 우리의 스승
오!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
당신이신 박 정 숙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당신의 아흔 아홉 번 생신을 축하합니다

2015년 8월 1일
삼가 양희철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정중히 빕니다.

노길남님의 댓글

노길남 작성일

조사

김선분 선생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저희 재미동포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더욱이 60여년 동안 동거동락하시던 박정숙 선생님의 백수 잔치에도 참석하지 못한채 눈을 감으신 소식을 듣고 한층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선분 선생님은 한국의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현장에는 언제나 박정숙 선생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한국을 방문하여 투쟁현쟁에서도 여러차례 뵐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맑고 깨끗하신 애국심으로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투쟁의 현장에 늘 계셨습니다.
말씀은 적으셨지만 저희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때묻지 않은 애국심과 양심을 배웠고, 겸손을 배웠고, 지조를 배웠습니다.
김선분 선생님께서 비록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그 뜨거운 애국심은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토록 염원하시던 조국의 자주적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것을 위해 남과 북, 해외 애국세력들은 하나같이 굳게 뭉쳐 선생님의 염원을 실현하는데 한몫 할것을 굳게 약속드리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5년 8월5일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삼가 올립니다.

무등님의 댓글

무등 작성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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