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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정숙 항일여성투사가 남긴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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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24 16:40 조회9,422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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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서양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길때, 북녘동포들과 해내외 동포들은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에 대한 이모저모를 회고한다.

 

  김정숙여사는 1917 12월 24일 함경북도 회령의 극빈한 농가에서 탄생하여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민족수난의 시기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로 남다른 반일애국의 뜻과 불타는 혁명의식을 갖고 10대의 소녀시절에 항일투쟁의 길에 나서서 민족해방혁명에 생을 바치고 주체사회주의 건설 투사로도 활약하다가 1949년 9월22일 서거하신 여성혁명가이며 동시에 32세의 짧은 생애를 산 김일성주석의 부인으로서 백두산여장군으로 높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는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지니고 김일성주석을 일심전력으로 받들어모신 수령옹위의 최고화신이며 충직한 친위전사로 널리 알려져 왔다.

 

 북녘의 인터네트 언론 '우리민족끼리' 최정철 기자가 2014년 12월23일 소개한 김정숙 항일여성투사에 관한 소개글을 아래에 별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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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해발로 영생하시는 백두산녀장군

 

지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태양의 해발이 되시여 조국과 혁명앞에, 후대들앞에 불멸할 공적을 쌓아올리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빛나는 생애를 돌이켜보며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고있다.

남녘겨레들은 김정숙어머님의 한평생은 위대한 혁명가, 걸출한 민족적영웅의 한생이였다고 높이 칭송하면서 어머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끝없이 칭송하고있다.

어느 한 통일운동단체 회원은 《백두의 녀장군으로 명성높으신 김정숙녀사의 탄생일을 맞는 뜻깊은 이 시각 우리 민중의 마음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가장 가까운 전우이시고 혁명동지이신 어머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으로 뜨겁게 불타고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계속하였다.

《김정숙녀사는 일찌기 10대에 벌써 김일성주석님의 전사가 되시여 손에 총을 들고 백두밀림에서 항일대전을 벌리신 빨찌산녀장군이시고 해방후에는 새 조국건설을 위해 활동하시는 주석님을 정력적으로 보좌해드리신 위대한분이시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조국과 겨레를 위한 김일성주석님의 사상과 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라는 정신, 주석님의 사상과 로선에 어긋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없이 투쟁해나가는 혁명적원칙성을 품성으로 지니고계시였다.

언제 어디서나 김일성주석님의 사상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고하고 행동하시며 민중을 주석님의 혁명사상의 위대성과 진리성으로 교양하고 이끌어가신 녀사의 그 고결한 품성이야말로 우리들이 따라배워야 할 품성이라고 본다.》

남조선의 어느 한 녀성교수는 자기가 쓴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격정을 토로하였다.

《김정숙녀사는 김일성장군님의 모습그대로 환히 웃으시는 해발이시였다. 태양같은 대장군이 있으면 해발같은 녀장군이 곁에 있기마련이다. 녀사의 모습은 바로 태양장군의 옆에 계시는 해발장군의 모습이시였다.

김정숙녀사는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민족사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내며 광명의 새시대를 열고 무궁토록 빛내이기 위해 총을 잡고 항일유격전에 참가하신 백두의 녀장군이시였다. 녀사께서는 그 준엄한 항일전장에서 김일성장군님의 넋으로 살고 장군님의 지략과 용맹으로 싸우시여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하시였으니 그이는 정녕 우리 겨레와 인류가 처음으로 맞이한 녀장군이시였다.》

남조선의 한 대학교수는 조국통일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남기신 김정숙어머님을 높이 칭송하여 자기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김정숙녀사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은 무조건 수행해야 할 민족지상의 과제였다. 하기에 녀사의 사색과 활동은 김일성장군님의 통일방략실현에로 이어졌고 이남민중에 대한 애정으로 차있었다. 이 보살피심속에 이북의 각계 민중은 물론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이 다른 이남의 각계 인사들도 인생의 바른길을 찾고 통일애국의 길에 나섰다.

남북련석회의때 북에 가서 김일성장군님을 뵙고 돌아온 백범 김구선생이 녀사께서 지어주신 옷을 친지들에게 자랑하며 기뻐한것도, 녀사께서 보내주신 친서에 접한 서울의 한 녀성운동가가 눈물을 흘리며 통일운동에 더욱 분발해나선것도 녀사의 무한한 은정에 탄복해서였을것이다. 진정 김정숙녀사는 통일성업에 한몸바치신 민족의 위대한 어머님이시다.》

남조선의 《한국미래녀성연구원》 성혜진교수는 글에서 《김정숙녀사는 인류사에 아름답게 수놓아진 그 모든 훌륭한 녀인상을 다 합쳐도 따를수 없는 가장 위대한 어머니이셨다. 김정숙녀사는 사랑의 태양 김일성장군의 모습그대로 환히 웃으시는 해발이셨다.

김정숙녀사의 거룩한 행적이 있어 5천년  배달민족사는 광명의 새시대에 들어섰으니 참으로 녀사이시야말로 김일성주석의 존함과 더불어 그 이름도 빛나는 민족의 어머니이시다.》라고 썼다.

남조선의 한 퇴역장령은 TV를 통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거룩한 생애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력사에는 애국충절로 이름남긴 녀걸도 있고 무공을 세운 녀장군도 있지만 김정숙녀사와 같이 만고의 빨찌산대장군을 령수로 모시고 민족구원의 혈전장에 함께 계시며 자신도 직접 혁혁한 무훈을 세운 빨찌산녀장군은 없었다. 더우기 항일대전의 격전장에서 자제분을 키우시여 민족만대의 중흥을 담보하여놓으신 민족의 위대한 어머니, 절세의 백두산녀장군은 인류사의 어느 갈피에도 없다.

녀사께서 김정일장군님을 백두산장군으로 키우시여 주체위업의 대를 굳건히 이어놓으신것은 민족과 더불어 후세에 길이 빛날 가장 위대한 공적이다.》라고 격동된 심정을 터놓았다.

이처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한생을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불태우시며 조국과 인민앞에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신것으로 하여 오늘도 온 겨레의 마음속에 영생하고계신다.

 

 

본사기자  최 정 철

*출처: 주체103(2014)년 12월 23일 《우리 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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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명당님의 댓글

명당 작성일

김정숙 묘지 평양의 최고 명당

‘평양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대성산의 주작봉마루.

중심에 김정숙의 반신상이 있고 주작봉 릉선을 따라 좌우로 100여명의 항일빨치산들의 유해가 묻힌 혁명열사릉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평양의 기류가 시작되는 명당자리여서 고위층 간부 부인들이 자기 소원을 빌러 다닌다고 평양의 한 주민이 25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얼마 전 중국을 방문한 이 주민은 “특히 김정숙의 흉상 앞에 가면 마치 산신이 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평양에서 유명하다는 점쟁이들이 거기 가서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 말을 듣고 요즘 간부 아낙네(아내)들이 앞을 다퉈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유명한 중앙의 간부 부인은 “남편이 무사하고 집안의 대가 잘 이어지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진짜 자기 남편이 승진하고, 아들도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평양 주민은 “이런 소문이 한입 두입 건너 퍼지자, 간부 부인들은 음으로 양으로 많이 다니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 김정숙 반신상 앞에 가서 절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자기의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미신이 비 과학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이 주민은 “요즘 조선(북한)의 웬만한 간부들은 모두 점쟁이들을 다 끼고 있다”면서 “이들은 자기 전용차까지 보내 점쟁이들을 ‘모셔’다가 점괘(占卦)를 보고 액막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점쟁이들에게 의지하여 나라를 다스렸다면서 그가 살아있을 때 진행한 당 대회나 큰 국가적인 행사들은 모두 ‘손 없는 날’(악귀가 없는 날이란 뜻)에 행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김정숙의 묘가 안장되게 된 것도 “어머니를 잘 모시면 김 위원장 대가 흥하게 된다”는 점쟁이의 조언을 듣고 열사릉 건립 작업에 착수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북한의 혁명열사릉은 원래 1954년에 대성산기슭 미천호 옆에 설립되었지만,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되던 시기인 1975년에 주작봉 마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4년 전 평양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한 탈북자도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올라 평양시 전경을 보면 평양시가 한눈에 다 들어오고, 더욱이 김정숙의 반신상과 주석궁은 일직선상에 놓여 뭔가 기운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정숙의 반신상은 1년 열두 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면서 설사 자기 소원을 빌러 자주 간다 해도 오히려 충성심이 높다고 칭찬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명당님 글 좀 납득이 안가네요.
북한에 점쟁이?
글쎄요.
아마 전통적 문화중에
주역이 있고,
사주팔자도 있고,
음양오행설도 있긴한데
그것에 의존한다는 건 좀 오버 아닌가요?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노작도 있고
유물사관에 기초한 주체사회주의 사회가 북인데
이곳에서 점쟁이?

이건 아니지요.
남이나 북이나
좋은 일 , 궂은일 있을때
기원하고 빌고 기도하는
풍습은 내려온 문화이 일부일
뿐이라고 봄직합니다.

ㅎㅎㅎ
아무튼 재밋는 이야기네요.

김초롱님의 댓글

김초롱 작성일

《김정숙녀사는 일찌기 10대에 벌써 김일성주석님의 전사가 되시여 손에 총을 들고 백두밀림에서 항일대전을 벌리신 빨찌산녀장군이시고 해방후에는 새 조국건설을 위해 활동하시는 주석님을 정력적으로 보좌해드리신 위대한분이시다》

동감이네요.

샘물님의 댓글

샘물 작성일

대학원생님,
주체사회주의는 주체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주의를 포용한 노선으로 봅니다.
따라서 유물사관이 아니라 유심론(주체사상의 기본)으로 봐야 하겠지요.
저도 예전에 대학원생님처럼 생각한 적이 있지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김일성 주석의 첫번째 부인은 김정숙녀사가 아닌 다른여성으로 김정숙녀사는 두번째인가 세번째부인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김정숙녀사는 실제로 성격이 무미건조했고 온기도 없었으며 몸집도 뚱뚱했고 외모도 그렇게 고운분도 아니었습니다! 김정숙녀사가 죽고 새로얻은 김성애는 김정숙녀사에 비해 미모가 빼어난편이라고 종편언론에서는 그렇게 떠벌리는데 실제 김성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외모도 그렇게 빼어나지도 않았고 요새기준으로 볼때 그냥 평범한외모에 마른체구의 소유자였다고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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