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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6.15식 삶을 살고 있는 송재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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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10-09 16:17 조회1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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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씨 페어팩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이곳을 방문하는 동안 이지역 한인회장과 지역한인연합회장을 역임한바 있고, 최근에는 6.15워싱턴지역위원회 공동대표 중 한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송재경 선생(78)을 만나 그의 자택에서 이틀을 묵었다.

그는 지난 시기 이 지역 한인회 회장도 했고, 한때는 '반공동지회' 회장까지 했던 인물이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격의없이 교제하는 한편 6.15식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도 그런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송재경 선생은 대화 가운데 "우리집에 방문한 사람들은 반기문, 손학규, 김만복, 이인제 등 5명의 남쪽 사람들이었고 재미동포로서는 워싱턴 주 상원의원을 했던 임용근    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노길남 선생이 우리집에 7번째 손님이 된다"고 귀띔해 준다.

그의 자택은 총 3에이커 부지에 대형 2층집이 있고, 배나무 밭과 대추나무 밭 구석에는 옛날에 지어놓은 2층 저택도 보인다. 수용장과 손자손녀들이 노는 놀이터도 있어 이틀동안 2남2녀 중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막내아들만 빼고, 근처에 살고 있는 큰아들, 장녀, 차녀와 손자손녀들이 방문하는 모습도 보인다.

송재경 선생은 1971년 미국에 이민와서 비교적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70년대 한창이던 가발업에 손을 대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가구수입 도매상, 세탁소 등을 운영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한편 자녀교육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수 있었다.  

송재경 선생 부인 최완숙여사도 생각의 폭도 넓고 활동의 폭도 넓은 인물이다. 이화여중을 거쳐 숙명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서울 토박이로서 내후년인 2015년이 되면 결혼 50주년이 된다. 그런데도 두분의 주고받는 대화나 자세를 보면 아직도 젋은이들이    연애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두분이 다정하고 서로 이해해 주는 아름다운 부부상을 보여준다. 게다가 자녀들이 부모에게 깍듯하고 예절을 갖추는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막내 딸은 직장생활할 때 나이 많은 동료직원이 퇴직당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 자신은 나이도 어리고 다른 직장을 얻을 수 있지만 나이 많은 동료는 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다른 직장을 얻기 어렵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을 퇴직시켜 달라고 애원하여 회사의 사장을 감동시킨 일화 등이 있을 정도로 자녀들의 심성이 착하게 보인다.

이 가정의 환경도 무척 흥미롭다. 거실에 부착한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송재경 선생은 이곳 한인회장을 한 경력으로 발이 넓은 것 같다. 로널드 레건 전 미국대통령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고, 죠지 더불유 부시 전 미국대통령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고, 미국 민주당 계열의 인물들과도 두루 교제해 왔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보수정치인 이회창과 이인제 같은 인물들과도 친분을 갖는가하면, 개혁진영의 상징정치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만나 기념사진을 찍는 등 남녘 보수, 개혁진영의 정치인들과도 두루 관계를 가져 왔다.

그는 남북관계에서도 편애하지 않는다. 남북이 당연히 화해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문제를 두고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며 편을 가르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6.15선언, 10.4선언이 우리민족이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송재경 선생은 6.15시대 이전에도 이곳 한인회장에 당선되어 사업을 할 때 이북관리들 5명이 워싱턴 디씨를 방문했을 때 환영모임을 조직할 정도로 일찌기 남북간의 화해협력사업은 당연지사로 여겼던 인물이다.

1999년 이곳 연합회장을 하던 시절 첫 방북을 하여 통일심포쥼을 의논할 정도로 남북화해협력 문제에는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재미동포 통일운동 진영의 단결과 단합문제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양측이 모두  마음을 크게 먹고 서로를 배려하면 분열과 분파가 있을 수 있느냐며 단결단합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소리없이 일하면서 큰 일을 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하면서 미서부지역에서는 선우학원 박사가, 그리고 미동부지역에서는 조동설 선생이 30만달러를 '평화재단'에 투자하여 워싱턴 디씨에 2층건물을 세워 이 건물을 민주운동, 통일운동 진영이 사용하도록 한 애국심에 감동감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송재경 선생의 인생길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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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7년 8월20일(음력)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서해바다가 있는 남포에서 살다가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1.4후퇴 때 이남으로 넘어 왔다. 양정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그리고 군대생활은 해병대에서 했고, 취미생활은 기계체조, 복싱, 수영 등이었다. 그리고 35살때 유학으로 도미해 지금까지 40여년 이 지역에 살다가 재미동포가 되었다.

1970년대 말경에는 워싱턴 디씨 한인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1년에는 버지니아 회장, 워싱틴 디씨 연합회 회장, 이 지역 체육회 이사장, 실업인협회 부회장, 북버지니아 한인회 이사장 및 상공인협회 고문 등의 활동들을 통하여 미국동포사회에 크게 기여해 온 인물들 중 한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북을 다녀왔다고 지역동포 대중들은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재미동포사회의 문제점과  한국의  대사관, 영사관 관리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해 온 이런저런 일화들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송재경 선생은 또 부인과 교회생활도 열심이다. 그는 어릴때 월남하기 전에도 이북에서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고 하면서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 워싱턴 디씨 지역에는  4개의 교회들(황재경 목사, 김태경 목사, 박광빈 목사, 정영철 목사)이 있었고 버지니아 지역에는 한개 교회 밖에 없었는데 4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엄청난 숫자의 교회들이 생겼다고 회고한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정직하게 살자"라고 대답하면서 삶의 자세는 "나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상대편의 입장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살려고 노력해 왔다"고 대답한다.

이틀밤 숲속의 저택에서 묵는 동안 쉬지 않고 합창하는 귀뜨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맥주잔을 나누면서 그의 삶의 발자취를 들어 보았다.(끝)

*연락전화: 703-626-9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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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보도자료 보기: 아래를 짤각하여 열람하세요!

[대담]정보부출신 박기식 선생, 촛불시위를 말한다

[대담]보스턴 교외 문수사 ‘도범’스님

[미주]10.4선언 6돌행사 동서부 지역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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