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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25신]열사릉의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 묘 참배<br>이북 떠나기 전 꽃 한송이 들고 묘비찾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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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5-06 16:34 조회2,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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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기자는 근 한달 동안 평양취재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기 하루전인 지난 5월4일 시내 꽃가게에서 산 꽃다발을 들고‘애국열사릉’에 안장된 홍동근
목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의 묘를 찾아 인사했다. 그는 2001년 11월11일 75세 일기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그 해 11월19일 재미동포로서는 최초로 평양 외곽지역에 마련된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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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25신] 열사릉에 안장된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 묘 참배
“이북을 떠나기 전에 꽃 한송이 들고 묘를 찾아 인사”



<##IMAGE##>[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기자는 근 한달 동안 평양취재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기 하루전인 지난 5월4일 시내 꽃가게에서 산 꽃다발을 들고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홍동근 목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의 묘를 찾아 인사했다. 그는 2001년 11월11일 75세 일기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그 해 11월19일 재미동포로서는 최초로 평양 외곽지역에 마련된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그는 생전에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생각하며 조국의 하나됨을 위해 지극히 평화통일을 갈망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특히 해방신학, 민중신학, 통일신학에 심취되어 나라사랑, 민족사랑, 동지사랑에 남다른 모범을 보여준 해외동포 애국자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

그의 묘비에 담겨있는 얼굴사진은 마치도 나를 반겨주듯 엷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는 후배들을 비롯하여 동료들, 선배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는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 가진 재산의 유무를 초월하여 분단된 조국의 남녘을 사랑했고, 북녘을 사랑했다. 그는 또 스님들도 사랑했고, 이슬람교도들도 사랑했다. 그는 또 재일동포를 비롯하여 재유럽동포, 재카나다 동포 등 해외동포들 모두를 사랑했다. 홍동근 목사는 민족지향 언론인들도 사랑했고, 특히 그의 부인 홍정자 여사도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홍동근 목사는 민족분단과 애국세력의 분열을 아주 싫어했고, 단호한 자세로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조국분단의 본질인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강열하게 비판했고, 사회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한마디로 애국심에 불타는 종교인이었고,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는 정의의 종교인이었다.

꽃다발을 그의 묘비앞에 놓고 머리를 숙이고 묵념하는 동안에 나의 머리를 스쳐간 생각들이다.

나는 홍동근 목사의 묘비앞에 인사를 나눈 다음 ‘애국열사릉’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애국열사릉』은 일제 때의 항일투쟁으로 전사한 열사들도 있었지만 특히 광복이후에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다가 운명한 열사들을 포함하여 북과 남 해외 동포들 중 조국통일운동에 헌신적으로 몸 받친 5백30여명의 열사들이 안치된 곳이다.

‘애국열사릉’은 1986년 6월8일 세워졌는데 그 후인 1998년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 이곳에 현지답사중 천년돌에 사진을 새겨 넣자는 제안으로 1998년 9월에 일제히 묘비에 천연돌 사진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혁명열사릉’에는 호칭을 동지로 썼으나 ‘애국열사릉’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호칭으로 동지, 선생, 여사 등으로 씌여져 있다.

홍동근 목사는 지난 1990년부터 매년 김일성 대학 종교학과에서 초청교수로 단기강좌를 해왔었는데 운명하던 그 해에도 보름강좌 일정으로 2001년 10월31일 로스엔젤레스를 떠나 11월3일 평양에 도착해 16일 강의를 마치고 18일 귀가할 계획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뇌출혈로 운명하고 말았다.

<##IMAGE##>고인은 1926년 평북 피현 출생으로 평양신학교와 서울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는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엔젤레스 훌러톤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한에서는 광주신학교 교수,영락교회 부목사, 동신교회와 일본 경도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1973년 미국에 이민 온후 선한사마리안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사역한바 있다.

한편 70년대 초 미국에 온 홍동근 목사는 종교인으로서 70년대부터 박정희군사 독재정권에 반대운동을 펼치기 위해 지금은 고인이 된 김상돈 전서울시장과 함께 74년에 ‘조국자유수호동지회’를 창립했고 그이후 조국민주회복남가주국민회의 공동의장,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 통일신학회 회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1990년부터는 김일성 대학 역사학부 종교학과 및 평양신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활약해 왔다.

고인은 남녘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의 활약을 인정받아 캘리포니아 대학 아시아협회(Asia Coalitition)에서 1984년 인권상을 수여받았고 1988년에는 이북에서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으며 2000년 11월에는 김일성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IMAGE##>고인의 저서로는 ‘혁명시대의 교회’를 비롯 ‘미완의 귀향일기’, ‘해방신학’, ‘주체사상과 기독교’(공저), 그리고 운명하던 시기에는 김일성 주석의 생애, 혁명, 세계관, 덕성에 대해 연구하여 집필한 ‘백두산의 노래’ 등이 있고 이밖에 미국의 양심인이며 정의의 기독교 목사 ‘마틴 루터킹 투쟁사’, ‘장벽을 헤치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혼돈이냐 공동체냐’등의 번역집필서들도 있다.

나는 이날 홍동근 목사의 묘비 앞에서 인사를 하고 ‘애국열사릉’을 둘러보면서 내가 만나 본 인사들의 이름들도 발견했다.

1983년 봄 로스엔젤레스에 방문했던 북녘의 국제올림픽 위원이었던 김유순 선생(1932.2.2~1996.8.10), 조국전선 의장이었고 려운형 선생의 딸인 려연구 선생(1927.8.29~1996.9.28), 국제태권도 총재였던 최홍희 선생(1918.11.9~2002.6.15), 최덕신 선생과 그의 그의 부친 최동오 선생, 그리고 그의 부인의 부친, 그리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 한덕수 의장(1907.2.18 - 2001.2.21)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또 18살에 전사한 어린 영웅열사도 있고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김구 선생과 함께 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그후 50년 12월10일에 서거한 김규식 선생, 남북에 널리 알려진 이북노래 ‘휘파람’의 작곡가이며 혁명시인인 조기천 선생(1913.11.6 - 1951.7.31), 리준 열사의 아들 리용 선생(1888.4.7 - 1954.8.18), 이북의 종교인 강량욱 목사, 문학인 홍명희 선생, 조미간 정전협정의 서명자였던 조선인민군 대표 남일 정무원 부총리, 로동신문사 부장이며 인민기자였던 리대영 기자의 이름과 여러분들의 이름들도 눈에 띄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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