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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89. 미제에 의한 대전 동구의 골령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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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4-01-22 19:20 조회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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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89

미제에 의한 대전 동구의 골령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힌다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1950년 7-8월 경에 대전을 인민군에 의한 해방을 하고 골령골의 학살현장을 찾아 확인한 기사를 요약해 회고해 본다.

발굴사진을 보면 인근 주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인민군에게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1950년 7월 또는 8월, 대전을 해방한 인민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었다.

1950년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끝난 직후 현장 모습이 담긴 사진이 추가 확인됐다.

대전을 점령한 인민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1910~1983)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사진에는 학살 직후 유해가 드러난 모습과 함께 산세 등 당시 지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장면이 들어 있어 사건의 진상 파악과 유해 매장지 추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 동구청 국제협력특보(아래 국제특보)인 영국인 데이빗 밀러(40)씨는 위닝턴 기자가 남긴 자료와 유품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셰필드 대학의 자료실에서 여러 장의 골령골 현장 사진을 확인했다.

셰필드 대학은 위닝턴 기자가 남긴 취재수첩 등 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앨런 위닝턴 기자는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상황과 그 영향을 보도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대전 산내 학살에 대한 기사를 타전 했다.

<데일리 워커>는 1950년 11월, 특집판으로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한국전쟁 때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다.

1950년, 군경에 의해 대전 골령골(동구 낭월동) 산내 학살이 끝난 직후 인민군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그는 같은 해 9월, <데일리 워커> 지에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 (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으로 골령골 학살 현장의 참혹한 광경을 묘사해 사진과 함께 타전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서히 땅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살점과 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냄새는 목구멍까지 스며 들어와 그 후 며칠 동안이나 그 냄새를 느껴야 했다. 커다란 죽음의 구덩이를 따라 창백한 손, 발, 무릎, 팔꿈치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 총알에 맞아 깨진 머리들이 땅 위로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위닝턴 기자의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 기사 중에서)

실제 기사 사진에는 살해 후 대충 묻혀 구덩이 밖으로 손과 다리가 삐져나온 시신의 모습이 실려 있다(관련 기사 : "죽음의 구덩이, 삐져나온 손·발·머리" http://bit.ly/4nW5Rt. 당시 소하천, 도로 모습 담겨... 유해매장 추정지 파악 도움될 듯

또 다른 발굴사진에는 시신을 아무렇게나 묻어 흙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보인다.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 발가락 쪽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도 1950년 7월 또는 8월, 대전을 점령한 인민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었다.

이날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가 세필드 대학에 있는 위닝턴 취재자료에서 찾은 사진에는 당시 <데일리 워커> 지에 실린 동일한 장면의 사진 외에 그동안 미공개된 사진이 여러 장 확인됐다.

우선 골령골 골짜기 전경이 담긴 사진이 눈에 띈다.

골짜기 봉우리 모양과 산세를 보면 골령골이 틀림없다.

골령골 1학살지와 2학살지로 이름 붙인 곳이 대부분 화면에 들어 있다.

당시 소하천과 도로 모양도 잘 드러나 있다.

당시 목격자들은 2학살지의 경우 폭 2m의 구덩이의 길이가 200m에 달하는 데 길가를 따라 구덩이를 팠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로가 확장·포장 됐고 위치도 많이 변해 정확한 암매장지를 찾기 힘든 상태다.

이 사진은 유해가 묻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골짜기 봉우리 모양과 산세를 보면 지금의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의 모습과 동일하다.

멀리 대전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강바위산(382m)이 보인다.


같은 날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은 또 다른 사진에는 총을 멘 인민군 5명과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4명이 한 줄로 늘어서 시체가 묻힌 구덩이를 응시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에 시체로 보이는 밖으로 드러난 희끗희끗한 물체가 보인다.

다른 사진에는 아무렇게나 묻어 흙 밖으로 삐져나온 손과 발, 다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체가 삐져나온 장면은 위닝턴 기사의 당시 보도기사에 실린 사진과 같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구덩이가 음푹 꺼져 땅이 갈라져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다.

미군이 현장에 버린 빈 담뱃갑과 탄피를 찍은 사진도 보인다.

위닝턴 기자는 당시 기사에서 "땅에 버려진 빈 담뱃갑들과 놓여 있는 수천 개의 탄약통은 모두 미제 것이었다.

미군 장교들이 한국군 장교들과 매일 지프를 타고 와서 학살을 감독했다"며 "이런 살인극은 미군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나는 한 움큼의 M-1과 카빈 탄약통을 주웠는데 지금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이 사진은 기사에 등장한 '미군이 버린 빈 담뱃갑'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유해(위 붉은 원안)도 보인다.

위닝턴 기자는 기사에서 "땅에 버려진 빈 담배 갑들과 놓여 있는 수천 개의 탄약통은 모두 미제였다"고 썼다.

대전 동구청, 셰필드 대학에 직원 파견 성과 대전 동구청(청장 황인호)은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보도한 위닝턴 기자의 자료를 받기 위해 셰필드 대학 측과 자료 제공 및 상호 파트너십 구축 방안 등을 협의해 왔다.

이를 위해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가 셰필드 대학을 방문 중이다.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는 방문 기간 중 위닝턴이 남긴 주요 자료를 스캔해 오는 12월, 동구청 주최 관련 전시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대전 동구청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지난 달 22일부터 40일간의 일정으로 골령골 제1집단 희생 추정지(대전 동구 낭월동 13-2번지)에서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16일 현재까지 수습한 유해는 40~42구다.대전 골령골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최소 4000명, 최대 7000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

1950년 7월 첫째주에 찍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영국 <데일리 워커>의 위닝턴 기자가 찍은 위 사진과 비슷한 장소다. 앨런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이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고했다.


미제에 의한 대전 골령골 학살 만행을 생각할 때 미제는 조선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쑤인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여! 어찌 골령골 잔인한 학살 현장은 하나 뿐이겠는가?

이래도 미제를 친미 공미 할 수 있겠는가이다.

이를 비호하는 친일 친미 공미 분자들은 조선민족이 아니란 말인가.

민족적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전국 삼천리 강토에서 미제와 주구들의 잔인한 학살만행을 참회할 수 없단 말인가.

무의식 대중들은 식민지 노예 교육에 쩔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미제와 윤석렬정권의 패거리들을 찬성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분노를 느끼며 반미 자주화 투쟁 전선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

2023년 10월 10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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