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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그리운 정관호 선생을 추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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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11-01 15:10 조회1,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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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정관호선생을 추모 하면서

김영승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민족통신 편집실]

빨치산 출신 정관호 선생이 2023년 10월 29일 새벽 5시20분에 오랜 병고 끝에 한을 품고 우리 모두의 곁을 하직했다.



2023년 10월 30일 오후 6시부터 양심수 후원회와 범민련 통일뉴스가 주동으로 우리선생들, 유족들과 함께 정관호 선생의 뛰어난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서 투쟁할 것을 모두 다 함께 결의했다.

그리고 사상처음으로 선생들 추모식에 "빨치산" 단어를 표시했던 것은 처음이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정관호선생은 함경북도 북청에서 1925년에 출생했다.

로어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가 1950년 위대한 조국해방 전쟁 때 남쪽 전남 강진으로 정치공작대로 내려와 초등교사들을 정치공작사업하다가 9.28 일시적 후퇴를 맞아 북상하지 못하고 입산하여 빨찌산투쟁과정에서 전남 도당으로 소환되어 도당선전부 부부장을 하면서 전남 도당 로동신문 주필을 하다가 1954년 4월에 광양백운산에서 체포 당하였다.

그리하여 10년형을 받고 전주감옥에서 살다가 1960년 4.19혁명에 의해 소위 간첩죄를 제외하고 감형을 받아 1962년도에 출옥했다.

출옥후 조용하게 전남빨찌산 투쟁사를 전적지 답사와 출옥한 동지들의 인터뷰와 함께 집필하여 드디어 유격투쟁사를 6권을 출판하는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전북이나 경남이나 충남에 빨찌산들이 많이 있었으나 하나로 모아 집필을 이끌 수 있는 동지들이 없어 개별 투쟁사나 낼 수 있는 동지들 뿐이었다.

그래도 정관호 선생 같은 동지가 있기에 투쟁사를 세상에 내놓아 많은 사람들이 빨찌산투쟁의 역사를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되었다.

또한 정관호선생은 시인이기도 해서 시작품을 많이 출판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러한 공로의 역사성을 인정해야 된다고 나는 말하는 것이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잊으시고 편히 쉬소서. 후대들은 선생이 남긴 현대 빨지산 투쟁사를 공부함으로서 저 잔악한 조선민족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를 몰아내고 친미 공미 친일 의 돌격대 역할을 다하며 전쟁 도발에 광분하고 있는 윤석렬 정권과 그 패거리들을 타도 청산하는 투쟁에 총 단결하여 투쟁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자주 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정관호 선생은 딸하나 두고 있다.

유분은 화장해서 부평가족공원에 일시적으로 모시겠다고 따님은 말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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