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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81. 빨찌산 투쟁의 전적지 답사와 빨찌산 추모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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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9-16 19:19 조회1,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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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81

빨찌산 전적지 용추계곡, 돌고개 답사와 빨찌산 추모제 거행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1) 빨찌산 투쟁의 전적지 용추계곡을 회고한다.


진달래 산천공장팀은 하루 일박하고 10월 25일 오랜만에 전북지역에서 빨찌산 활동했던 임방규 선생을 모시고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했다.

90대의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 산행이라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하루 일과를 젊은이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무사히 기행했다.

전북빨찌산 부대들이 투쟁했던 용추계곡을 오르는데 한 민간인이 이파리가 5개인 오가 뇌장삼을 뿌려 그 씨가 한참 자라고 있어 철망을 치고 입산금지를 하고 있었다.

주인 사장 집을 찾아 설득 공작에 쾌히 승낙하고 본인도 함께 동원되어 잠겨진 철망문을 열어주고 우거진 길 숲을 앞장서 치고 오르는 성의도 보여 주었다.

오르는 산길은 계곡과 비탈길을 타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용추산 중간쯤부터는 빨찌산부대들이 썼던 아지트들이 많이 남아 있고 구들장 아지트도 여러군데 있는 흔적을 발견하니 그 때 동지들의 숨결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용추산은 전남 담양군에 속해 있다.

용추계곡에서 가마골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데 1950년 9.28후퇴 후 빨찌산 해방구를 쓰고 있을 때 8.15대회에도 쓰던 아지트들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월정사 사찰은 그 당시 전북도당학교로 사용했지만 적들이 소각한 자리에 나무와 수풀만 우거져 있고 바로 인근 대밭속의 노령학원은 대나무가 우거져 있고 당시 뛰어 건넜던 계곡은 넓고 깊게 개울 물이 흐르고 있어 건너갈 수는 없으나 아지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들어가는 어구에 당시는 논밭이었으나 지금은 저수지가 돼 있었다. 따라서 주변환경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마숯을 굽던 당시의 터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찾아오는 여러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역사의 현장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마골은 영산강의 발원지가 되고 있어 양쪽 깎아세운 절벽의 걸작이라 관광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답사의 마지막 용수폭포(떨어지는 폭포수 물이 적어 반감됐다) 를 끝으로 기울어져 가는 석양 햇살을 받으며 마무리하고 길 안내했던 오가 장삼 사장님 집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들고 다음을 기약하며 상경길에 올랐다. 방규 선생 수고 많이 했어요.

2020.10/26일 11시30분 씀


(2) 2020년 10월 24일 전북 회문산 기슭기에서 전국 합동 빨찌산 추모제를 전북지역에서 거행하고 돌고개 전적지를 찾다.

특히 회문산은 전북 빨찌산 투쟁의 핵심기지이며 적들의 포위 속에서 위기에 처한 만여명의 인민들을 안전지대로 후퇴시키는데 전투부대 일개중대가 여분산 고지를 사수하다 부중대장 일명만 살아남고 전멸의 희생을 당하였다. 그래서 여분산 기슭에서 빨찌산 추모제를 올린다는 것은 역사적 의의가 큰 것이다.

실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봉우리 능선 골짝이 돌부리 풀뿌리 마다 피가 어리지 않은 곳이 없다 .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회문산 백운산 백아산 불갑산 한라산 등 많은 지역에서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사랑도 청춘도 행복도 재산도 고귀한 생명까지도 다 바쳐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여간 전사들은 모두가 혁명전사들인 것이다.

역사는 기억인 동시에 기록인 것이다. 살아남은 혁명 전사들은 세월을 거역할 수 없어 몇분 살아남지 않고 있다.

후대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열사정신을 기리며 75년 째 둥지를 틀고 있는 미제를 몰아내는 투쟁에 너와 나 우리가 하나 되어 가열찬 투쟁을 다짐했다.


무사히 추모제를 마무리 하고 진달래 산천 공장팀은 순창 쌍치면 돌고개 전적지를 찾았다.

이 돌고개 능선은 황제봉 회문산 여분산 효자봉 장군봉 떼놈봉으로 둘러싸인 전락고지 능선인데 빙둘러 논과 밭이 있고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이 돌고개 능선에 의경 경찰대 400여명이 주둔하여 당시 반 해방구 안의 인민들과 빨찌산 활동을 저해하며 가을 수확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1951년 7-8월경에 몇차례의 공격을 가했으나 돌고개능선을 탈환하지 못했었다.

빨찌산은 10월 초순에 선무공작사업을 병행하면서 주위 산봉우리 마다 봉화를 올리고 2,000여명의 농민들이 동원되어 함성소리와 함께 공격을 가하니 적은 겁을 먹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오는 밤중에 몰래 빠져 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빨찌산들과 농민들이 하나로 단결된 투쟁의 성과물로 해방구 속에 8만석의 가을 수확을 올린 것이며,

우리의 투쟁은 대중과 함께 하면 승리한다는 참교훈을 남기었다.


2023년 9월 10일 필자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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