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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의 정치탐사] 우익군사정변 준비한 김구와 암살계획 승인한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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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7-07 22:54 조회2,7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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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의 정치탐사 제25화

2022년 7월 7일

우익군사정변 준비한 김구와 암살계획 승인한 백악관

한호석 (정치학 박사, 통일학연구소 소장)



1948년 4월 30일 평양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남북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공동성명에는 "본 성명서에 서명한 제 정당 사회단체들은 남조선단독선거의 결과를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선거로서 수립되는 단독정부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이것은 이승만 정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이승만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정부에 의해 수립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내용이 들어있는 공동성명에 항일독립운동가이며 남조선 우익세력의 대표자인 김구(1876~1949)가 서명했다.

1948년 5월 초 남북련석회의 참가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김구는 남조선단독선거와 남조선단독정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48년 6월 25일 <서울신문>에 김구와 취재기자가 진행한 짤막한 대담기사가 실렸다. 대담에서 김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소(미국과 소련-옮긴이)의 모순으로 인하여 우리의 운명이 위험에 서 있다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아니한가. 그 결과로 발생되는 것이 제주도사건(제주민중항쟁-옮긴이), 독도사건(주일미국군 전투기가 독도 인근을 폭격하여 우리 어민들을 살해한 사건-옮긴이), 전 왜총독부고관래조사건(조선총독부 고관 출신 일본인이 서울을 방문한 사건-옮긴이), 전기문제(남북송전선이 단절되어 남조선 전력사정이 악화된 사건-옮긴이), 일본 재무장문제 등등이다. 이 위험을 타개할 방법은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고, 전민족의 역량을 총집합하여서 미소량군을 즉시 철퇴시키고 남북통일의 자주민주적 통일독립정부를 세우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1948년 7월 19일 <조선일보>에 김구와 취재기자가 진행한 짤막한 대담기사가 또 실렸는데, "항간에는 방금 추진 중인 정부수립(이승만 정부수립-옮긴이)에 귀하도 참가하리라는 풍설이 유포되고 있는 모양인데?"라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김구는 "이런 말을 운위하는 것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김구는 미군정의 단선단정책동을 전면 부정했고, 미군정의 단선단정에 의해 수립된 대한민국을 전면 부정하였다. 놀라운 일이다. 미국과 이승만의 시각에서 보면, 김구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사범'이었다. 미국과 이승만은 그런 '반국가사범'을 살려둘 수 없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서울에 있는 자기 거처인 경교장 2층 거실에서 안두희(1917~1996)가 쏜 4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암살범 안두희는 육군 소위이며, 야전차 포병단 연락장교였다. 경교장에는 김구의 비서들과 경호원들이 있었는데, 암살범이 권총을 가지고 어떻게 김구의 거처에 들어가 그에게 총을 쏠 수 있었을까? 안두희는 암살사건 3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다. 1949년 3월 중순 안두희는 김구에게 접근하려는 목적에서 김구가 위원장으로 있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했고, 한국독립당 당원이며 김구암살사건의 공범인 홍종만의 소개로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에게 접근했고, 4월 14일에는 한국독립당 비밀당원증까지 받았다. 그런 식으로 인정을 받은 안두희는 김구를 여섯 차례나 면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면담에서 안두희는 김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포탄피로 만든 꽃병 2개를 김구에게 선물로 드렸다. 그렇게 되어 안두희는 김구의 거처를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암살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안두희가 김구를 암살한 범행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암살범행동기를 밝혀내야 암살을 지령한 진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안두희의 범행동기는 1949년 7월 21일 한국 국방부가 암살범 안두희를 문초하여 밝혀냈다는 김구암살사건진상에 관한 발표문에 들어있다. 발표문에 따르면, 안두희는 김구가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고 남조선단독정부를 부정하면서,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연립정부를 수립하려고 했고, 미국군 철퇴를 주장하고, 미국의 경제원조가 을사조약의 재판이며 식민지정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북조선의 정책을 찬양했으며,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군사정변을 단행할 것으로 예고하였기에 그를 살해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김구가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고, 남조선단독정부를 부정하고, 점령군 철퇴를 주장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고,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연립정부(연방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김구는 정말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고,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연방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을까? 선뜻 믿기 힘든 안두희 진술의 사실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역사자료를 추적해보자.

2001년 9월 4일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낸 '김구 - 암살에 관련된 배후정보(Kim Ku - Background Information Concerning Assassination)'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1949년 당시 남조선에 체류하던 미국 육군 제1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운영과장인 육군 소령 조지 씰리(George E. Cilley)가 김구암살사건 직후인 1949년 6월 29일에 작성하였고, 7월 1일 미국 육군정보국에 제출한 3급 비밀문건이다.

씰리의 정보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광주에 주둔하는 한국군 제5려단 제4련대 장교들 사이에서 김구를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고, 김구는 제5려단 제4련대 연대장과 각별한 사이였으며, 제5려단 제4련대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에 김구 자신이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의 김구암살사건진상 발표문과 씰리의 정보보고서는 일치하게 김구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려고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 국방부 발표문에 따르면, 암살사건 당일 김구는 경교장에 거실에서 안두희와 대화하는 중에 포병단 연락장교인 안두희에게 대포의 성능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고 한다. 김구의 질문을 받은 안두희는 영등포 포병대가 경무대(당시 이승만의 관저)나 중앙청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다고 답변하자, 김구는 "심히 만열(滿悅)했다"고 한다. 심히 만열했다는 말은 크게 만족하고 기뻐했다는 뜻이다. 영등포 포병대가 포를 조준사격하여 경무대와 중앙청을 파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만족하고 기뻐하는 김구의 모습을 본 안두희는 "간신의 간언에 추종치 말고 속히 본심으로 돌아가기를 간청, 직언"했으나 김구는 대노하여 안두희의 얼굴에 붓을 내던지면서 "이 고얀놈, 너는 나에게 반동하느냐. 나에게 반동하면 민족의 반역이요, 국가에 반역자다"라고 크게 책망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김구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면 이제는 김구암살명령을 내린 주범이 누구인지를 판별할 차례다.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1875~1965)이 육군 방첩대장 김창룡(1920~1956)에게 김구암살을 지시했고, 김창룡의 명령을 받은 안두희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익테러단체인 백의사의 두목 염동진(본명 염응택, 1909~1950)이 백의사 소속 테러단원인 안두희에게 암살지령을 내려 김구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릴 만한 놀라운 사실이 씰리의 정보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었다.

1) 백의사의 두목은 염동진이다.

2) 씰리 자신은 약 20개월 동안 염동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염동진으로부터 많은 정보보고서를 받았다.

3) 백의사의 주요목적은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반정부정치인들을 암살하는 것이다. 장덕수암살사건과 여운형암살사건도 이들이 저질렀다.

4) 백의사에는 4명으로 편성된 5개 소조가 있는데, 소조원들은 암살명령을 실행하겠다고 피의 맹세를 했다.

5) 안두희는 백의사 제1소조에 속했다.

6) 안두희는 미국 육군 방첩대 첩보원(informer)을 거쳐 실행자(agent)로 되었다. (씰리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방첩대는 1946년 4월 1일에 확대, 개편된 제971방첩대[Counter Intelligence Corps]를 말한다.)

7) 염동진은 이승만을 혐오한다. 염동진은 때로 김구를 비난하기도 했으나, 그의 장점과 가능성을 격찬했다. 염동진은 김구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군 200만명을 지휘할 것이며, 그가 지휘하는 한국군이 38선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동진과 김구는 비밀리에 련락을 주고받았다.

위에 열거한 내용을 읽어보면, 김구와 염동진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려는 공동의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김구는 이승만 정권을 전복한 뒤에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연방정부를 수립하려고 생각했고, 염동진은 이승만 정권을 전복한 뒤에 김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북진공격을 도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염동진은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고, 김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김구와 연락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김구암살지령을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안두희에게 김구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 주범은 염동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안두희에게 암살지령을 내린 것은 미국 육군 제971방첩대였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우익세력을 대표하는 거물정치인 김구를 암살한 사건은 제971방첩대 대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만한 가벼운 사안이 결코 아니다.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김구암살사건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할 중대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구암살사건이 백악관의 승인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백하게도, 김구암살사건의 주범은 미국이었다.

1953년 10월 20일 김일성 수상(당시 직책)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함경남도열성자회의에서 연설하면서, 1948년 4월 남북련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가 "진정한 애국자는 당신들입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을 위해서 더는 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고 회고하면서, 김구가 "남조선에 나가서 이러한 립장을 지키다가 미제의 테로에 의하여 암살당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김구는 우익군사정변을 일으켜 이승만 반통일정권을 전복하고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연방정부를 수립하려는 자기의 결심을 행동에 옮기려다가 미국의 암살지령을 받은 안두희의 손에 살해당했는데도, 우익세력은 자기들이 추앙하는 김구를 암살한 주범인 미국을 반대하지 않는다. 김구는 남조선단독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신념을 지키다가 암살당했는데도, 우익세력은 자기들이 추앙하는 김구가 끝까지 부정한 남조선단독정부가 김구의 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우익은 참으로 우매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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