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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지 칼럼]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 들여다보기 <휴버먼의 자본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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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6-17 07:50 조회2,4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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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지 칼럼]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 들여다보기

<휴버먼의 자본론>을 읽고

[민족통신 편집실]


우리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할 때 '헬조선'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천민적 독점재벌과 파쇼적 국가권력을 '토대'와 '상부구조'로 갖는 극심한 불평등 사회로 민중생존권이 절딴난 생지옥이라는 의미이다. 지난 2016~17년 촛불시위 현장에서 오죽하면 어린 중고등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나 "헬조선 끝장내고 혁명정권 세우자"라는 구호를 외쳤을까.

전체 노동자들 중 비정규직이 50%가 넘고 산재사망율이 20년 가까이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2020년 2062명으로 하루에 6명꼴로 사망) 얘기하는 것도 지쳐버렸다. 어디 그것 뿐인가? 노인 빈곤율이 45.6%(2015년, OECD 12.6%)이고, 출산율은 0.84명(서울 출산율 0.64)으로 2021년 유엔조사 대상 198개국 중 198위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3포를 넘어 5포, 7포, n포 세대라는 말이 우울하게 떠돌고 금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이 회자될 정도였다.

"죽지못해 사는 이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탄식 끝에 "자본주의를 뒤엎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 말라"며 비웃는 이들이 있다. 그것도 '진보'라고 자처하고, '노동운동한다'고 온갖 폼 다 잡고 다니는 자들의 입에서 내뱉는 뜬구름이라는 조소를 들으면 가슴 속에 서늘함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헬조선'은 용인해도 될 현실인가?

노동착취와 온갖 불법, 탈법을 저지르고 배를 불려 황금의 성을 쌓고 있는 독점 자본가들, 그리고 그들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며 민중의 삶을 파탄시키는 신자유주의 권력자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건 견딜만한가 말이다. 그들만의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한 개판 5분 전인 선거때만 되면 들러리 서기 바쁘고 이용당하는 노동자 계급은 정상인가 묻고 싶다. 사실, 나로선 '공산주의' 라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말만 조심스럽게 했을 뿐인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자는 것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무지와 안일한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노예가 따로 없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러한 때에 읽게 된 <휴버먼의 자본론>은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들이킨 듯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여운을 남겼다. 저자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이행기, 그리고 자본주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특히 소련 사회주의까지를 다룬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 이어 1920년대~1940년대 미국 경제공황을 중심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위선 및 허상과 제국주의 악마성을 날것으로 보여줘 천박한 미국 자본주의를 그대로 이식한 한국 자본주의의 추악함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사회주의는 낡은 사회를 땜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뜻한다. (중략) 이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미래에 사회주의로 대체될, 지금의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꼼꼼히 시도했다. 또한 이 책이 '악취나는 자본주의 미국'을 바닥까지 드러내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악'은 자본주의 시스템이지 자본가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들에게 강제하는 행동방식, 그들의 계급이익이 명령하는 방식에 따라 행동한다."고 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초판 서문을 근거로 쓴 주장이다.

계급, 잉여가치, 축적, 독점, 분배, 공황, 전쟁, 국가, 몽상가, 두 사람(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의 주제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옹호자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의 증언과 자료를 활용한 점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미국 자본주의 경제실태 및 한계와 모순을 잘 드러내 '사회주의만이 노동자 계급이 지향할 세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크게 두 계급이 존재한다. 생산수단의 소유자로 지배계급인 '자본가'와 종속계급인 '노동자'이다. 그들 사이엔 서로 '목에 칼을 겨눈' 갈등관계에 놓여있다고 휴버먼은 말했지만 문제는 칼자루를 쥔 '갑'의 위치에 있는 쪽은 늘 자본가이고 노동자는 '을'의 처지이며 착취대상이라는 것이다. 최대한의 이윤을 거두려는 욕심에 정신 팔린 자본가는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비용을 구성하는 항목' 취급을 했다. 1913년 우드로 윌슨 미대통령이 <새로운 자유>라는 저서에 이를 잘 정의했다.

"사람은 싸고 기계는 비싸다...... 정교한 기계를 혹사시켰다고 해서 많은 관리자들이 쫓겨난다. 그렇지만 사람을 혹사시킨다고 해서 쫓겨나는 관리자는 많지 않다. 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준비를 마친 다른 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는 기계를 폐기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인간이 재산에 견줘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날은 과연 오는가?"

'인간'보다 '재산'이 우선시되고 '생명'과 '목숨'보다 '달러'가 소중한 미국 자본주의의 사악한 착취 논리가 일으키는 문제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1947년 센트레일리아 광산폭발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경영진들은 광산이 위험하다는 걸 미리 통보받았으나 시설보완에 드는 돈이 아까워 이를 방치했다. 그 결과 111명이라는 소중한 광부들의 생목숨이 광산에 묻혀 버렸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은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하게 된다. 주인과 하인, 지배자와 종속자의 관계로 계급이 형성되는 건 물론 소유자는 비소유자가 순종할 수밖에 없는 명령을 내린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언론인 브리스베인이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두 계급은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한 쪽이 다른 쪽 위에서 '절대적인 독재권력'을 행사한다. 다른 사람이 일할지 말지, 먹을지 굶을지를 결정하는 힘을 당신 손에 쥐고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그러한 전제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 역시 자본주의와 노예제도는 공통점이 많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선택이 아닌 '강제'에 의해 자신의 시간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데 투입하는 곳이면 어디든 노예제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했다. 휴버먼도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게으름뱅이 기생충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그릴리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1946년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조선소를 예로 들었다. 투쟁 끝에 15% 임금 인상안을 따낸 그곳 노동자의 연봉이 2163.20달러에 불과한 반면 임금인상 투쟁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던 부사장 라르킨은 46%나 올라 연간 17만7180달러나 받았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액수) 라르킨의 업무가 노동자들보다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작업 도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면 몇 척의 배가 진수될 수 있었을까 휴버먼은 성토하고 있다.

그가 든 사례가 또 있다. 어떤 사람이 1백만 달러를 상속받았을 때 그것은 고작 바닥날 때까지 꺼내 쓰는 돈 무더기 정도가 아니었다. 주식이나 채권, 8%의 배당, 은행 이자의 형태여서 가만히 앉아서 한 해 4만 달러의 소득을 거둔다는 의미였다. 20년 뒤 그 상속자가 죽고, 그의 아들과 후손들이 대를 이어 매년 4만 달러를 꺼내 쓸 것이고 그래도 그 재산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와 후손들은 손에 흙 묻히는 일 없이 생산수단을 소유한 덕분에 영원히 '기생충'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자 자본가들도 목에 핏대를 세운다. 노동자들로부터 뽑아낸 자신들 몫은 자금의 투자 '위험' 감수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면서...

자본가들은 투자손실의 위험이지만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는 위험을 감수한다고 휴버먼은 말했다. 1946년 한 해동안 30분마다 미국의 노동자 1명이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17.5초마다 1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보수주의자 링컨도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를 우려하는 말을 했을까.

"좋은 것은 대부분 노동을 통해 생산된다. 따라서 그런 좋은 것은 모두 그것을 생산한 데 노동을 투입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일만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도 과실의 대부분을 향유하는 일이 세계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다. 이는 그릇된 일이며 이런 일들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돈 놓고 돈 먹기'로 정의롭지 않다보니 온갖 불평등과 부정이 판 치고 있다. 좋은 것들은 혜택받은 소수의 부자들에게 흘러가고 노동자에게는 일할 수 있는 역량, 즉 노동력 빼고는 없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능력만 있으면 노동자의 아들이라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샛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휴버먼이 구석구석 증언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 취업, 경제활동, 투표권 행사에서 노동계급과 흑인, 유색인종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은 상상을 초월하고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인의 17% (5천만명)가 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병원 문턱도 못 밟고 죽어가고 의료보험이 있는 2억5천만명도 민간보험사가 승인을 해주지 않아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머리가 찢어져도 병원을 못 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심각한 무릎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1위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기록하는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의료지옥이라는 또다른 반증이다.

제국주의 악마성을 가진 자본주의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제국주의 침략과 세계 곳곳을 누비며 기획하는 전쟁이며 미국이 단연 선두에 있다.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1870년 말~1990년 초 '독점 자본주의'로 변모하면서 엄청나게 팽창한 생산력의 결과물인 과잉상품을 팔고 값싼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던 게 식민지 침략의 신호탄이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이 쟁탈의 선두에 있었고 미국이 1898년 후발로 뛰어들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이 제국주의 쟁탈의 각축장이 되었다. 악명높은 영국인 세실 로즈의 표현은 그러한 약탈의 본질을 잘 드러냈다.

"내가 감히 주장하건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종이고 우리가 거주하는 땅이 넓어질수록, 인류에 그만큼 더 좋은 것이다......만약 신이 있다면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아프리카의 지도를 가능한 한 많이 영국의 '빨간 색'으로 그리게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뒤질세라 미국의 상원의원 비버리지 역시 1900년 의회에서 섬뜩하기까지 한 발언을 했다.

"신은......우리를 세상을 재편하는 주인으로 만들어 혼돈의 땅에 질서를 구축하도록 했습니다......신은 우리를 통치에 능숙하게 만들어 야만인과 노쇠한 사람들 사이에 정부를 구성해 그들을 지배하게 했습니다. 물신과 안일함에 대한 집착이 우리의 피를 더럽혀, 제국을 위해 '피 흘리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신에게 기도합시다."

그들의 침략은 선교사를 앞세운 교묘한 모습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주로 자본가들이 탄 선박에 소총과 기관총, 폭탄 등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잔뜩 태워 들이닥치는 노골적인 잔혹함을 서슴지 않았다. 휴버먼의 표현대로 '깨끗한 손'을 가진 제국주의자는 애초에 없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말썽이 생기면 본국 정부의 군대를 요청하여 지불 요구, 이권 양도 또는 배타적인 무역 독점을 강제하도록 설득했고 대개 그들 뜻대로 이루어졌다. 미 해병대의 일원인 스메들리 D 버틀러 소장의 증언이 미자본 제국의 역사적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33년 4개월을 군에 복무하면서 한 일이라곤 대기업과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을 위한 경호원 노릇이 전부였다고 한탄했던 그는 "저는 자본주의를 위한 폭력배였던 것입니다...... 알 카포네도 저보다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알 카포네는 기껏해야 3개 도시를 주무르며 공갈을 쳤을 뿐입니다. 우리 해병대는 3개 대륙을 주물렀습니다."라고 양심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추악한 제국주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해방 전후 미국의 강요로 분단이 된 이래로 미군 군홧발 아래 76년이나 고통을 겪어 왔고 대통령이라는 자가 '미제 총독'에 불과한 이 강토의 민중이라면 절절히 공감되는 내용일 것이다. 이 땅에 미군부대가 85개이지만 실제론 그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한 무시무시한 전쟁무기 사드 배치로 5년간 고통을 받아온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현실은 미제국주의 침탈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모순을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휴버먼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가장 지적인 동반자 관계'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론을 소개하며 사회주의 미래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적, 혁명적 행동을 거부했고 새로운 '예루살렘의 축소판'인 '사회적 유토피아'를 꿈꿨다. 허망한 사상누각을 짓기 위해 '부르주아'들의 '동정'과 '지갑'에 호소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상주의자들의 호소에 이렇게 분노하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은 지배계급의 노력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적인 행동이어야 한다'고 했다. 사회주의를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 탈바꿈시키고 사회진보이론을 구상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혁명은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자본계급에서 노동계급으로 이전되는 것, 즉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자본주의 파괴"라고 보았다. 혁명은 암살자의 탄환이나 비밀스러운 음모, 몇몇 소수에 의해 기획된 쿠데타로는 달성되지 않는다고 했다. 감동적으로 읽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진정한 민주주의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발걸음의 시작으로, 노동계급 위에 소수의 자본계급이 지배하고 군림하는 '부르주아 독재'와 차원이 다르며 훨씬 더 민주적이다. 최대다수 인민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계급이 존재하는 시스템이므로 계급도 국가도 사멸하여 완전 무결한 민주주의가 되는, 이른바 '공산주의'를 완수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때까지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투쟁과 혁명이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어쩌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 쉽지 않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지난하고도 육중한 휴버먼의 변증법적인 미국 자본주의 분석에 감탄과 분노를 연발하면서 읽었다. 100년 전의 미국 자본주의 모순이 지금의 얘기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 건 그 문제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현재적인 맥락으로 읽혀져서일까. 최고의 예술은 '진정성'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과학적인 인식'이라는 걸 휴버먼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도, '마법의 장화'나 '달팽이 걸음' 같은 동화 속의 비유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재미있게 읽은 이유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건,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부분을 번역자 김영배가 고의로 뺐다는 점이다. 휴버먼이 책을 출간할 당시 소련이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던 2011년엔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여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뺐다고 한다. 번역자의 궁색한 변명과 경솔한 행위에 화가 났고 이 책에서 소련 사회주의 내용을 접할 수 없어 아쉬웠다.

은영지 선생


사드철거와 반미운동하는 나를 '민족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이 있다. 그럴땐 당혹스럽다. '민족주의'라고 하면, 억압을 당한 약소국가들의 저항적인 민족주의도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침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아 내 개인적으론 민족이라는 용어를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자칫 민족문제에 심취할 경우 억압당하는 노동계급의 문제를 놓치거나 결집을 희석화시켜 대자본가 투쟁의 걸림돌이 될까 우려가 될 때도 있었다. 마르크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그러나 미군이 이 땅을 점령한 이후 지금까지 전쟁의 공포가 끊이지 않은 분단체제에서 가장 고통받아온 계급이 노동자 민중인 건 분명하다. 또한 미자본제국이 세계패권과 미 군산복합체의 이윤획득을 위해 제국주의 침략을 벌이는 행태를 보면 노동계급에게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같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도 제국주의 침략을 증오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버먼은 울림이 있는 간단 명료한 말로 이 책을 마무리했다.

"사회주의는 자유의 시작이다...... 사회주의는 국제적인 운동이다. '야만적인 경제 시스템'을 '문명화한 협력적인 연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진화 과정 속에 있는 다음 단계이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우리의 어린 중고생들까지 부르짖었던 '헬조선 끝장내자'는 투쟁의 대의가 휴버먼의 이 선언에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자본주의 종말은 오는가' 라는 부제가 달린 두꺼운 <휴버먼의 자본론>을 덮으면서 또다시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어본다.

<은영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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