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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해외여성지도자 이보배여사 영면(20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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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27 00:00 조회2,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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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성통일운동지도자이며

고 범민련해외본부 의장 사모 잠드시다

일제독립운동과 민족민주운동으로 평생을 지내신 이보배 여사가 29일 오후2시30분께(한국시간은 30일 오전 7시30분께) 샌후란시스코 알타베이 병원에서 노환으로 영면하셨다. 향년 87세. 장례식은 범민련 지역관계자 소수만 초청해 고인의 뜻에 따라 오클랜드에서 가족장으로 조용히 하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출가한 2남1녀를 두고 있다.

이 여사는 4년전 서거한 남편, 림창영박사(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와 함께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한 생을 보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운영하던 미주한글학교에서 한글교사로 일하면서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해방운동에 참여했고, 1940년 1월29일 림박사와 결혼한 후로는 부부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1970년대에는 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의 상임위원으로 박정희 유신군사독재에 항거하는 해외운동을 전개했고, 80년대에는 전두환 군사독재의 폭압정치를 청산하는 해외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뉴욕지역에서 여성동우회를 만들어 "여동"이라는 잡지를 편집하며 민주운동, 통일운동을 힘차게 벌였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남북해외의 3자연대 운동이 시작되면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운동에 관심을 돌리면서 조국의 통일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는 유신독재가 남한 동포들을 혹심하게 탄압하던 시절인 1974년 6월 어느날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대담성 있는 여성통일운동가로서도 널리 알려진바 있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약속한 1972년의 7.4 공동성명에 대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대한 김주석의 생각을 확인하고 스스로 통일운동에 한몸 바친다는 결의를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남편 림창영 박사와 함께 1976년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해외가 한덩어리가 되어야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3자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바도 있었다. 그러나 해내외 어디서나 통일운동을 하면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탄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는 이 부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평생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한몸을 바쳐온 애국자들이었다.

이 여사는 1912년 11월22일 원산에서 태어났다. 루씨 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아이야마 대학에서 정치윤리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던중 림창영 박사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남편은 4년전, 그리고 부인 이보배 여사는 2000년 3월29일 생애를 값있게 마감하며 2천년대 초두에 맞이할 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민족민주운동 참가자들에게 그날의 조국통일을 바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유족의 연락문의는 (510) 649-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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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3/31/2000 minjok@minj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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