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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이선주 목사 장례식 , 15일 로스엔젤레스에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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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2-16 13:49 조회5,61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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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장레-2.jpg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이정호/손세영편집위원
] 재미동포사회에서  한국의민주화와 조국통일운동에 앞장서며 언론인으로,교육자로,인권운동,사회비평가로,이민역사가,저술가,목사로 재미동포 이민사회에 큰공헌을한 이선주목사의 고별예배(14),하관예배(15)가 그린힐스 메모리얼파크 (27501SWesternAve,RanchoPalosVerdes)에서 유가족,친지,각사회단체 회원등 200 여명이 참여한가운데 송정명 목사(미주평안교회 원로목사 월드미션대학 총장)의 집례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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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언론계의 원로  이선주 목사  장례식,
15일 로스엔젤레스에서  거행
 
사회자의 묵도로 시작, 고인이 평소 즐겨부르던 나의갈길 다가도록’(384- 434)을 다함께  합창하며 최선호 목사의 기도와 집례자의 성경봉독 ( 14:1-4) 김영숙 교수의 조가에 이어  송정명 목사 (월드미션대학교 총장) 설교로 죽음은 만인에 평등한 피할수없는 절대적인것이나 기독교에서는 죽음에 부활을 제시하고 믿고 있기때문에 고인은  다른세계로 이동해 영적인고향내 아버지 집에주님의집에서 잠들어 쉬고있다고….” 유족을 위로하는 말씀, 심송무 이사장의 고인의 약력소개와 이정근 목사(세계기독언론협회 초대회장) 정동영 의원(민주당 상임고문)/임종인 전 국회의원 대독 최창규 교수의 추모사와 고인의 2(상용)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2째동생(이선용)의 감사의 인사및광고 정시우 목사(PCUSA 한인교회 전국총회 증경회장)의 축도를 끝으로 참석자들은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보내며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가족들이 참석자들을위해 마련한 저녁식사를 토렌스 VEGAS 부페 식당에서 나누며 고인을 회상하기도했다.
고인은 전남 광양에서 1934 5 15 일부친 이형근 모친 정형애의  8남매중(44) 3째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 ,연세대학교(정외과) 동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석사), 국제학술원,한국연구원 연구원, 영문일간지 korea Herald  정치부 기자,  한양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 했다.
 그리고  1966년에 도미,   Claremont Graduate School 에서 정치학 연구,  1974 중앙일보(L/A) 초대 편집국장, 코리아 헤럴드 미주 편집장, 동아일보 미주 초대 편집국장,  '뿌리' 발행인, 미주 크리스천 헤럴드 편집장등을 역임하였고  1977년부터 10년동안  로스앤젤레스 윌셔 YMCA 시민논단을 통해 미주한인들을 대변하며 재미동포사회발전에, 한국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운동에 거의 한 평생을 바치며 1989~1996년까지 한미신학교와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미주한인사회 언론에 기여한 공로로 켄싱턴 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목사로,  언론인으로 이민 사학자,  인권운동가로, 저술가등으로  한인사회에 크게 공헌하는 삶을 살았다.
특히 고인이 펴낸 한인들의 미주이민 100년사를 다룬 역작‘고난과 영광의 100년’상하권은 한인 이민역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흥사단 100년사 편찬 위원장과,  미주간호사협회 50년사재미올드타이머협회 50년사,  4.29폭동백서 , 다수의 이민역사서를 저술하였다.
 
또한 고인은 최근까지 한미인권연구소와  한민족경제비전연구소  상임고문을 맡아  활약했고  애국선열들이 모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려고 세운 애국선열추모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고인의 (동생)  이선명 선생은  민족통신과 가진 대담에서  형님은 언제나 많은  친구분들과 함께 밤새워 토론하는것을 즐겼으며, 연설에 특기와   정의감  그리고 역사,철학 ,문학, 등에관한 책들과  특히 안중근의사를 존경하며,  유관순열사를  항상누나라  불렀든것이 기억 난다며  형님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보며 학교다닐때부터 민족정신, 일찍부터 민족의식이 투철했던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회상했다.
고인은 2014210일오전250,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천 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50년을 해로한 이혜자 사모와 슬하에  (신라) 아들 (준용과 상용) 그리고 4명의 손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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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용현님의 댓글

김용현 작성일

이선주 목사님을 떠나 보내는 날,
참 많은 분들이 오셨었습니다.워싱턴 DC에서 프레스노에서 텍사스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먼 길을 마다 하지 않고 달려들 오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그 Green Hills 에 계셔서 아는데그곳 채플에 그렇게 많은 조객이 모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화도---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단체와 개인이 보내 주셨던지 ---
차마 보내드리기가 서러워 어떤 선배님은 금요일, 토요일 두번이나 다녀가신분도 있습니다.
이선주 목사님은 남아있는 분들로 부터 그렇게 많은 사랑과 아쉬움을 받으면서 떠나셨습니다.

지금은 어디쯤 가셨습니까?
목사님은 이제 평안을 찾으셨는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로 보면 목사님 떠나신 자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조국의 민주주의 회복이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그 일을 위해 행사를 기획하고 섭외하고  추진에 나가는일에 목사님은 후배들이 감히 엄두를 못 낼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목사님만이 갖고 계셨던  훌륭하신 경륜과 통찰력 그리고 남다른 기억력과  인화력, 순결한 조국애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은 정권 유지의 수사에 머무르고 있고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법원의 판결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더욱 가열찬 민중의 깨우침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제 누가 목사님의 그 크신 자리를 메꿀 수 있을른지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요,
지난해 가을에 서울 다녀 오신 일이 건강에 무리를 일으키셨을 것이란  안타까움도 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목사님이 예감이라도 하셨는지사모님과 함께 안가시던 강원도 홍천 처가도 다녀오시고 후배들을 안내해서 그렇게 당신이 평생을 두고 존경하시던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물들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과  동작동 김대중 대통령 묘역, 목포의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기념 박물관, 광주 5.18 묘역을 골고루 다녀 오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목사님이 편히 가시도록  장례식을 주관한 여러 단체장들 수고하셨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민주사회장 같은 예우를 해드렸으면 어땠을까하는 마음도 들면서 민주주의 와 통일을 향한 목사님의 80평생의 발자취가 더 선명하게 들어 나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목사님의 부음으로 이민사회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인가 하는 성찰과 각오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선주 목사님의 뒤를 이어 조국의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목사님의 동료 후배들은 목사님의 뜻을 따라 꿋꿋하게  그 뒤를 따라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용현 드림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이선주 목사님

아직 좀더 계시며 이루지못한 통일위해
큰일하셔야하는데 갑작히 떠나가시여 우리는
갈길을 잃은듯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집'에서 계속 우리를 인도해주시길
믿겠습니다.

목사님 평안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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