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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선생 서거36주년기념문화제: 은호기선생 제1강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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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08-12 16:20 조회2,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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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금년 2011년 8월은 장준하 선생이 서거한지 36년이 되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LA세상사는 사람(박진식 회장)"은 작년에 이어 금년 8월12일부터, 19일, 26일과 27일 네차례
걸쳐 마라톤 행사를 갖기로 하고 그 첫 행사를 로스엔젤레스 한인노동연대 1층강당에서 제1 기념강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발표된 내용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민족통신 편집실]


<##IMAGE##>


장준하 선생 서거36주년 기념문화제:

은호기 선생이 제1강 자세히 발표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금년 2011년 8월은 장준하 선생이 서거한지 36년이 되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LA세상사는 사람(박진식 회장)"은 작년에 이어 금년 8월12일부터, 19일, 26일과 27일 네차례 걸쳐 마라톤 행사를 갖기로 하고 그 첫 행사를 로스엔젤레스 한인노동연대 1층강당에서 제1 기념강좌를 가졌다.

<##IMAGE##> 이날 12일 강좌는 은호기 선생이 "장준하 선생이 부딪힌 사회, 그 구조와 성격"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장준하 선생의 생애(1918~1975)는 그의 삶을 통해 (1)항일투쟁기, (2)언론투쟁기, (3)정치투쟁기 등 주요 3단계 과정을 거쳐오면서 민족주의계열 가운데 온몸으로 현대정치사에서 모범을 보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은호기 선생은 이어 장준하 선생의 삶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진단해 보면 (1)항일운동투쟁기, (2)자유민주주의 운동투쟁기에서 친미반공적 노선을 택해 온 제한성과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와 함께 (3)그의 후반기에 민족주의 투쟁기를 거쳐 통일지향운동에 전념해 왔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장준하 선생과 관련이 있었던 주요한 해인 1918년 태어난 해로부터 1945년, 1948년, 1950년과 53년, 1960년, 1961년, 1964년, 1972년, 1975년 등산중 의문사를 당한 8월17일까지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장준하(張俊河,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 - 1975년 8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공무원, <##IMAGE##> 언론인, 사회운동가, 잡지발행인이다. 일제강점기에 교육 활동을 하였고 일본군 쓰가다 부대에 자원입대하였으나 탈출, 중국군 중앙군 준위를 거쳐 한국 광복군을 찾아가 1945년 2월부터 한국 광복군, 미국 CIA의 전신인 OSS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이후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공무원에 임용되어 1950년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 1952년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였으며, 제2공화국에서는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제2대 국토건설단 단장 등을 지냈다. 1967년부터는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으며 최남선을 추모하기도 했다.

제2공화국 당시 장면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고, 초기에는 5·16 군사 정변을 지지했으나 군정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파병반대운동에 가담했다.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의 지지 유세 중 박정희의 친일파,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았다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신민당과 윤보선과 함께 국민당에서 활동했다.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등산 중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당시 정부는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의문사 논란이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은호기 선생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미군정이 없었더라면 여운형 건준을 비롯하여 북녘 사회주의 진영은 남녘의 민주주의 진영과 벌써 통일조국을 이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한편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진영은 미국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고 단선단정을 주장하여 분단의 길을 갔다. 그 결과 만들어 진 한국정부를 가리켜 유엔 감시하에 선거가 이뤄진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도 그 당시 남한의 단독정부는 유엔195조 3항에 의거하여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이북이 있기 때문에 남한만을 사실상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발표는 장준하 선생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도 그의 삶과 미제국주의 본성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다.

은호기 선생은 특히 장준하 선생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무엇보다 미국의 제국주의 본성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미국을 정확히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고 강조한 반면, "반공을 뛰어넘어야 통일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발표를 통해 "미국은 우리 정부나 동포들이 통일을 말하면 가장 긴장한다"고 강조하면서 민족주의 대 국제주의에서 우리들은 1차대전이나 2차대전에서 식민지 쟁탈 전쟁으로 전환되었고, 국제사회간에 갈등들은 (1)선진자본주의와 후발자본주의와의 갈등, (2)선진자본주의와 비민족주의와의 갈등, (3)선진자본주의 대 후발자본주의 갈등, (4)후발 국가들간의 전쟁, (5)총체적으로 동-서 갈등이라는 명목으로 제국주의가 자리잡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로 불행하게도 "코리아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풀이했다.

은호기 선생은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강조했다. 미국 제국주의 본성을 볼 수 있어야 세계를 이해하고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통일은 어떤 통일이든 선이다"라고 말한 장준하 선생은 그가 통일지향적인 민족주의자의 길을 걷기까지의 과정에는 일제를 향해 투쟁한 경험, 언론투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한 경험, 그리고 국회의원을 하며 정치인으로 투쟁한 경험 등이 결합하여 이뤄진 삶의 철학으로 나타난 것으로 진단해 주었다.

은 선생은 강좌 본론을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역대 대통령 역사적 평가>>에 대한 질의서를 배부하고, (가)기본 평가틀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에서 (1)민주성(과정) 실행정도, (2)민중성 정도, (3)민족성(통일지향) 정도, (4)국제관계(평화) 정도, (5)미래지향성 정도를 기준으로 채점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1)집권과정, (2)집권기간, (3)퇴진사유를 감안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마지막으로 재임중 불법, 비법, 초법적 행위 등의 정도를 감안하여 평가하되 헌법 및 정치파괴 여부, 사회가치 파괴여부, 인권탄압(구금/고문, 군강제입대, 사형/학살 등) 정도 등을 감안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 평가표를 가정에 돌아가 부부가 함께 점수를 매겨서 역대 남한의 대통령들을 평가해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두시간 이상의 강좌에도 지루함 없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질의응답시간에도 발표자와 참석자들간에 뜨거운 대화가 오고갔다.

*주최측은 첫 행사를 마감하면서 13일(토요일) 오후6시에는 같은 자리에서 <<8.15광복 66주년 기념>>을 위한 "시, 노래, 그리고 통일의 밤"행사가 마련된다고 발표했다. 이날 한국의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과 정찬열 재미시인의 8.15행사 강연이 준비되어 있다고 광고했다. 한편 다음 주 그리고 그 다음주 금요일과 토요일 연속적으로 장준하 선생 서거36주년 추모기념행사가 계속된다고 알렸다.(아래 광고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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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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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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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서거36주년 기념문화제:

4차례 행사중 마지막 행사때 장호준 목사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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