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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혁명의 진앙 라틴 아메리카 - 살바도르 아옌데 50주기에 부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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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9-13 09:43 조회8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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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혁명의 진앙 라틴 아메리카 - 살바도르 아옌데 50주기에 부쳐 -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 궁에서 전사하기 전 행한 마지막 라디오 연설이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그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이 암울하고 가혹한 순간을 딛고 일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전진할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마십시오.
자유로운 인간이 활보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크나큰 길을 열어젖힐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게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대역죄인과 비겁자 그리고 반역자를 심판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자: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쿠데타에 항전하다 마지막 순간 자결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그 해 모습을 담은 사진. [사진출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오늘은 칠레의 ‘대통령 동지’ 살바도르 아옌데 서거 50주기이다.

무자비하고 냉혹한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 청년의 지지를 받아도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도 더욱 더 요원한 것이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는 미제국을 추종하는 친미 독재 군부정권의 아성(牙城)이었다.

그러나 살바도르 아옌데는 인민연합 선거에서 승리하여, 1970년 11월 3일 대통령에 취임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다.

20세기의 역사는 혁명의 시대였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록 국토가 거의 폐허가 되고 인명 손실이 너무 컸지만,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맹주로 미국과 함께 등장했다.

반면에 제정 러시아의 멸망(1917년),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패망(1945년),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에서의 패퇴(1975년) 등 제국주의는 후퇴했다.

20세기는 착취, 억압,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인민의 항거로 민족해방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가 거대한 전진을 이룬 혁명의 세기였다.

라틴 아메리카 또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고양되어 사회주의 나라들이 대거 등장했다.

쿠바와 같이 무장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칠레와 같이 인민연합 선거에서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나라를 이룬 곳도 있었다.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그가 선포한 먼로 독트린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제거하고 중남미를 자기네 세력권에 편입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다. [사진출처: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 네이버 지식백과]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그가 선포한 먼로 독트린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제거하고 중남미를 자기네 세력권에 편입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다. [사진출처: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 네이버 지식백과]

▶ 미국 먼로 독트린과 미국의 카리브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로의 침략

미국은 1823년 12월 3일,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인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내용은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신생 독립국에 대해 유럽은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유럽이 차지하고 있는 기존의 식민지를 포함해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건국이 마무리되면서 앵글로 색슨족의 침략성과 잔혹성을 보였다. 그리고 외부로 눈을 돌려 가까운 중남미에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중에서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멕시코 지역은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19세기부터 미국이 장악하고 간섭해왔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중남미의 풍부한 농업 생산량과 막대한 지하자원 그리고 플랜테이션 농업 등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윤을 수탈해갔다.

당연히 저임금과 강제 노동 등 노동착취는 일상적이었다. 또한 플랜테이션 농업의 단일재배 특성상 시장 상황 변화로 가격의 불안정과 기후변화 그리고 병충해 등 흉작에 취약해 현지인들은 더욱 크게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멕시코 아래의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 편도 소련 편도 아닌 제3세계 세력을 표방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자적 노선 쿠바 무장 혁명이 일어났다.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게바라(오른쪽)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정연이네 집]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게바라(오른쪽)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정연이네 집]

▶ 쿠바 무장 혁명과 반제 민족해방운동

피델 카스트로는 1953년 7월 26일, 바티스타 군사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반란을 조직해 몬카다 병영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체포된다.

여러 동료를 잃고 재판정에 쓴 카스트로는 저 유명한 최후 진술에서 “타이탄(마세오 장군을 지칭)은 ‘자유는 구걸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체테(Machete, 벌목도 혹은 정글도) 날로 싸워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배웠습니다. (중략) 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십시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바티스타는 뜨겁게 달아오른 여론에 굴복하여 카스트로를 석방했고, 카스트로는 또다시 1956년 82명의 동지와 함께 그란마(Granma)호를 타고 쿠바로 잠입했다. 그러나 이를 알고 미리 기다리던 군에 의해 대부분 동지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10여 명만이 산속으로 들어가 기나긴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58년 12월 31일, 아바나에서의 인민봉기와 함께 바티스타 친미 정권을 무너트리고,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다.

혁명에는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이 주도했다.

그리고 카스트로는 라틴 아메리카는 물론 제3세계에서 지지를 받았고, 혁명 성공 후에는 늘 군복에 수염을 기른 채 등장해 전 세계로부터 혁명 영웅이자 게릴라 전사로 추앙받았다.

쿠바혁명은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혁명적 투쟁을 폭발적으로 고양시켰다. 그야말로 혁명의 도가니였다.


▶ 라틴 아메리카의 무장 혁명 노선과 인민연합 선거 노선

1961년에 니카라과에서 미국의 앞잡이 소모자 정권에 맞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됐다. 1964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호르헤 리카르도 마세티가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1966년 콜롬비아에서는 공산당이 이끄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결성됐다. 이후 민족해방군(ELN)과 ‘M-19’도 결성됐다.

베네수엘라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 이후 농촌에서 축출된 농민들과 함께 도시로 옮겨와서 1989년 카라카소 봉기를 일으켰다.

1966년에는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칠레와 같이 인민연합 선거에서 승리하여,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나라를 이룬 곳도 있었다.

아옌데는 선거제도를 통해 사회주의를 합법적으로 건설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로부터 기회주의자. 의회주의자, 개량주의자라는 조롱과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칠레는 나름대로 의회제도가 구실을 하고 있었고, 아옌데는 헌법의 제도적 공간에서 사회주의를 실천하고자 했다.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은 집권하면서 40개 항의 정책을 내놓는다. 노동자의 경영참가 보장, 주민소환제도, 남녀 동일 임금제, 국민 생활임금제, 사회보장제도 확대, 전 국민 대상 예방치료 의료보장제 등이다.

아옌데는 무자비한 친미 독재정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인민이 탄압되는 나라에서만 무장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냉철하고 의리가 있고, 무엇보다 행동하는 ‘책임’ 있는 지도자였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목숨을 잃고, 그와 함께했던 게릴라 부대 생존자들이 칠레로 탈출했을 때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의 존슨 행정부와 싸웠다.


▶ 인민과 나라의 운명을 함께한 지도자 아옌데 ‘대통령 동지’

체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와 동행했다가 볼리비아에서 투옥되었던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레지 드브레는 석방된 뒤 잠시 칠레에서 은신하던 무렵 아옌데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동지, 당신은 인간은 권력을 쥐게 되면 변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아옌데는 “예전에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아옌데 동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 동지’라고 부르고 있지요. 나는 명확하게 이 말이 의미하는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있은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트 피노체트는 미국의 사주를 받고 반란을 일으켰다.

아옌데는 이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자신이 말한 ‘책임’이라는 말대로 장렬하게 전사했다.

당시 아옌데는 쿠바의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을 손에 들고 머리가 깨어져 뇌수가 바닥과 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 궁에서 전사하기 전 행한 마지막 라디오 연설이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그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이 암울하고 가혹한 순간을 딛고 일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전진할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마십시오.
자유로운 인간이 활보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크나큰 길을 열어젖힐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게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대역죄인과 비겁자 그리고 반역자를 심판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출처: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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