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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칼럼] 바다가 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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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12-10 01:32 조회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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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바다,70년대 유신 시대 , 출구가 보이지 않던 젊음의 암담함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우리시대는 그랬다 지금의 자살 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이 그랬을까 ? 품삯 없는 노동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바다가된 그대에게 ㅡ시집으로 탄생했다 6개월간의 품삵인 해남집 술값으로 만들어진 값을 매길수 없는 비싼 시집 이었다..." 시인이자 통일운동가인 이적 목사가 21년 전에 펴낸 시집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의 시집의 주제인 암담했던 70년대 시절의 삶은 바로 당시 대다수 민중이 겪어야만 하였던 남녘사회의 현실이기도 하였다. [민족통신 강산 기자]



[이적 칼럼]


이적시집

<바다가 된 그대에게>




이천년도에 펴낸 시집 한권이 있다 벌써 21년전에 펴낸 책이 되었다

부산해양고등학교를 다니며 선장을 꿈꾸었으나 5촌의 월북에 의한 연좌제에 걸려 외국 상선을 못타게 되었다 막혀버린 젊음의 장래 ,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미래를 곱씹으며 방황했다 그때 멸치배 선주의 꼬드김과 자괴감에 빠져 경북 구룡포 앞바다 멸치배 선원으로 떠났다 은회색 멸치로 퍼드득거렸던

20대의 감포와 구룡포

항구는 절망과 슬픔이 운무처럼 깔려 있었다 멸치배 선주의 꾀임에 빠져 약 6개월을 파도와 싸우며 진득하게 뱃놈 체험을 할수 있었다 그러나 보합제에 의하여 품삯은 한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선주의 완전 착취였다 그때부터 저항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국졸출신의 내 또래의 순진한 선원 8명을 선동하여 조업포기를 선언했다 요즘말로 치면 노동조합을 결성한 비합법적(?)단체 투쟁인 셈이었다 선원들은 그들에게 비하면 공부를 많이 한 나만 믿고 따라 다녔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돈도없이 선술집에 들어갔다 니나노집 아가씨와1박2일 동안 선원들과 질펀하게 술만 퍼 마셨다 그 집에 유일하게 주인외 아가씨 한명이 있었다

구룡포 해남집 그 소녀는 우리 또래 였다 밤새도록 우리의 술주정도 받아주고 뱃놈 노예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슬픈 눈매를 가진 20여세의 소녀로 기억된다 나는 옷속에 품고 다녔던 시집을 꺼내어 소녀에게 시를 읽어 주었다 소녀는알아

듣는지 못알아 듣는지 조용한 미소만 띄고 있을뿐 이었다

그러다 소녀는 술기가 올라오자 내 앞에서 흐느꼈다 나도 같이 눈물 지어 주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소녀에게 다음에 선주가 되면 찾아오겠다고 뇌까렸다

그도 고개를 끄떡였다

멸치배 선주가 되겠다는 청사진은 애시당초 문학청년인 내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조양호 선주의 착취에 오기와 객기가 짬뽕되어 나온 독백 같은것 이었다 다음날 아침, 선주가 찾아왔다 선주는 술값을 변상했다 그리고 품삸을 준다고 했다 우리의 승리처럼보였다

선주를 따라 나설때

그녀는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슬픈 표정 이었다

우리는 또다시 바다에 끌려가 파도와 싸우며 그물을 당겼으나 두달 뒤 조업이 포기될때 선주는 술값을 내세우며 품삯을 한푼도 줄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주동자인 나의 얼굴에 펀치가 날아들었다 한쪽눈이 퉁퉁 부었다 그냥 있을수 없었다

선주를 경찰에 고발했다

그가 파출소에서 꿇어 앉혀져 경찰에게 얻어 맞는 모습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여덟명의 선원들과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황량한 바다,70년대 유신 시대 , 출구가 보이지 않던 젊음의 암담함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우리시대는 그랬다 지금의 자살 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이 그랬을까 ? 품삯 없는 노동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바다가된 그대에게 ㅡ시집으로 탄생했다 6개월간의 품삵인 해남집 술값으로 만들어진 값을 매길수 없는 비싼 시집 이었다






바다에서의 어부노동과 친북연좌제 청년으로서 이땅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자괴감, 해남집 슬픈 소녀를 가슴에 품은 서러움, 나는 결국 선주가 되어 해남집 소녀를 찾아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ㆍ

애시당초 만날수 없는 바람같은 약속 이었다

지금은 그 소녀도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것이다

당시의 저학력층인 중졸이하로 규정된 흙수저 들은 노동자라는 사회적 지위가 없었다 공돌이 공순이가 안되면 버스 차장, 다방레지나 술집작부로

빠져 착취 당하던

사회 밑바닥 직군 이었다

그 소녀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뱃놈주제에 어줍잖게 시를 읽어주던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시선이 기억난다 이제는 기억이나 할수 있을까?




ㅡ바다가된그대에게는 그 시절을 그린 바다노동 시집이라 하면 어울릴것이다 이 시집은 청년기의 울분 절망과 슬픔,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그리움 따위로 짬뽕된 젊음의 방황기에 쓴 서정시로 꾸며져 있다

세월이 흘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때 21년전 2천부 한정판으로 찍은 책이다 




어느때부터 사람들은 시집을 돈주고 사지 않는다 인문학의 사망 이후부터다 그래서 20년전부터 아예 시집을 읽을줄 아는 사람들에게 서명하여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슬픈 눈을 가진 이름모를 그 소녀와 이십대 초반의 방황기에 겪은 바다노동 체험을 쓴 시편들 이제는 먼 시절의 슬픈 추억으로 담겨 1백권여권이 남아 있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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