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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대가정에 태여난 또 한명의 《처녀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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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11-08 22:19 조회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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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대가정에 태여난 또 한명의 《처녀어머니》 (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9월 19일 조선중앙TV로는 처녀의 몸으로 부모없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여준 사회안전성 로동자 최선희의 아름다운 소행이 전해져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미덕의 화원에 피여난 또 하나의 아름다운 꽃과도 같은 《처녀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펼쳐보이려고 한다.


* *


몇해전 공화국의 신문과 방송, TV로는 하반신마비가 왔던 동해학원의 한 원아가 침상을 박차고 대지를 활보한 소식이 널리 소개되였다.

10대의 어린 소녀의 이름은 안정심.

정심이가 척추종양에 의한 하반신마비라는 불치의 병을 이겨내고 일어선것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위해 수많은 의료일군들과 고마운 사람들이 기울인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는 보고 듣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

수술후 정심이의 상태는 늘 의사들과 간호원들의 관심속에 있었다.

비록 대지를 딛고섰다고는 하지만 의학적견지에서 볼 때는 아직 정상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던것이다.

당시 동해학원에서 원아들의 건강상태를 돌보던 최선희는 정심이의 간호를 전적으로 맡아안고 다른 누구보다 더욱 마음을 쓰게 되였다.

정심이가 때없이 열이 날 때면 그의 침상에서 꼬박 밤을 새우군 했고 입맛을 잃고 식탁에서 물러날 때면 안타까움에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던 그였다. 최선희는 밤이 되면 어린 정심이를 품에 꼭 껴안고 재미나는 이야기와 노래를 불러주며 함께 잠들군 하였다.

하지만 그 사랑과 정이 정심이에게 어떤 마음으로 새겨지는지 그는 미처 몰랐다.

어느날 밤 정심이를 돌보다가 불시에 몰려드는 졸음에 깜빡 잠이 들었던 선희는 얼굴에 와닿는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게 되였다.

자기 얼굴에 실린 어린 손, 고운 눈에 가랑가랑 맺혀있는 눈물,

불현듯 정심이의 도톰한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선생님, 이제부턴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

순간 선희는 돌처럼 굳어졌다.

정심이에게 있어서 어느 한시도 잊을수 없었고 목놓아 부르고싶었던 엄마라는 부름,

선희는 그제서야 어린 가슴에 소중히 간직된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달았고 말없이 정심이를 꼭 껴안았다.

그러나 정심이의 엄마가 되는 결심을 내리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정말 이애의 엄마가 되여준다면? 그럼 앞으로 나는?

날이 갈수록 그의 고민과 번뇌는 깊어지였다.

그럴수록 엄마라는 말을 조용히 외우던 정심이의 얼굴이 더욱 또렷이 안겨오고 불치의 병이라는 현대의학의 진단에 도전하여 기적같은 소생을 안아오기 위해 그처럼 애쓰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 2018년 2월 촬영 -


정심이에게 있어서 그들은 모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친혈육도 다하지 못한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럴수록 선희는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이 공기처럼 흐르고 남의 불행을 자기 불행으로 여기며 서로 돕고 이끄는 아름다운 사람들앞에서 자신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주저하였는가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게 되였다.

드디여 처녀는 자기자신이라는 《장벽》을 넘어섰다.

이렇게 되여 정심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처녀어머니》 최선희와 함께 평양행에 올랐다.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다!

이 하나의 생각으로 정심이의 작은 가슴엔 기쁨이 흘러넘쳤다.

아직은 자기를 돌보아주고 보살펴준 그 모든 사람들에게도 어머니라 부르는 따뜻한 품이 있다는것을 알기에는 너무도 어린 그였다. (계속)




사회주의대가정에 태여난 또 한명의 《처녀어머니》 (2)​

어머니가 되기는 쉬워도 어머니구실을 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있다.

친자식을 키우는데도 오만공수가 든다고 하는데 하물며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정심이를 품어안은 최선희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물론 모든것을 각오하고 뗀 걸음이였지만 그 한걸음한걸음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평양의학대학병원에서 전문병원으로, 또 옥류아동병원으로…

3년세월 선희의 발걸음은 이렇게 병원에서 병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심이의 건강회복을 위해 바쳐진 최선희의 정성에는 끝이 없었다.

깊은 밤 정심이의 병이 도져 병원으로 뛰여간 일도 한두번이 아니였고 입원생활기간에는 늦은 퇴근길에도 어김없이 들려 병상태를 알아보고서야 마음을 놓군 하였다.

평양시 중구역 련화2동에 자리잡고있는 그의 집에서는 정심이의 약을 만드느라 낮이나 밤이나 때없이 절구찧는 소리가 울려나와 《절구집》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선희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너의 그 정성에 딸애의 병도 나을게다.》

정심이를 돌보며 흘러보낸 세월은 선희에게 있어서 훌륭한 어머니의 진정은 자식의 훌륭한 성장에 있다는것을 깊이 깨닫는 과정으로도 되였다.

어느날 밤이 깊어 선희가 정심이와 함께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을 때였다.

한동안 무엇인가 오래도록 생각하던 정심이가 문득 선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것이였다.

《어머니, 나도 앞으로 대학에 갈수 있을가요?》

당장 건강을 추켜세우기도 어려운데 정심이의 마음에는 대학교정이 벌써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선희의 생각은 깊어졌다.

만일 정심이에게 친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어머니구실을 하려면 멀었다는 자책감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후 최선희의 일과에는 치료시간과 함께 학습시간이 새로 생겨났다.



선희는 정심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그려보며 스스로 학교선생님들의 《제자》가 되였고 밤이 깊도록 딸애에게 어려운 수학문제풀이도 배워주고 물리와 화학학습도 함께 하였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오래동안 병치료를 받은 정심이의 실력을 높여주기 위해 퇴근후이면 의례히 정심이의 집을 찾았다.

정심이를 위해 어머니의 진정을 다 바쳐가는 최선희의 집으로는 날이 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웃들은 별식이 생기면 먼저 정심이의 집을 찾았고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각이한 사람들이 《우리 정심이》라고 부르며 옷과 학용품, 수많은 약들과 식료품 등을 들고 찾아오군 하였다.

1월 10일은 정심이의 생일날이다.

그 생일도 정심이는 병원의 침상에서 쇠게 되였다.

이른아침부터 준비한 생일음식들을 안고 병원에 다달은 선희와 그의 부모는 뜻밖의 광경에 놀랐다.

정심이가 있는 입원실 한가운데의 넓다란 상에 주런이 펼쳐진 갖가지 음식들, 그 두리에 모여서있는 의사, 간호원들…

그 광경을 보는 선희는 목이 꽉 메였다.

결국은 자기보다 먼저 병원의 의료일군들이 정심이의 생일상을 차려준것이였다.

상우에 있는 하나하나가 눈물겹게 안겨왔다.

고마운 사람들,

선희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그날 정심이는 사진도 많이 찍었다.

어머니와 찍고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찍었으며 병원의 의사, 간호원들과도 찍었다.

소박한 생일축하연은 정심이가 부른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로 절정을 이루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청고운 정심이의 노래소리가 별안간 도간도간 끊어지기 시작했고 눈에는 맑은것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졌다.

그 모양에 선희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모여선 모두가 세찬 흥분으로 어깨를 흔들었다.

예로부터 설음중의 제일 큰 설음은 부모없는 설음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라는 불모의 땅에서라면 생도 꿈도 무참히 짓밟히웠을 소녀,

누가 보아도 고아라고 하기에는 믿을수 없는 정심이의 두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이야말로 가식과 꾸밈이란 전혀 없는 행복의 눈물이였다.

온 나라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있는 사회주의 우리 집.

그 집을 지키고 빛내이는것을 이 나라 공민의 량심으로, 보답으로 새겨안고 최선희는 정심이를 뜨거운 진정으로 품어안았다.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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