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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숙 칼럼] 나와 온 가족을 유린한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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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5-08 21:10 조회1,3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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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국가보안법으로 한사람의 삶이, 그로인한 가족의 운명이 얼마나 짓밟혔는지, 얼마나 유린당했는지! 이제는 말해야 겠습니다!" 사회운동가 나진숙 선생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자신과 온 가족이 당한 엄청난 고통에 대하여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나진숙 칼럼] 나와 온 가족을 유린한 국가보안법


나진숙 선생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습니다.

저의 20대를 관통한 주요사안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7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을 겪어내신 분들께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만8년을 국가보안법 7조에 저촉되는 이적단체 가입 및 고무찬양으로 1급 수배생활을 했었습니다.

당시 검사는 저에게 "순하게 생겼는데 어떻게그렇게 과격한 학생운동을 했느냐" 하고 약간의 비꼼의 얘기도 했었지만..

그 당시, 피끓는 청춘이었던 저는,

학생회 대표로 학생운동의 절실함으로 20대를 갈아넣었습니다.

제가 외쳤던 자주민주통일의 구호가 비현실적이었던가요?

가족도 생활도 돌보지 않던 제가 이기적이었던건가요?

아니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던 치기어린 열정이었을까요?

20대는 저에게 많은 숙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저만 힘들었던게 아니라 저의 가족에게 참으로 못할 짓을 많이도 저질렀더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군대에 있던 남동생에겐 절대권력 기무사가 찾아가고,

매향리 인근에서 노동자였던 아버지에게 찾아가 서슬퍼런 공권력으로 위협하고,

손녀의 안녕만 바라던 할머니에겐 쿵쾅쿵쾅 문을 두드리던 공포스런 경찰의 모습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까지 동원하고,

사촌들에게도 찾아가고..

언니와 형부가 일하던 호프집에는 늘상 상주하면서..

저를 잡아가두기 위한데만 급급했던 저들.

이제 그들도 60줄이 되었겠군요.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얘기하는 뒷방 꼰대로 전락했을까요?

저의 가족들을 괴롭혔던 죄의 사함은 받았을까요?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개인이 아니었으나, 책임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저의 몫임을 달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선택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습니다.

모두 새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그게 무엇인지도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작은 목소리라도 외쳐야 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국가보안법으로 한사람의 삶이, 그로인한 가족의 운명이 얼마나 짓밟혔는지, 얼마나 유린당했는지!

이제는 말해야 겠습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저의 안녕만을 위하시다 가셨는데,

저는 또 잊고 있었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존재합니다.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청원 운동이 5월 10일부터 진행된다고 합니다.

개인과 집단, 사회가 나서고 있는 절박하고 절실한 외침을 귀기울여 들으시고 함께 해주십시오!

우리의 무의식, 사고, 행동까지 장악하고 있은 분단의 상처와 이데올로기를 이제는 바로 보고 고칠 수 있도록 힘을 내고 연대해 주십시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 나진숙도 할 수 있는 여력을 내어 동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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