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으로서는 회동 제의에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 논란에 휘말리는 첫걸음이라고 여길 것이다. 자신의 대선공약 파기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껄끄러울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무대응 전략은 정치 도의를 떠나 사람의 예의가 아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오면 응답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예의에 어긋난다.
더욱이 회동을 제의한 사람은 제1야당의 공동대표다. 좋든 싫든 정국을 함께 이끌어나갈 파트너다. 야당 대표에 대한 모욕적인 태도로 깊어지는 것은 불신과 미움뿐이다. 이렇게 철저히 야당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야당에 국정운영 협조 등을 말할 수 있는가.
여권에서는 “선거 관련 문제는 여의도 일인 만큼 대통령이 관여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말도 하고 있다. 틀린 말이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여의도의 일’이 아니라 정확히 ‘대통령의 일’이다. 청와대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리 사과’를 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역시 착각이다. 회동 제의에 대한 응답의 주체는 당연히 청와대가 돼야 한다.
지금의 정치 상황은 단순히 공약 파기에 대해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6월 지방선거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엉망진창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당은 공천을 하고 어떤 당은 공천을 안 하는 선거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유권자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에게 묻는다. 자신의 대선공약 파기로 여당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이 그처럼 쾌재를 부를 일인가. 그런 야비한 수단을 써서라도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만족스러운가. 대통령은 여권의 지도자를 떠나 한 나라를 이끄는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다. 선거를 공정한 규칙에 의해 치르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최소한의 임무다. 엉망진창 선거를 모른 척 방치하는 것은 대선공약 파기보다 훨씬 무거운 죄악이다. 박 대통령은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이라도 되찾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의 비겁한 ‘무대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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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4-03 15:48 조회3,3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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