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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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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8-09 21:03 조회2,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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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역사학학회 비망록-"《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는 제목의 장문의 글이 조선중앙통신 9일자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글은 "최근 남조선의 《새누리당》패거리들속에서 5.16쿠데타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니, 《오늘을 있게 한 근본초석》이니 하며 박정희《유신》독재를 정당화하는 망발들이 공공연히 튀여나와 만사람을 경악케 하고있다.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몸서리치는 《유신》독재의 악몽을 어떻게 잊을수 있으며 그 죄악을 어찌 용서할수 있겠는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5.16쿠데타의 진상과 18년간의 박정희파쑈독재가 과연 어떤것이였는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고 통고하면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해 상세하게 그 진상을 폭로했다. 이 비망록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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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비망록


최근 남조선의 《새누리당》패거리들속에서 5.16쿠데타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니, 《오늘을 있게 한 근본초석》이니 하며 박정희《유신》독재를 정당화하는 망발들이 공공연히 튀여나와 만사람을 경악케 하고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몸서리치는 《유신》독재의 악몽을 어떻게 잊을수 있으며 그 죄악을 어찌 용서할수 있겠는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5.16쿠데타의 진상과 18년간의 박정희파쑈독재가 과연 어떤것이였는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5.16쿠데타의 진상


1961년 5월 16일 0시, 당시 괴뢰야전군사령부소속 6군단 포병대대와 1공수단, 해병려단 등에 서울을 점령하라는 출동명령이 하달되였다. 괴뢰군 2군 부사령관이였던 박정희역도와 그의 일당이 일으킨 5.16쿠데타의 서막이였다.
쿠데타반란군이 서울 한강다리 남쪽입구에 다달은것은 새벽 3시였다.
반란군이 서울로 밀려든다는 정보를 입수한 괴뢰륙군참모총장 장도영의 명령에 따라 한강다리에는 괴뢰헌병대가 겹겹이 진을 치고있었다.
치렬한 교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괴뢰헌병대의 방어진은 중무장한 반란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6군단 포병대대는 즉시 괴뢰륙군본부를 점령하였고 1공수단은 괴뢰국회의사당, 중앙청, 시청, 치안국, 중앙전신국, 《국무총리》의 림시숙소인 반도호텔 등을 일거에 장악하였다.
서울뿐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등 주요도시들도 반란군에 의해 일제히 장악되였다.
괴뢰해병대와 공수단을 이끌고 한강을 돌파한 박정희역도는 방송국을 점령하고 거기에 지휘부를 정한 다음 행정, 립법, 사법을 완전히 장악하였다는것을 발표하였다.
괴뢰국무총리 장면은 혼비백산하여 녀편네와 함께 미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의 집으로 뛰여가 도움을 청하였다가 문전거절 당하여 수녀원으로 도피하였다. 괴뢰대통령 윤보선은 식구들만 피신시키고 청와대에 숨어들지 않으면 안되였다. 괴뢰각료들은 모두 체포구속되였다.
박정희역도는 괴뢰륙군본부에 갇혀있는 륙군참모총장 장도영에게 남조선 전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할것을 강박하였으나 장도영은 합법적절차를 받기전에는 계엄령을 선포할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역도는 《쿠데타자체가 헌법을 무시한 비법적인 수단인데 무슨 합법적인 절차를 밟겠다는것인가.》고 하면서 제가 직접 장도영의 이름을 빌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는 《대통령》 윤보선을 찾아가 계엄령선포를 승인하고 쿠데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낼것을 강요하였다.
계엄령선포로 장면《정권》의 국무위원 전원 체포, 《국회》와 지방《의회》의 해산, 정당, 사회단체의 활동과 집회 및 파업, 려행, 야간통행의 금지, 언론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금융의 동결, 비행장과 항만의 봉쇄 등 조치들이 취해졌다.
쿠데타직후 박정희역도는 《군사정권은 잠정적인것이며 빨리 량심적인 정치가에게 정권을 맡기고 우리는 군대로 돌아가겠다.》고 떠들었지만 실지로는 《정치활동정화법》과 같은 악법들로 정치적경쟁자들의 활동을 탄압하는 한편 비밀리에 《민주공화당》을 조작하는 등으로 집권준비에 미쳐날뛰였다.
이것이 남조선각계의 강력한 항거에 부닥치게 되자 역도는 1963년 2월 기만적인 《대통령》출마포기성명을 발표하고는 곧 돌아서서 정계혼란과 구정치인퇴출을 구실로 군정연장을 요구하는 류례없는 괴뢰군시위까지 벌려놓는 추태끝에 군정을 4년간 연장할것이라는 《3.16성명》을 발표하였다.
군정연장을 반대하는 재야세력을 비롯한 각계층의 투쟁이 또다시 고조되자 박정희역도는 년내 민정이양을 하겠다는 기만적인 성명을 발표하고 5월 27일 쿠데타주도세력이 중심이 되여 조작한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되였으며 10월 15일에는 비상경계의 공포분위기속에서 사기와 협잡의 방법으로 《대통령》감투를 뒤집어 쓰는데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5.16쿠데타의 진상이다.
박정희역도는 쿠데타로 괴뢰정권을 강탈한 후 7만명의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나중에는 저들이 써먹었던 장도영까지도 쿠데타반대음모를 꾸몄다는 죄를 들씌워 체포하였다.
5.16쿠데타는 철두철미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그 배후조종자도 미국이다.
미국은 조선침략전쟁에서 참패한후 남조선에서 정치적혼란과 위기가 심화되고 1960년 4.19인민봉기가 일어나 리승만《정권》이 거꾸러지자 강력한 철권통치로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의 열망을 누르기 위해 이미전부터 점찍어놓았던 박정희군사깡패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킬 음모를 꾸미였다.
당시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매그루더는 박정희역도에게 자기 관할의 괴뢰군무력을 서슴없이 대주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고는 괴뢰륙군참모총장패들이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보고하자 미군은 일체 간섭하지 말라는 비밀지령을 하달하였다.
매그루더와 남조선주재 미국대사대리 그린은 《미군을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해달라.》는 괴뢰대통령 윤보선의 요청에 대해서도 랭정하게 거절하였다.
뿐만아니라 쿠데타가 일어난 즉시 미국무장관대리 볼스는 《신군사정부를 지지한다.》는 립장을 발표하였는가 하면 매그루더가 직접 쿠데타의 핵심인물인 김종필을 만나 성공을 축하해주는 놀음을 벌리였다.
미국대통령 케네디는 박정희군사《정권》을 지지하는 《친서》까지 보내여왔다.
그때 미중앙정보국 장관이였던 덜레스는 후날 영국의 BBC방송에 출연하여 《내가 재임중 미중앙정보국의 해외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것은 5.16쿠데타였다.》고 고백하였다.
이처럼 5.16쿠데타는 그 무슨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각본에 따른 박정희역도의 백주의 날강도적인 《정권》강탈이였다.
역도의 뒤를 이어 군사깡패들인 전두환, 로태우도 12.12숙군쿠데타를 감행하여 《정권》을 가로챘다.
실로 박정희역도의 5.16쿠데타는 남조선을 친미파쑈군사독재의 암흑천지로 더욱 전락시켜놓은 력사의 대비극이였다.

피로 얼룩진 《10월유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역도는 남조선 전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땅크와 장갑차를 내몰아 《국회》를 해산하고 일체 정치활동을 중지시킨데 이어 《유신헌법》을 날조하였다.
이 《10월유신》은 박정희역도가 1868년 일본의 부르죠아개혁파들이 일으킨 《명치유신》을 본따 장기독재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쿠데타였다.
《유신헌법》으로 박정희역도는 《대통령》, 《국무회의》 의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의 감투를 다 뒤집어쓰고 모든 권력수단을 통제할 권한, 《헌법》개정권, 국민투표권, 《긴급조치》발동권, 계엄령선포권, 《국회》해산권 등 무제한한 권한을 거머쥐였다.
또한 국민의 직접투표도 없이 제놈이 의장으로 되고 그 성원들도 제가 임명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데서 자기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만들고 그 임기에 한계를 두지 않는 《종신대통령제》를 내왔다.
그야말로 박정희역도는 《유신헌법》으로 일거에 《총통》, 《전제군주》의 지위에 올랐던것이다.
역도의 잔인한 《유신》독재통치는 전례를 찾아 볼수 없는것이였다.
《유신》독재체제하의 남조선은 그야말로 정치부재, 민주부재, 민권부재, 언론부재의 황량한 불모지로 변하였다.
당시 남조선사회를 뒤흔들어놓은 통일혁명당재건사건, 민청학련사건, 울릉도간첩단사건, 남민전사건 등으로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애국자들이 무참히 학살되였다.
박정희역도가 야당 당수 김대중을 일본의 도꾜에서 백주에 랍치하여 바다에 수장하려 하였던 김대중랍치사건은 전세계를 경악케 하였다.
역도는 언론에 자갈을 물리고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을 막았으며 학원을 비롯한 사회전체를 군화발로 짓밟고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 생존권마저 무참히 유린하였다.
70만명에 달하는 괴뢰군, 1만 5 000여명의 중앙정보부 요원, 40여만명의 정치특무, 5만여명의 괴뢰경찰과 32만여명의 경찰정보원, 300만명의 향토예비군 등이 온 남조선땅을 폭압의 란무장으로 만들었다.
로동자들이 밀집된 도시에는 10명에 하나씩 정보원이 박히고 농촌에는 5개 농가가 서로 감시하고 련대책임을 지는 5호책임제가 도입되였으며 어민 5명당 1명은 밀정이고 학교에는 청년학생사상연구회라는 비밀정보망이 생겨났다.
심지어 이웃집끼리 감시제, 부부, 부자간의 감시제라는것까지 고안되였다.
무시로 발동되는 《비상계엄령》, 《위수령》, 《비상사태》, 《긴급조치》에 정치방학, 정치휴교령, 방첩월간과 방범주간, 불온자색출운동, 《유신》반역자박멸운동으로 남조선주민들은 어느 하루도 공포없이 산 날이 없었다.
악명높은 《긴급조치》는 1974년부터 1975년까지 2년동안에만도 무려 9차례나 발동되였다.
《긴급조치》들에 의해 비상군법회의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무리로 처형되였다.
친구를 만나면 접선으로, 술을 나누면 모의한것으로, 악수를 하면 비밀약속으로 간주되여 재판도 없이 즉결심판되였으며 심지어 《배고파 못살겠다.》는 말한마디에 《불온분자》라는 딱지가 붙어 중앙정보부의 지하고문실에 끌려가 매맞아야 했고 《입산금지령》, 《통행금지령》 때문에 벌초하러 산에 갈수도, 대낮에 이웃에 갈수도 없는가 하면 집에 도적이 들었다고 신고하여도 류언비어류포죄에 걸려 옥고를 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남조선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생겨난것도 이때부터이며 새가 어떻게 우느냐 하는 물음에 《짹》한다 해도 죽이고 《찍》한다 해도 잡아죽인 중세의 폭군에 박정희역도를 비긴것도 이때부터이다.
《유신》독재의 야만적인 고문정치는 또 어떠하였는가.
중앙정보부의 비밀고문실에서는 물고문, 불고문, 전기고문, 마약고문, 뱀고문, 백열등고문, 비행기고문, 칭기스한료리고문, 죽침고문 등 별의별 고문들이 다 가해졌다.
재일교포류학생들이였던 서승, 서준식형제가 박정희일당이 조작한 학원간첩단사건으로 체포되여 야수적인 고문을 당하고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얼굴로 언론에 공개되였던 그 끔찍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박정희역도가 집권하여 18년간 한해에 70만~80만명, 연 1 400여만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체포투옥되고 학살당하였다.
《유신》파쑈독재는 남조선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고 폭압의 란무장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유신》파쑈독재의 실상이다.

영구분렬의 고착화와 《승공통일》광란



박정희역도는 집권기간 인민들의 조국통일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분렬과 대결에 미쳐 날뛰였다.
역도는 5.16쿠데타로 《정권》을 가로채자마자 《가자 북으로,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밑에 높아가던 남조선인민들의 통일기운을 참혹하게 짓뭉개버리고 《반공》을 《제1국시》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대결할수 있는 실력배양》을 떠들면서 미국상전을 찾아가 《미국의 리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통일하지 않겠다.》고 맹약하였다.
역도는 1965년 6월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우리의 지상과제는 승공통일》이라고 줴쳤다.
1970년대에 들어와 우리의 북남협상제의와 내외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북남대화에 마지못해 끌려나온 박정희역적패당은 조국통일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공동성명에 도장을 찍고는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지나친 락관은 금물》이라고 하면서 성명을 백지화하는 길로 나갔다.
또한 《유엔은 외세가 아니》라느니, 《미군주둔은 길면 길수록 좋다.》느니 하면서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의 원칙을 부정해나섰으며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운동을 《반공법》과 《보안법》에 걸어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그리고 서해사건, 동해사건, 땅굴사건 등 각종 모략사건들을 날조하고 《반공》궐기대회니, 성토대회니, 규탄대회니 하는 광대극들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반공화국대결광기를 부렸다.
박정희역도는 미제의 부추김밑에 《두개조선》조작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역도는 1973년 6월 《특별성명》으로 나라의 영구분렬을 추구하는 《두개조선》정책을 공공연히 선포하였다.
미국과 일본은 역도의 《두개조선》정책을 즉시 지지하였다.
박정희역도는 《두개조선》정책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책동에 발광적으로 매달렸다.
역도는 괴뢰외무부 장관을 유엔에 보내여 《두개조선》인정을 간청하게 하였으며 1973년에 있은 유엔총회 제28차회의에서는 미국에 매달려 《남북조선의 유엔동시가입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하고 지지표를 얻기 위해 온갖 비렬한 추태를 다 부렸다.
그것이 실패하자 미제와 박정희패당은 1975년에 있은 유엔총회 제30차회의 때 남조선의 유엔단독가입안을 들고나와 성사시켜보려고 발악하였다.
박정희역도는 미국의 부추김밑에 침략전쟁의 불집을 터뜨리기 위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적대적인 정탐행위와 무장도발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군사분계선일대에서 공화국에 대한 무장도발은 1968년에만 하여도 1만여건이나 있었고 정전협정위반행위는 1972년 7.4공동성명이 발표된후 1975년 9월 말까지의 기간에만도 무려 6만 8 900여건에 달하였다.
박정희역도는 《승공통일》, 《멸공통일》을 부르짖으면서 괴뢰군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향토예비군, 학도호국단, 민방위대 지어 부녀방위단, 부녀자위대 같은것까지 조작하여 온 남조선땅을 군사병영으로 만들었다.
《병역법》을 뜯어고쳐 40살까지의 청장년들을 소경이나 큰 병신이 아니면 전부 괴뢰군에 끌어낼수 있게 만들어놓은 역도는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후 괴뢰군사병들의 복무년한을 늘이고 후방예비사단들을 전투사단으로 개편하였다. 1970년에는 괴뢰군징집을 전문적으로 맡아보는 중앙병무청을 내오고 1975년에는 방위세라는것도 조작해냈다.
박정희역도는 1971년부터 《국군현대화 5개년계획》을 련이어 세우고 미국으로부터 수십억US$의 군사원조를 끌어들이면서 대결과 전쟁책동에 광분하였다.
역도는 1977년부터 조국강토와 우리 민족을 영원히 둘로 갈라놓을 흉계밑에 방대한 자금과 로력, 자재를 들이밀어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 콩크리트장벽을 쌓았다.
이 거대한 장벽은 122개의 마을과 8개 군을 갈라놓았으며 산지와 평지는 물론 북과 남으로 통하는 3개 로선의 철길과 220여개의 크고작은 도로 그리고 강하천들까지 끊어놓았다.
콩크리트장벽을 쌓을 당시 현장에 나타난 박정희역도는 《이북의 공산주의자들과는 같이 살수 없다. 그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 민족이 둘이 되든 셋이 되든 관계할바가 아니다. 장벽구축공사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고아댔다.
참으로 역도가 조국통일과 북남관계에 끼친 막대한 후과는 이루다 말할수 없다.
동서고금에 류례가 없는 콩크리트장벽은 오늘도 북남대결과 민족분렬의 상징으로, 박정희역도의 범죄적만행을 온 세상에 고발해주는 산 증거물로 서있다.

남조선경제의 식민지예속화와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패당은 《한강의 기적》이니, 《경제토대의 마련》이니 하면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찬미하고있지만 실지는 그 정반대이다. 오늘 남조선경제가 안고있는 심각한 대외예속성과 재벌경제구조, 빈부격차는 어느것 할것없이 다 역도가 그 독초의 씨앗을 뿌리고 자래워놓은것들이다.

박정희역도는 남조선경제를 외국자본에 철저히 얽매인 식민지예속경제로, 절름발이경제로 전락시켰다.

역도는 5.16쿠데타로 괴뢰정권을 가로타고앉기 바쁘게 《산업근대화》니, 《경제개발》이니 하는 기만적인 간판을 들고 외국자본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였다.

역도는 《외자도입법》, 《외국인투자의 도입증진과 외국인투자기업의 육성시책》, 《수출자유지역법》, 《외국인투자기업체의 로동조합 및 로동쟁의에 관한 림시조치법》, 《공업소유권법》 등을 조작하여 외국독점자본에 온갖 특혜와 특전을 보장해주고 외국기업에 고용된 로동자들이 로동조합을 뭇거나 로동쟁의를 벌리는것까지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결과 특권을 부여받은 외국자본들은 남조선에 물밀듯이 쓸어들어와 무제한한 략탈을 일삼았다.
박정희역도의 집권전기간 남조선에 들어온 외국차관은 225억US$, 외국인직접투자는 10억US$이상에 달하였으며 이렇게 들어온 외국자본들은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면서 막대한 리윤을 얻었다.
특히 미국기업들은 150~240%의 리윤을 얻었는데 당시 외국자본이 보통 다른 나라에서 얻는 리윤률이 20%였다는 사실과 대비하면 그야말로 황금소나기를 맞은것이다.

반면에 남조선경제에 남은것이란 산더미같은 빚과 심각한 대외예속성뿐이였다.
박정희역도의 무차별적인 외자도입책동으로 남조선경제가 걸머진 대외채무는 1979년 말에 이르러 1960년에 비해 227배나 늘어난 250억US$였다.

빚이 늘어남에 따라 원금과 리자상환액이 증가하면서 박정희《정권》말기에 와서는 외국에서 꾸어오는 대외채무의 60%이상을 제 땅에 들여오지도 못하고 외국자본에 고스란히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역도가 외국자본과 값싼 남조선로동력으로 해외원자재를 가공하여 재수출하는 수출주도형경제정책을 강행실시함으로써 1962-1975년기간에 괴뢰들의 투자자금의 해외의존도는 평균 40%, 원자재수입률은 평균 62.8%에 이르렀다.

괴뢰들이 현재 해마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300억US$이상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보고있는것도 박정희가 일본설비와 원자재를 마구 끌어들여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켜놓았기때문이다.

특히 에네르기의 해외의존도는 1979년 말에 75%정도에 달하였다.
주요설비와 원료를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다나니 공업부문에서 완제품가공조립부문에 비해 생산수단 및 원자재생산부문이 심히 조락하여 남조선경제가 기형화, 절름발이병신경제로 전락되였다.
곡창지대로 이름났던 남조선이 필요한 량곡의 70%를 해외에서 사먹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도 바로 박정희의 대외의존정책의 산물이다.

남조선농업인구는 1967년부터 1976년사이에 670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남조선경제를 극소수재벌들이 판을 치는 재벌경제로 만들어놓은 원흉도 다름아닌 박정희역도이다.
역도는 재벌들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아먹는 대가로 집권 전기간 친재벌정책을 실시하였다.
해방후 미국과 리승만괴뢰정권이 적산불하정책으로 남조선매판재벌들의 밑돈을 마련해주었다면 역도는 인민들과 중소기업들의 피땀을 긁어모아 재벌퍼주기를 하여 재벌을 본격적으로 육성하였다.
박정희역도는 재벌들에 자금을 우선 대출해주는것을 제도화하고 환률조작으로 막대한 리윤을 가져다주었으며 재벌들이 해외에서 빚을 내여 기업을 확장하게 하고 은행들이 빚을 갚아주도록 재벌우대정책을 실시한 결과 1966-1975년기간 기업지원투자액중에서 98.2%가 재벌들에게 들어가고 겨우 1.8%만이 중소기업들에 돌아갔다.

재벌들이 비대해지면서 권력과 재벌들사이의 유착관계가 심화되고 온갖 부정부패가 성행하였다.
1963년 박정희역도가 재벌들로 하여금 밀가루와 사탕가루, 세멘트가격을 마음대로 올려 폭리를 보게 하고 수천만US$를 정치자금으로 받아먹은 3분폭리사건, 재벌의 사카린밀수를 눈감아주고 막대한 돈을 삼킨 사카린밀수사건, 미국산 잉여농산물을 끌어들이는 대가로 최소한 7 900만US$를 걷어들인 부정부패사건 등은 그 일단이다.

괴뢰권력과 재벌들은 서로 엉키여 진탕치듯 돌아갔지만 중소기업들은 항시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무리로 파산몰락하였다.

박정희《정권》시기에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졌다.
역도의 친재벌, 저임금정책으로 1970년대 중반 남조선인구의 0.3%에 불과한 재벌들과 반동관료배들이 국민소득의 약 60%를 차지하였다면 전체 인구의 70%에 해당되는 근로자들의 몫은 15%에 불과하였다.

로동자들은 하루평균 10시간이상씩 로동하면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기아에 허덕이였다.

당시 남조선로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일본로동자의 8분의 1, 미국로동자의 11분의 1, 싱가포르, 인디아로동자의 2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참으로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18년간 통치의 악몽은 몸서리치는것이였다.
《유신》독재에 피멍이 든 남조선인민들의 원한은 지금도 구천에 사무쳐있다.
《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주체101(2012)년 8월 9일
평 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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