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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8]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br><br>샌후란시스코 장소암 선생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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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7-13 01:25 조회8,0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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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후란시스코=노길남 특파원]오랜만에 북가주에 거주하는 장소암선생(66)을 만났다. 얼굴 표정도
밝았다. 그리고 사업도 잘되고 가정생활도 과거에 비해 안정되었다고 말하는 장선생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방문한 민족통신 특파원과 예정웅선생을 반갑게 맞이 하며 고급식당으로 안내했다.이 자리에는 이곳
교외도시(샌 로랜조)에 거주하는 이만영선생(73)도 참석해 최근의 지역 소식들을 나누면서 안부를
물으며 최근의 정세에 대해 주고받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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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8]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샌후란시스코 장소암 선생 방문기




<##IMAGE##> [샌후란시스코=노길남 특파원]오랜만에 북가주에 거주하는 장소암선생(66)을 만났다. 얼굴 표정도 밝았다. 그리고 사업도 잘되고 가정생활도 과거에 비해 안정되었다고 말하는 장선생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방문한 민족통신 특파원과 예정웅선생을 반갑게 맞이 하며 고급식당으로 안내했다.

이 자리에는 이곳 교외도시(샌 로랜조)에 거주하는 이만영선생(73)도 참석해 최근의 지역 소식들을 나누면서 안부를 물으며 최근의 정세에 대해 주고받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특히 조국반도의 정세를 최악으로 만들어 온 이명박 정권의 반평화정책과 반민족 정책에 대해 분노하면서 서로들 이에 대한 해외동포들의 대응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의견들을 나누면서 정세의 난관을 조성하는 배후조종자로서는 무엇보다 미제국주의의 간섭정책에 경각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해내외 동포들의 단결된 힘이 결집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조되었다.

장소암선생은 “귀향일기”를 쓰신 재미동포 통일운동 선각자인 홍동근 목사를 비롯하여 여러선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그들의 숭고한 뜻을 살아있는 우리들이 잘 전수받아 이어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한편 자신이 처음에는 반공주의자였으나 자유민주주의의 실체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미국 지배세력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깨닮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군을 조국의 남녘 땅에 그대로 두고서는 통일문제를 생각할 수 없으며 북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한 장소암선생은 민족통신 성원들이 그 동안 여러가지 정보를 보도해 준데 대하여 그리고 해외동포들과 남북에 관한 소식들을 전해주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IMAGE##>“장소암 선생은 미국와서 어떻게 조국통일운동에 관심갖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1946년 4월13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남녘땅에서 살다가 1974년에 미국에 이민와서 살면서도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어릴적부터 목사인 아버지 장희진목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간략하게 설명해 준다.

그의 부친 장희진목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한신대학교 기독교장로회(기장) 출신으로 사회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오셨다고 설명하면서 5살때부터 아버지의 사회정의 정신에 대해 감동을 받아 온 이야기를 해 준다. 장 목사는 1981년 방북하여 이북의 혈육을 만난적이 있다고 소개하며 자신은 주로 한신대 출신인 목사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고 말한다.

한신대 목사들 가운데에는 크게 평안도 출신 목회자들이 시작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계열과 함경도 출신 목회자들인 김재준, 문재린, 강원용 목사등이 중심이 된 흥국계열이 있는데 이들 나름대로 사회정의에 대해 다른 교파출신 목회자들보다 더한 층 관심을 갖고 실천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는 1960년 5.16군사정변을 돌이켜 보며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 때에 예수와 기독자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회상하며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당시 십자가의 옆에 있던 사이몬이 고통을 받을 때를 생각하면 광주항쟁 당시 얻어 맞으며 대학살 당하던 광주양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그 참상 때문에 나는 십자가의 슬픔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장소암선생은 1981년 샌후란시스코 영사관 앞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팡이를 흔들며 전두환군사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을 때 이곳 언론들은 그의 투쟁모습을 크게 보도한바 있다.

<##IMAGE##>그는 1974년 이민와서 골동품 가구들을 보수제작하는 기술을 배운다음 “ Sam’s Interior” 회사을 설립하여 30여년 한 직종에 종사해 왔기때문에 이곳 지역 주류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 알아주는 회사로 키워왔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를 비롯하여 미국 주류사회 정치인들, 배우들, 사회명망가들이 그의 고객이었기 때문에 고정 손님들이 많은 상점으로 이름이 나 있다.

그는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1983년 독립신문 샌후란시스코 지사장, 그의 동생 장주암선생은 신한민보 샌후란시스코 지사장을 했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샌후란시스코 지역본부의 임원, 통일운동단체 통협 회원, 북가주조국통일민주연합, 한겨레사랑모임 등에 참여해 왔고, 민족통신 후원회 이사진으로도 활약해 왔다.

그는 도미 전에는 중앙대학교 영화연극과를 졸업하고 한국의 영화연극계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74년 미국으로 이민와서 38년 동안 생활하면서 재미동포사회 각종 한국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에 직접,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과 폴임 등 2세 진보운동 단체들,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 학생들 및 풍물패 등 후진 육성사업에도 열심히 지원해 왔다.

장소암선생 부인은 3년전부터 생과자 가게를 경영하는 바람에 가정 경제생활도 과거에 비해 윤택해 졌다고 설명한다. 그의 아들은 캘리포녀 주립대학 버클리대학 경제학과를 지난 5월 졸업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안부연락 전화: (415)681-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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