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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국민권연구소 김서원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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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5-05-07 00:00 조회10,8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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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이냐 평화냐는 남쪽의 행보에 달려"

<정세동향>이라는 격주간 정세 해설집을 발간, 6.15 이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돌아갔던 정세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해설하는 사업으로 소위 "운동권"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한국민권연구소.

<##IMAGE##> 민권연구소는 6·15시대 급격히 고양되고 있는 자주통일정세에 발맞추어 더욱 기민하고 정확한 정세해설 사업, 깊이 있는 이론연구사업, 자주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2000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부설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들어온 순서대로 서열(?)을 매긴다는 연구소에서 소장인 김승규 변호사 다음가는 자리를 맡고 있는 김서원 상임연구위원을 만나기 위해 얼마전 방배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민권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안에 들어서자마자 기자의 숨을 "턱"막히게 했던 것은 조금의 틈도 없이 연구소 벽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각종 책들과 자료 더미들. 민권연구소 연구위원들의 실력과 노력이 방대한 규모의 자료들 속에서 엿보이는 듯 했다.

학생 시절 격주간 나오는 정세해설집을 꽤 즐겁게 탐독했던 기자가 당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이런 정세 분석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정기간행물이 나오는 공정과 비슷합니다. 기획회의에서 해당시기 북미, 남북관계, 한반도 주변 상황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각자가 맡은 부분을 브리핑하고 핵심이슈를 뽑은 다음 토론을 합니다. 그런 다음 누가 어떤 글을 쓸 건지 분공을 합니다. 2003년 서해교전 때처럼 돌발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는 밤에라도 사건을 먼저 접한 사람이 자기가 판단해서 쓰는 경우도 종종 있죠."

기획으로 쓰던 돌발적으로 쓰던 중요한 것은 민족주체적 관점, 승리적 관점을 대전제로 쓴다는 것.

"90년대 후반 남과 북이 공히 어려웠던 시기를 어떤 힘으로 극복해왔는가. 그 힘은 바로 우리 민족의 힘, 민족주체의 힘이라는 것. 그리고 정세가 승리적으로 펼쳐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저희 민권연구소 정세 분석의 대전제가 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민권연구소의 정세분석에 자신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너무 짧은 기간 준비되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들을 확보하기 못하고 쓰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60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고 공동선언이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우리민족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는 확신 속에서 글을 씁니다. 우리의 견해가 거대한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향한 흐름 속에서 한 몫을 한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근거가 부족하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비판이 들어오면 허심하게 접수를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거죠. 그런 점들이 연구위원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고 생명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15 공동선언이 가져다 준 새로운 인생

<##IMAGE##> 카이스트 89학번. 김서원씨는 소위 말해 "가방끈"이 길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에 들어가 졸업 후 잘 나가는 대기업에 취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고등학교 시절, 잡지에 광주민중항쟁기사를 보고 눈이 돌아갔죠. 그걸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전두환이 군인출신인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그 당시 대학가면 꼭 데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는 울산 현대 중공업 노동자들이 파업하는데 가서 함께 투쟁을 하다가 잡혀 50일간 감옥에 있기도 했었던 김서원씨는, 그러나 96년 연대항쟁을 겪은 후 전반적으로 학생운동이 위축됐던 시기를 지나며 고민 속에 학생운동을 그만 두고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고 한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는 이제 흔히 말해 "보통 사람의 평범한 생활"을 살게 될 줄 알았다고. 그러나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일생일대의 사건이 2000년 6월 15일 일어났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혼자 텔레비젼을 보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거에요.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 자리로 짐을 싸가지고 나와 비디오 공테이프 5개를 사서 집에 들어가 6월 13일부터 15일까지의 전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녹화했다고 한다.

"2박 3일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그것만 봤죠. 아..이제 새시대가 열리는구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시대, 6.15의 활력이 폭발하는 이 시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운동의 길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색을 하던 중 실천연대의 소개를 받고 민권연구소에 들어가게 됐죠."

6.15 공동선언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 준 셈이다.

"한반도 평화의 균형추 역할은 남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 정세로 넘어갔다.

그는 지금의 북미간 대결이 첨예일로를 달리고 있는 것은 "마지막 대결의 시기가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부터 북에서 각종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죠. 2005년을 주한미군철수 원년, 자주통일원년으로 삼자, 9월 8일 미군철수 남북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자는 제안들이 그것이죠. 또 올해는 6.15 공동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북미간 핵대결 협상과는 별개로 우리 민족 전체의 단합을 위한 역량 결집을 위한 모색들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자주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들을 내딛자"는 북의 제안들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대 전환점들을 마련함과 동시에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통일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딛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북의 적극적인 행동들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시기, 94년도 전쟁위기 때와는 또 다르게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설명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전쟁위기가 고조됐을 때 국민들 사이에서 라면 사재기하고 난리가 났었죠. 11년이 지난 지금은 북이 핵보유 선언을 한 조건 속에서도 남측에서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북의 핵무기가 통일 이후에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다는 여론이 1위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 봐야 합니다."

그는 "북의 군사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섣불리 미국이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작금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점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동진영이 그 기세들을 모아 반전운동을 힘있게 벌여 현 정세를 뚫어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북과 힘을 합쳐 전체 한반도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투쟁들이 벌어져야겠죠. 단체들간 의견 차이를 줄이고 민족대단결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북은 지금 단순히 체제 수호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더 나아가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더 나아가 미일 중심의 신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를 깨기 위해 총대를 메고 미국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는 대결의 마지막 시기, 한반도에 전쟁이 오는가, 평화가 오는가를 가늠짓는 것은 결국 남측의 몫이라고 말했다.

"남쪽에 사는 우리가 북과 미국 사이의 대결에 구경꾼으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북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미국과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조건에서 남쪽이 어떻게 민족역량을 잘 결집시켜 북과 함께 싸워나가느냐가 관건인 것이죠. 한반도가 전쟁으로 기우느냐, 아니면 통일로 기우느냐는 남측이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결국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를 가늠짓는 균형추 역할은 남쪽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혜정 기자
2005년05월07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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