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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1]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br><br>토론토 이상훈 전한인회장의 통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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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1-23 12:19 조회2,3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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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북 장례식에 참여하고 온 전순영 여사와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을 취재하고 돌아 온 필자에게 평양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12일 오후 6시부터 토론토 시내 우래옥 식당 2층 별관에서 토론토지역 통일단체 대표들과 함께 친교만찬을 나누었다.만찬에서는 평양 국상 분위기, 북녘동포들의 경건한 애도 모습을 보고 느낀 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을 극진하게 배려해 준 김정은 영도자를 만난 소감 및 2012년 강성대국을 향한 전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 등 무려 3시간 동안 진지한 교류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날 모임에 대해 호감을 표하면서 앞으로도 이와 같은 친교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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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1]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토론토 이상훈 전한인회장의 통일노래




<##IMAGE##> [토론토=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북 장례식에 참여하고 온 전순영 여사와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을 취재하고 돌아 온 필자에게 평양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12일 오후 6시부터 토론토 시내 우래옥 식당 2층 별관에서 토론토지역 통일단체 대표들과 함께 친교만찬을 나누었다.

만찬에서는 평양 국상 분위기, 북녘동포들의 경건한 애도 모습을 보고 느낀 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을 극진하게 배려해 준 김정은 영도자를 만난 소감 및 2012년 강성대국을 향한 전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 등 무려 3시간 동안 진지한 교류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날 모임에 대해 호감을 표하면서 앞으로도 이와 같은 친교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이 친교모임을 갖기 전 전순영 여사를 비롯하여 이상훈 전 한인회장, 그리고 필자는 캐나다에서 300리 떨어진 미국 국경지역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도 이상훈 전 한인회장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상훈 토론토 전 한인회장은 민족통신과 대담을 통해 “이 모임을 위해 정학필 선생님과 김수해 선생님, 그리고 전순영 여사님께서 여러 조언을 주셨다”고 사전에 귀띔해 주었다.


그리고 저녁 우래옥 식당 모임에서 사회를 맡았던 이상훈님과 별도로 대담시간을 가졌다.

<##IMAGE##> 해외 통일진영엔 원로들이 대부분인데 이상훈 선생은 50대인데다가 한인회 회장 경력까지 갖고 있으며 그간 통일운동에도 관심을 보여 왔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이북을 방분하고 발표한 방문기를 통하여 이북바로알리기 활동까지 벌였다.

특히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노래 "박연폭포"를 불러 6.15민족공동 평양행사에 참가했던 남, 북, 해외동포 대표들에게 호감을 주었던 이상훈 선생이라 그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민족통신 기획연재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열한번째 인물로 정하고 그에 대한 삶의 발자취를 알아보았다.

그는 2005년 6.15남북공동선언 제5주년 기념 평양행사에 참가한 이후 2년만인 2007년 6.15선언 7주년 평양행사에 다시 이북을 방문하여 인민문화궁전에 모인 수천명의 남북, 해외동포들 앞에서 노래 "박연폭포"를 불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그가 노래를 부르게 된 사유는 6.15선언 제7주년 행사가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려고 하였는데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계동을 포함 3명의 정치인들이 참석하여 주석단 자리에 앉겠다고 트집을 잡으며 주최 측의 진행을 노골적으로 방해, 이를 설득하느라 행사가 무한정 지체되면서 수천명의 남북 해외동포 대표들이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행사가 재개되기를 기다려야 했었다.

그 때 해외동포 일부인사들이 마이크도 없이 즉흥 판을 벌리고 지역별 노래자랑과 함께 통일구호 및 즉흥 사회자의 연설 등이 이어졌는데 이 때 재미동포대표로는 김현환 박사가 이북노래 "내 나라 푸른 하늘"을 불렀고 재중동포, 유럽동포, 재일동포 등이 등장해 마치도 사전계획된 것처럼 즉흥 노래자랑을 연출해 하루 종일 지루하게 기다리던 관중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의지를 드높여 이 즉흥 노래자랑 시간이 그 당시 평양시민들의 대화제가 된 바 있었다.

이 자리에서 캐나다 동포를 대표하여 이상훈 선생이 등장하여 "박연폭포"를 불러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훈 선생과의 만남을 한층 더 의미가 있다.

“그 당시 노래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불렀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천명의 남북 해외동포 대표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혹시 전공이 성악이었는지요?”

이상훈 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제 전공은 한국외국어 대학에서 폴투기스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는 서반어를 했는데 사실은 처음에는 성악을 하려고 개인교습도 받은바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1980년 한국서 5.18광주민중항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 이후 카나다에 이민왔다. 1982년에는 이곳 한국 총영사 앞에서 20여명과 함께 시위를 하면서 “전두환 찢어 죽여라!”는 피케트도 들고 나가서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고 회고한다. 그 때 나이가 29세, 한창 피 끓는 나이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2,000년도 중반기에 들어와 토론토지역 한인회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그 후에도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IMAGE##> 이상훈 선생은 1953년 6월20일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여 가족과 함께 강원도 평창으로 가서 그곳에서 어린 시절 성장하고 고등학교부터는 서울로 가 살았다. 기독교학교인 신일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효성그룹에 수석합격자로 취직해 임원담당 비서로 일했다. 그리고 회사 내 여성합창단 지휘자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그 생활의 수명은 고작 8개월에 그쳤다. 입사이후 신원조예 결과로 임원담당 비서직에 부적격자라는 평가가 나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전주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아버지가 6.25전쟁 시기에 한 사범학교의 교장 직을 맡았는데 그것을 부역으로 취급받고, 그리고 외갓집 집안 성향이 좌경이라는 것 때문에 임원담당 비서직에서 다른 부서로 좌천되었다. 그는 이것에 실망한 나머지 사표를 내고 그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카나다에 와서도 반정부적 정서를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직장도 반정부 신문인 "민중신문(발행인 정철기)"에 일하면서 지금 고인이 된 전충림 선생이 발간하던 "뉴코리아타임스"의 애독자였다고 회고하였다.

그 당시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신 강원진 선생이 이북 비디오 ‘세계청년축전(1989년 행사)’를 포함하여 흑백영화 ‘소금’, 그리고 ‘춘향전’ 세편을 빌려주어 이것들을 감상하면서 북녘에 대한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비디오를 보면서 "김일성 주석이 나의 한국외국어대학 후배인 임수경 학생이 학생대표로 평양축전에 참가하여 김일성 경기장을 행진할 때 자신의 앞을 지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쳐주는 모습, 그리고 주위에 앉았던 다른 나라들 수상들이 함께 일어나 박수를 쳐 주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바가 많았다"고 술회한다. 춘향전을 감상하면서 그는 이도령이 방자에게 막걸리를 권하자 “제가 감히...”라고 사양하자 도련님이 방자를 향해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하는 장면 등이 특히 인상에 깊이 남았다고 추억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시대, 노무현 정부시대에 평통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리고 6.15실천 캐나다지역위원회 회원으로도 참여하며 통일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범민련 캐나다지역본부의 정학필 의장님, 캐나다코리안연합회 김수해 회장, 뉴코리아타임스를 운영하시던 전순영 여사 등을 통해 통일관계 소식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두 차례 이북을 방문하고서 지금까지 들어온 남녘의 언론들 보도가 사실과 다르며 그저 나쁘다고만 보도한 보수언론들의 내용이 실제로 다르다는 차이점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이북을 다녀 온 후 쓴 기행문에서 대동강변을 산책하면서 평양에도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들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그들에게 ‘눈물젖은 두만강’을 노래 불렀더니 수다 아주머니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독자들이 그 대목이 아주 좋았다.”고 격려하는 캐나다 동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알기 때문에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지원해오면서도 그는 한인회장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캐나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6.15선언과 10.4선언을 하여 우리 민족이 그야말로 통일의 대문으로 들어섰는데 그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통일부까지 폐쇄하려고 하면서 임기 이후 지금까지 남북대결정책으로 일관하여 왔고, 평화롭던 남북관계가 긴장으로 바뀌고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사건 등이 터져서 유사 이래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된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입니다. 2012년 한국사회 총선과 대선에서 올바른 생각을 가진 선량들이 당선되어 나라를 바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동시에 남북관계가 6.15시대, 10.4시대를 다시 꽃피워 우리 국내외 동포들 모두가 바라고 염원하는 조국의 평화통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라고 겸손하면서도 절절한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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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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