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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미국의 향후 대북정책을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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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8-10-24 01:03 조회2,9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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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웅 민족통신 논설위원은 24일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을 전망한다>는 제목의 논단을 통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11월 4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바락 오바마가 당선 될 가능성은 99%"라고 점치면서 향후 미국의
새 정부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와 크게 다르다고 전재하는 한편 6자회담 진전과 함께 북미평화협정, 북미수교
수순으로 순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논단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진단]미국의 향후 대북정책을 전망한다




*글: 예정웅 민족통신 논설위원


<##IMAGE##> 8년 전 오늘을 기억해 본다. 2000년 10월 24일 평양의 하늘은 높고 파랬다. 그리고 티 없이 맑고 깨끗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얼마나 가을 정취가 좋았겠는가... 소음이 없고 공해가 없는 곳으로 유명한 평양시내 한 복판에 있는 고려호텔, 이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미 국무장관 메들린 올브라이트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은 내외신 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당시의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올브라이트가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평양은 아름답고 인상적인 도시다.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시간이 넘게 회담을 했다. 그리고 만찬과 청년학생들의 펼치는 집단체조를 김 위원장과 함께 관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남의 말을 경청(good listener) 할 줄 아는 훌륭한 대화 상대자(good interlocutor)이다. 그는 실용적이고(practical) 결단력(very decisive) 있는 정치 지도자라는 인상을 줬다....>>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세계 유수 언론 및 방송과 기자회견을 많이 했으며 김 위원장에 대해 우호적이며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 특히 2002년 2월 16일 NBC방송의 아침종합뉴스 프로그램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그는 인터뷰 전 가볍게 농담을 한다. “...오늘이 북조선의 김 위원장의 생일이라 한다. 케익크라도 잘라야 되는 날 아닌가...” 세상을 오래 산 경험 많고 노련한 정치 행정가 메들린 올브라이트 할머니가 케익크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말 한다.

그녀는 인터뷰를 이어갔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락크, 북조선을 싸잡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한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이란 이락크, 북조선은 무엇보다 서로 매우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는 행정부를 떠날 때 북 조선의 미사일 기술 수출과 시험 중단에 대해 검증 할 수 있는 협정 체결 가능성이 담긴 문건을 탁자 위에 남겨 놓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멀리 했다. 오늘의 진실은 이들 3개 나라는 우리와 관계가 더욱 멀어지고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올브라이트가 최근 북조선과 관련한 인터뷰를 한 것은 2007년 3월20일 독일 일간지 디 벨트지 이다. 인터뷰 내용은. <<...“악의 축”으로 대변되는 네오콘(신보수주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 왔다. 신 보수우익들은 대체로 국제정치적 사유관찰 능력이 좁으며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검증과정을 통해 그들의 정책 실패를 입증했고 세계를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으며 무력만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라고 밝히면서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목표는 북조선이 이웃국가들이나 미국에 위협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조선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서도 북조선과 협상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필자가 왜 메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과거 기자회견과 인터뷰 내용을 새삼 들추겠는가.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는 현실의 거울이라 했다. 미국 정치정세 변화과정에 미 정계의 거물 메들린 올브라이트의 솔직한 북조선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밝힌 것은 오바마 시대와 더불어 향후 조-미관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녀의 의지 대로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수립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11월 4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바락 오바마가 당선 될 가능성은 99%이다.

오바마는 젊다. 그는 흑인이긴 하지만 미 유권자들을 설득했고 포용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확보했다. 그의 정치적 자질과 정책을 미국의 유권자들이 수용하고 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에 만능인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와 국가안보 문제까지 다 잘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경험 많고 노련한 대외정책 자문위원이 그를 보좌해 주는 것이다. 바락 오바마의 대외정책의 자문위원은 13명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자문위 의장이 바로 클린턴 시대에 국무장관을 역임했고 북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호의적이며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메들린 올브라이트라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임 국무장관을 역임한 워렌 크리스토퍼도 참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클린턴 시대에 북조선 영변 <폭격론>을 주장했던 강경론자 윌리암 페리가 대북강경인물에서 북조선의 실상을 알고 난 이후 대북 온건 대화론자로 변신 했는데 그가 대북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운 <페리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며 오바마의 대북정책 자문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바락 오바마의 런닝 메이트 조 바이든 상원의원을 뺄 수가 없다. 그는 상원 외교위 상임위 의장이다. 북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외교안보통이다.

미국 대선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의 수석보좌관으로 오바마 선거본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담당한 책임자인 프랭크 저누치(Frank Jannuzi)가 있다. 바이든의 비서겸 전문위원인 그는 북에도 여러 번 갔다 온 인물이다. 그는 2008년 10월 2일 워싱턴 근교 애넌데일에서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는 재미동포들이 주최한 모임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에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자고 제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그런 제의가 있으면 좋겠다. 오바마 후보는 조건 없이 외국 지도자들과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 후보측의 대북정책관련 인물들>


오바마의 대북정책 조언그룹으로 활동 중인 인사들은 지적으로 우수하고 자유주의적 진보성향을 갖고 있으며 능숙한 협상 경험도 풍부하다. 북핵 협상을 이끌었던 토마스 허바트, 전 주한미대사 도널드 그레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 조엘 위트, 맨스필드 재단의 고드 플레이그 소장, 스티븐 보스워츠 전 주한미대사, KEDO사무총장, 조너던 폴락 해군대학 교수, 1994년 북의 강석주 부상과 제네바 협상을 타결했던 로버트 가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최근에 KEDO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카트만, 평화연구소 셀리그 헤리슨도 오바마 진영과 가깝게 접촉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북에 대해 호의적이다. 이들은 대화와 협상으로 북조선과 관계정상화를 갖는데 동의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북조선을 여러 번 방문해 북의 고위 간부들과 대화를 해 왔던 지북파에 속하는 인맥들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한미동맹을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보다 북조선이 오히려 미 주류사회에 더 견고하고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 정계, 재계, 사회계, 각 연구소등 북에 호의적인 인사들이 있다. 아틀란타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CNN 본사와 카터 재단, 카터 전 대통령, 뉴멕시코 주지사 빌 리차드슨, 남 침례교단의 빌리 그래함 목사와 그 주변 인물들도 지북파 인사들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아는 것만큼 행동한다. 위에 언급한 인물들은 전에는 북조선에 대해서 잘 모르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북을 방문하고 김 위원장의 정치철학을 알게 되었고 북의 정치체제와 제도를 목격한 이후 북조선의 저력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북은 초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게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북조선의 사람사업은 언제나 진실되고 순수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아첨을 모른다. 정권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면 무관심 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나 몰라라 식” 냉대하는 자본주의식 사람사업 방법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 주류사회의 지북파 인사들이 북조선과 최고 수뇌에 대해 크고 작은 애정을 갖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난 8년간 부시 진영의 네오콘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망치고 강경대북정책 때문에 미국 조야에 지북파들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막히는 나날들이었다. 부시 진영의 네오콘들은 대북 봉괴전략을 두 축으로 밀고 갔다. 국제적으로는 북을 봉쇄 고립화시키고 북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킨다는 것, 봉쇄 비밀공작 전술은 사면팔방으로 쉴새 없이 북을 압박해 들어갔다. 군사적으로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 하에 <전략 투입 근거지(대규모 장비와 병력전개 근거지)확보>, <주요작전기지(대규모병력 장기주둔지 상설기지)확보>, <전진작전거점(소규모 단위부대 주둔시설) 확보>, <안보협력대상지역(연락요원 상주기지)>등 4등급으로 나누어 이 기준에 따라 미군 해외 주둔기지를 재편하고 대북 선제공격작전은 실전군사연습단계로 까지 확대해 왔다.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들어와 한반도에서 미 군사훈련은 3배가 늘어났다. 이 사실을 다 기록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프리덤-버너 훈련>, <연합전시증원 훈련(SROI)>, <독수리훈련>, <한반도 지형습지훈련>, <미 해병대 상륙훈련> 등 훈련의 명칭만 바꾼 <팀 스피릿드 훈련>은 요즘 들어 한층 더 빈번해 지고 있다.

부시 네오콘 행정부는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공공연히 다음 차례는 북조선이라 공언했다. 내부 봉괴를 노린 대북 모략 심리전 책동도 강화해 나갔다. 이 행정부는 미 국무성에 <대북워킹구룹 (NKWG)>을 별도로 조직해 뱅코 텔타 아시아은행(BDA)의 북조선 자금을 동결하고 위조지폐 제작설, 마약밀매설, 가짜담배 밀수 설 등을 조작하며 대북적대시정책의 수위를 높여왔었다. 한편 남한에 반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촛불시위가 재미동포사회에 번지게 되자 백악관은 반미감정 확산에 당황한 나머지 재매동포들의 반미감정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통일세력을 위축 고립시키기 위한 사찰도 강화한바 있었다. 그 동안 이른바 <애국법>을 만들어 미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매일같이 통일인사들을 인터뷰하자고 졸랐고, 미행하고 감시하고 위화감을 조성했었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과 호전적인 군부세력은 2003년 노무현 정부에게까지 “제한적 북 폭”을 통보하는 사태까지 벌였던 것은 공개된 비밀로 되어 있다.

미 군부의 대북 선제공격 계획은 막바지에 들어섰다. 이라크 전쟁 3개월 만에 부시는 공군복장으로 갈아입고 <워싱턴 호> 핵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타고 사뿐히 내려앉아 <<이라크 전쟁에 승리 했다>>고 공표하고, 종전선언까지 하는 연극을 연출한바 있었다. 부시는 전 세계와 미 국민을 속였다. 바그다드 점령이 전쟁승리라는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종전이 아니라 확전 되었고 전쟁은 6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는 오늘 이 시각(2008년 10월23일 현재) 4,190명으로 집계되었다. 매일 미군 두 세 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부시는 전쟁 시작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해서 전쟁으로 미국을 수렁으로 내 몰고 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대통령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8년 집권하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차기 대통령이 물려받게 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의 원인>


부시 행정부는 대북선제공격 최종결정을 위해 분주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지난 1993년 북조선을 선별적 제한 공격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한반도 전쟁 <시물레이션>을 통해 가상전쟁을 시험해 본 결과 엄청난 결과로 패배할 것이라는 내용에 기겁을 한 바도 있었다. 부시 진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임자의 경험을 무시하고 또 다시 두 차례 전쟁 <시물레이션>까지 진행했다. 첫 번째 시뮬레이션은 2002년 5월30일 워싱턴의 국제전략연구소에서, 두 번째는 2002년 7월 중순 국방성 지하벙커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들은 참담하게 나왔다. 컴퓨터가 고장이 아닌가 해서 새것으로 바꿔가면서 <시물레이션>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가상전쟁에 참가한 톰 젠틀 기자(네셔날 퍼불릭 라디오)는 2003년 8월18일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반도 전쟁 시 미국과 한국군은 아무런 유효한 군사적 선택지가 없는데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혔다.

2003년 8월1일 뉴욕타임즈는 현역장성 고급군관들이 모여 7월 중순께 펜타곤에서 실시한 전쟁 <시물레이션> 참가자의 증언을 보도 하면서 “우리가 참패한다” (We are going to be fucked)고 보도 했다. 전쟁에서 항복은 두 손을 번쩍 처 들고 백기를 들고 나와야만 항복이 아니다. 미국은 아래와 같은 참담한 결과에 정치 군사적으로 이미 항복 한 것이다.

“... 초전 몇 시간 내에 최소 3백만 명의 미군과 남한군 민간인이 죽고 남한은 잿더미로 남게 된다. 장기전까지 갈 필요도 없게 된다. 장기전은 북조선에 더 유리한 전쟁 승리를 제공 한다. 북조선은 핵전쟁에 대비해 오래 전에 대피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전민이 무장화 되었다. 총을 들 수 있는 만큼 힘을 가진 사람은 다 전투요원이다. 지하시설과 깊은 산악지대는 천연의 대피시설들이며 추위와 굶주림, 극한 상황하에서 북조선 인민들의 인내력과 생존력, 자생의 적응 능력은 첨단화 된 무기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원시전쟁 형태와 재래전, 최첨단 과학화된 현대전이 모두 배합된 북조선의 전쟁 전략과 전술적 기술은 우리로서는 감당할 방법이 없다. 컴퓨터에서는 북조선의 피해가 남한의 1/1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편에 북조선의 후방지대 후방 기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남한은 밀리면 3면의 바다로 빠지게 된다. 과거 5년에 걸친 북조선 인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참혹한 고통을 주었지만 과거 전쟁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과 신이 내린 축복의 생존훈련>으로 된다. 미국과 한국은 패배하고 회생불능이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컴퓨터 기계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작동을 멈추었다.

대북 선제공격은 가능하지 않다는 군부의 건의에 부시는 선제공격 대신 “악의적인 북조선 무시전략” “핵 방치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여론에 못 이겨 2002년 10월 17일 부시 집권 1년 10개월 만에 켈리 특사를 평양에 보내게 된다. 부시가 보낸 켈리 특사는 북조선과 미국과 대화와 협상을 시작 하자는 예비접촉이 아니라 북조선과는 대화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통보하기 위한 방북이었다. 북이 우라늄 농축 핵개발을 시작 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강석주 부상이 시인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북-미 대화를 중단한다. 대북중유지원도 끊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2003년 11월21 금호지역의 대북경수로 건설 사업까지 중단하고 2004년 경수로지원사업 기구인 KEDO까지 폐쇄하기에 이른다. KEDO 사무총장이였던 카트만은 그렇게 실업자가 된다. 부시의 대북 압박 전략은 이렇게 계단식으로 확대 된 것이다.

부시에 대해서 조금 더 말 해보자. 그는 90일 후면 쓸쓸하게 백악관을 떠난다. 집권8년 동안에 단 한 차례도 여론 지지도 30%를 넘긴 적이 없는 그야말로 미국 역사에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진다. 여기 이런 글이 있다. <<...부시처럼 국내외적으로 분명하게 실패한 사람은 달리 찾기 힘들다. 부시의 정책은 미국을 과학과 이성으로부터 아무 생각 없이 후퇴시켰고 경제기반을 불구로 만들었으며 뉴욕타임즈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81%가 부시가 미국을 잘 못 이끌었다(wrong track)고 답했다. 역대 최악의 수준이다. 워터게이트로 한창 깨질 때의 닉슨보다도 더 낮다....>> (출처: Hater Magazine 2008년 4월호)

<미 역사학자들 61%가 부시를 최악의 대통령 평가>


그렇다면 미 역사학계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역사학자들은 정치인에 대해서 평가하기를 꺼려하는 속성이 있다. 그럼에도 미국 역사학자들은 61%가 부시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 한다. 그리고 ‘History News Network’이 109명의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8%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남한 기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수행 능력에서 잘한다고 평가한 수치가 2.7%라고 대답한 것은 마치도 부시의 평가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미국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역사학자들이 부시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핵심적 요점을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No individual president can be the second Bush," wrote one "Glib, contemptuous, ignorant, incurious, a dupe of anyone who humors his deluded belief in his heroic self, he has bankrupted the country with his disastrous war and his tax breaks for the rich, trampled on the Bill of Rights, appointed foxes in every hen house, compounded the terrorist threat, turned a blind eye to torture and corruption and a looming ecological disaster, and squandered the rest of the world’s goodwill. In short, no other presidents faults have had so deleterious an effect on not only the country but the world at large."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대통령도 부시 보다 못하지 않았다. 경박하고 타인을 무시하고 오만하며 부주의하고 영웅시하는 자신에 맞 장구치는 무리들의 앞잡이로서 부시는 재앙적인 전쟁과 부자들의 세금감면으로 나라를 파산시켰으며 인권을 짓 밟고 모든 닭장에 여우들을 들여보냈고 테러위협을 오히려 키웠으며 테러범을 잡지도 못하면서 테러의 미명하에 미국인들을 감시와 통제 도청 검문검색으로 고통을 들 씌웠으며 고문과 부패 그리고 생태학적 재앙을 무시했으며 선의를 파괴 했다. 집권 8년 동안에 수조 달러를 군사비로 낭비하고 4배의 기름 값을 올려놓았다. 결론적으로 국내적으로나 세계 차원에서 이렇게 유해한 대통령은 없었다...>>

<부시 정부의 대북접근 자세변화의 두가지 이유>


그러면 이러한 평가를 받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처음의 강경자세에서 협상자세로 바뀌게 된 것은 왜 그럴까? 이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미국이 상대해 온 북조선의 핵 억제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북의 일심단결된 전 인민 무장화 같은 요인들이 있고, 또 하나는 미국측에서 나온 새로운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기초하여 가상전쟁 각본에 의해 타산한 결과 그 피해가 막심하다는 결론에 입각하여 전 국무성 자문관 필립 제리코(Philip Zelikow 제리코는 키신저 사무실 인턴 출신 유태계)가 “대북 포괄적 접근정책”을 작성하여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올렸고 이 보고서에 의한 새로운 정책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2005년 여름이었다. 처음에는 강경파 네오콘들이 <제리코 보고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맹렬히 반대했다. 다시 말하면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네오콘과 백악관 안보팀과 라이스간에 내부논쟁이 벌어진바 있었다.

그러나 부시가 라이스와 크리스토퍼 힐의 손을 들어주게 된 배경은 2006년 10월 9일 북의 지하 핵 시험 성공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제리코 보고서” 채택에 좌절한 존 볼튼이 사임하고 국방차관 월포위츠와 국방장관 럼스팰드가 줄줄이 워싱턴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세계 정치외교의 거장 키신저는 전면에서 한 일은 없지만 라이스는 키신저를 선생으로 떠 받든다. 라이스의 북조선과 대화 재개 지시는 키신저의 훈수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신저가 분신 제리코를 내세워 영향력을 발휘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제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이 90일 남았다. 2009년 1월20일, 미국의 새 대통령이 취임식에 오르는 날이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바락 오바마가 차기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시와는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의 본질까지 다르게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북미관계의 그림만은 전과 달라질 것이 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리사가 다르면 음식 맛도 달라지는 것 처럼 매들린 올브라이트, 워렌 크리스토퍼, 윌리암 패리, 조 바이든과 같은 지북파들에 의한 대북정책의 그림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북미관계 전망에 대한 그림은?>


그 그림은 어떤 것으로 나타날까? 북미관계를 전망할 때 북조선의 사정과 미국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리는 그림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미국의 새 정부가 될 오바마 행정부는 적어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지북파 인물들을 많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에서 나타난 불필요한 갈등관계는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새 정부는 이러저러한 요구도 내 세울 수 있겠으나 북조선이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국으로 그리고 핵 억지력(또는 핵보유국)의 위치를 차지한 조건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탕에서 양자교섭이 클린턴 정부 말년의 수준에서 출발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북조선은 이미 <적성국 무역법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이어서 지난 10월11일 《테로지원국》명단에서 삭제된 조건에서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라 6자회담과 북미 양자협상이 함께 순항 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아직까지 일본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 북조선이 일본의 6자회담 참가국으로서의 자격미달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어 이 문제는 머지 않아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6자회담에서 자기 위상을 잃는다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추락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리고 6자회담 타결과 북미관계가 정상화 되었을 때 당면하게 될 일본의 입장은 스스로 영향력을 잃고 만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유럽이나 오스트랄리아 같은 나라들이 일본의 6자회담 약속 불이행에 대한 몫을 지원하겠다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는 형편이기에 일본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6자회담 참가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조건이 시간적인 문제는 있겠으나 점차적으로 성숙되어 간다. 북과 미국이 한반도비핵화 문제를 양자합의로 해결하고 북미평화협정, 북미정상화 관계 즉 북미수교 수순으로 이어지는 한편 이것을 6자회담 유관국들이 보장하는 형식으로 그 동안에 얽히고 섥혀 있던 문제들이 풀린다. 이것이 향후 미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 결과로 나타날 그림이라고 예상한다.(끝)


*필자의 이메일 연락처: joungwyai2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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