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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94살 안중실 여사, 통일인사들에게 건강관리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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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6-02-16 13:52 조회3,5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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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재미통일인사 고 안이현 선생의 사모님, 안중실 여사는 94세가 된 고령의 나이임에도 주위 사람들은 "젊은이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런 나이에 어떻게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이 무척 알고 싶었다.

<##IMAGE##> 그는 15일 민족통신 기자의 방문을 맞으며 무척 기뻐했다. 2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령의 노인들이 거처하는 양로원에서 생활하는 안 여사는 지난 1월17일 만으로 93세(1913년 생)가 되는 생일을 지냈지만 기억력, 의사표시, 걸음걸이 등 모든 언행에서 60대 사람들 보다 더 젊게 보인다.

안 여사는 통일운동 인사들에게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은 보통사람들 보다 더 건강을 잘 관리해야 된다"고 말한다. 정신 건강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건강도 똑같이 중요함을 강조해 준다. 그는 약사출신의 인테리였지만 그의 건강과 생활력에서 보통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은 60세에 접어 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회고한다.

<##IMAGE##> 운전면허를 받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6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건강관리도 60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 요가에 대해 강습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매일 손목, 발목, 허리, 고개 등 사람의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돌리고 움직이는 운동, 그리고 걷기 운동을 하루도 걸르지 않고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발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60살때에는 사람의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을 좌우로 돌리는 운동을 매일 60번씩 했고 61살에는 61번, 그리고 지금에는 94살이니깐 94번 돌리는 운동을 지속해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안 여사는 좌정하고 앉아서 앞을 향해 가슴을 땅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유연한 몸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물구나무 서기, 허리 돌리기, 목돌리기, 손목돌리기, 발목 돌리기 등을 상시적으로 하며 체력을 단련하여 왔다.

<##IMAGE##> 그는 "내가 운전면허를 딴 것이 66살이었는데 운전면허 심사직원이 "이런 아주머니 첨 봤다"고 하며 가끔 그 직원이 나를 불러 운전면허 시험장소에 가면 "이 아주머지 하는 것 좀 보라"며 나를 교육용으로 부탁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육체적인 훈련을 연마한 덕분에 안 여사는 언제나 젊은이 취급 받기도 한다. 누가 봐도 94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포 경영주가 운영하는 이 양로원에는 60대, 70대, 80대 동포 어르신네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인데 거의가 안 여사 보도 연하의 거주자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치매를 비롯하여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머무르고 있다.

<##IMAGE##> 그는 "나 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인데도 자기 방도 찾아가지 못하고 남의 침대에 들어가 떪 경우도 있고 금새 보고도 "누구 시드라"하며 치매에 걸린 노인네들을 보면 이해가 안간다"고 지적한다.

성격도 깔끔하다. 그는 화분에 담긴 꽃들도 매일 가꾸며 정서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카랑 카랑하며 40~50대의 중년 여성의 목소리 처럼 들린다. 복장도 멋쟁이다. 그의 거실에 걸려있는 모자들도 7~8개가 된다. 통일운동 행사가 있을 때 늘 멋쟁이 모자를 쓰고 참가한다. 멀리서 보아도 안 여사라는 걸 쉽게 알수있다.

그의 생활철학에 대해 한마디 물어 보았다. 나는 다른 능력이 없다고 겸손해 하면서 "내 인생은 그저 3가지 정도에서 남을 도와 온 것 뿐"이라고 전재하며 "몸으로 돕는다. 머리로 돕는다. 경제적으로 돕는다. 이것 3가지가 나의 생활 전부였다"고 돌이켜 본다.

<##IMAGE##> 몸으로 돕는다는 것은 봉사하기를 좋아했다는 뜻이고, 머리로 돕는다는 것은 친구나 주면 사람들이 고민하고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며 말동무도 해 주고 상담도 해 주기를 좋아했고, 경제적으로 살만한 집안에서 자라났고 결혼후에도 내가 가진 범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의 물질적 도움을 주어 온것이 전부였다"고 지난 발자취를 더듬어 준다.

"도우면 도우는 것으로 끝낸다."는 것이 그의 생활철학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돕는 다는 것을 대가로 생각하기도 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 안 여사는 "남을 돕는 것은 대가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걸 깨닳았다."고 귀띔해 준다.

안 여사도 그런 분이지만 돌아가신 안이현 선생도 비슷한 생활철학을 가진 분으로 주위 사람들은 말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족들은 2년 전 안이현 선생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을 치를 때, "조의금을 일체 사양합니다"라고 공지해 참석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IMAGE##> 안 중실 여사, 그는 또 남편을 무척 사랑하는 아내로 알려져 있다. 안이현 선생이 먼저 세상을 하직한 것을 두고 그는 "먼저 가는 것이 축복이야"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남편이 먼저 갔기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독하다는 말로 들렸다. 부부사이가 끈적하다는 것을 둔 말이다. 그래서 먼저 가는 것이 축복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는 거실의 출입문에 안이현 선생 생전의 모습을 붙여 놓고 있다. 별세한지 2주기가 되어서인지 안 이현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층 더 많애 했다. 2004년 1월18일 안이현 선생이 세상을 떠 난후의 부인의 표정은 늘 쓸쓸하게 보였다.

기자는 이날 그의 쓸쓸한 마음을 다소라도 위로하기 위해 최근에 로스엔젤레스 근교로 이사 온 선우학원 박사 부부 댁으로 안내했다. 90대의 친구를 만나서인지 두 분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마치도 소꼽장난하던 죽마지우처럼 다정다감했다. 선우학원 박사의 부인 소니아 선우역사도 무척 기뻐하는 표정이다. 한분은 미국서 태어 난 2세인 90살 할머니이고, 또 한분은 90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 1세 할머니였지만 두사람은 언어소통의 장애가 있긴 하였지만 두 분의 마음과 마음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모습을 역력히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재미통일운동 원로이며 지도자인 선우학원 박사와 돌아가신 안이현 선생과 같은 분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훌륭한 부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하구나."라고 읖조리면서 이들 원로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안중실 여사 안부 전화연락처: 213-737-6431
*소니아 선우 여사 안부연락처: 323-267-9116

<##IMAGE##>

*고 안이현 선생 생애-여기를 짤각하세요
*고 안이현 선생 장례식 보도자료-여기를 짤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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