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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윤 광주 민노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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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1-01 00:00 조회1,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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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10일.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목소리는 전국 주요 도시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이 6월 항쟁 기간동안 거리로 뛰쳐나온 백 오 십 만 명의 시민들은 뿌연 최루탄 연기속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62391.jpg그때 흘린 피와 땀이 토대가 되어 운동권 변호사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시대가 왔다. 거대한 권력이 민중들의 하나된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을 본 진보세력들은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본격적으로 꿈꾸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의 조직적 결집은 6전시대라고 불리던 90년대 초반 전노협, 전국연합, 전농, 전교조, 전빈련, 전대협시대를 거쳐 민주노총과 한총련, 전국연합 등으로 점점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1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지나 2000년 민중세력의 집권을 위해 진보진영이 결집하여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0년 창당이후 세 번의 선거를 치르는 과정동안 대중정당으로서 지지기반을 탄탄히 닦아온 민주노동당에게 2004년 총선은 원내로 진출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중의 힘을 온 몸으로 느낀 6월 항쟁

10년내에 노동자출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87년 6월. 서울 중심가를 가득 메운 넥타이부대들이 있었듯이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도 매일 저녁 도청 앞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오후 7시. 퇴근을 한 노동자들과 회사원들이 도청 앞에 모여들면 도청 앞 YMCA 건물 옥상위에서 누군가 짧은 정치연설을 하고 구호를 외친 뒤 담을 넘어 사라졌다. 시위대들은 구호를 외치며 금남로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고 다음 사거리인 서현교회 주변에 다시 무리짓기 시작했다. 그러면 또다시 서현교회 옥상에 나타난 그 사람은 정치연설을 하고 경찰이 나타나기 전 담을 타고 사라졌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대여섯차례 하다보면 새벽 서너시가 훌쩍 넘는다.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 비로소 그 날의 시위는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시위는 같은 양상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매일 저녁 시위대를 따라 정치연설을 하고 선동을 했던 사람이 바로 현 민주노동당 광주서구지구당의 오병윤 위원장이다.

"6월 항쟁은 정말 잊을 수가 없죠. ‘아! 우리 대중의 힘이 이런 거구나’ 대중의 역동성이 무엇인지, 대중의 힘이 무엇인지를 이론을 넘어서 실천적으로 믿게 된 계기였습니다."

당시 노동운동을 하고 있던 오 위원장은 6월 항쟁 기간동안 선동대장이라는 직함을 맡게 된다. 시위대열이 모여있는 곳은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 정치연설을 하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대중들은 끊임없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는데 우리도 쉴 수는 없었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때까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가서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 지 이야기하고 힘을 모아 싸우자는 이야기를 했죠."

항쟁 기간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유인물을 만들고 정치연설을 하던 그는 항쟁이 끝나고 수배조치를 당했다.

이 6월 항쟁은 그에게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폭발적인 사업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 안에서 알곡을 남기듯 사람을 차근차근 조직하지 않으면 우리 운동의 발전은 없다는 깨우침이 있었죠."

6월 항쟁이후 10여년간의 민주화운동 역사와 함께 해온 오 위원장은 민중 중심의 정치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역민과 함께 마음을 나눠온 15년

57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오 위원장은 광주지역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오롯이 함께 해왔다. 오 위원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사정으로 진학을 하지 못한 채 공장 생활을 하면서 민중들의 현실을 온 몸으로 느꼈다.

공장생활을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한 오 위원장은 교사의 꿈을 안고 전남대 국어교욱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가 대학을 입학한 83년도는 전두환 군부 독재하로 학내에 경찰이 상주하던 시절이었다. 동료가 바로 눈앞에서 사복경찰에게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되고 85년 최초의 직선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당선과 함께 수배생활을 하던 오위원장은 그해 9월 구속, 이듬해 출소하자마자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도중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6월 항쟁을 겪게 되었다.

6월 항쟁이후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집회에서 그는 열정적인 사회자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였고, 수많은 대책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왔다.

유재을 열사 사인진상규명 대책위, 94년 UR반대 집행위원장, 매향리 대책위, 소파개정범국민대책위, 전민특위 남측본부,,,,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대책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아온 오 위원장. 80년대와 90년대 격변하는 시대상황으로 인해 대책위는 시시때때로 만들어졌다.
각기 다른 처지의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을 투쟁의 두리에 묶어세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오위원장은 86년의 폭발적인 힘을 기억하며 열정적으로 일해왔다.

"무엇보다도 정말 대중과 함께 살아야되고 대중과 함께 진지하게 우리 마음을 전달해서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감동을 나눠갖는 것,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 변화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가 진보적인 가치로 변해가는 거겠지요"

스스로를 "혼자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오 위원장은 "주변에서 힘을 합쳐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을 지켜온 힘의 원천을 주변사람들의 공으로 돌린다.

지난 15여년동안 가장 힘들었던 기억도 함께 하던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했을 때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광주전남연합의장직과 함께 지구당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오 위원장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을 만큼 열정적이다.

"아무리 바빠도 해야될 일이잖아요. 몸을 쪼개고 쪼개서 해야죠."

열정적인 오위원장의 모습은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길에 파병반대 거리 실천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만났다. 광주시지부는 지구당별로 돌아가며 거리 실천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북구 지구당 실천의 날이다.

오 위원장은 "그간 지구당 사무실 개소식과 후원회 행사 준비 때문에 파병반대 실천을 많이 못해서 미안했다"며 "잠깐 실천을 하다 가자"고 기자를 잡아끌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붙잡고 서명을 유도하고 뺏지를 일일이 달아주던 오 위원장.

너무 열심히 실천에 전념하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 이만 가야겠다는 인사를 하자 "잠깐만 더하고 갑시다.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는데 쫌만 더합시다. 괜찮죠?" 하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유인물을 건넨다.

열정적이라는 기자의 말에 오 위원장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는 답을 들려준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희망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희망을 나눠 갖는 것,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고 보다 나은 세계로 우리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방향입니다."

그 희망을 심기위해서 오위원장은 성실하고 섬세하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에 대한 열린 자세와 진지함. 이 두 가지가 사람 사업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소주 한 병 사들고 당원들 집 대문을 두드리는 것이 낙이라는 오위원장은 대부분이 운동후배격인 지구당 당원들에게 큰 형과 같은 존재다.

"대학 다닐 때는 집회에서 사회 보는 모습만 봤으니까 약간 멀게 느껴졌죠. 그런데 당에 와서 가까이서 뵈니까 참 편하고 정이 많은 분이세요. 이해심도 많고. 힘들어하는 당원이 있으면 아무리 늦은 저녁이라도 꼭 찾아가서 술잔을 기울이는 분이시죠."

파병반대 실천현장에서 만난 지구당 당원이 전하는 오병윤 위원장의 모습이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희망의 정치를 심는다

오월항쟁으로 빛나는 민주화의 도시, 빛고을 광주. 민중항쟁을 만들어 낸 도시인만큼 광주시민들의 정치의식은 매우 높다. 지난 대선시기 광주사람들의 "한나라당은 절대 안된다"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노무현 후보에게 97%라는 높은 득표율을 안겨주었다.

민주화운동의 성지이자 반미운동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광주지역이지만 아직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지지는 약한 것이 사실이다. 오랜 독재시절동안 소외당해왔던 광주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비춰지지 않았던 탓일까. 그러나 오병윤 위원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15%의 지지율은 희망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광주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현실화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당이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사람들이 민주대연합을 통해 당운동을 펼쳐가야죠."

오병윤 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진 지역은 광주 서구지역. 현재 통합신당의 정동채 의원의 지역구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정동채 의원에 맞서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 오병윤 위원장은 당선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당이 지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광주지역은 당 출발이 늦기도 하고 아직 지역사업을 펼칠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선이냐 아니냐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희망을 보여줬다면 이번 선거기간에는 현실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오병윤 위원장이 선거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당 분회체계의 안착화다. 당이 지역 대중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 기본 조직인 분회가 안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과학생회가 안되는데 총학생회가 잘 될 리가 없듯이 당도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의 깃발만 들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지역민과 함께 하는 자기 사업이 있어야 되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지율도 두 자리수를 넘게 되는 것이고 당선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 위원장은 이런 일반적인 것을 외면하고 상대후보나 지역의 특수성을 따지며 당선을 논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며 당의 일상활동 강화를 강하게 피력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에게 광주 서구 지역은 개혁성향의 정동채 의원이라는 강력한 상대외에도 객관적인 어려움이 많다. 지역 자체가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부유층과 공무원의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높지 않은 지역인데다 지역내에 대학이나 청년회가 하나도 없어 선거운동을 도와줄 역량도 없다.

그러나 출범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을 갓 넘기고 있는 서구지구당 당원들의 사기는 매우 높다.

"표를 얻는 것은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을 얻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온 정열을 다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면 당이 지역내에서 현실적인 대안세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당선도 내다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당선 가능하다고 하면 너무 정치적인 발언이겠죠. 그렇다고 당선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우리의 잠재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현재 광주지역에서 서구지역에 걸고 있는 기대도 높고 현 당원들의 사기라면 해 볼 만합니다."

서구 지구당 당원들은 매일같이 아파트 입구나 근린공원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파병반대 실천과 지역현안인 "경륜장 설치"문제, "안기부와 보안사 터 이전"문제를 가지고 주민들은 만나고 있으며 지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치라고 하면 인상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 정치가 우리 국민들을 많이 힘들게 해왔고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우리가 먼저 해야할 것은 그 아픔을 함께 하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존 정당이 나쁘니까 우리를 지지해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 국민들이 정치에 불신을 갖게 되었는지 마음을 나누고 지혜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대중이 정치의 주인으로 서는 것

97%라는 높은 지지율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광주지역 민심은 현재 노무현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통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광주시민들은 대북송금특검을 "햇볕정책과 디제이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통일정책과 남북문제에 대해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정부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기성정치인들은 싹 "물갈이"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런 민심이 현역의원의 신당행을 결정짓게 한 요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광주의 민심이 "열린우리당"쪽으로 기운 것은 아니다.

"달리는 정치평론가"라고 지칭되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은 "한나라당은 절대 안돼"지만 현 정부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김영삼이 팔아먹은 솥단지를 김대중 대통령이 솥 사서 쌀까지 담아놓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하라는 밥은 안하고 풀을 쒀놨다"며 현정부에 대한 강한 반발을 표시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이런 정치구도를 바꾸자며 민주노동당으로 지지를 선회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한 요구가 오병윤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는 더욱 힘을 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희망은 대중이 정치의 주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오직 대중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헌신적인 모습으로 다가간다면 우리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있겠죠. 이제 판단은 시민의 몫입니다."

민주노동당 깃발을 들고 주민들속으로 들어가는 오병윤 위원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 가장 훌륭한 조직운동가입니다. 가장 훌륭한 조직운동가가 훌륭한 정치인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정치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대중의 이해요구를 그 눈높이에서 마음을 나눠갖고 해결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중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죠"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이 아직은 쑥스럽다지만 "그간 해왔던 일을 정당운동영역으로 넓힌 것"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민주화운동 일선에서 다져진 굳은 신념이 강하게 전해졌다.


2003년10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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