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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적 남 프로선수 량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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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4-10 00:00 조회1,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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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국적 남한 프로축구선수 량규사

“증조 할아버지가 태어난 땅이다. 열심히 해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국적을 갖고 한국 프로팀(울산 현대)에 입단한 재일동포 4세 량규사(23)가 지난달말 증조 할아버지의 땅 남한에 왔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북한축구대표팀의 골잡이로 선전한 그는 북한축구 차세대 스트라이커. 1m80, 75㎏의 날렵한 몸매가 인상적인 량규사는 스피드와 힘, 골 결정력이 강점이다. 일본 총련계의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해 지난해에는 일본 프로무대까지 진출했다. 아직 프로 경험이 많지 않지만, 다듬어질 경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울산 김정남 감독의 평가다.

지난달 28일 입국해 이틀간 울산과 훈련을 한 량규사를 31일 울산의 원정경기 장소인 전주의 코아호텔에서 만났다. 량규사는 4월 2일 북한 대표팀 전지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떠났다.


신문선 북한 국적 선수로는 최초로 남한에 왔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량규사 가능한 일찍 오고 싶었지만 국적문제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남한방문증명서와 여행자 출입증을 받는 데만 몇개월이 걸렸다.

신 가족은 언제부터 일본에서 살았는가?

량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다. 고향이 경남 하동이셨는데, 일제시대때 일자리를 찾아 일본에 왔다. 할아버지때부터 오카야마현에 자리를 잡았다.

신 동포4세인데도 한국말을 잊지 않고 있는데?

량 유창하지는 않지만 총련계 학교를 다녀 한국말을 배울 수 있었다.

신 언제 축구를 처음 시작했는가?

량bm 초등학교 3학년때다. 둘째 형이 축구를 했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그 뒤 고교까지 총련계 학교에서 축구를 했다.

신 북한에는 언제 처음 가보았는가?

량 6학년때 우수선수로 뽑혀 평양 초등학교 대표와 경기를 했다.

신 축구가 좋다면 일본인 학교로 진학할 수도 있지 않은가?

량 총련계 중·고교에 존경할 만한 지도원(감독)이 있었다. 중학교 때의 리웅희 지도원과 고교때의 고륭지 지도원에 항상 감사한다.

신 존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인가?

량 조선사람으로서 언제나 조선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것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에 그런 말들은 내게 많은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신 조선사람이란 무엇인가?

량 도덕적인 면에서나, 기질면에서나 조선사람은 강하다는 것이다.

신 학교시절 훈련은 많이 했는가?

량 학교에서는 정규수업을 받아야 해 매일 2~3시간 정도 훈련했다. 고3때 일본고교대회가 겨울에 있었는데 히로시마 지역 예선에서 16강에 오른 게 기억에 남는다.

신 북한 대표 선수로는 어떻게 뽑히게 됐는가?

량 재일 조선축구단 선수로 지난해 평양에서 북한 대표선수들과 섞여서 훈련했는데, 그때 북한 대표로 뽑혔다.

신 국가대표는 영광이다. 기분이 어떻했는가?

량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그러나 내가 대표선수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신 누가 가장 기뻐했는가?

량 부모님도 좋아했지만 할아버지가 가장 기뻐했다. 할아버지(72)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조선 대표가 됐다는 것을 기뻐했다.

신 울산에서는 얼마를 받는가?

량 계약금이 7500만원이고 연봉은 3600만원이다. 전에 조선축구단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이다. 아버지가 파친코 회사에서 일하는 데 도와줄 생각이다.

신 지난해 베르디 가와사키에 있을 때 김현석과 김도근이 있었다. 도움이 됐는가?

량 프로생활 초기인 만큼 두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 총련계 선수였지만 일본 프로무대에서 한국의 유명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인가?

량 총련계라고 따로 나눌 필요는 없다. 같은 민족으로 활약하면 기쁘고 뿌듯하다. 황선홍을 좋아한다.

신 북한 축구를 어떻게 보는가?

량 경험이 부족하지만 기술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신 국적은 북한이고, 남한은 증조 할아버지의 고향이다. 조국이란 무엇인가?

량 나는 북한에 가깝지만 하나의 조선이 내 조국이다.

량규사는 말을 무척 아꼈다.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지만, 그의 처지를 이해할 만하다. 북한 국적에, 게다가 북한 국가대표 선수 입장에서 남한의 프로무대에서 뛰겠다고 나선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남한 선수들을 볼 때 형제애를 느끼고, 민단의 재일동포 여성과 연애를 하는 그에게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는 없었다. “가장 마음 편한 곳은 일본”이라고 말하는 그의 작은 소망은 “축구로서 하나된 조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전주/정리·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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