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수강생들 강의실 밖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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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6-27 00:00 조회1,5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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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여성학 주제 세미나’ 수강생들 강의실 밖으로 출동
궁금증 풀러 거리로 나섰다
아들없는 장례식 왜 사위가 상주?
결혼식때 왜 신랑이 먼저 입장?
길거리 뒤지고 여성부 찾아가고 국방부 닦달하고…
일상의 차별 찾아 강의실 밖 수업 흥미 진진
아들 없는 집에선 장례식 때 왜 사위가 상주를 할까 여성들은 왜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입다물 수밖에 없을까 결혼식에선 왜 신랑이 먼저 입장할까 화폐엔 왜 남성들의 얼굴만 있을까 왜 여대 화장실에조차 생리대 자판기가 없을까
강의실 안에서 떠올린 물음표를 강의실 밖으로 끄집어 낸 여성들이 있다.
동덕여대 김경애 교수(여성학)와 그가 올해 1학기에 진행한 ‘여성학 주제 세미나’ 과목의 수강생 12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 가운데 ‘내가 바꾸고 싶은 것’ 4가지를 정해 관련 부처에 시정을 요구하거나 개혁모임을 조직하는 등 작은 실천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정부세종로청사 남녀차별신고센터. 김 교수와 박세라(국어국문학과4)씨 등이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한 시정신청서를 제출했다.
“여성학 참여수업을 통해 군 복무중인 남성이 상을 당했을 때 관례적으로 친가와 외가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친할아버지·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주로 위로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할머니 상을 당했을 땐 대개 청원휴가를 주는데, 청원휴가는 군인이 쓸 수 있는 휴가일수에서 공제하거든요.”
박씨 등은 국방부 규정 자체가 차별적 조항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관례’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여성(어머니)과 그 부모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도 안 간 여성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들은 길거리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 185명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했다. 실제로 군복무 중에 외조부모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65명 가운데 75%가 청원휴가를 갔으며, 친조부모상의 경우 이 비율이 37%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휴가일수도 외조부모상의 경우가 대체로 짧았다. 이들은 조사결과와 군대의 의식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국방부에 보냈고, 지난 17일 국방부에서 “더 공정한 휴가조처를 통해 모계차별 등의 논란이 재론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공식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 시정요구를 넘어 이들은 실질적 ‘운동’도 조직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여성인물을 재해석하고, 그 가운데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될 만한 인물을 화폐에 새겨넣자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일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를 구성했다.
학생들은 ‘강의실 밖 수업’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안에서의 성추행 경험을 조사한 팀은 학교 곳곳을 발로 뛰며 403명을 대상으로 대면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전문가들한테서 대처방법을 익혀 이를 소책자로 만드느라 바쁘다. 장례와 혼례에서 남녀불평등을 조사한 팀은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샅샅이 뒤지느라 애를 먹었다. 군대 휴가 조사팀은 국방부 민원실에서 “잘 모르겠다” “담당자가 없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도 넓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말했다. 한아름(영어과4)씨는 “피부에 와 닿는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박세라씨는 “보통 여성운동은 전투적·공격적 경향이 강하다”며 “우리의 운동은 큰 명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포지티브한 방식의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토론과 실습에 앞서 한 달 동안 한국여성운동사를 강의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마다 여성학 강의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당연한 건 아니죠. 많은 여성들이 차별을 없애고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선배들의 희생 덕에 우리가 누리는 것만큼 우리도 뒷세대한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자고 학생들과 함께 다짐했죠.”
그는 “스스로 일상의 차별을 찾아내고 생활 속에서 바꿔내는 것 또한 여성운동”이라며 “여성문제는 나만 겪는 게 아니라 여성 모두 겪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함께 변화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출처; 한겨레 6-23-03]
궁금증 풀러 거리로 나섰다
아들없는 장례식 왜 사위가 상주?
결혼식때 왜 신랑이 먼저 입장?
길거리 뒤지고 여성부 찾아가고 국방부 닦달하고…
일상의 차별 찾아 강의실 밖 수업 흥미 진진
아들 없는 집에선 장례식 때 왜 사위가 상주를 할까 여성들은 왜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입다물 수밖에 없을까 결혼식에선 왜 신랑이 먼저 입장할까 화폐엔 왜 남성들의 얼굴만 있을까 왜 여대 화장실에조차 생리대 자판기가 없을까
강의실 안에서 떠올린 물음표를 강의실 밖으로 끄집어 낸 여성들이 있다.

지난달 21일 정부세종로청사 남녀차별신고센터. 김 교수와 박세라(국어국문학과4)씨 등이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한 시정신청서를 제출했다.
“여성학 참여수업을 통해 군 복무중인 남성이 상을 당했을 때 관례적으로 친가와 외가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친할아버지·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주로 위로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할머니 상을 당했을 땐 대개 청원휴가를 주는데, 청원휴가는 군인이 쓸 수 있는 휴가일수에서 공제하거든요.”
박씨 등은 국방부 규정 자체가 차별적 조항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관례’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여성(어머니)과 그 부모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도 안 간 여성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들은 길거리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 185명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했다. 실제로 군복무 중에 외조부모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65명 가운데 75%가 청원휴가를 갔으며, 친조부모상의 경우 이 비율이 37%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휴가일수도 외조부모상의 경우가 대체로 짧았다. 이들은 조사결과와 군대의 의식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국방부에 보냈고, 지난 17일 국방부에서 “더 공정한 휴가조처를 통해 모계차별 등의 논란이 재론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공식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 시정요구를 넘어 이들은 실질적 ‘운동’도 조직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여성인물을 재해석하고, 그 가운데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될 만한 인물을 화폐에 새겨넣자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일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를 구성했다.
학생들은 ‘강의실 밖 수업’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안에서의 성추행 경험을 조사한 팀은 학교 곳곳을 발로 뛰며 403명을 대상으로 대면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전문가들한테서 대처방법을 익혀 이를 소책자로 만드느라 바쁘다. 장례와 혼례에서 남녀불평등을 조사한 팀은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샅샅이 뒤지느라 애를 먹었다. 군대 휴가 조사팀은 국방부 민원실에서 “잘 모르겠다” “담당자가 없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도 넓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말했다. 한아름(영어과4)씨는 “피부에 와 닿는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박세라씨는 “보통 여성운동은 전투적·공격적 경향이 강하다”며 “우리의 운동은 큰 명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포지티브한 방식의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토론과 실습에 앞서 한 달 동안 한국여성운동사를 강의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마다 여성학 강의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당연한 건 아니죠. 많은 여성들이 차별을 없애고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선배들의 희생 덕에 우리가 누리는 것만큼 우리도 뒷세대한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자고 학생들과 함께 다짐했죠.”
그는 “스스로 일상의 차별을 찾아내고 생활 속에서 바꿔내는 것 또한 여성운동”이라며 “여성문제는 나만 겪는 게 아니라 여성 모두 겪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함께 변화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출처; 한겨레 6-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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