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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13년 옥고를 회고하는 강종헌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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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09-29 00:00 조회1,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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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민주.통일인사들의 귀국을 둘러싸고 나오는 사연들은 모두가 기막힌 역사에 연루되어 있다. 한국에 유학생으로 들어갔다가 간첩조작사건으로 13년 옥고를 치르고 일본에 돌아왔다가 14만에 귀국하게 된 강종헌씨. 통일뉴스가 19일 특별히 보도했다. 이 부분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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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48_29.jpg방문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방문한 일본 교토 출신의 강종헌씨는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75년, 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돼 13년간 옥고를 치른 후 89년 다시 일본으로 추방됐었다.

민가협 어머니가 준 환영꽃다발을 든 채 연단에 오른 그는 "고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희망에 며칠밤을 못잤다"며 귀국소감를 짧게 밝힌뒤 이어 군사독재시절 자신의 겪었던 고초를 담담히 술회했다.

"70년 전태일 열사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의미있는 일인가 고민하던 끝에 조국에 왔다"며 "71년부터 서울대 의대에 다니면서 학생들과 함께 반독재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같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75년 고국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돼 1심부터 3심까지 전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13년간 복역했다.

그는 "당시 검사의 말이 똑똑히 기억난다"며 "조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남과 북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검사는 `국시가 반공인 나라에서 피고는 생존할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며 당시의 엄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항상 일본에서 "여기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먹고 생활했다"고 밝힌 그는 "진정으로 원하면 그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통해 알게됐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는 현재 교토에서 `한국문제연구소` 대표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통련 조통위 활동도 하면서 조국의 민주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임종인 집행위원장은 "70-80년대 초까지 서승, 서준식 형제의 경우처럼 일본에서 유학을 와 소위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고를 치룬 유학생이 100여명에 이른다"며 "특히 유학생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이적단체 규정으로 빨갱이로 몰려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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