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ff00ff>[대담]유현상 한양대 공대회장</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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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0-02 00:00 조회1,5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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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한양대 공대를 찾아간 날은 가을장마 후 모처럼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오후였다. 햇살이 따가워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던 무더운 오후 학생들이 북적대는 공대에서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공대 회장이 학우들께 드리는 글’(‘학우들에게 드리는 글’을 쓰는게 한양대 공대 학생회장의 취미이자 특기라고 주변 사람들이 전했다)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라크 파병 문제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며 9월27일에 있을 국제반전행동의 날에 참여하자고 호소하는 글이었다.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공대 학생회실?
공대 유현상(건축학과 99) 회장을 만나러 학생회실을 찾았을 때 기자는 놀랬다. 분명히 일꾼도 한명밖에 안되고 회장과 일꾼 둘이서만 사업을 진행하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학생회실이 북적대는 것이 아닌가. 컴퓨터 작업을 하는 학생들, 소파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 등 학생회실은 이리저리 일을 보러 다니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이유인즉슨, 작년부터 시작한 학생회실 개방으로 인한 것. 유현상 회장은 “학생회실을 개방하고 나서 연인들이 찾아와 소파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보게 되고 와서 간식을 먹는 사람들, TV를 보는 사람들,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어요. 전에는 제 자리에 앉아서 시험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당황한 일도 있었는걸요.”
학우들에게 공간을 넘겨(?)준 후 학생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졌다며 만족하는 표정이다. ‘어? 이 사람 좀 봐라’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의 만남이 즐겁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긴 했지만 이 사람의 얼굴에 감도는 즐거움은 뭔가 다른 것 같다.
공대 회장과 집행부 한명이 전부, 사업을 골라서 할 수는 없다!
한양대 전체 학생수는 1만 5천여 명, 그 중 공대 학생은 6천여 명. 작은 대학의 총 학생수에 맞먹는 인원수다. 그러나 총학생회 규모로 사업을 진행해야 할 만큼 손이 많이 필요한 공대 학생회에 확보된 일꾼은 한명.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둔 일꾼들로 인해 회장이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돌보며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일꾼이 없어서 사업하기 힘들겠다는 뻔한 질문을 해봤다. “물론 사람이 없으니까 제한된 시간내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몫도 많고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쉴 수가 없습니다.”
일꾼이 없어도 학생들이 요구한 사업은 안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그의 원칙이 사업을 하는데 그대로 나타났다. 일꾼수가 적다고 투쟁만 할 수도 대중사업만 할 수도 없고, 학생들이 원한다고 복지사업만 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은 어떠한 사업이라도 학생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서 해야 한다는데 이르렀고 그때부터 그의 통큰 사업은 시작됐다.
정면 돌파로 학생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낸다!
새터부터 6.13 투쟁, 공대 대동제, 8.15 대회까지 공대학생회가 했던 사업들은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것도 높이 평가받는 지점이지만 자발적 참여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생각이 다른 학생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한양대 상황상 간담회 한번을 해도 지리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고 자신있게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거란 기자의 생각이 처참히 깨져나갔다. “물론 생각이 다른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만난다고 해서 주저할 수는 없잖아요. 가령 한총련 그 자체를 싫어해서 모든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학생들에게 ‘그게 아니구요’하면서 애써 변명하려고 하면 더욱 힘들어지거든요. 정면으로 돌파하고 생각을 바꿔주는 것이 필요했죠.” 당당하게 밝히는 그의 사업지론이다. 이런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져서일까? 공대 학생회의 사업은 각 과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성공했고 학생들과 학생회의 거리감은 좁혀져 갔다.
유현상 회장의 욕심은 남다르다. 그가 집행국원으로 일했던 ’02년은 그의 모범적인 활동들이 자리잡힌 시기였다면 회장으로 일하는 ’03년은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공대 집행국원으로 일할 때가 학생들의 생활에 밀접히 파고 들어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변화를 주기 위해 뛰는 시기라고 할까. 이것은 그의 간담회 이력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특기인 간담회는 10월에도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다
한달 간담회수 30-40개, 틈만 나면 학생들 속으로!
유현상 회장이 처음 간담회를 시작한 것은 새터를 준비하면서부터.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만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그답게 학생들과의 만남은 잦았다. 준비단 모임부터 시작해 새내기, 공연단 할 것 없이 틈이 날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부터 시작된 간담회는 7개 학부 전체를 만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한달에 30-40개에 이르는 간담회 약속을 모두다 실행에 옮겨 그에 맞는 사업을 진행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6.13 투쟁을 준비할 때 간담회 사업은 더욱 활기차졌다. 새터 사업과 학자투쟁을 거치면서 쌓여진 과 학생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6.13 투쟁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간담회는 지속되어 갔고 6.13대회 6백명 참가라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제가 1분을 쉬면 다른 학과의 하루가 그냥 넘어간다는 생각이 드니까 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조급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공대 학생회가 한양대 운동에서 해야할 몫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24시간밖에 안되는 하루가 아쉽기만한 유현상 회장의 말이다.
대중들과 함께 웃을 때가 즐겁다!
유현상 회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워낙 재미난 성격이기도 하지만 항상 웃고 활기차게 일한다니 그의 인기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뛰는 그의 모습이 1, 2년 있었던 일은 아닐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저는 투쟁에 나가서도 남들이 지치는 꼴을 못봐요. 같이 웃고 즐겁게 하는게 좋거든요. 투쟁에 나갈 때마다 제가 하도 좋아하니까 하루는 제 동기가 메일을 보내서 ‘넌 뭐가 그렇게 즐겁냐?’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즐거워야 학우들도 즐겁지’라며 답장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즐거워야 학우도 즐겁게 만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재밌게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심한다. 기념품 하나를 제작해도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서 농활 기념품으로 속칭 몸빼바지를 제작했다. 항상 제작하던 물품이 아닌 기상천외한 기념품에 참가자들은 놀랐겠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기념품이 아닐 수 없다.
MSN 친구 등록 149명, 밤마다 이어지는 대화
유현상 회장은 밤마다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그가 특별히 게임을 즐겨한다던가 인터넷을 하는게 아니다. 그를 컴퓨터에 붙들어 놓는 것은 다름아닌 MSN 메신저. 그의 유일한 취미가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게 그가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또다른 수단이기 때문.
유현상 회장은 학기초부터 간담회와 강의실 방문을 할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곳에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 MSN 주소를 남겨 놓았다. 컴퓨터를 즐겨하지 않아 MSN 계정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는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주소를 남겨놓고 왔더니 149명에 이르렀다. 150명이 한계 인원이라고 하는데 149명의 학생들로 친구 등록을 마친 상태고 밤마다 이어지는 대화에 밤새는 줄 모르는 유현상 회장이다.
“제가 술도 잘 못마시고 할 줄 아는 오락거리가 없는데 MSN을 하니까 사람들하고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대화를 나눈 사람들과 술 약속도 잡게 되고 계속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일꾼들에게는 제가 뭔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재밌구요.(웃음)”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고 대화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기자의 생각에 면박을 주는 듯 유현상 회장의 여유있는 웃음이 입가에 퍼진다.
학생 한 명을 만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그의 학생운동 원칙은 무엇일까. 대학에 들어와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가 체험한 학생운동의 원칙은 ‘활동가는 학우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가장 원론적인 것.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그의 말처럼 학생들 속에서 사랑받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일꾼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일꾼들이 모일 때마다 이야기하는 ‘새시대, 새학생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A4 4장짜리 질문이네요”라며 웃음을 보이는 그이지만 오랫동안 고민해도 잘 풀리지 않는 고민이라며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다. “새로운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관념적인 것 같고 우리가 실천으로 정립해야 하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하죠. 글쎄요. 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학우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난 학우 몇 명이 행사에 참가했는가의 여부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학우라도 그 학우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내고 함께 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겠죠.”라고 이야기한다.
일꾼이 적어도 대담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학생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변화를 생각하고 그에 맞게 사업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 한양대 운동에서 공대 학생회가 해야 할 몫이 많다는 그의 짧은 하루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인다. [정유진 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3.9.26]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공대 학생회실?
이유인즉슨, 작년부터 시작한 학생회실 개방으로 인한 것. 유현상 회장은 “학생회실을 개방하고 나서 연인들이 찾아와 소파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보게 되고 와서 간식을 먹는 사람들, TV를 보는 사람들,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어요. 전에는 제 자리에 앉아서 시험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당황한 일도 있었는걸요.”
학우들에게 공간을 넘겨(?)준 후 학생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졌다며 만족하는 표정이다. ‘어? 이 사람 좀 봐라’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의 만남이 즐겁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긴 했지만 이 사람의 얼굴에 감도는 즐거움은 뭔가 다른 것 같다.
공대 회장과 집행부 한명이 전부, 사업을 골라서 할 수는 없다!
한양대 전체 학생수는 1만 5천여 명, 그 중 공대 학생은 6천여 명. 작은 대학의 총 학생수에 맞먹는 인원수다. 그러나 총학생회 규모로 사업을 진행해야 할 만큼 손이 많이 필요한 공대 학생회에 확보된 일꾼은 한명.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둔 일꾼들로 인해 회장이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돌보며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일꾼이 없어서 사업하기 힘들겠다는 뻔한 질문을 해봤다. “물론 사람이 없으니까 제한된 시간내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몫도 많고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쉴 수가 없습니다.”
일꾼이 없어도 학생들이 요구한 사업은 안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그의 원칙이 사업을 하는데 그대로 나타났다. 일꾼수가 적다고 투쟁만 할 수도 대중사업만 할 수도 없고, 학생들이 원한다고 복지사업만 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은 어떠한 사업이라도 학생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서 해야 한다는데 이르렀고 그때부터 그의 통큰 사업은 시작됐다.
정면 돌파로 학생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낸다!
새터부터 6.13 투쟁, 공대 대동제, 8.15 대회까지 공대학생회가 했던 사업들은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것도 높이 평가받는 지점이지만 자발적 참여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생각이 다른 학생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한양대 상황상 간담회 한번을 해도 지리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고 자신있게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거란 기자의 생각이 처참히 깨져나갔다. “물론 생각이 다른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만난다고 해서 주저할 수는 없잖아요. 가령 한총련 그 자체를 싫어해서 모든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학생들에게 ‘그게 아니구요’하면서 애써 변명하려고 하면 더욱 힘들어지거든요. 정면으로 돌파하고 생각을 바꿔주는 것이 필요했죠.” 당당하게 밝히는 그의 사업지론이다. 이런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져서일까? 공대 학생회의 사업은 각 과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성공했고 학생들과 학생회의 거리감은 좁혀져 갔다.
유현상 회장의 욕심은 남다르다. 그가 집행국원으로 일했던 ’02년은 그의 모범적인 활동들이 자리잡힌 시기였다면 회장으로 일하는 ’03년은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공대 집행국원으로 일할 때가 학생들의 생활에 밀접히 파고 들어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변화를 주기 위해 뛰는 시기라고 할까. 이것은 그의 간담회 이력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특기인 간담회는 10월에도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다
한달 간담회수 30-40개, 틈만 나면 학생들 속으로!
유현상 회장이 처음 간담회를 시작한 것은 새터를 준비하면서부터.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만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그답게 학생들과의 만남은 잦았다. 준비단 모임부터 시작해 새내기, 공연단 할 것 없이 틈이 날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부터 시작된 간담회는 7개 학부 전체를 만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한달에 30-40개에 이르는 간담회 약속을 모두다 실행에 옮겨 그에 맞는 사업을 진행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6.13 투쟁을 준비할 때 간담회 사업은 더욱 활기차졌다. 새터 사업과 학자투쟁을 거치면서 쌓여진 과 학생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6.13 투쟁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간담회는 지속되어 갔고 6.13대회 6백명 참가라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제가 1분을 쉬면 다른 학과의 하루가 그냥 넘어간다는 생각이 드니까 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조급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공대 학생회가 한양대 운동에서 해야할 몫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24시간밖에 안되는 하루가 아쉽기만한 유현상 회장의 말이다.
대중들과 함께 웃을 때가 즐겁다!
유현상 회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워낙 재미난 성격이기도 하지만 항상 웃고 활기차게 일한다니 그의 인기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뛰는 그의 모습이 1, 2년 있었던 일은 아닐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저는 투쟁에 나가서도 남들이 지치는 꼴을 못봐요. 같이 웃고 즐겁게 하는게 좋거든요. 투쟁에 나갈 때마다 제가 하도 좋아하니까 하루는 제 동기가 메일을 보내서 ‘넌 뭐가 그렇게 즐겁냐?’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즐거워야 학우들도 즐겁지’라며 답장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즐거워야 학우도 즐겁게 만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재밌게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심한다. 기념품 하나를 제작해도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서 농활 기념품으로 속칭 몸빼바지를 제작했다. 항상 제작하던 물품이 아닌 기상천외한 기념품에 참가자들은 놀랐겠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기념품이 아닐 수 없다.
MSN 친구 등록 149명, 밤마다 이어지는 대화
유현상 회장은 밤마다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그가 특별히 게임을 즐겨한다던가 인터넷을 하는게 아니다. 그를 컴퓨터에 붙들어 놓는 것은 다름아닌 MSN 메신저. 그의 유일한 취미가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게 그가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또다른 수단이기 때문.
유현상 회장은 학기초부터 간담회와 강의실 방문을 할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곳에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 MSN 주소를 남겨 놓았다. 컴퓨터를 즐겨하지 않아 MSN 계정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는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주소를 남겨놓고 왔더니 149명에 이르렀다. 150명이 한계 인원이라고 하는데 149명의 학생들로 친구 등록을 마친 상태고 밤마다 이어지는 대화에 밤새는 줄 모르는 유현상 회장이다.
“제가 술도 잘 못마시고 할 줄 아는 오락거리가 없는데 MSN을 하니까 사람들하고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대화를 나눈 사람들과 술 약속도 잡게 되고 계속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일꾼들에게는 제가 뭔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재밌구요.(웃음)”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고 대화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기자의 생각에 면박을 주는 듯 유현상 회장의 여유있는 웃음이 입가에 퍼진다.
학생 한 명을 만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그의 학생운동 원칙은 무엇일까. 대학에 들어와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가 체험한 학생운동의 원칙은 ‘활동가는 학우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가장 원론적인 것.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그의 말처럼 학생들 속에서 사랑받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일꾼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일꾼들이 모일 때마다 이야기하는 ‘새시대, 새학생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A4 4장짜리 질문이네요”라며 웃음을 보이는 그이지만 오랫동안 고민해도 잘 풀리지 않는 고민이라며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다. “새로운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관념적인 것 같고 우리가 실천으로 정립해야 하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하죠. 글쎄요. 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학우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난 학우 몇 명이 행사에 참가했는가의 여부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학우라도 그 학우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내고 함께 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겠죠.”라고 이야기한다.
일꾼이 적어도 대담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학생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변화를 생각하고 그에 맞게 사업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 한양대 운동에서 공대 학생회가 해야 할 몫이 많다는 그의 짧은 하루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인다. [정유진 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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