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섭 민노당 지구당 위원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3-10-20 00:00 조회1,59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4.15총선기획3] 안동섭 민주노동당 수원 장안지구당 위원장
그의 첫인상은 정치인이라고 하기엔 그저 소탈했다.
검은 양복은커녕 넥타이조차 매지 않은 점퍼 차림으로 약속장소에 나온 안 위원장은 몹시 멋쩍어하면서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하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대학 졸업은 못했습니다.”
“왜요?”
“감옥에서 나와보니 제적되어 있더군요.”
85년도에 한국에서 IMF와 IBRD 회의가 열리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에 주동자로 참가한 안 위원장은 을지로 사거리에서 전경에게 연행되어 구속되었고, 2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 때는 학교 안에까지도 전경들이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가두에서 시위한다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주동자가 뜨면 딱 뜨자마자 전경들, 당시 백골단이었죠. 백골단이 벌떼같이 달려와서 잡아 채가버리니까. 당시 주동자였던 나는 을지로 사거리에서 집회 나서자마자 잡혀갔죠. 엄혹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허인회 등과 함께 삼민투에서 일했었죠. 민주화 운동에서 이념을 지향하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시기였고, 삼민투가 그래서 만들어졌어요. 그땐 학생회가 양성화되지 못해서 (지하) 써클 활동이 활발했어요. 전 학원자주화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고 민중생존권집행위원회 회장으로도 일했죠. 아내도 써클에서 만났어요.”
전두환 독재 시절. 집회 자체를 허가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어쩌다 집회를 하게 되면 학내 도서관 앞에서 하는 수가 많았다. 집회에서 그의 인기는 상당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나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마이크를 잡으면 진심을 전달하려고 늘 노력했죠. 그저 도서관서 나와라 나와라만 하지 않고, 공부보다 전두환 독재에 항거하는 일이 왜 우선인지를 열심히 설명했어요.”
그를 보러 바로 옆 학교, 이화여대 학생들이 쪼르르 몰려오기도 했단다.
“나는 잘 몰라요. 그냥 후문으로 들었을 뿐이지.”
40대 아저씨 같지 않게 몹시 머쓱해하는 안 위원장을 조르고 졸라서 겨우 끄집어 낸 이야기다.
학생운동으로 감옥살이 2년…, 이후 노동 운동에 10년 세월
87년에 감옥에서 나온 안 위원장은 학생운동에서 나와 노동자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노동 운동을 조직하고, 해고되면 해고 싸움하고, 정리되면 또 다른 사업장을 찾아 들어가고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십여 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과거에 했던 학생 운동에 대해 반성할 점이 참 많다는 안동섭 위원장. 민중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기보다 그들을 많이 가르치려고 하고 학우들하고 어떻게 하면 같이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보다는 깃발을 들고 나가는 선도적인 투쟁에만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전대협 시절에 특히 그런 일들이 많았죠.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다들 민중운동을 하겠다고 하지만 학생운동의 틀을 못 벗어나는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런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같이 현장으로 들어가고…. 그 후에는 예전에 같이 운동했던 동지들을 잘 안 만났어요. 친구들이 먼저 만나자고 해도 잘 안 만났죠. 만나게 되면 다시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움직일 수 있겠다 싶어서요.
우리의 선택에 대해 뜻을 굽힌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노동자로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뭐 다른 영역에서 길을 찾거나, 개인적으로 다른 사업을 벌이거나, 이렇게 됐을 가능성도 많죠. 그 과정에서는… (잠시 생각) 어려웠죠, 집사람하고 나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이 많이 그리웠어요. 동지들과 따로 떨어져서 잘 모르는 회사에 들어가서 따로 살아가는 것이었잖아요. 예전 동지들과 안 만나면서 많이 외로웠어요. 예전 집회, 시위 때는 늘 동지들과 함께 했는데…….“
96년 이후에는 민주노총 산하 지역노동조합과 비정규직 사업장에 들어가서 단체 활동을 했다. 노동운동은 어떻게든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노동당 활동과 연결되었고,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당 활동을 시작해 작년에는 장안 지구당 위원장이 되었다.
당 사업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재미있다”고 답했다.
“너무 재밌어요, 당 활동이. 이전에 노동조합 활동할 때는 노동조합 만들고 조합원들을 규합시키는 것이 참 힘들었거든요. 조합 결성 후에 많이 깨지기도 하고...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조합 간부들이 돌아서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죠. 그땐 그래도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았으니까 지금이 당시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어렵지만, 일은 더 신이 나요. 아마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보겠다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 모인 곳이 민주노동당이잖아요. 그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하게 살아왔다.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분들이 이 사회에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만나서 얘기만 해봐도 너무 재밌고, 그런 분들하고 우리 사회를 정말 어떻게 바꿀 건가 하는 것들만 잘 잡아가면 뭔가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죠.
요즘엔 고민이 또 있는데 당은 당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하고 함께 하는 거잖아요. 서두를 수는 없다 싶어요. 당원들의 마음을 모으고 나서 그 힘을 모아 주민들께 나가는 거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예전 노동운동 할 때하고는 또 다르겠죠.“
현재 당의 주력 사업은 이라크 파병 저지와 급식조례 제정운동
현재 당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라크 파병 저지와 급식조례 운동 두 가지다. 지금은 이 두 가지가 지역 주민의 요구가 담겨져 있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책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급식조례 제정 운동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우리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지하는 운동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급식도 교육의 연장이잖아요.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무료로 초·중·고교에 공급하자는 것이죠. 이상적인 교육은 무상 교육을 지향하고 있잖아요. 물론 예산이 필요하니까 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돈을 내서 급식을 먹고 있는데, 지자체의 재정 지원을 통해 무료로 전환하자는 거죠.”
안 위원장은 작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출마해 25% 득표율의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지지층은? ‘주로 아줌마’라며 안 위원장은 웃는다.
“역시 정치인은 외모가 중요하다더니……. 그래서 아줌마들이 좋아하시는 거로군요.”
“농담이에요.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은 주로 노동자들, 서민들, 일하는 분들이에요. 작년 시의원 선거 때 저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다 그분들이죠.”
작년 지자체 선거 때는 그저 집집마다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인사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안 위원장의 출마 지역은 이전에 민주노동당 활동이 있던 지역도 아니었다. 두 달 정도 부지런히 정책을 알리고 주민들을 만난 결과는 25%의 득표율이었다. 결국 당선은 한나라당 후보가 됐지만 한나라당, 민주당 등등 기존 보수 정당들이 ‘꽉잡고’ 있는 지역에서 그만한 성과는 선전이다.
작년 지자체 선거에 출마, 25% 표 얻어
이 놀라운 성과의 비결은 뭘까?
“후보가 저 혼자가 아니었어요. 저와 똑같이 후보처럼 움직였던 사람들이 열 댓명 정도……. 그분들의 도움이 정말 컸죠. 동네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 만나면 후보보다 더 열심히 뛴다면서 후보 부인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분들도 있어요. (웃음)”
이번 장안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는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냈던 박종희 씨(현 장안구 국회의원) 등 쟁쟁한 인사들이 출마한다. 한나라, 민주, 통합신당 등등 각 정당들을 통틀어 장안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은 대략 열 여섯 명 정도. 각 당에서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각각 서너명 씩이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텃밭인 경기지역, 특히 수원은 옛날 공화당 때부터 시작해서 보수정당의 뿌리가 아주 깊다. 남경필, 박종희 등 쟁쟁한 정치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곳에 한시라도 빨리 진보정당의 깃발을 꽂는 것이 안 위원장을 비롯한 지구당의 과제다.
“내년 2004년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이 굉장히 큰 해잖아요. 일단 당내에서 힘을 결집하고 또 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당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원에 우리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빨리 열려면 지역 주민들하고 인간관계를 자꾸 맺어가야 하죠. 유인물 내고 플랭카드 걸고 언론을 통해 알리고 하는 것보다는 후보를 내고 당원들이 선거운동을 돌아다니고 하는 것이 지역 주민들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 당원들의 삶의 모습과 마음을 전달하는 거죠. 그것이 다른 당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우리 민주노동당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를 왜 바꾸어야 하는지 알려내는 거죠. 영농후계자였던 농민이 죽고, 세 아이의 엄마가 생활고로 가족동반자살을 택해야만 하고, 추악한 이라크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야 하고……. 얼마나 부도덕하고 부조리하고 한심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나요. 민중들도 사회 부조리 다 알거든요. 그런데 대안은 어딨나……, 대안이나 희망이 안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또 보수정당을 찍는 것이고……. 우리가 이걸 바꿔야죠. 우리의 생각과 포부와 마음을 전달하고 그 결과로서 당선이 되는 거죠.”
내년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후보처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당원들을 모으고 준비해서, 급식조례와 이라크 파병 저지 문제를 가지고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서명도 받고, 문화제 등을 준비해서 주민들이 호감을 갖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벌일 계획이다.
주민들에게 내놓을 총선 공약은 아직 개발 중이다. 오는 10월 30일 장안구 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후보로 선출되면 공약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안 위원장은 밝혔다.
‘총선 후보 인터뷰’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안 위원장의 모습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왜 다른 느낌이 드는 걸까?
사람들이 ‘정치인’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어쩌면 남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모습 때문이 아닐까. 안 위원장에게서는 그런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인치고는 어리숙하게 보인다고 느껴질 만큼.
“다행이네. 민주노동당에서 선거 후보는 곧 투사거든요. 남들 앞에 나서서 다른 당 후보들과 맞서서 깔 때는 통쾌하게 까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모도 딸리면 안되고, 정치적으로 세련되고 능숙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데 있어서 많이 미숙해요. 그 점이 바로 제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본래 마음이 어디 가겠어요? 우리 나름대로 진보 정치를 해 나가려는 정치인의 전형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기존의 보수 정치인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가진 진보 정치인이요.”
가족에 대해 더 물어봤다.
“아내요? 당원이니까 많이 도와주죠. 그러나 후보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이 대목에서 그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이 되나봐요, 부모님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부모님도 당원이시거든요. 민주노동당에서 최고령 당원이실거예요, 아마. 아들이 하기 때문에 그러신 거겠지만 제가 옛날에 감옥에 갔을 때 많이 바뀌셨어요. 아 우리 아들이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이었구나, 하고요. 그래도 아내나 부모님이나 늘 제편에 서서 도와주시는 편이죠.”
마지막으로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소감을 물었다.
“오늘이 마침 당내에서 후보 등록 마감날이었어요. ‘출마의 변’을 쓰면서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당이 이번에 한달 만에 당원을 백 칠명을 늘렸어요. 제가 있는 장안지구당도 일년 사이에 당원 수가 배가 됐어요. 처음에 백 이명에서 나중에 이백 이십이명으로요. 이런 것을 보면 당원 모두가 마음을 모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제가 멋있는 정치인이 돼야 할텐데. (웃음) 사실 요새 제가 화두처럼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잘 읽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당원들의 마음, 주민들의 마음, 그게 참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또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집권의 희망을 열고 우리의 미래를 모아낼 수 있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출마 계기이자 목표죠.“
마지막으로 홍보 한마디.
“우리 지구당 홈페이지(http://jangangu.com)에 놀러오세요.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아기자기한 홈페이지에요. 민주노동당 중앙당 홈페이지로 들어가도 링크가 되어 있어요.”
내년 총선을 맞아 지금부터 슬슬 바빠질 이 홈페이지에 일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가길 소망해 본다.
임은경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10-17-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