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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항일애국지사 최순덕선생</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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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11-16 00:00 조회1,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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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기인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광주여고보 백지동맹을 주동한 항일애국지사 최순덕 선생. 이광춘 선생을 비롯한 광주여고보 생존자 85명은 백지동맹 원문을 작성해 배포한 최순덕 선생이 백지동맹의 실제 주동자임을 인후보증과 서명, 비디오녹화 증언 등을 통해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74돌을 맞아 인터넷 참말로가 그의 업적을 밝히는 글을 4회에 걸쳐 연재중이다. 이 자료중 첫 글을 싣는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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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이시하라의 망언으로 민족이 분노하고 있다. 몇년 전 일본 당국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킴으로써 온겨레의 공분을 샀건만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다.

choisunduk-1.jpg [사진] 맨 오른쪽이 최순덕 선생

우리 민족을 모독하는 파렴치한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 특히 일제침략기 항일독립운동 관련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고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해 민족정기를 살렸더라면 일본의 파렴치한 역사 왜곡행위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민족정기의 함양을 위해 일제 침략기인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최순덕 선생이 주도한 백지동맹은 올바로 평가되고 역사에 기록돼야 합니다.

당시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 3학년생이었던 최순덕 선생은 11월 3일 광주역에서 벌인 대규모 반일시위에 참가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남학생 시위대에 날라주며 열심히 싸웠다.

이날 시위에서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체포, 구속되자 최 선생은 11월 10일 광주여고보 학기말시험일에 자신이 전날 밤을 새워 작성한 "구속학생 석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한 글자도 쓰지 말고 연필도 들지 말자"는 내용의 백자동맹 동조 호소문 150장을 전교생에게 배포하고 백지동맹의 결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Untitled-14.jpg백지 동맹사건과 관련해 11월 17일 3학년 반장을 맡았던 주동자 최순덕 선생과 가담자 46명은 무기정학 처분을 당했다가 이듬해 1월 30일 결국 퇴학 처리되었다.

광주고보와 광주여고보의 백지동맹사건은 일제 탄압에 맞서 광주학생들이 벌인 최선의 항거였다. 광주여고보 최순덕 선생의 동급생으로서 백지동맹에 참여한 이광춘 선생은 그 공적으로 1996년 제 51회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받았지만 최고 주동자였던 최순덕 선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애국인사들이 뜻을 모아 국가보훈처에 1999년 최순덕 선생에 대한 서훈 신청을 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 단체들이 이를 촉구했으나 아직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최순덕 선생이 광주 여고보 백지동맹을 주동한 사실은 이에 함께 참가한 이광춘, 박지 선생을 비롯해 92명이나 되는 증언자들이 밝혀주고 있다.

특히 백지동맹과 관련해 국가 서훈을 받은 이광춘 선생은 2001년 3월 14일 국가보훈처장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최순덕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위 학생으로서 백지동맹을 주도한 책임자였다"며 "백지동맹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전단지를 써온 최순덕 언니와 박지를 주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만명의 청년학생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나선 광주학생운동의 반외세 자주독립정신은 1980년 오월 광주 민중항쟁의 맥박 속에서도 고동쳤으며, 온 겨레의 숭고한 조국통일 염원을 담은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에도 살아 있다.

정부는 올해 94세로 연로한 항일애국지사 최순덕 선생에 대한 서훈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박지 선생 등 백지동맹 가담인사들의 공적도 인정해 줘야 한다. 이와 함께 항일의 굳센 기개를 떨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11월 3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민족정기를 더욱 함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구순을 넘긴 노령의 최순덕 선생 생존시에 일제침략시 백지동맹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진실을 올바로 기록하고 국가서훈 등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오늘을 사는 우리 후대들에게 요구되는 의무이고 도리이다. [양은찬기자]

[출처:인터넷 참말로 200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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