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종철씨 촛불시위후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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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1-28 00:00 조회1,4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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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제종철 사무국장의 사건 당일 행적을 짚어본다.
오후 7시 - 미 2사단앞 : 제종철 씨는 경기북부여중생범대위가 살인미군 무죄평결 1주년을 맞아 벌인 촛불시위에 참석했다. “일몰이후 시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집회를 방해하는 의정부경찰서 측과 마찰이 있자 7시 30분경 촛불시위는 끝났다. 이 과정에서 제씨는 여중생범대위 채희병사무국장과 전화통화를 통해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여중생범대위 주최 촛불시위후 의문사로 발견된 제종철씨의 생전의 모습
오후 7시 40분 - 의정부역 서부광장 : 민주노총 경기북부협의회 소속 조합원 2명과 만나 서부광장 사거리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이동, 지역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11시 : 식당에서 나와 일행과 헤어짐. 함께 있었던 일행은 제씨가 "의정부역 동부광장에 있는 민주노총 천막농성을 간다"고 말했다고 함.
오후 11시 14분 : 부인과 통화 - “급한일이 생겼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음
오후 11시 53분 : 의정부역 선로위에서 운행중이던 기관사에 의해 발견.
의문사의 사고현장인 의정부 역 철로길
기관사 : "선로위에 반듯하게 엎어져있었으며 발견당시 바로 급정거했으나 열차 한량반 이상이 지나버렸다"
열차운용실 직원 : "밖이 너무 깜깜해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다. 기관사의 연락이 있기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20일 00:00 : 119 구급대원 현장 도착. 열차밑에 깔려있는 고인을 꺼내 응급처치. 맥박과 호흡 정지 확인
구급대원 : "머리 뒤쪽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으며 피가 많이 나지 않았다."
"무릎이 훤히 보일 정도로 바지 한쪽 무릎이 찢겨져있었으며 다른 외상은 없었다."
20일 00:05 : 의정부 의료원 사망확인
어떻게 사건장소까지 오게 되었는가
사고정황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왜 하필 그곳에 누워있었냐 하는 점이다.
사고가 난 선로위를 가는 방법은 첫 번째 지하철 플랫폼을 통해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당일 동부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사 플랫폼을 통과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플랫폼을 통과해 사고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열차운용실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을 수가 없다. 지하철 역사 CCTV를 확인과 유품에서 발견된 지하철 패스를 조사한 결과 플랫폼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최종 목격자와 헤어진 곳은 서부역 사거리.
이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의정부역 담이 보이고 이 담을 따라 걷다보니 역사안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고 이 문을 통해 사고현장까지 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기차가 끊긴 이후에는 가끔 무단횡단을 통해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이 문을 통해 건너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안에서 동부광장쪽으로 난 담장은 모두 미군부대와 인접해있었고 오직 한 곳에 철문이 있었다. 이 철문은 녹슨 철사로 묶여있어 아주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종철 사무처장은 나갈 수 없는 통로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라진 20분, 어디서 무얼 했나
다음으로 풀 수 없는 점은 시간의 문제다.
그러나 헤어진 장소에서 이 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어른의 걸음으로 10분정도. 보통 걸어왔다면 11시 10분경이면 이 사고현장까지 도착할 수 있다. 부인과 마지막 통화를 한 시각이 11시 14분이었으므로 이 역사안이었거나 역사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가 난 시각은 11시 53분. 사고 직전 차량이 통과한 시각은 11시 32분. 그렇다면 11시 32분 이후에 사고 장소에 도달했다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11시 14분에서 32분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해답이 없다.
더군다나 의정부 의료원 응급실 의사가 고인을 응급실로 데려간 응급구조원에게 "몸이 너무 차갑다"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응급구조원은 담당의사의 말에 대해 "외부기온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을 때 사망추정시각에 비해서 체온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지 않겠냐"고 해석했다.
그러나 현재 담당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사고 발생후 10여분만에 도착한 응급실에서 잰 체온은 31도. 정상체온이 36.5도인데 반해 10여분만에 5도가량의 체온이 저하한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고인이 11시에서 사고발생당시까지 행적에 대한 의문은 더욱 강해진다.
외상, 이해할 수 없는 응급구조대의 태도
발견당시 제 사무처장은 머리에 상처를 입고 작은 출혈이 있었으며 무릎의 찰과상만 있을 뿐 다른 외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리부분의 상처는 철도사고상 내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큰 출혈이 없을 수도 있다는게 응급구조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릎의 찰과상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과수에서 나오는 결과에 따라 정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조사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119 응급구조대의 태도였다.
11시 57분 의정부역사로부터 신고를 받고 12시 정각에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모두 6명. 열차밑에 있던 고인을 꺼내 응급처치를 하고 의정부 의료원으로 옮겼다. 이때 의정부 관흠파출소 소장과 의정부역 직원 한명이 병원까지 함께 동승했다.
이 날 사건 정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 소방서에 사건현장의 사진을 요청했으나 사진촬영이나 비디오 촬영을 할 경황이 없었다며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흠파출소 소장을 만나본 결과 소방서에서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시 소방서에 연락을 취했으나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며 “담당자가 퇴근했으니 내일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편 이 사건을 조사중인 의정부 강력계는 현장 조사로는 알수 없으며 국과수 결과가 나와야 사건 정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시신은 내일 국과수로 옮겨지며 부검 결과는 몇 주 지나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고인의 빈소는 의정부 추병원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다.
<1신 기사대체 : 오전 10시 40분>
경기북부 지역에서 여중생 투쟁을 이끌어왔던 제종철(경기북부 대책위 사무처장, 36세)씨가 어제 밤 11시 53분경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제 사무처장은 의정부역에서 의정부북부역으로 가는 선로위에서 열차에 치여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당시 열차를 몰았던 기관사는 "선로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을 보고 급정지를 했으나, 열차 1량반이 지나서야 열차가 멈췄다"고 말했다. 현장에 12시 경 도착한 119 응급 구조대는 "맥박과 호흡이 정지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제 사무처장은 선로안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상태였으며, 머리쪽에 약간의 출혈과 무릎쪽에 찰과상을 입은 상태다. 그러나 사인이 열차사고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오전에 찾은 사고현장에는 피묻은 동전 2개만이 떨어져 있었으며, 현장에서의 출혈은 매우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선이 효순이 사건 경기북부 대책위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제씨는 사고 당일인 20일 오후 "살인미군 무죄선고 1주년"을 맞아 미2사단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서 제 사무처장은 일몰 이후 시위를 금지하겠다는 의정부 경찰서 관계자들과 약간의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씨는 집회 이후 4차례의 일상적인 전화통화를 했으며, 사망 직전인 11시 14분경 부인과 통화해서 "급한 일이 생겼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과 주위 동료들은 "별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으며, 자살이라고 생각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제종철씨의 시신은 의정부 의료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날이 밝는 대로 의정부추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사건은 의정부 경찰서에 접수된 상태이며 정확한 사인은 의료진의 검시가 끝나야 파악될 것으로 보이며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5세)이 있다.
고 제종철씨 약력
87년 외대 폴란드어과 입학
89년 총학생회 기획부장
93년 경기 인천지역 대학 총학생회 연합 연사위원장
94년 한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 연사위원장
2002년 여중생범대위 상황실 부실장
경기북부 여중생대책위 사무처장
의정부청년회 준비위원장
의정부청년문화학교 인터넷 반장
2003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북부지역지회 교섭위원(미조직위원)
[출처:민중의 소리 2003년11월21일 이정미 기자 ]
오후 7시 - 미 2사단앞 : 제종철 씨는 경기북부여중생범대위가 살인미군 무죄평결 1주년을 맞아 벌인 촛불시위에 참석했다. “일몰이후 시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집회를 방해하는 의정부경찰서 측과 마찰이 있자 7시 30분경 촛불시위는 끝났다. 이 과정에서 제씨는 여중생범대위 채희병사무국장과 전화통화를 통해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오후 7시 40분 - 의정부역 서부광장 : 민주노총 경기북부협의회 소속 조합원 2명과 만나 서부광장 사거리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이동, 지역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11시 : 식당에서 나와 일행과 헤어짐. 함께 있었던 일행은 제씨가 "의정부역 동부광장에 있는 민주노총 천막농성을 간다"고 말했다고 함.
오후 11시 14분 : 부인과 통화 - “급한일이 생겼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음
오후 11시 53분 : 의정부역 선로위에서 운행중이던 기관사에 의해 발견.

기관사 : "선로위에 반듯하게 엎어져있었으며 발견당시 바로 급정거했으나 열차 한량반 이상이 지나버렸다"
열차운용실 직원 : "밖이 너무 깜깜해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다. 기관사의 연락이 있기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20일 00:00 : 119 구급대원 현장 도착. 열차밑에 깔려있는 고인을 꺼내 응급처치. 맥박과 호흡 정지 확인
구급대원 : "머리 뒤쪽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으며 피가 많이 나지 않았다."
"무릎이 훤히 보일 정도로 바지 한쪽 무릎이 찢겨져있었으며 다른 외상은 없었다."
20일 00:05 : 의정부 의료원 사망확인
어떻게 사건장소까지 오게 되었는가
사고정황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왜 하필 그곳에 누워있었냐 하는 점이다.
사고가 난 선로위를 가는 방법은 첫 번째 지하철 플랫폼을 통해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당일 동부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사 플랫폼을 통과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플랫폼을 통과해 사고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열차운용실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을 수가 없다. 지하철 역사 CCTV를 확인과 유품에서 발견된 지하철 패스를 조사한 결과 플랫폼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최종 목격자와 헤어진 곳은 서부역 사거리.
이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의정부역 담이 보이고 이 담을 따라 걷다보니 역사안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고 이 문을 통해 사고현장까지 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기차가 끊긴 이후에는 가끔 무단횡단을 통해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이 문을 통해 건너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안에서 동부광장쪽으로 난 담장은 모두 미군부대와 인접해있었고 오직 한 곳에 철문이 있었다. 이 철문은 녹슨 철사로 묶여있어 아주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종철 사무처장은 나갈 수 없는 통로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라진 20분, 어디서 무얼 했나
다음으로 풀 수 없는 점은 시간의 문제다.
그러나 헤어진 장소에서 이 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어른의 걸음으로 10분정도. 보통 걸어왔다면 11시 10분경이면 이 사고현장까지 도착할 수 있다. 부인과 마지막 통화를 한 시각이 11시 14분이었으므로 이 역사안이었거나 역사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가 난 시각은 11시 53분. 사고 직전 차량이 통과한 시각은 11시 32분. 그렇다면 11시 32분 이후에 사고 장소에 도달했다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11시 14분에서 32분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해답이 없다.
더군다나 의정부 의료원 응급실 의사가 고인을 응급실로 데려간 응급구조원에게 "몸이 너무 차갑다"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응급구조원은 담당의사의 말에 대해 "외부기온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을 때 사망추정시각에 비해서 체온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지 않겠냐"고 해석했다.
그러나 현재 담당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사고 발생후 10여분만에 도착한 응급실에서 잰 체온은 31도. 정상체온이 36.5도인데 반해 10여분만에 5도가량의 체온이 저하한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고인이 11시에서 사고발생당시까지 행적에 대한 의문은 더욱 강해진다.
외상, 이해할 수 없는 응급구조대의 태도
발견당시 제 사무처장은 머리에 상처를 입고 작은 출혈이 있었으며 무릎의 찰과상만 있을 뿐 다른 외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리부분의 상처는 철도사고상 내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큰 출혈이 없을 수도 있다는게 응급구조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릎의 찰과상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과수에서 나오는 결과에 따라 정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조사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119 응급구조대의 태도였다.
11시 57분 의정부역사로부터 신고를 받고 12시 정각에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모두 6명. 열차밑에 있던 고인을 꺼내 응급처치를 하고 의정부 의료원으로 옮겼다. 이때 의정부 관흠파출소 소장과 의정부역 직원 한명이 병원까지 함께 동승했다.
이 날 사건 정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 소방서에 사건현장의 사진을 요청했으나 사진촬영이나 비디오 촬영을 할 경황이 없었다며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흠파출소 소장을 만나본 결과 소방서에서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시 소방서에 연락을 취했으나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며 “담당자가 퇴근했으니 내일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편 이 사건을 조사중인 의정부 강력계는 현장 조사로는 알수 없으며 국과수 결과가 나와야 사건 정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시신은 내일 국과수로 옮겨지며 부검 결과는 몇 주 지나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고인의 빈소는 의정부 추병원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다.
<1신 기사대체 : 오전 10시 40분>
경기북부 지역에서 여중생 투쟁을 이끌어왔던 제종철(경기북부 대책위 사무처장, 36세)씨가 어제 밤 11시 53분경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제 사무처장은 의정부역에서 의정부북부역으로 가는 선로위에서 열차에 치여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당시 열차를 몰았던 기관사는 "선로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을 보고 급정지를 했으나, 열차 1량반이 지나서야 열차가 멈췄다"고 말했다. 현장에 12시 경 도착한 119 응급 구조대는 "맥박과 호흡이 정지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제 사무처장은 선로안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상태였으며, 머리쪽에 약간의 출혈과 무릎쪽에 찰과상을 입은 상태다. 그러나 사인이 열차사고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오전에 찾은 사고현장에는 피묻은 동전 2개만이 떨어져 있었으며, 현장에서의 출혈은 매우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선이 효순이 사건 경기북부 대책위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제씨는 사고 당일인 20일 오후 "살인미군 무죄선고 1주년"을 맞아 미2사단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서 제 사무처장은 일몰 이후 시위를 금지하겠다는 의정부 경찰서 관계자들과 약간의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씨는 집회 이후 4차례의 일상적인 전화통화를 했으며, 사망 직전인 11시 14분경 부인과 통화해서 "급한 일이 생겼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과 주위 동료들은 "별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으며, 자살이라고 생각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제종철씨의 시신은 의정부 의료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날이 밝는 대로 의정부추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사건은 의정부 경찰서에 접수된 상태이며 정확한 사인은 의료진의 검시가 끝나야 파악될 것으로 보이며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5세)이 있다.
고 제종철씨 약력
87년 외대 폴란드어과 입학
89년 총학생회 기획부장
93년 경기 인천지역 대학 총학생회 연합 연사위원장
94년 한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 연사위원장
2002년 여중생범대위 상황실 부실장
경기북부 여중생대책위 사무처장
의정부청년회 준비위원장
의정부청년문화학교 인터넷 반장
2003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북부지역지회 교섭위원(미조직위원)
[출처:민중의 소리 2003년11월21일 이정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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