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주 정신대 할머니 공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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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2-16 00:00 조회1,4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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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아 기자
오는 10일 제 55회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황금주 할머니(84)가 소수인권 보호를 위한 공적상을 수상했다.

정대협은 92년 8월 제네바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참석하여 여러 인권전문가들과 NGO앞에서 당당하게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생존자로 증언을 하고 미국 대학교를 순회하며 대학생들에게 증언을 하는 등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폭로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또한 황금주 할머니는 일본정부가 법적 배상이 아닌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으로 해결하는 것에 거부하고 일본정부의 직접 사죄와 배상을 요구함으로 위안부 문제를 원칙적으로 풀어가려고 했다고 한다.
시상식은 오는 8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내가 잘한게 뭐 있나, 우리 역사가 나를 이렇게 만든건데"
수상을 한 황금주 할머니는 “내가 뭐 잘한 게 있나. 여기(정대협) 우리 딸래미들이 열심히 해서 그런 거지”라며 수상소감을 겸손하게 내비췄다.
올해 나이 84세인 황금주 할머니는 ‘여자가 사립학교는 나와야 시집도 잘 갈 수 있다’라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15살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4년 만에 위안부 면단위 공출로 중국으로 떠나야했다.
“난 끌려간 것은 아니여. 그 땐 면에서 공출했는데 안 가면 식구들이 다 굶어 죽었거든. 면에서 배급을 안 해줘서. 갈 수밖에 없었지.”
할머니는 면에서 2년후면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2년만 참자라는 굳은 심정으로 그곳 생활을 버텼다. 하지만 3년이 되고 4년이 되도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곳에서 다른 조선처녀들의 많은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다.
“다들 일본말을 모르니까 그냥 맞는 거야. 그래서 맞아 죽고 성병으로 죽고.. 그나마 난 일본말을 조금 알았거든. 그러니깐 이 놈들이 낮엔 병원일을 시키고 밤엔 부대 있는 놈들 돌아가며 계집노릇 시키고.."
할머니에겐 이제 60년이 훌쩍 지나버린 시간들이었지만 그 때의 얘기들이 나오자 할머니는 다시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을 잊지 못했다. 자신도 겨우 살아남았지만 자궁암이라는 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면서 직접 옷을 걷어 배를 보이며 배꼽에 구멍이 10cm이나 난 자국을 보여줬다.
정대협은 92년 최초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소했다. 이곳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갔던 할머니는 돈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 사람 안 그래도 무시하는데 돈 얘기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 그래서 난 돈 필요 없다. 내 청춘 돌려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미국놈들이 참 당황하더라구. 그 이후에 내가 청춘 돌려줘 할머니가 됐어”
할머니는 정대협에서 주최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수요집회를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 몸이 힘들어 죽겠는데도 일본 놈들 생각하면 수요집회를 안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미 직접 정신대를 겪은 많은 할머니들이 죽었다. 황금주 할머니는 그 몇 남지 않는 피해자 생존자 중의 한 명이다.
돈을 바라지 않고 다만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만을 바라는 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한국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주아 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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