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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김현희는 왜 김신조처럼?</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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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12-15 00:00 조회1,80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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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없는 살인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정황이 그럴듯하고 용의자의 자백이 있더라도 주검이 없는 한 범죄구성 요건이 안 된다. 그런데 16년 전, 13대 대통령 선거(노태우 후보 당선)를 18일 앞둔 1987년 11월29일 115명이 탄 여객기가 폭파되었는데도 주검 한구, 유품 한점 없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KAL기 폭파사건’이다.

김현희는 왜 김신조처럼 못 사는가

80년대부터 KAL기 사건 추적해온 현준희씨가 일각의 조작의혹 반박논리를 재반박한다


80년대, 일본에서 조작의혹을 접하다


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에선 이 사건을 ‘김정일의 친필지령에 따라 88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KAL 858기를 폭파’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사실로 밝혀진 것은 3가지뿐이다. 첫째, 순항 중인 KAL기가 갑자기 사라진 것. 둘째, 일본인 여권을 가진 두 사람이 KAL 858기가 실종되기 전 내린 것. 셋째, 바레인 공항에서 두 사람이 음독자살을 기도해 한명은 즉사하고, 한명은 미수에 그친 것. 이 세 가지말고는 확실하게 밝혀진 게 없다. 안기부는 오직 김현희의 자백만으로 이 사건을 북한의 테러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백은 곧바로 거짓말로 드러났고, 이로 인해 과연 그녀가 북한 출신인지, 본명이 김현희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사진/ 박승화 기자




그때 나는 감사원 현직 공무원으로 일본 회계검사원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KAL기가 사라진 하루 전날(11월28일) 일본인 승객 47명이 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속 여객기가 인도양 모리셔스섬 북방해역에 추락했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두 대형 사건에 당시 일본 언론은 사고 해역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도양에 추락한 비행기에서는 주검은 물론 비행기 잔해, 승객 유품이 엄청나게 떠올랐는데, KAL기가 사라졌다는 버마 안다만 해역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세계 여객기 사고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인데다 대선 막바지에 발생한 사건인 만큼 일본에선 조작 의혹이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언론 상황은 검열이 매우 심해 이러한 의혹 보도는 철저히 차단됐지만, 일본에서 이런 보도를 자유롭게 접하고 의문을 품게 된 나는 1988년 1월15일 안기부 발표한 수사내용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그 중에서도 19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원회 남쪽대표로 평양을 방문한 장기영 부대표의 사진에 등장하는 ‘화동’ 김현희의 모습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서울로 압송된 뒤 카메라 앞에 선 김현희의 귀는 역삼각형 칼귀. 반면 사진 속 화동의 귀는 귓불이 도톰한 일반형이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세모와 동그라미의 차이다. 귀 모양은 지문과 같이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으로 신원확인에 결정적 단서가 된다. 따라서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나쁜 놈들…” 하고 욕이 나왔다.

수사 발표 뒤 김현희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1987년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14일 입에 자해방지용 테이프를 물고 손목붕대에 묶여 김포공항에 압송된 김현희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잔혹한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했고, 그런 ‘퍼포먼스’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안기부로 끌려간 그날부터 수사 발표 때까지 한달간 김현희의 근황에 관한 공식 발표는 일절 없었음에도 ‘온몸에 문신’ ‘단련된 허벅지 근육’ ‘어깨에 칼자국’ ‘주먹에 굳은살’ 등의 언론보도가 난무했다.


KAL기 사건 명분 삼은 김정일 답방 반대


그런데 정작 수사 발표장 TV카메라 앞에는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청초한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전국에 생방송된 깜짝쇼에 모두들 넋이 나갔다. 그녀의 ‘눈물 인터뷰’에 “맞아, 저런 여성에게 폭파지령을 내린 김정일이 죽일 놈이지 김현희가 무슨 죄야…”라며 여론은 동정론으로 급속히 돌아섰다. 의혹은 ‘물 건너간 얘기’가 되고 말았다.

눈물의 인터뷰 이후 ‘김현희 스타 만들기’는 전국적 열풍이 됐다. 전국 52개 방송사와 30여개 일간지와 잡지들이 김현희 체포 이후 두달 동안 10만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내용도 코미디 수준이다. ‘코를 높였다’에서 ‘유방이 크고 검은 편이다’ ‘히프가 펑퍼짐하다’ ‘온몸에 잔털이 많다’ 등. 여기에 ‘처녀다’ ‘아니다’까지 가세해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이런 선정적 기사에 빠질수록 의혹은 멀어졌다.



사진/ 지난 11월28일 KAL기 폭파사건 16주기 추모식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 그들은 사건 초기부터 김현희가 범인이 아니라고 보고 그녀의 양심선언을 요구해왔다.(박승화 기자)


나는 1991년 국비로 2년간 다시 일본에 유학할 기회가 생겼다. 1987년 사건 발생 이후 4년 동안 국내에는 KAL기 의혹 자료라곤 하나 없었지만, 일본에는 사건의 동기 분석부터 비행기 폭파 여부에 관한 엄청난 자료가 있었다. 창피했다. 정작 사건 당사국인 한국의 언론은 김현희의 미모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일본에서는 집요하게 진상을 추적하고 있었으니(일본 는 올 7월에도 김현희 특집프로를 방영했다)…. 그 중에서도 김현희의 행적을 직접 현지 취재한 노다 미네오 선생에게 감복했다. 일본에서 나는 100가지가 넘는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새 천년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6·15 공동선언이 있었다. 이젠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차례. 그러나 국내 보수세력은 KAL기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2001년 2월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김정일의 지령에 관한 물증이 없으니 사건을 잠시 덮어두자’는 발언을 하자 우익 보수진영에선 벌떼처럼 일어났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세계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됐던 ‘사라예보 방문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사건’이 떠올랐다.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서울을 답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불길한 생각에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자 10년 가까이 모은 자료를 풀어 집필을 시작했다. ‘북한이 했다’는, ‘폭파됐다’는 증거가 없는 실종사건일 뿐이라고.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나는 KAL 858기 가족회와 김현희 KAL기사건 대책위원회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 언론사, 시민단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을 뛰어다녔다. 모두들 엄청난 사건이라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으나 확보한 증거들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올 들어 이 사건의 의혹을 제기한 서현우씨의 소설 <배후>와 일본 노다 선생의 추적기를 번역한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책이 나온 이후 이 사건에 대한 관심과 진상 규명의 필요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발생 초기부터 이 사건을 추적해온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사진/ “사건 당시 일본에서 연수 중이던 나는 ‘화동 김현희’의 모습을 보면서 “나쁜 놈들…” 하는 욕이 나왔다. 서울로 압송된 김현희의 귀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이것만 봐도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




‘이은혜=다구치 야에코’ 확인 안 됐다


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내내 가증스러운 것은 이제까지 안기부 대북 관련 부서에서는 김정일의 친필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 하나 이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을 밝히면 정부의 거짓이 드러나고 보수우익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워 쉬쉬하며 ‘벌거숭이 임금님’ 같은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발바닥이 가려운데 신바닥만 긁는 것을 격화소양(隔靴搔瘍)이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통일이란 상대방이 있는데 아무 증거 없이 상대방쪽 지도자를 살인범으로 몰고 서울에 오면 잡아죽인다고 살기등등한데 이건 통일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진짜 걸림돌을 놔두고 남북회담이니, 무슨 세미나니 엉뚱한 곳만 긁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혹자는 나의 주장에 대해 “너 친북 주사파 아니야”라고 힐난하지만 나는 주사파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평범한 중생이다. 어디까지나 사실과 상식의 차원일 뿐, 행여 사실이 아니고 상식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공개 토론할 용의가 있다.

5공 시절 <조선일보>와 안기부의 ‘끈적끈적한’ 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원죄’를 안고 있는 <조선일보>는 2003년 11월24일치 ‘만물상’이란 코너에서 음모론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는다. “김현희가 만일 남쪽 정보기관에서 키운 공작원이었다면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된 그녀를 안다는 사람이 왜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 사건만 추적해온 나의 눈에는 바로 교활함이 드러난다. 나는 이렇게 반문한다. “김현희가 떳떳하다면 왜 김신조 등 다른 귀순 전향 간첩처럼 일반인과 어울려 살지 못할까?” KAL기 피해자 가족들이 해칠까봐?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은 사건 초기부터 김현희가 범인이 아니라고 보고 그녀의 양심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하여튼 김현희는 1997년 결혼 뒤 6년째 종적을 감추었으며 한국과 일본의 집요한 언론추적에도 불구하고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과연 그녀의 개인 의지로 가능한 일일까?

안기부를 옹호하는 <조선일보>의 단골 메뉴는 또 있다. “김현희의 진술로 그녀에게 일본말을 가르쳤던 ‘이은혜’가 1978년 니가타에서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은 지난해 다구치씨의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납치라는 용서받지 못할 엉뚱한 짓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은혜=다구치’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설명”이라고 2002년 10월1일 최성홍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한 바 있다.


‘그냥 덮기를’ 바라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또 “아무리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 연결고리의 일부가 사라졌다 해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기 생각대로 상상의 게임을 펼쳐놓는 것은 신중치 못한 일이다”라고 보도했다.

마침내 ‘그냥 덮어놓았으면 하는’ 속내가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논리적 연결고리의 일부가 사라졌다 해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안기부를 비호하지만, 귀 모양이 다른데 김현희를 범인으로 볼 수 있는가. 범인이 다르면 사건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뒤집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115명이나 죽었다는데 왜 주검 한구, 잔해 한점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을 계속 추적함이 마땅하다.

퓰리처상을 제정한 미국의 조지프 퓰리처는 “보도의 정확성은 여인의 정조와 같다”고 했다. 나는 적어도 이 KAL기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정조를 잃었다고 본다.

이 사건은 1988년 유엔에서도 증거 부족으로 대북규탄 결의안이 채택되지 못했고, ‘영악한’ 미국도 최근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사유에서 KAL기 사건을 슬그머니 빼고 케케묵은 요도호 사건(1970년 일본 적군파가 하이재킹을 한 뒤 평양에 피신)으로 바꿔 넣었다.

나는 이제까지 안기부 수사의 문제점을 추적하면서 진상이 밝혀질 경우 그 파장과 우리나라가 세계적 망신을 살 거라는 점에서 곤혹스럽다. 이번 이라크 파병에서도 보듯 걸핏하면 국익 논쟁에 말려드는데, 나는 진상을 밝히는 것이 분명 인류와 한국의 이익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추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 망신거리라는 점 때문에 국익을 위해 그만 덮어두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자. 과거 금강산댐 사기 성금모금, 수지김 사건이 밝혀졌어도 어디 나라가 망했는가, 그리고 안기부가 없어졌는가. 지나고 보니 진실이 밝혀지는 게 역사의 발전이고 국익이었음을 수긍할 것이다. “국익은 악인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서양속담같이 이 사건이 밝혀짐으로써 입을 손해는 한줌의 5, 6공 잔재와 왜곡언론의 사익뿐이다.


KAL기 진실규명이 주는 국익들


반면 이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통일 문제만 봐도 그렇다. 첫째,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 사건으로 인해 좌절됐다. 당시 <월간조선>에선 서울에 오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앙앙불락이었다. 정말 친필지령이 사실이라면 나부터 광화문 네거리에서 답방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둘째, 북한이 테러지원국이 됐다. 1988년 1월 정부가 KAL기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요청해 벌써 15년째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혀 있다. 테러국이 되면 경제봉쇄 조처를 당하고, 대외 원조나 투자가 끊긴다. 오늘날 북한이 못사는 이유도 테러국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국의 도움을 못 받으니 우리가 홀로 도와야 하는데 그 때문에 ‘퍼주기 논쟁’까지 벌어졌다. 지나고 보니 자업자득한 바보짓임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최근 정부는 미국에게 북한을 테러국에서 빼주도록 간청하지만 정작 그 원인인 KAL기 사건의 진상에 대해선 나몰라라 하고 있다.

셋째,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다. 부시 정권 들어 전쟁 원인의 1순위는 단연 테러다. 미국은 심심하면 북한을 예고 없이 폭격하겠다고 을러댄다. 그 말 한마디면 국내 주가는 폭락하고 경제는 엉망이 된다. 미국의 폭격은 말릴 수도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유사시 한반도는 불바다가 된다. 타국의 말 한마디로 나라가 흔들리고, 자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린다면 이건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이 비극의 씨앗도 KAL기 사건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전쟁의 뇌관, 즉 KAL기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미국에 “북한의 테러 증거가 없었다”고 화끈히 밝히는 것이다. 증거가 없다는데 미국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질없는 일이 돼버렸지만 88올림픽이 남북한 공동 개최로 한 국기 아래, 한 국가 대표선수로 치러지고 2년 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됐다면, 통일은 상당히 진척됐을 것이다.

진상 규명을 하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보수우익의 반발로 정부 스스로 나서기도 곤란한 사건이 KAL기 사건이다. 그러나 창피는 순간이요, 민족은 영원하다.

나는 단언한다. KAL기 사건 해결 없이 통일 없고, 통일 없이 미래 없다고….

따라서 하루빨리 KAL기 사건을 재조사해 통일의 걸림돌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115명의 실종자를 찾아나서야 한다.

현준희 | 전 감사원 직원(사진/이용호기자)

[출처: 한겨레21 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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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김현희는 진짜 나쁜년이로세~!!!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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