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민중운동 결산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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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1-05 00:00 조회1,6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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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민주노총 8층 회의실에서 대표적 민중조직의 집행책임자들이 2003년 투쟁을 정리하는 좌담을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찬 투쟁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좌담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이 사회를 보고, 민주노총 김태연 정책실장, 박흥식 전농 사무총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참석한 이날의 좌담에서 참석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급격한 보수화에 비해 민중진영의 연대투쟁 전선의 구축은 너무 늦었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흔히 미국, 국내 보수 정치세력, 총자본으로 설명되는 이 사회의 지배층이 대선을 끝내고 나서 빠르게 다시 뭉친 반면, 민중운동 진영은 지배층의 단결 속도에 비해 늦게 투쟁에 나섰으며, 또 계급계층별로 각개 약진하는 데 그쳐 싸움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아래는 좌담의 전문이다.
정대연 지금부터 민중의 소리가 주최하는 2003년 민중운동 결산 좌담회를 시작하겠다.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김태연 올해 가장 큰 사회적 정치적 화두는 노무현 정부 출범에 따라 이 정부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는 노무현 정부와의 정면대결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1월 9일 배달호 열사의 분신이 의미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이어받은 김대중 정부 5년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이것은 노무현 정권이 안고 출발한 과제였다.
결국 노무현 정권 1년이 채 못된 지금까지 4명의 노동자가 분신 혹은 자결을 하는 상황이 나타났고, 이것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노무현 정부의 반 노동자, 반 민중적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회찬 실제로 어느 해보다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에게 힘든 한해였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만 보더라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숨겨갔고, 농민도 멕시코에서 자살하고, 농약먹고 자결한 농민도 100여명이 넘고, 도시빈민들도 아이들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하고 지하철에서 목숨 끊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가 특별한 한해였는가? 내년에는 그렇지 않고 올해만 이런, 특별한 한 해였다면 좋겠는데, 냉정하게 평가하면 올해가 보편적인 한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은 신자유주의, 돌이켜 볼 때 노태우 정권 때부터 제도화되고 더 강력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병폐가 10여년 누적된 결과가 올해 드러난 것이다. 이 점에서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올바른 것이었는가, 적절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하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으로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저지시키는데 많은 노력은 해 왔지만, 그것이 정확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전략적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정대연 투쟁으로 날이 새고 투쟁으로 날이 지는 일년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중의 운명은 더 이상 어떤 것에도 기대할 수 없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정치권,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데, 이런 격동의 시대를 열어야 할 운동진영은 올바른 시대정신과 정확한 전략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럼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면화 되면서 이를 물리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였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것과 연동해서 미국의 전쟁을 추종하고, 이로 인해 지난해 촛불시위로 타올랐던 민족자주의 열망이 퇴색했다. 올 3월부터 시작했던 파병반대 운동, 미선이 효순이 1주기 추모 등 올 한해 진행됐던 반미반전운동 평가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 이후 지배세력의 단결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노회찬 의정부 여중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대단히 불행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반외세 반미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연 사건이다. 70프로 정도에 이르는 다수의 국민들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의식을 갖게 된 것도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반미의식의 표현이다.
다만 한가지 지적할 부분은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6-70% 이르는 국민이 파병을 반대하고 있고,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아도 지금까지 어떤 서명운동보다도 호응이 좋다. 서명하는 계층, 세대도 굉장히 넓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투병 파병 반대운동 운동으로 확산이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반성이 된다. 사안 사안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미국을 막아내는 사회적 목표, 즉 마스터플랜을 짜서 대중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적 영역에 대한 접근이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문화영역, 철학, 종교에서도 미국의 영향이 굉장히 많이 침투해 있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의 문화와 정치의식 사이에 모순이 상당한 수준이다.
△김태연 민주노총 정책실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김태연 작년 대선 당시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 투쟁에 편승해서 출발한 것이 노무현 정부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관계에서도 개혁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5월 방미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4, 5월 가면서 노동정책에서도 이러한 역전현상이 나타났는데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 문제를 토론해 본 적이 있다.
이 토론에서 나온 말인데 대선 과정이라는 것이 지배층 내에서의 권력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배층에는 노무현 파가 있고, 한나라 당이 있고, 조중동 등 수구보수 언론 있고, 미국이 있다. 대선이라는 내부 권력투쟁에서 이들 사이에 이완이 일어났다고 본다. 참여정부는 출범 후에 이러한 이완을 신속하게 복구하는 과정을 밟았다. 그 시작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부터다. 이건 노무현 정권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은 아니고 90년대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노무현 정권도 여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상반기 파병반대투쟁에서 노동조합 수준에서는 상당히 열심히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3, 4000정도의 간부들이 반전평화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도 이 땅도 아닌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가지고 국회 앞에서 투쟁한 것은 정말 대단했다. 조합원의 대중적 의식화에도 상당히 진전이 있었다. 한계가 있다면 아직 대중을 직접 행동으로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상반기에는 파병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비해서 훨씬 못 미치게 투쟁했다. 이건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그렇다. 각계각층이 작년 말 촛불시위에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상반기 파병반대 투쟁만큼의 역량도 집결시키지 못했다. 이 원인에 대해서 꼼꼼하게 되짚어봐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박흥식 기득권 세력이 국익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반전평화라는 구호로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 본질적인 구호, 준비된 투쟁을 했어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강제적 침탈이 자행되며 긴밀하고 긴장감 있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일하게 대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 문제 해결 방법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정대연 얘기나온 김에 연관된 부분까지 마무리를 짓자. 어려운 얘기일지 모르겠는데 ‘김대중 정부는 한계는 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상대적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파병 명분으로 한반도 평화를 운운했지만 대북정책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김태연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노무현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이나 친미정권으로, 미국과의 관계에 변화가 없다. 정확한 표현으로 올해와 예년의 차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했다면 김대중정부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도 기본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전략 하에서 움직였다. 김대중 정부를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남북문제를 보는 데서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박흥식 김대중 정권의 성과라고 할 6.15공동선언은 우리의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에는 철학적인 원칙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하기보다 미국의 변화된 입장에 맞춰나가는 형국이다.
반미운동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대연 다시 돌아가보자. 반미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데는 다들 공감한다. 이런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실천으로 나아가는데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집중해보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노회찬 현장에서 확인된 바로는, 분명히 파병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서명까지는 하는데 주말에 집회는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결국 서명보다는 높고 집회보다는 낮은 행동지침을 만들어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민투표였는데, 물론 국민투표만이 해결방안이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것도 잘 되지 않았다.
김태연 하반기 투쟁이 잘 안됐는데 솔직히 상반기까지 했던 수준의 투쟁조차 안됐다. 운동내부의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 노동탄압을 받으며 반전평화 투쟁과 결합을 노리긴 했다. 광화문 시위, 농성같은 경우 상당히 의의를 뒀다.
광화문에서 처음 시작은 수백부터 시작해서 수천 정도의 간부들, 노,농,빈,청년학생이 광화문에 농성판을 벌이고 전국으로 전파하자. 그 속에서 노무현의 노동탄압을 알려내고 그 속에서 농민들의 주장도 알려내자는 계획이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총파업 투쟁의 동력이 떨어진 시점에서 제안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간부들이 광화문에 집결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민중연대 차원의 세밀한 구상이 부족했다고 본다.
노동자, 농민, 학생이 광화문에서 뭘 어떻게 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다른 말로 판이 보여야 대중의 몸이 따라가는데, 이게 안되었다. 간부들이 움직이지 않는데 대중이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전술적인 점에서 엄청나게 많이 부족했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 때문에 하반기 투쟁이 기본도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흥식 농민진영은 한칠레 FTA 반대투쟁을 농민연대가 받아안고 줄기차게 투쟁했는데, 농민 현안 문제를 넘어 이라크 파병 등 민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언론을 통해 분위기 띄우고 대중이 참여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가능하지만 이후에는 조직화된 대중이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결국 교양과 학습의 부족이었다.
정대연 하반기에 파병반대 투쟁이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 강력한 투쟁 지도부와 동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투쟁동력은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준비해야 하는데 하반기에는 학생 선거 등 투쟁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학생이 안 움직인 것이 아니라 민중연대가 지도부였는데 이런 상황에 맞는 방침을 제때 제출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제출된 투쟁방침도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나로 모아서 더욱 큰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진되는 형태였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파병에 대한 반대의 입장은 있었지만 그 입장을 대중의 정서에 맞는 감성적 분노로 만들어 나가는데 실패했다. 전술 개발 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
끝으로 반전운동이 사안을 뛰어넘어 지속 가능한 반전운동의 전략 모색과, 운동의 성과를 축적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판단이 안이했다”
정대연 반전평화운동 평가는 이 정도로 하고 노동자투쟁 쪽으로 방향을 옮겨보자. 먼저 김태연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말해달라
김태연 아까 미국과 관련된 얘기, 즉 지배세력 내에서 노무현 정부가 자기 세력을 복구하는 문제, 거기부터 이어 볼 필요가 있다. 3, 4월부터 친미관계를 복원하고 국내에서 내부문제와 관련된 관계를 복구하는 속도와 그에 따른 민중세력에 대한 탄압이 상관관계에 있다. 3, 4월 두 달간 노무현 정부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고 표현하는 그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 노정합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론이 나기 전부터 정부 내에서는 이미 신자유주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의 기본 논리를 가지고 정책들이 계속 개발되어 왔다.
3,4월이 지나고 나서 현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과의 관계 복원을 위해 1차적 공격목표가 된 것이 노동운동세력이었다. 각종 합의가 파기되고 철도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노동은 1차적인 공격을 받았고, 5, 6월을 거치며 노동운동은 고립됐다. 아직 시민사회에서는 노무현의 개혁적 이미지가 남아있었고, 노동운동은 탄압받으면서도 노동운동=집단이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받으며 고립됐다. 하반기 들면서는 도처에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분신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부적으로 보면 대중은 힘찬 투쟁을 했지만 전선의 구축에는 실패했다. 이 NEIS, 화물, 청도투쟁들이 모여서 상반기 정도에 노 정권에 대한 투쟁전선을 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상반기에 민주노총이 안이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총연맹 내부에 조합원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과연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올 것인가, 조합원이 투쟁에 지쳐있다는 내부적 진단이 상당히 있었다.
하반기 투쟁에서는 총파업 여부를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투쟁을 해보자는 안이 상정이 됐다. 조합원 총투표를 해서 투쟁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판단하자고. 결과적으로 조합원 총투표는 무산됐다. 이게 9월이다. 정권의 총체적 탄압이 거세지고, 조합원 총투표 무산되고, 그래서 현장에서 각 사업장별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연이은 죽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흥식 전농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박흥식 민주노총한테 할 얘기가 많다. 각 연맹별 사업장별 문제가 많았긴 하지만 민주노총 중심으로 돌파할 역량을 결집 못시킨 건 중앙이 준비된 투쟁으로 끌고가는 게 아니라 상황이 터졌을 때 사안별로 수습에 급급하며 대중을 이끌지 못한 탓이다. 올해 민주노총의 투쟁을 봤을 때 한번에 폭발시켜 전 국민적으로 쐐기를 박는 투쟁전선을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못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농민 또한 한칠레 싸움, WTO 등 현 정부의 개방정책을 꺾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 스스로 굳건한 정치적 역량으로 설 때 만 가능하다. 민주노총과 전농이 정확한 대안과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서 현정권의 한계를 대신할 지도력을 가져간다면 하반기에 큰 투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농민운동에서도 조직의 하급단위가 교양되지 않으면 지도가 먹히지 않는다. 민주노총도 조합원들의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스스로 매몰될 수밖에 없기에, 기층부터 힘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노회찬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 친노동자적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도 기대를 많이 가졌다. 보수적 정권은 노동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하위구조로 존재한다. 노 대통령의 후보시절 경제정책을 보면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고 김영삼, 김대중을 이어온 성실한 계승자다. 이미지와 정책은 애초부터 달랐다. 초기부터 강경일변도의 노동정책을 펼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뼈저리게 느낀 것이 이데올로기적 대응이다. 노동귀족론, 연봉5천만원 등 실제 운동에 타격을 주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많았는데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는 저소득층 비정규직에 훨씬 침투효과가 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소득계층별 지지도 보면 월 소득이 100~200만원인 계층보다 100만원 이하인 계층의 지지도가 훨씬 낮다. 비정규직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반감이 많다. 이건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반응이라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다음으로 총파업 투쟁에 대해 말하고 싶다. 거칠게 말하면 총파업이 남발되고 있는 건 아닌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보면 ‘파업할 수 있나, 아닌가’ 많은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파업하니까 전국이 마비되었다. 그 힘이 교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의 총파업은 파업에 힘이 실리지 않아 성과는 적고 역풍은 굉장히 크다. 파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파업은 더 해야하는데 역량을 타산해서 총파업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현실적 판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이다. 비정규직은 이미 50%를 넘어 60%에 육박하는데 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노동자 중심이라는 운동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에만 짐을 지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민주노총이 핵심적 대중조직인 만큼 좀더 과감하게 비정규직을 운동으로 끌어들이고 진정한 대표자 대표체로서 위상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부와 자본가로부터만 버림받은 게 아니라 운동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걸 인정하면서 그 위에서 대책 강구해야 한다.
김태연 이 부분은 정확히 얘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이나 기자회견이나 하여튼 바깥으로 내보이는 데 있어서 비정규직 문제는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뭐가 잘 안된다.
총파업도 그렇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으면 그 노동자의 주장과 대의는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여기에도 힘의 논리가 그대로 녹아난다. 다른 투쟁방식이 없다는 거다.
총파업 제대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70만 조합원이 한날 한시에 들고일어나는 파업은 기업별 노조체계하의 민주노총에서는 어렵다. 2~3년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말은 좋다, 하지만 공기업 등 단위별 사안이 계속 몰아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파업을 안할 수 있나.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핵심은 민노총을 노사정 위원회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올해 못했지만 내년에도 또 시도할 것이다. 사실 우리 내부에는 이 문제에 대해 혼란이 있다. 마치 노사정 위원회 등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면 어려움이 돌파될 것 같다는 편향이 있다. 이 때문에 투쟁전선을 강고하게 구축하는데 혼란이 있다. 이런 편향이 극복되어야 한다.
노회찬 실제로 기업별 노조인 현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투쟁의 문제는 조직의 문제와 같이 봐야한다. 500인 이상 사업장 중 노조 없는 데가 없다. 그럼에도 1400만 중 70만, 조직율이 간신히 10%밖에 안되는 이유는 영세사업장이 조직화되지 않아서이다.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총 인원수는 나머지보다 많다. 이 부분에 대해 민주노총이 자기 방침으로 정립하고 있는 산별노조가 해답이다.
예컨대 보건의료노조 같은 경우 빨리 산별 노조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주축인 사업장은 큰 대학노조 병원이다. 병원노동자 다수는 1,2명 있는 개인병원이 수적으로 훨씬 많다. 교섭력이 크려면 한 두 명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한 두명 있는데 조직하는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는 것과 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형식적 산별이 아니라 진정한 산별이 건설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상층에서 노사정위원회 들어가면 말짱 ‘꽝’이다. 노사정위원회건 뭐건 결국 힘과 힘의 대결 아닌가.
정대연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민주노총의 투쟁이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더욱더 공고하게 만드는 전략 위에서 움직인다기보다 자기 사안을 해결하는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실제로 시민단체 등에서 나온다. 결국 노동운동이 국민적 사회적 지지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하고 책임있는 답변이 필요하지 않나. 과연 민노총이 농민, 빈민을 묶어 세우기 위한 자기 계획이 있는가하는 부분도 돌아봐야 한다.
정대연 이제 농민운동 쪽으로 옮겨보자.
박흥식 WTO, DDA의 진행과정에서 한칠레 FTA가 배치됐다. 이것은 농업몰락의 길이기 때문에 결코 질 수 없는 중심고리이며 또 농민의 현실적 요구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농민운동을 탄압으로 막으면서 농업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고 구조조정 하겠다는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구조조정하는 속에서 전문화, 전업화, 전업농을 중심 으로 갈 전망이다. 결국 소규모로 자기 삶을 유지해왔던 농민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 한해는 한칠레 FTA를 중심으로 밀고 갔던 것이다.
DDA협상의 본질적 문제가 결국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국민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또 이경해 열사가 자결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솔직히 역량의 한계였으며 또 준비도 미비했다.
농민운동은 2월 14일 투쟁, 4월에 벌어진 25일간 릴레이 국회 앞 천막농성, 6월 말 한강 고공시위 또 고속도로 진입투쟁, 지도부의 단식농성이 있었고, 하반기에 오면서 상당히 극단적인 투쟁으로 발전돼왔다. 그 결과 FTA는 내년으로 유보시켰다. 하지만 현재 농민투쟁은 극단적 고립상태다. 이기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도 내재해있다.
당면 현안 문제는 활동가 중심이 아닌 농민대중, 전국민적 투쟁으로 승화 못 시키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한칠레FTA를 전반 사회 문제로 승화시키면서 2004년 투쟁을 쌀 재협상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 주권 문제와 시민단체까지 망라한 투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과제다.
"FTA 연기해낸 성과있지만 노농연대 등에서 한계 있었다"
노회찬 WTO를 체결한 게 만 10년이 되었다. 사실 지난 10년 정권들의 농업정책은 농업 죽이기 정책이었다. 말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개방압력이라 하지만 지난 10년간 농민들 피해 보지 않을 방법이 충분히 마련됐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지금껏 왔다. 그럼 우리 운동은 지난 10년간 뭐했냐. 국민들에게 FTA 협정 체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지 못했다. 개방압력 속에서 우리 농업을 어떻게 살리냐 하는 마스터플랜이 전농에는 있다고 보는데 이걸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농업의 의미는 뭐냐, 제대로 된 사회에서 농업과 농민은 어떠해야 하나, 쌀의 의미는 뭐냐, 그런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
국회는 지금 표를 놓고 도농이 대립하고 있다. 극우 보수파들도 자신이 농촌출신이면 나서서 비준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웃기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 속에서 개방은 안 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인식도 꽤 많다. 농민운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농업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 국민 공감대와 지지세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연 비단 ‘농업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노동자들이 이해가 부족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FTA 전반에 대해, WTO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기본적인 교육선전이 상당히 필요하다. 원체 어려운 부분이다. 노동자들 속에서 이게 어떻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에 대해서 상당히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결국 농민만 싸우게 된다. 지금 현장에는 자본의 논리가 알게 모르게 파고들어 있다. 농민들은 죽어라 싸우는데도 노동자들이 잘 안 나서는 이유다.
박흥식 성과적인 평가도 해야 한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FTA투쟁이 전농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이경해 열사 이후로 농민연대를 결성하는 큰 성과를 낳았다. 사실 전농 외 나머지 농민단체는 ‘WTO는 인정하는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자’는 수준이었지만, 이 단체들이 칸쿤 투쟁 이후 WTO를 반대하고 FTA의 본질을 바라보며 공동으로 전선을 꾸린 것은 향후를 생각해서도 큰 성과다.
정대연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보자. 농민연대 중심으로 한칠레 FTA반대 투쟁을 벌여왔는 데, 농민 투쟁 동력을 극대화했다는 성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 측면으로는 노농연대가 어려워진 점이 있다. 예컨대 민중연대로의 결합력도 떨어졌다. 결국은 국민적 공감을 확산시키기보단 농민들만의 투쟁으로 되었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농민연대라는 방식은 옳았지만 노농을 중심으로 한 민중연대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박흥식 인정한다.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 올해 투쟁은 긴박했고, FTA 문제에 대처하는 폭이 협소했다. 민중연대 강화에 일정정도 제약이 있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후 더 큰 힘으로 민중연대에 결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노회찬 전농이 농민연대 사업에 집중하면서 민중연대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농민연대를 만든 것이 맞다. 노농연대 강화 등은 차후에 논의할 문제이다. 부안의 경우를 봐도 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엔 민주노동당이고 뭐고 누구와도 손 잡는다. 나름대로 농민운동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있어 그럴지 몰라도 더 투쟁하다보면 뜻을 같이 하는 다른 부문에 대해서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앞으로 가능하지 않겠나.
정대연 2003년 농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 셈이다. 이제 정치운동은 어떠했는지 짚어보자.
“노무현 정부는 정치개혁을 당리당략으로 바라보고 있다”
노회찬 노 정권이 그나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정치개혁이다. 그러나 이젠 어려울 것 같다. 노무현은 정치개혁에 대해 철학이나 비전이 없고 단지 당리당략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혹은 열린우리당의 득세가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석을 더 얻을 방법만 고민한다. 이게 정치개혁이냐.
어느 때 보다 국민들의 열망이 있고 엄호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등과 함께 장기간 정치 협상으로 만든 방안조차 열린우리당이 거부하는 바람에 개혁전선이 굉장히 급속도로 분열됐다. 노정권은 더 이상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은 힘의 한계나 역량의 한계는 있다. 다만 아직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어떤 식으로 정치개혁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시민단체와 거의 의견을 모아내는 성과가 있었다. 이제 진보진영과 시민단체가 의견이 달라 함께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내부적인 평가도 말해보겠다. 작년에 큰 선거 두 개 치렀던 것보다 민주노동당은 올 한 해 더 정신없이 보냈다. 다만 당 내부로 보면 사업의 집중에 실패했다. 어차피 역량 상 다 잘할 수 없다면 진보정당 특유의 사업작풍으로 밀고 나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나는 이라크 파병문제등 민족문제, 하나는 부유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고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관련문제였다. 이것은 지난 대선에도 높은 지지도 얻었던 부분이다. 민주노동당의 힘을 이 두가지로 집중하는데 실패했다. 백화점식으로 거의 대부분 제기되는 투쟁에 일일이 다 결합하다보니 투쟁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나, 성과 만드는데는 문제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올해 긍정적 평가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소소한 주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학교 급식 조례 제정이다. 민주노동당으로선 중요한 실험이었다. 현재 지방의회, 광역의회에 진출한 의원이 굉장히 적다. 많아야 1,2명이다. 하지만 의원들의 활동을 의원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지구당 차원의 대중운동으로 만들고 이를 의회로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진보정당 특유의 사업작풍의 정형을 만든 모델이라는 데서 중요하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징적 의미도 크다.
김태연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정경유착, 부정부패에 대해 올해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민중진영이 국외자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의석이 하나도 없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양대 선거가 있었던 지난 해에 비해 올해는 공백처럼 느껴졌다. 노동자 입장에서 바램이라면 바램인데, 노동운동이 어려운 한해였는데 이럴 때 제도 정치권 진입 못하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뭔가 정치적 엄호가 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회의원 없는 건 다 알지만 지난번 열사정국 때 민주노동당 주요 지도부가 뭔가 한 사람 구속될 정도의 긴박한 마음가짐으로 투쟁해줘야 하지 않나. 노동조합 텐트 옆에 텐트 하나 쳐놓는 그런 점에서 조합원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제도 정치권 진출을 위해 싸워야 하기도 하지만 11월 같은 때 당원 총궐기 대회 같은 걸 한번 열어줬으면 한다.
박흥식 정치세력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큰 과제이다. 민주노동당이 전체 당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사업이 중요하다. 문제점을 하나 지적하자면 숲을 못보고 나무 중심의 사업이 많은 것 같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개혁은 자기 철학 없이 즉흥적 대응에 그칠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심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여야가 없는 현 정국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내년 총선에서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대중을 책임지기 위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계기다.
노회찬 전농이 정치세력화를 결의하며 민주노동당과 함께 가기로 한 결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창당에 맞먹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띤다. 내년 총선의 큰 구도는 진보 대 보수가 될 것이다. 1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어오면서 이미 철저한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다. 총선을 대비한 투표전략을 따로 마련할 것이 아니라 최근의 싸움을 정치적으로 총화하는 것을 선거로 바라보고 있다.
부안, 새만금, 노동법 개악, 비정규직, 손배가압류, 소파, 이라크파병 등 이런 모든 문제를 총화해서 국민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투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운동기간 좋은 얘기보다 1,2 월 어떻게 잘 싸우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당보다 빠르게 12월에 선대위를 준비한 것도 그런 뜻이고, 1월 벽두부터 그런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정대연 이제 마무리해 보자.
노회찬 나는 민중연대가 각 부문 투쟁의 총화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치피 대중조직이나 정치조직이 조건은 다르지만 핵심적인 과제와 전략적 대응에 관해서는 합의수준을 훨씬 높여야 한다. 공동의 투쟁과정으로 가야지 품앗이하듯 서로 서로 지원해주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평면적 연대를 넘어서 전략적 입체화를 더 높여내어야 한다.
김태연 금년이 노정권 1년차인데 신자유주의 세계화 대 민중진영의 힘겨루기가 많았다. 과제는 쌍방간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상대도 분명해졌고, 내년에 각 노동, 농민 등 각 부분이 잘 해서 민중연대로 모아가야 한다. 민중연대가 아무래도 지도부인데, 올해 민중연대 본조직을 만든 것 치고는 잘 안됐다.
민중연대에서 2003년 연초에는 년말 30만 총궐기를 하자는 계획도 있었는 데 결국 말로 그쳤다. 내년엔 한판 투쟁이 불가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내년에 전초전을 총선에서 치르고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박흥식 어차피 노정권의 한계는 정확히 인식되었다. 계속적으로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의 경제침탈과 농업개방 압력이 거세질텐데 현 정부에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과제이다. FTA 비준도 내년에 본회의 임시국회로 넘어가 미완으로 남아있다. 내년 쌀 재협상까지 바라보면 이런 문제를 돌파하면서 노,농,청년학생 공동 투쟁전선을 꾸려야 한다.
정대연 금년은 반전평화투쟁, 반미투쟁,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투쟁 등 쉴새없이 싸워온 한 해였다. 문제는 정권은 강력하게 뭉치는 반면 민중부분 투쟁은 발전되지 못한 것이다. 민중연대가 뭐하는 곳인가, 정체성은 뭔가, 민중연대 답게 투쟁한다는 것은 뭔가가 명확하지 못했다. 연대의 전망을 세우고 일관된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2004년은 승리하는 한해로 맞이했으면 한다. 장시간 고생하셨다.
이정무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1-2-04]

흔히 미국, 국내 보수 정치세력, 총자본으로 설명되는 이 사회의 지배층이 대선을 끝내고 나서 빠르게 다시 뭉친 반면, 민중운동 진영은 지배층의 단결 속도에 비해 늦게 투쟁에 나섰으며, 또 계급계층별로 각개 약진하는 데 그쳐 싸움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아래는 좌담의 전문이다.
정대연 지금부터 민중의 소리가 주최하는 2003년 민중운동 결산 좌담회를 시작하겠다.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김태연 올해 가장 큰 사회적 정치적 화두는 노무현 정부 출범에 따라 이 정부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는 노무현 정부와의 정면대결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1월 9일 배달호 열사의 분신이 의미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이어받은 김대중 정부 5년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이것은 노무현 정권이 안고 출발한 과제였다.
결국 노무현 정권 1년이 채 못된 지금까지 4명의 노동자가 분신 혹은 자결을 하는 상황이 나타났고, 이것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노무현 정부의 반 노동자, 반 민중적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회찬 실제로 어느 해보다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에게 힘든 한해였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만 보더라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숨겨갔고, 농민도 멕시코에서 자살하고, 농약먹고 자결한 농민도 100여명이 넘고, 도시빈민들도 아이들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하고 지하철에서 목숨 끊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가 특별한 한해였는가? 내년에는 그렇지 않고 올해만 이런, 특별한 한 해였다면 좋겠는데, 냉정하게 평가하면 올해가 보편적인 한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은 신자유주의, 돌이켜 볼 때 노태우 정권 때부터 제도화되고 더 강력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병폐가 10여년 누적된 결과가 올해 드러난 것이다. 이 점에서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올바른 것이었는가, 적절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하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으로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저지시키는데 많은 노력은 해 왔지만, 그것이 정확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전략적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정대연 투쟁으로 날이 새고 투쟁으로 날이 지는 일년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중의 운명은 더 이상 어떤 것에도 기대할 수 없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정치권,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데, 이런 격동의 시대를 열어야 할 운동진영은 올바른 시대정신과 정확한 전략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럼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면화 되면서 이를 물리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였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것과 연동해서 미국의 전쟁을 추종하고, 이로 인해 지난해 촛불시위로 타올랐던 민족자주의 열망이 퇴색했다. 올 3월부터 시작했던 파병반대 운동, 미선이 효순이 1주기 추모 등 올 한해 진행됐던 반미반전운동 평가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 이후 지배세력의 단결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노회찬 의정부 여중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대단히 불행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반외세 반미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연 사건이다. 70프로 정도에 이르는 다수의 국민들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의식을 갖게 된 것도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반미의식의 표현이다.
다만 한가지 지적할 부분은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6-70% 이르는 국민이 파병을 반대하고 있고,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아도 지금까지 어떤 서명운동보다도 호응이 좋다. 서명하는 계층, 세대도 굉장히 넓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투병 파병 반대운동 운동으로 확산이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반성이 된다. 사안 사안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미국을 막아내는 사회적 목표, 즉 마스터플랜을 짜서 대중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적 영역에 대한 접근이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문화영역, 철학, 종교에서도 미국의 영향이 굉장히 많이 침투해 있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의 문화와 정치의식 사이에 모순이 상당한 수준이다.
△김태연 민주노총 정책실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김태연 작년 대선 당시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 투쟁에 편승해서 출발한 것이 노무현 정부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관계에서도 개혁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5월 방미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4, 5월 가면서 노동정책에서도 이러한 역전현상이 나타났는데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 문제를 토론해 본 적이 있다.
이 토론에서 나온 말인데 대선 과정이라는 것이 지배층 내에서의 권력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배층에는 노무현 파가 있고, 한나라 당이 있고, 조중동 등 수구보수 언론 있고, 미국이 있다. 대선이라는 내부 권력투쟁에서 이들 사이에 이완이 일어났다고 본다. 참여정부는 출범 후에 이러한 이완을 신속하게 복구하는 과정을 밟았다. 그 시작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부터다. 이건 노무현 정권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은 아니고 90년대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노무현 정권도 여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상반기 파병반대투쟁에서 노동조합 수준에서는 상당히 열심히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3, 4000정도의 간부들이 반전평화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도 이 땅도 아닌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가지고 국회 앞에서 투쟁한 것은 정말 대단했다. 조합원의 대중적 의식화에도 상당히 진전이 있었다. 한계가 있다면 아직 대중을 직접 행동으로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상반기에는 파병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비해서 훨씬 못 미치게 투쟁했다. 이건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그렇다. 각계각층이 작년 말 촛불시위에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상반기 파병반대 투쟁만큼의 역량도 집결시키지 못했다. 이 원인에 대해서 꼼꼼하게 되짚어봐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박흥식 기득권 세력이 국익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반전평화라는 구호로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 본질적인 구호, 준비된 투쟁을 했어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강제적 침탈이 자행되며 긴밀하고 긴장감 있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일하게 대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 문제 해결 방법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정대연 얘기나온 김에 연관된 부분까지 마무리를 짓자. 어려운 얘기일지 모르겠는데 ‘김대중 정부는 한계는 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상대적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파병 명분으로 한반도 평화를 운운했지만 대북정책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김태연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노무현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이나 친미정권으로, 미국과의 관계에 변화가 없다. 정확한 표현으로 올해와 예년의 차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했다면 김대중정부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도 기본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전략 하에서 움직였다. 김대중 정부를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남북문제를 보는 데서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박흥식 김대중 정권의 성과라고 할 6.15공동선언은 우리의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에는 철학적인 원칙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하기보다 미국의 변화된 입장에 맞춰나가는 형국이다.
반미운동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대연 다시 돌아가보자. 반미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데는 다들 공감한다. 이런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실천으로 나아가는데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집중해보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노회찬 현장에서 확인된 바로는, 분명히 파병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서명까지는 하는데 주말에 집회는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결국 서명보다는 높고 집회보다는 낮은 행동지침을 만들어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민투표였는데, 물론 국민투표만이 해결방안이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것도 잘 되지 않았다.
김태연 하반기 투쟁이 잘 안됐는데 솔직히 상반기까지 했던 수준의 투쟁조차 안됐다. 운동내부의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 노동탄압을 받으며 반전평화 투쟁과 결합을 노리긴 했다. 광화문 시위, 농성같은 경우 상당히 의의를 뒀다.
광화문에서 처음 시작은 수백부터 시작해서 수천 정도의 간부들, 노,농,빈,청년학생이 광화문에 농성판을 벌이고 전국으로 전파하자. 그 속에서 노무현의 노동탄압을 알려내고 그 속에서 농민들의 주장도 알려내자는 계획이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총파업 투쟁의 동력이 떨어진 시점에서 제안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간부들이 광화문에 집결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민중연대 차원의 세밀한 구상이 부족했다고 본다.
노동자, 농민, 학생이 광화문에서 뭘 어떻게 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다른 말로 판이 보여야 대중의 몸이 따라가는데, 이게 안되었다. 간부들이 움직이지 않는데 대중이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전술적인 점에서 엄청나게 많이 부족했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 때문에 하반기 투쟁이 기본도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흥식 농민진영은 한칠레 FTA 반대투쟁을 농민연대가 받아안고 줄기차게 투쟁했는데, 농민 현안 문제를 넘어 이라크 파병 등 민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언론을 통해 분위기 띄우고 대중이 참여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가능하지만 이후에는 조직화된 대중이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결국 교양과 학습의 부족이었다.
정대연 하반기에 파병반대 투쟁이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 강력한 투쟁 지도부와 동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투쟁동력은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준비해야 하는데 하반기에는 학생 선거 등 투쟁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학생이 안 움직인 것이 아니라 민중연대가 지도부였는데 이런 상황에 맞는 방침을 제때 제출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제출된 투쟁방침도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나로 모아서 더욱 큰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진되는 형태였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파병에 대한 반대의 입장은 있었지만 그 입장을 대중의 정서에 맞는 감성적 분노로 만들어 나가는데 실패했다. 전술 개발 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
끝으로 반전운동이 사안을 뛰어넘어 지속 가능한 반전운동의 전략 모색과, 운동의 성과를 축적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판단이 안이했다”
정대연 반전평화운동 평가는 이 정도로 하고 노동자투쟁 쪽으로 방향을 옮겨보자. 먼저 김태연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말해달라
김태연 아까 미국과 관련된 얘기, 즉 지배세력 내에서 노무현 정부가 자기 세력을 복구하는 문제, 거기부터 이어 볼 필요가 있다. 3, 4월부터 친미관계를 복원하고 국내에서 내부문제와 관련된 관계를 복구하는 속도와 그에 따른 민중세력에 대한 탄압이 상관관계에 있다. 3, 4월 두 달간 노무현 정부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고 표현하는 그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 노정합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론이 나기 전부터 정부 내에서는 이미 신자유주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의 기본 논리를 가지고 정책들이 계속 개발되어 왔다.
3,4월이 지나고 나서 현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과의 관계 복원을 위해 1차적 공격목표가 된 것이 노동운동세력이었다. 각종 합의가 파기되고 철도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노동은 1차적인 공격을 받았고, 5, 6월을 거치며 노동운동은 고립됐다. 아직 시민사회에서는 노무현의 개혁적 이미지가 남아있었고, 노동운동은 탄압받으면서도 노동운동=집단이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받으며 고립됐다. 하반기 들면서는 도처에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분신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부적으로 보면 대중은 힘찬 투쟁을 했지만 전선의 구축에는 실패했다. 이 NEIS, 화물, 청도투쟁들이 모여서 상반기 정도에 노 정권에 대한 투쟁전선을 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상반기에 민주노총이 안이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총연맹 내부에 조합원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과연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올 것인가, 조합원이 투쟁에 지쳐있다는 내부적 진단이 상당히 있었다.
하반기 투쟁에서는 총파업 여부를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투쟁을 해보자는 안이 상정이 됐다. 조합원 총투표를 해서 투쟁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판단하자고. 결과적으로 조합원 총투표는 무산됐다. 이게 9월이다. 정권의 총체적 탄압이 거세지고, 조합원 총투표 무산되고, 그래서 현장에서 각 사업장별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연이은 죽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흥식 전농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박흥식 민주노총한테 할 얘기가 많다. 각 연맹별 사업장별 문제가 많았긴 하지만 민주노총 중심으로 돌파할 역량을 결집 못시킨 건 중앙이 준비된 투쟁으로 끌고가는 게 아니라 상황이 터졌을 때 사안별로 수습에 급급하며 대중을 이끌지 못한 탓이다. 올해 민주노총의 투쟁을 봤을 때 한번에 폭발시켜 전 국민적으로 쐐기를 박는 투쟁전선을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못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농민 또한 한칠레 싸움, WTO 등 현 정부의 개방정책을 꺾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 스스로 굳건한 정치적 역량으로 설 때 만 가능하다. 민주노총과 전농이 정확한 대안과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서 현정권의 한계를 대신할 지도력을 가져간다면 하반기에 큰 투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농민운동에서도 조직의 하급단위가 교양되지 않으면 지도가 먹히지 않는다. 민주노총도 조합원들의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스스로 매몰될 수밖에 없기에, 기층부터 힘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노회찬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 친노동자적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도 기대를 많이 가졌다. 보수적 정권은 노동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하위구조로 존재한다. 노 대통령의 후보시절 경제정책을 보면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고 김영삼, 김대중을 이어온 성실한 계승자다. 이미지와 정책은 애초부터 달랐다. 초기부터 강경일변도의 노동정책을 펼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뼈저리게 느낀 것이 이데올로기적 대응이다. 노동귀족론, 연봉5천만원 등 실제 운동에 타격을 주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많았는데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는 저소득층 비정규직에 훨씬 침투효과가 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소득계층별 지지도 보면 월 소득이 100~200만원인 계층보다 100만원 이하인 계층의 지지도가 훨씬 낮다. 비정규직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반감이 많다. 이건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반응이라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다음으로 총파업 투쟁에 대해 말하고 싶다. 거칠게 말하면 총파업이 남발되고 있는 건 아닌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보면 ‘파업할 수 있나, 아닌가’ 많은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파업하니까 전국이 마비되었다. 그 힘이 교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의 총파업은 파업에 힘이 실리지 않아 성과는 적고 역풍은 굉장히 크다. 파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파업은 더 해야하는데 역량을 타산해서 총파업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현실적 판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이다. 비정규직은 이미 50%를 넘어 60%에 육박하는데 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노동자 중심이라는 운동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에만 짐을 지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민주노총이 핵심적 대중조직인 만큼 좀더 과감하게 비정규직을 운동으로 끌어들이고 진정한 대표자 대표체로서 위상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부와 자본가로부터만 버림받은 게 아니라 운동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걸 인정하면서 그 위에서 대책 강구해야 한다.
김태연 이 부분은 정확히 얘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이나 기자회견이나 하여튼 바깥으로 내보이는 데 있어서 비정규직 문제는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뭐가 잘 안된다.
총파업도 그렇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으면 그 노동자의 주장과 대의는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여기에도 힘의 논리가 그대로 녹아난다. 다른 투쟁방식이 없다는 거다.
총파업 제대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70만 조합원이 한날 한시에 들고일어나는 파업은 기업별 노조체계하의 민주노총에서는 어렵다. 2~3년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말은 좋다, 하지만 공기업 등 단위별 사안이 계속 몰아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파업을 안할 수 있나.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핵심은 민노총을 노사정 위원회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올해 못했지만 내년에도 또 시도할 것이다. 사실 우리 내부에는 이 문제에 대해 혼란이 있다. 마치 노사정 위원회 등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면 어려움이 돌파될 것 같다는 편향이 있다. 이 때문에 투쟁전선을 강고하게 구축하는데 혼란이 있다. 이런 편향이 극복되어야 한다.
노회찬 실제로 기업별 노조인 현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투쟁의 문제는 조직의 문제와 같이 봐야한다. 500인 이상 사업장 중 노조 없는 데가 없다. 그럼에도 1400만 중 70만, 조직율이 간신히 10%밖에 안되는 이유는 영세사업장이 조직화되지 않아서이다.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총 인원수는 나머지보다 많다. 이 부분에 대해 민주노총이 자기 방침으로 정립하고 있는 산별노조가 해답이다.
예컨대 보건의료노조 같은 경우 빨리 산별 노조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주축인 사업장은 큰 대학노조 병원이다. 병원노동자 다수는 1,2명 있는 개인병원이 수적으로 훨씬 많다. 교섭력이 크려면 한 두 명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한 두명 있는데 조직하는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는 것과 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형식적 산별이 아니라 진정한 산별이 건설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상층에서 노사정위원회 들어가면 말짱 ‘꽝’이다. 노사정위원회건 뭐건 결국 힘과 힘의 대결 아닌가.
정대연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민주노총의 투쟁이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더욱더 공고하게 만드는 전략 위에서 움직인다기보다 자기 사안을 해결하는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실제로 시민단체 등에서 나온다. 결국 노동운동이 국민적 사회적 지지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하고 책임있는 답변이 필요하지 않나. 과연 민노총이 농민, 빈민을 묶어 세우기 위한 자기 계획이 있는가하는 부분도 돌아봐야 한다.
정대연 이제 농민운동 쪽으로 옮겨보자.
박흥식 WTO, DDA의 진행과정에서 한칠레 FTA가 배치됐다. 이것은 농업몰락의 길이기 때문에 결코 질 수 없는 중심고리이며 또 농민의 현실적 요구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농민운동을 탄압으로 막으면서 농업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고 구조조정 하겠다는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구조조정하는 속에서 전문화, 전업화, 전업농을 중심 으로 갈 전망이다. 결국 소규모로 자기 삶을 유지해왔던 농민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 한해는 한칠레 FTA를 중심으로 밀고 갔던 것이다.
DDA협상의 본질적 문제가 결국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국민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또 이경해 열사가 자결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솔직히 역량의 한계였으며 또 준비도 미비했다.
농민운동은 2월 14일 투쟁, 4월에 벌어진 25일간 릴레이 국회 앞 천막농성, 6월 말 한강 고공시위 또 고속도로 진입투쟁, 지도부의 단식농성이 있었고, 하반기에 오면서 상당히 극단적인 투쟁으로 발전돼왔다. 그 결과 FTA는 내년으로 유보시켰다. 하지만 현재 농민투쟁은 극단적 고립상태다. 이기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도 내재해있다.
당면 현안 문제는 활동가 중심이 아닌 농민대중, 전국민적 투쟁으로 승화 못 시키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한칠레FTA를 전반 사회 문제로 승화시키면서 2004년 투쟁을 쌀 재협상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 주권 문제와 시민단체까지 망라한 투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과제다.
"FTA 연기해낸 성과있지만 노농연대 등에서 한계 있었다"
노회찬 WTO를 체결한 게 만 10년이 되었다. 사실 지난 10년 정권들의 농업정책은 농업 죽이기 정책이었다. 말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개방압력이라 하지만 지난 10년간 농민들 피해 보지 않을 방법이 충분히 마련됐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지금껏 왔다. 그럼 우리 운동은 지난 10년간 뭐했냐. 국민들에게 FTA 협정 체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지 못했다. 개방압력 속에서 우리 농업을 어떻게 살리냐 하는 마스터플랜이 전농에는 있다고 보는데 이걸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농업의 의미는 뭐냐, 제대로 된 사회에서 농업과 농민은 어떠해야 하나, 쌀의 의미는 뭐냐, 그런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
국회는 지금 표를 놓고 도농이 대립하고 있다. 극우 보수파들도 자신이 농촌출신이면 나서서 비준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웃기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 속에서 개방은 안 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인식도 꽤 많다. 농민운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농업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 국민 공감대와 지지세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연 비단 ‘농업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노동자들이 이해가 부족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FTA 전반에 대해, WTO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기본적인 교육선전이 상당히 필요하다. 원체 어려운 부분이다. 노동자들 속에서 이게 어떻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에 대해서 상당히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결국 농민만 싸우게 된다. 지금 현장에는 자본의 논리가 알게 모르게 파고들어 있다. 농민들은 죽어라 싸우는데도 노동자들이 잘 안 나서는 이유다.
박흥식 성과적인 평가도 해야 한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FTA투쟁이 전농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이경해 열사 이후로 농민연대를 결성하는 큰 성과를 낳았다. 사실 전농 외 나머지 농민단체는 ‘WTO는 인정하는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자’는 수준이었지만, 이 단체들이 칸쿤 투쟁 이후 WTO를 반대하고 FTA의 본질을 바라보며 공동으로 전선을 꾸린 것은 향후를 생각해서도 큰 성과다.
정대연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보자. 농민연대 중심으로 한칠레 FTA반대 투쟁을 벌여왔는 데, 농민 투쟁 동력을 극대화했다는 성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 측면으로는 노농연대가 어려워진 점이 있다. 예컨대 민중연대로의 결합력도 떨어졌다. 결국은 국민적 공감을 확산시키기보단 농민들만의 투쟁으로 되었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농민연대라는 방식은 옳았지만 노농을 중심으로 한 민중연대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박흥식 인정한다.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 올해 투쟁은 긴박했고, FTA 문제에 대처하는 폭이 협소했다. 민중연대 강화에 일정정도 제약이 있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후 더 큰 힘으로 민중연대에 결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노회찬 전농이 농민연대 사업에 집중하면서 민중연대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농민연대를 만든 것이 맞다. 노농연대 강화 등은 차후에 논의할 문제이다. 부안의 경우를 봐도 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엔 민주노동당이고 뭐고 누구와도 손 잡는다. 나름대로 농민운동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있어 그럴지 몰라도 더 투쟁하다보면 뜻을 같이 하는 다른 부문에 대해서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앞으로 가능하지 않겠나.
정대연 2003년 농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 셈이다. 이제 정치운동은 어떠했는지 짚어보자.
“노무현 정부는 정치개혁을 당리당략으로 바라보고 있다”
노회찬 노 정권이 그나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정치개혁이다. 그러나 이젠 어려울 것 같다. 노무현은 정치개혁에 대해 철학이나 비전이 없고 단지 당리당략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혹은 열린우리당의 득세가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석을 더 얻을 방법만 고민한다. 이게 정치개혁이냐.
어느 때 보다 국민들의 열망이 있고 엄호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등과 함께 장기간 정치 협상으로 만든 방안조차 열린우리당이 거부하는 바람에 개혁전선이 굉장히 급속도로 분열됐다. 노정권은 더 이상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은 힘의 한계나 역량의 한계는 있다. 다만 아직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어떤 식으로 정치개혁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시민단체와 거의 의견을 모아내는 성과가 있었다. 이제 진보진영과 시민단체가 의견이 달라 함께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내부적인 평가도 말해보겠다. 작년에 큰 선거 두 개 치렀던 것보다 민주노동당은 올 한 해 더 정신없이 보냈다. 다만 당 내부로 보면 사업의 집중에 실패했다. 어차피 역량 상 다 잘할 수 없다면 진보정당 특유의 사업작풍으로 밀고 나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나는 이라크 파병문제등 민족문제, 하나는 부유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고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관련문제였다. 이것은 지난 대선에도 높은 지지도 얻었던 부분이다. 민주노동당의 힘을 이 두가지로 집중하는데 실패했다. 백화점식으로 거의 대부분 제기되는 투쟁에 일일이 다 결합하다보니 투쟁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나, 성과 만드는데는 문제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올해 긍정적 평가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소소한 주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학교 급식 조례 제정이다. 민주노동당으로선 중요한 실험이었다. 현재 지방의회, 광역의회에 진출한 의원이 굉장히 적다. 많아야 1,2명이다. 하지만 의원들의 활동을 의원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지구당 차원의 대중운동으로 만들고 이를 의회로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진보정당 특유의 사업작풍의 정형을 만든 모델이라는 데서 중요하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징적 의미도 크다.
김태연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정경유착, 부정부패에 대해 올해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민중진영이 국외자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의석이 하나도 없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양대 선거가 있었던 지난 해에 비해 올해는 공백처럼 느껴졌다. 노동자 입장에서 바램이라면 바램인데, 노동운동이 어려운 한해였는데 이럴 때 제도 정치권 진입 못하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뭔가 정치적 엄호가 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회의원 없는 건 다 알지만 지난번 열사정국 때 민주노동당 주요 지도부가 뭔가 한 사람 구속될 정도의 긴박한 마음가짐으로 투쟁해줘야 하지 않나. 노동조합 텐트 옆에 텐트 하나 쳐놓는 그런 점에서 조합원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제도 정치권 진출을 위해 싸워야 하기도 하지만 11월 같은 때 당원 총궐기 대회 같은 걸 한번 열어줬으면 한다.
박흥식 정치세력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큰 과제이다. 민주노동당이 전체 당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사업이 중요하다. 문제점을 하나 지적하자면 숲을 못보고 나무 중심의 사업이 많은 것 같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개혁은 자기 철학 없이 즉흥적 대응에 그칠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심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여야가 없는 현 정국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내년 총선에서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대중을 책임지기 위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계기다.
노회찬 전농이 정치세력화를 결의하며 민주노동당과 함께 가기로 한 결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창당에 맞먹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띤다. 내년 총선의 큰 구도는 진보 대 보수가 될 것이다. 1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어오면서 이미 철저한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다. 총선을 대비한 투표전략을 따로 마련할 것이 아니라 최근의 싸움을 정치적으로 총화하는 것을 선거로 바라보고 있다.
부안, 새만금, 노동법 개악, 비정규직, 손배가압류, 소파, 이라크파병 등 이런 모든 문제를 총화해서 국민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투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운동기간 좋은 얘기보다 1,2 월 어떻게 잘 싸우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당보다 빠르게 12월에 선대위를 준비한 것도 그런 뜻이고, 1월 벽두부터 그런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정대연 이제 마무리해 보자.
노회찬 나는 민중연대가 각 부문 투쟁의 총화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치피 대중조직이나 정치조직이 조건은 다르지만 핵심적인 과제와 전략적 대응에 관해서는 합의수준을 훨씬 높여야 한다. 공동의 투쟁과정으로 가야지 품앗이하듯 서로 서로 지원해주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평면적 연대를 넘어서 전략적 입체화를 더 높여내어야 한다.
김태연 금년이 노정권 1년차인데 신자유주의 세계화 대 민중진영의 힘겨루기가 많았다. 과제는 쌍방간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상대도 분명해졌고, 내년에 각 노동, 농민 등 각 부분이 잘 해서 민중연대로 모아가야 한다. 민중연대가 아무래도 지도부인데, 올해 민중연대 본조직을 만든 것 치고는 잘 안됐다.
민중연대에서 2003년 연초에는 년말 30만 총궐기를 하자는 계획도 있었는 데 결국 말로 그쳤다. 내년엔 한판 투쟁이 불가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내년에 전초전을 총선에서 치르고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박흥식 어차피 노정권의 한계는 정확히 인식되었다. 계속적으로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의 경제침탈과 농업개방 압력이 거세질텐데 현 정부에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과제이다. FTA 비준도 내년에 본회의 임시국회로 넘어가 미완으로 남아있다. 내년 쌀 재협상까지 바라보면 이런 문제를 돌파하면서 노,농,청년학생 공동 투쟁전선을 꾸려야 한다.
정대연 금년은 반전평화투쟁, 반미투쟁,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투쟁 등 쉴새없이 싸워온 한 해였다. 문제는 정권은 강력하게 뭉치는 반면 민중부분 투쟁은 발전되지 못한 것이다. 민중연대가 뭐하는 곳인가, 정체성은 뭔가, 민중연대 답게 투쟁한다는 것은 뭔가가 명확하지 못했다. 연대의 전망을 세우고 일관된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2004년은 승리하는 한해로 맞이했으면 한다. 장시간 고생하셨다.
이정무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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