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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송교수 면회한 재미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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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4-02-14 00:00 조회1,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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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송두율 교수,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 김종일 여중생범대위 집행위원장님 영치금 넣어드리라며 6백달러를 챙겨주더라구요. 한국에서 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인 셈이죠.”

b_PDRM1175-1.jpg조현숙씨는 지난 1월 6개월간 체류할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평범한 재미동포 1.5세이다. 1.5세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을 뜻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서울구치소에 있는 송두율 교수 면회부터 한 그는 미국에서 챙겨준 2백달러와 함께 소중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 아쉽게도 송 교수에겐 전달되지 못한 보라색 목도리다.

“작년 8월에 송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시골마을에서 2박3일간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때 송 교수님이 초청강연을 하셨죠. 그때 밤 새 술도 함께 마시고, 마지막 날까지 손 꼭 붙잡고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곧 한국에 들어간다’며 상기해하던 송 교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조현숙씨는 송 교수의 구속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치다. 그래도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환하게 맞이하는 모습에 ‘되레 자기가 위안을 받고 왔다’며 마음이 놓인다는 그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b_PDRM1183-1.jpg송두율 교수를 위해 떴다는 목도리를 손에 든 재미동포 1.5세 조현숙씨

두르기만 해도 곧바로 훈훈해질 것 같은 목도리를 탐내하며 만지작거리면서 슬쩍 목에 둘러보는 기자에게 던져진 ‘비행기 안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그것만 떴다’는 한마디에 군말없이 곱게 접어 포장봉투에 다시 집어넣었다. 하루빨리 보라색 목도리가 송 교수를 따뜻하게 해주기를 바라며 그의 재미동포 1.5세의 짧지만 의미 깊은 인생이야기를 들었다.

조현숙씨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다. 누구하고나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성격의 그는 별 어려움없이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그는 한국의 젊인이들과는 달리 빠른 나이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제가 살던 애난데일이라는 마을에는 한국사람이 워낙 많아요. 그러다보니 한국학생들이 모이는 ‘코리안클럽’이 있었죠. 애난데일에는 매년 다민족문화를 소개하고 장기자랑을 하는 축제가 있어요. ‘코리안클럽’은 댄스나 노래를 선보이곤 했는데 제가 16살 되던 93년 축제에서는 ‘다른 것을 해보자’는 의견이 많아 풍물을 소개하기로 했어요. 어렵게 선생님을 모시고 3개월간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서인지 정말 호응이 대단했죠.”

이 때 접한 풍물을 그는 10년째 치고 있다. 또한 그 때 결성된 ‘우리문화나눔터’라는 청년들의 문화운동단체에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물론 그는 풍물만 치면서 10년을 보내지는 않았다. 3-4년 전에는 매향리를 찾은 미국활동가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고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를 비롯해 한국대표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백악관 앞에서 삭발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운동권 학생’들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활동해 온 그는 자신의 활동이유를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코리안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92년 엘에이폭동이 있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풍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엘에이폭동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죠. 한국사람들이 흑백갈등의 쿠션역할을 했던 것이 엘에이폭동의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들더군요.”

1.5세들의 실질적인 고민 중의 하나가 ‘미국에서 살 것인가, 한국에서 살 것인가’ ‘자의가 아닌 부모님의 손에 끌려온 입장에서 부모님의 나라, 코리안임을 부정할 수 없는데 한반도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조현숙씨는 전했다. 단지 이중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코리안의 특징은 아닐 터, 옷도 음식도 똑같은 사회에서 자기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된 것이다.

“소수민족으로서의 자기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성장시키려면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런데 재미한국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상황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죠. 결국 통일문제, 주한미군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서는 재미동포들의 권익 또한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소수민족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 문제의 본질은 곧 한반도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조현숙씨가 통일문제,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미국사회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위해 통일운동에 나선 재미동포들에게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사회보다 더 보수적이며 지금도 ‘빨갱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조현숙씨는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함께 할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청년들의 활동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40대에서 70대까지 이르는 선배들의 활동이 더 적극적인 편입니다.”

70년대 이민왔던 부모세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한국말도 가르치지 않았고 우리 문화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대장금’도 보면서 한국을 접할 기회가 널려 있지만 그때는 기술도 발달하지 못했으니 자식세대가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민의 목적’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젊은이들이 통일운동, 문화운동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조현숙씨는 전했다.

b_120721.jpg지난 2002년 12월 백악관 앞에서 삭발을 하고 있는 조현숙씨

그가 활동하고 있는 우리문화나눔터도 예외는 아니다. 17명의 회원을 가진 우리문화나눔터도 초반에는 풍물에 열심이다가 진학시기가 되면 공부를 하겠다며 그만 두는 젊은이들이 많다.

하지만 풍물을 통해 우리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친구들과 함께 촛불시위에 참가했다는 후배회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희망이 불쑥불쑥 솟는다는 조현숙씨는 옆에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아쉬우면서도 또 옆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덧붙인다.

“지난 2002년 12월 한상렬 목사님을 비롯해서 한국에서 몇 분이 여중생 문제를 미국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국에 오셨었어요. 그때 함께 활동했었는데 6일 밤 백악관 앞을 피켓을 들고 왔다갔다하시는 한상렬 목사님을 뵙고 어떻게라도 도움이 되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구요. 그래서 삭발을 결심했죠.”

새벽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가던 그에게 노둣돌(뉴욕에 있는 한국청년들의 모임)에서 전화가 왔다.

“너 삭발한다며?” “응.”
“기다려봐. 여기 함께 할 사람들 있는지 알아볼게.”

다음 날 그는 세 명의 청년들과 함께 삭발을 했다.
조현숙씨가 가장 좋아한다는 노래 ‘벗들이 있기에’에서 ‘벗’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조현숙씨는 한국에서 6개월간 청량리에서 필봉굿을 열심히 배워 앞으로 다니게 될 조지메이슨대학에서 풍물패를 만들 계획이다. 앞으로는 문화운동의 폭을 뛰어넘어 더 적극적인 통일운동을 하고 싶다는 조현숙씨. 열여섯 처음 풍물을 접했을 때 ‘내가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민족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나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은 하나’라는 답을 얻었다면, 스물일곱 올해는 ‘조현숙이라는 사람이 우리 민족, 재미동포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어떤 방면에서 일할 것인가’의 답을 찾는 시기라고 한다. 6개월 후 가슴에 그 답을 깊이 새겨 민족이 살아 숨쉬는 동포사회의 든든한 기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준영 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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