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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인물]권중희선생, 그는 누군가</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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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4-03-24 00:00 조회1,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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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살해범, 안두희의 머리통을 후려쳐 세상에 알려졌던 인물인 권중희(68). 그는 누구이며 왜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을 방문하여 46일 동안이나 1만여 상자에 들어 있는 서류들을 뒤졌을까.

kwonjunghui.jpg권중희 선생은 지난 1월31일 미국을 방문하여 워싱턴 디씨에 소재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에서 46일 동안 현지 유학생들을 비롯하여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백범 김구와 관련하여 6백여 쪽의 서류들을 발견하고 복사하여 분류하는 작업을 마쳤으나 이 작업을 도왔던 자료조사반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난 1978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김구 관련 대한반도 미국정책에 관련한 자료들을 모두 거둬가서 이것들을 다시 기밀문서화 시켜 놓고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러한 미 당국의 처사에 대응하여 정보공개요구(FOIA)서를 신청해 놓았고 이들에 대한 후속 사업으로 미국에 있는 청년학생, 유학생 및 학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김구 암살진상규명 사업을 펼쳐보고 싶다고 말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권중희 선생 개인이 희생해야 할까. 그는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마땅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했어야 하는데 역대 집권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엄청난 일을 문외한인 한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민족정기를 위해 그리고 겨레의 한 성원으로 도리라고 생각하여 하게되었다"고 설명한다.

kwonjunghui-4.jpg[사진은 권중희 선생과 함께 방미활동에 동참한 오마이뉴스의 박도 기자(왼쪽)가 12일 귀국길에 로스엔젤레스 동포사회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 국제공항에 도착한 모습]

권중희 선생과 동행한 박도 기자(60.인터넷 오마이뉴스 비상근 기자.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등의 저자)는 "권중희 선생에 대해 처음에는 두차례 정도 기획기사를 쓰려고 하였는데 권 선생에 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대단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여러 차례 연재로 소개하는 중 마지막 글에서 권 선생의 소원이 "복권에 당첨되면 미국에 가서 김구 암살에 관련된 비밀해제문서들을 찾아내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싶다"는 예기가 나오자 네티즌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한달 만에 3천7백여 만원이 모금되어 이번 방미여행이 성사되었다"고 말한다. 박도 기자는 이대부고 국사교사로 재직중이며, 민족문학작회 회원으로 그동안 비전향 장기수의 딸과 해직 기자의 순애보를 그린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아버지는 언제나 너희들 편이다" 등 산문집을 펴낸 교육자이며 문학인으로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이번 권중희 선생 방미활동에 동참해 오는 날부터 귀국하는 날까지 오마이뉴스를 통해 방미활동을 상세히 보도해 왔다.

권중희 선생은 이번 방미일정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백범 암살은 곧 일체의 외군철수를 주창하며 통일조국을 건설하려던 백범 같은 민족주의자를 가장 싫어하는 미국과 그런 외세의 꼭두각시 노릇하면서 친일 반역배들과 손잡고 분단정권을 구성한 이승만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빚어진 일종의 한.미 합동암살작전이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90년대 초부터 한겨레신문 등을 통해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를 뒤져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외쳐왔습니다. 역사의 생명은 진실입니다. 진실이 살아있는 역사 속에서만이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민족정기를 되 살리려고는 하지 않고 국토와 민족이 모두 갈라져 있는데도 단합해야 할 동족은 적대하면서 몰아내야 할 외세는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양 그들의 군대 주둔비마저 대어주며 종노릇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종인 줄 모르고 살아갈 정도로 어찌 이리도 민족혼이 마비되어 벼렸는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나없이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때문에 이곳 미국을 오게되었습니다. 이번 방미여행에서 속시원한 성과들을 갖지 못해 가슴이 후련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미주동포 여러분들이 큰 일을 하였다고 격려하여 주어 뜨거운 가슴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민족사업들이 국가차원에서도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피력한다.

kwonjunghui-5.jpg[사진은 권중희 선생이 백범암살규명을 위한 46일간의 자료수집사업을 마치고 귀국길에 로스엔레레스에 들려 이곳 동포단체 대표들의 환영을 받고 답사하는 장면-13일 용궁식당 별실]

권중희 선생은 왜 이 문제에 대해 생을 걸었는가.
그는 13살 때 <백범 일지>를 읽고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범이 1949년 6월26일 안두희가 쏜 4발의 총탄에 쓸어져 운명하였지만 살인범 안두희가 처형당하지 않고 눈이 시퍼렇게 살수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정치현실에 회의를 갖고 직접 처리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면서 백범암살진상규명에 생을 걸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1987년 대로상에서 <정의봉>이라고 쓴 박달나무 몽둥이로 안두희를 응징했으나 그 배후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1991년 한차례, 1992년 세 차례에 걸쳐 안두희를 응징하고 중요한 자백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권중희 저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발로 밝힌 백범 암살사건의 진상-1993년 초판 돌베게 참조).

그러나 그는 백범 암살의 직접 하수인은 안두희였고 그 뒤에 김창룡(암살 당시 육군 정보국 육군 1연대 정보관)이가 여러 차례 백범 제거를 암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와 더불어 대단히 충격적인 자백은 암살이 미국정보기관과 관련되어 이루어졌다"는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kwonjunghui-8.jpg권두희 선생은 안두희의 자백과 관련하여 그 배경에 이승만 정부와 미국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정황들은 파악할 수 있었으나 이러한 사실들을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들을 발견하려고 미국 방문을 택했다는 것이다.

권 선생은 자료 수집 차 6주 동안 워싱턴 디씨에 머물며 만난 동포들과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로스엔젤레스에서 4박5일 동안 미주동포들과 만나는 동안 느낀 소감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도 한다. 그는 한마디로 가슴이 뜨거운 만남들이었다고 말하며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는 요청도 한다.

그는 이번 방미에서 구체적인 단서가 될만한 자료들을 손에 쥐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토로했으나 그가 이룬 이번의 방미 성과들은 대단한 것으로 진단된다.

그는 이번 미국방문을 통해 (1)백범 김구암살에 관련한 미 당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직결된 내용들을 수집하여 당시의 미 당국이 자행하였던 지배정책과 민족세력에 대한 대량학살정책으로 수많은 양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장면 등을 동영상으로 그리고 중요서류들을 녹화하고 복사하였고, (2) 미 당국이 친일반민족 세력과 결탁하여 친미사대주의 세력을 하수인들로 기용하였다는 사료들을 수집하였고, (3) 법적시효가 지난 서류들을 또다시 미중앙정보국이 수거하여 다시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들(1978년과 2001년)을 발견하였고, (4)1만여 상자에 4백50만여건에 달하는 <한국현대사관련 문서>들과 <한국의 역대 대통령 및 정치지도자의 관련자료들이 산재하여 있는 곳에서 김구관련 자료들을 찾아 분류하여 놓은 기초자료작업을 시작하였고, (5)"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그의 저서의 제목처럼 백범 김구암살에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 민족정기를 살려야 한다는 애국정신을 해 내외에 널리 선전하여 주었고, (6)미주 청년학생들이나 한국의 유학생들이 이러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민족사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는 등 커다란 성과들을 남겨 놓았다.

그는 약력을 묻는 질문에 193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중학교(안동 경덕중)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설명하며 1등으로 졸업하였지만 가난하여서 진학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생애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백범일지>라고 대답하면서 한 달에 두권 정도의 책들을 읽어 왔다. 역사책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가 읽은 1천2백 여권의 도서 중에는 빅톨 유고의 <레미제라블>, 게오르기의 <25시>, 톨스토이의 <부활> 등 세계문학서적들도 포함되어 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여 가난을 몰랐었다고 하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산이 기울어져 중학교 졸업 후에는 산전수전 겪으며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중학시절에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김구선생을 민족의 혼으로 가슴에 아로새기게 되었다는 그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생활하던 중 새로운 인생행로를 걷게 된 계기는 1982년이었다고 회상한다.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한 잡지와의 대담에서 진실을 외면하고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이에 격분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안두희 추적의 길에 나선다. 정부당국에 탄원서도 보내보았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아 직접 안두희를 응징하리라 결심한다. 1987년 3월27일 첫 응징에 나선 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백범암살진상규명을 위한 삶에 온 몸을 던져왔다.

안두희 추적을 위해 권 선생은 태권도, 합기도, 검도, 봉술 등을 익혀왔고 바둑도 2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두희를 해치우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안두희 입을 통해 김구암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몽둥이로 위협하고 달래고 하며 별의 별 방법으로 안두희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아 왔다. 안두희가 입을 열지 않고 오만을 떨 때 몽둥이 세례로 겁을 주기도 했다. 권 선생의 애국정신에 탄복한 한국의 변호사들이 그의 석방을 도운 인물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한승헌, 태륜기, 조승현, 김진우, 장기욱 변호사 등도 권 선생을 도왔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꿈꾸는 백마강>이라고 소개하는 권중희 선생은 평생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통일된 조국의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간단히 답변하는 한편 "친일매국노들이 판치는 세상이 사라지고 그 뿌리인 친미사대주의자들이 철면피처럼 설치는 나라가 종식되고 민족정기로 거듭나는 새나라, 통일조국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한다.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200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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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동포단체 대표들은 권중희 선생과 박도 기자의 방미중 로스엔젤레스 방문환영모임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이날 환영만찬에는 민족민주운동단체들 임원들과 <내일을 여는 사람들> 및 유학생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권중희 선생은 로스엔젤레스 방문 4박5일(3월12일~16일) 동안 단체 임원들과의 간담회, 백범 김구 선생 관련인사들, 그리고 박물관, 해변유원지, 흑인빈촌,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 등을 두루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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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희 선생은 46일간의 김구암살진상규명을 위한 자료수집사업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12일 로스엔젤레스를 방문, 숙소로 가기전에 9개월째 재활원에서 신체부자유상태로 계신 정명 선생(84.임시정부시절 백범 김구 주석과 함께 판공실에서 서기로 활약)을 위로방문하고 잠시 정원에 나와 김구암살에 관련된 배후인물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 선생은 이날 "애국자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면서 눈시울 적시기도 했다. 그는 여행비를 절약하여 남은 돈이라고 말하면서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정명 선생은 권선생을 위해 고히 간직했던 임정 직원들의 명단이 수록된 서류를 복사하여 선물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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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희 선생은 방미중 동포들에게 줄 선물로 직접 붓글씨로 "조국은 하나다"를 비롯하여 "민족혼은 살아있다", "언제 어디서나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이 되라" 등의 글발을 써 18장을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기증했다. 사진은 사회를 맡은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가 그 중 한장을 보여주며 <한길 권중희 선생>의 이름으로 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권 선생은 받지 못한 참석자들에게는 귀가해 차후에 선물로 주기로 약속한다. 참석자들은 즉석에서 모금한 금일봉을 권 선생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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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희 선생의 로스엔젤레스 방문을 환영하는 환영사(양은식 박사, 라성원 목사)에 이어 현준기 선생의 건배말씀 후 환영의 잔을 들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권중희 선생의 연락문의 전자우편은 k310815h@chol.com 으로 하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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