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ed>한총련, 4.2학생행동의 날 준비</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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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4-06 00:00 조회1,4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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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세력의 노림수는 두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박근혜 카드나 천막쇼 등을 통한 변신노력을 통해 어떻게든 현 위기를 모면하고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3월12일을 지워 총선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시작한 쿠데타를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저들의 음모를 깨기 위해 한총련은 저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제때제때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것이며 손에 든 촛불을 절대 꺼뜨리지 않을 것이다.”
4월2일 대학생들이 일어난다. 등록금 동결과 청년실업문제 해결, 그리고 국회해산 보수정치 심판 민주주의 실현을 내걸고 전국 대학들이 동맹휴업에 들어가며 총궐기하여 거리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2일은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 정치적 의의가 더욱 크다.
그래서일까. 12기 한총련에서는 지난 27일 동맹휴업 성사를 위해 백종호 의장과 김성일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단식을 결의, 백종호 의장은 학내 간담회 및 선전전을, 김성일 위원장은 명동성당에서 비상시국농성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기자회견과 언론과의 인터뷰가 쇄도해 기대했던 만큼 간담회나 선전전을 진행하지 못해 아쉽다는 백종호 의장. 단식 중임에도 이곳저곳 바삐 뛰어다니며 탄핵정국과 동맹휴업 성사를 호소하는 그를 어렵사리 만나 탄핵정국과 총선에 대한 정세인식과 대학생들의 몫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지난 3월27일로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정리가 되었다. 소감에 대해 말해달라
=광화문에서 국민과 촛불은 1차적 승리를 이뤘다. 저들은 3월26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2차 쿠데타를 벌이려 했으나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총선을 안정적으로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광화문에서의 촛불은 꺼졌다. 앞으로의 촛불은 형태와 장소는 달려져야겠지만 결코 꺼져서는 안된다. 312 의회쿠데타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새정치를 만들겠다는 국민의지는 4월15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한총련은 비상시국농성단을 꾸려 명동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일환으로 곧 반한나라당 실천단도 꾸릴 예정이다.
-탄핵이 가결된 그 날 바로 시민들 안에서는 ‘민주수호’라는 구호가 나왔는데
=국민들도 이 사건은 쿠데타로 보고 있다. 하기에 민주수호, 국회해산이라는 구호가 자연스레 외치진 것 아니겠나. 16대 국회에 대한 기본적인 실망과 새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국민들이 3.12를 통해 당리당략에 빠진 최악의 국회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수호, 국회해산 등의 구호는 국민들이 탄핵사건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친노 대 반노’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현장에 한번이라도 나와 본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할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으리라 보는데
=솔직히 말해 많이 놀랐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 효순이 미선이 때는 10만이 결집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탄핵 둘째날 10만명이 거리로 진출했다. 또한 10만이 모였음에도 전혀 흐트러지거나 불상사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높아진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절감하는 시간이였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한총련이 주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점이다. 탄핵사태의 본질에 대해-예컨대 미국의 개입과 음모에 대해- 시민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당시 ‘설마 저들이 탄핵을 가결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당시 한총련은 저들이 탄핵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기어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국회 개회 전 72시간 비상지침을 공유한 바 있다. 그러나 솔직한 말로 ‘설마병’을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작년 말부터 ‘국회해산’ ‘조기총선’ 구호가 제기되었다. 한총련 또한 그 구호를 외쳤는데 일부에서는 구호를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전략적 구호 정도로 이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16대 국회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전국민이 국회해산을 외쳤다. 설마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갈라보는 경향이 있다
=결코 갈라볼 수 없는 문제다. 물론 광화문에서는 더 이상 촛불을 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3월12일과 4월15일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거점을 만들어 계속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촛불을 들고 이것이 총선심판이라는 공감된 행동으로 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기에 한총련은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촛불을 계속 들고 16대 국회의 본질을 계속 깨우쳐주는 각성제가 되도록 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고자 비상시국농성단이 꾸려졌으며 저들의 국민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의지를 약하게 하는 논리를 펼 때마다 비상시국농성단을 위시로 한 한총련은 그 논리들을 깨나가고 3.12와 4.15를 각성시키는 실천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4월2일부터는 선거법의 제약을 받게 된다
=사실 그게 문제이기는 하다. 하기에 내용을 유지하되 형태를 잘 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취지에서 4월2일 집회도 정치참여 문화제 형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선거법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견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거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한총련은 총선목표를 확고히 하면서 역량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총선에 임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목표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4월2일 행동의 날을 준비하면서 대학별로 동맹휴업이나 비상총회 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 현황에 대해 말해달라
=사실 학내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신학기다 보니 학내 대중사업이 몰려 있고 등록금 투쟁 등 학자사안도 워낙 심각하다. 하지만 전국민적으로 형성된 탄핵공감대가 학내에도 깊이 작용하고 있어 예년에 비해 동맹휴업이나 비상총회가 잘 성사되는 편이다.
특히 부산대가 모범이었는데 부산대 일꾼들은 동맹휴업을 일주일 남겨놓고 ‘학우들은 분노하고 있는데 일군들이 당당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반성하면서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일주일간 단식을 결의, 학우들을 만나는 데 총매진했다고 한다. 결과 1500명이 학내 집회에 참가해 동맹휴업을 성사시켰으며 그 중 절반이 시내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부산 서면의 분위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대학 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 등 투표독려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황은 어떠한가
=탄핵가결 이후 학우들이 폭발적으로 참여해 현재(3월30일) 전국적으로 6만5천여 명이 부재자 신청을 했으며 전국 20여 개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으며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한 학교만이 투표소를 설치했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그러다 보니 일꾼들도 더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있다.
-탄핵 가결 후 광화문 촛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6월항쟁을 떠올렸고 자연스레 대학생을 떠올렸다. 총선이 민주와 반민주의 심각한 대결장이라고 할 때 대학생의 몫은 남다르리라고 본다
=솔직히 처음 광화문에 모일 때는 대학생들이 한 10만명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몇 명 나왔는지 대학마다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숫자가 많다고 선봉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 속에서 좀 더 선명한 구호를 들고 대중의식과 실천의 흐름을 지속시켜 나가며, 난관이 생겼을 때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선봉장의 임무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많은 수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봉장으로써 투쟁의 기세를 이어나가며 돌파구를 뚫어내는 것이 대학생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을 현혹하는 저들의 애매한 논리를 그때그때 깨주면서 의식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데 총력 매진할 것이다.
“탄핵세력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촛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면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는데 여기서 만약 촛불이 꺼지고 총선이 유야무야 된다면 지금 정국은 87년처럼 미완으로 끝날 수 있다”며 “4월15일까지 길지 않은 시간, 국민들이 한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민주수호의 결심을 심장에 새기고 새로운 눈빛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단식을 결심했다는 백종호 의장. 힘드냐는 질문에 ‘단식을 결의하고 나서 보니 단식 기간이 너무 짧아 좀 민망하기도 했다’며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웃어넘긴다.
“조국의 청년답게 한총련은 30일 단식도 결의하며 싸웠다”는 백종호 의장의 눈빛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핀 새 정치, 새 국회의 미래를 본다. 박준영 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4/1/2004]

그래서일까. 12기 한총련에서는 지난 27일 동맹휴업 성사를 위해 백종호 의장과 김성일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단식을 결의, 백종호 의장은 학내 간담회 및 선전전을, 김성일 위원장은 명동성당에서 비상시국농성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기자회견과 언론과의 인터뷰가 쇄도해 기대했던 만큼 간담회나 선전전을 진행하지 못해 아쉽다는 백종호 의장. 단식 중임에도 이곳저곳 바삐 뛰어다니며 탄핵정국과 동맹휴업 성사를 호소하는 그를 어렵사리 만나 탄핵정국과 총선에 대한 정세인식과 대학생들의 몫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지난 3월27일로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정리가 되었다. 소감에 대해 말해달라
=광화문에서 국민과 촛불은 1차적 승리를 이뤘다. 저들은 3월26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2차 쿠데타를 벌이려 했으나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총선을 안정적으로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광화문에서의 촛불은 꺼졌다. 앞으로의 촛불은 형태와 장소는 달려져야겠지만 결코 꺼져서는 안된다. 312 의회쿠데타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새정치를 만들겠다는 국민의지는 4월15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한총련은 비상시국농성단을 꾸려 명동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일환으로 곧 반한나라당 실천단도 꾸릴 예정이다.
-탄핵이 가결된 그 날 바로 시민들 안에서는 ‘민주수호’라는 구호가 나왔는데
=국민들도 이 사건은 쿠데타로 보고 있다. 하기에 민주수호, 국회해산이라는 구호가 자연스레 외치진 것 아니겠나. 16대 국회에 대한 기본적인 실망과 새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국민들이 3.12를 통해 당리당략에 빠진 최악의 국회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수호, 국회해산 등의 구호는 국민들이 탄핵사건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친노 대 반노’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현장에 한번이라도 나와 본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할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으리라 보는데
=솔직히 말해 많이 놀랐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 효순이 미선이 때는 10만이 결집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탄핵 둘째날 10만명이 거리로 진출했다. 또한 10만이 모였음에도 전혀 흐트러지거나 불상사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높아진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절감하는 시간이였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한총련이 주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점이다. 탄핵사태의 본질에 대해-예컨대 미국의 개입과 음모에 대해- 시민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당시 ‘설마 저들이 탄핵을 가결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당시 한총련은 저들이 탄핵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기어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국회 개회 전 72시간 비상지침을 공유한 바 있다. 그러나 솔직한 말로 ‘설마병’을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작년 말부터 ‘국회해산’ ‘조기총선’ 구호가 제기되었다. 한총련 또한 그 구호를 외쳤는데 일부에서는 구호를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전략적 구호 정도로 이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16대 국회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전국민이 국회해산을 외쳤다. 설마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갈라보는 경향이 있다
=결코 갈라볼 수 없는 문제다. 물론 광화문에서는 더 이상 촛불을 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3월12일과 4월15일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거점을 만들어 계속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촛불을 들고 이것이 총선심판이라는 공감된 행동으로 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기에 한총련은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촛불을 계속 들고 16대 국회의 본질을 계속 깨우쳐주는 각성제가 되도록 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고자 비상시국농성단이 꾸려졌으며 저들의 국민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의지를 약하게 하는 논리를 펼 때마다 비상시국농성단을 위시로 한 한총련은 그 논리들을 깨나가고 3.12와 4.15를 각성시키는 실천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4월2일부터는 선거법의 제약을 받게 된다
=사실 그게 문제이기는 하다. 하기에 내용을 유지하되 형태를 잘 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취지에서 4월2일 집회도 정치참여 문화제 형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선거법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견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거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한총련은 총선목표를 확고히 하면서 역량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총선에 임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목표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4월2일 행동의 날을 준비하면서 대학별로 동맹휴업이나 비상총회 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 현황에 대해 말해달라
=사실 학내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신학기다 보니 학내 대중사업이 몰려 있고 등록금 투쟁 등 학자사안도 워낙 심각하다. 하지만 전국민적으로 형성된 탄핵공감대가 학내에도 깊이 작용하고 있어 예년에 비해 동맹휴업이나 비상총회가 잘 성사되는 편이다.
특히 부산대가 모범이었는데 부산대 일꾼들은 동맹휴업을 일주일 남겨놓고 ‘학우들은 분노하고 있는데 일군들이 당당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반성하면서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일주일간 단식을 결의, 학우들을 만나는 데 총매진했다고 한다. 결과 1500명이 학내 집회에 참가해 동맹휴업을 성사시켰으며 그 중 절반이 시내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부산 서면의 분위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대학 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 등 투표독려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황은 어떠한가
=탄핵가결 이후 학우들이 폭발적으로 참여해 현재(3월30일) 전국적으로 6만5천여 명이 부재자 신청을 했으며 전국 20여 개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으며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한 학교만이 투표소를 설치했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그러다 보니 일꾼들도 더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있다.
-탄핵 가결 후 광화문 촛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6월항쟁을 떠올렸고 자연스레 대학생을 떠올렸다. 총선이 민주와 반민주의 심각한 대결장이라고 할 때 대학생의 몫은 남다르리라고 본다
=솔직히 처음 광화문에 모일 때는 대학생들이 한 10만명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몇 명 나왔는지 대학마다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숫자가 많다고 선봉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 속에서 좀 더 선명한 구호를 들고 대중의식과 실천의 흐름을 지속시켜 나가며, 난관이 생겼을 때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선봉장의 임무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많은 수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봉장으로써 투쟁의 기세를 이어나가며 돌파구를 뚫어내는 것이 대학생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을 현혹하는 저들의 애매한 논리를 그때그때 깨주면서 의식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데 총력 매진할 것이다.
“탄핵세력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촛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면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는데 여기서 만약 촛불이 꺼지고 총선이 유야무야 된다면 지금 정국은 87년처럼 미완으로 끝날 수 있다”며 “4월15일까지 길지 않은 시간, 국민들이 한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민주수호의 결심을 심장에 새기고 새로운 눈빛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단식을 결심했다는 백종호 의장. 힘드냐는 질문에 ‘단식을 결의하고 나서 보니 단식 기간이 너무 짧아 좀 민망하기도 했다’며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웃어넘긴다.
“조국의 청년답게 한총련은 30일 단식도 결의하며 싸웠다”는 백종호 의장의 눈빛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핀 새 정치, 새 국회의 미래를 본다. 박준영 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4/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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