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강기갑 국회의원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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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4-29 00:00 조회1,6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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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전체가 지역구라는 자세로 살겠다"
[인터뷰] 농사꾼 출신 민주노동당 강기갑 국회의원 당선자
"국회의원 되서 돈을 벌어 집에 가져다 주면 좋겠지만, 내 생각엔 오히려 집에 있는 돈 갖다 쓸 것 같아서 지금부터 걱정이 되요. 사무실은 의원회관으로 하면 되는데 숙소가 가장 큰 문제예요. 서울에 내 숙소를 마련하자면 돈이 꽤 들어갈 것이고...당과 전농에서 고민을 하고 있으니 곧 해결방안이 나오겠죠"
긴 수염, 덥수룩한 머리, 생활한복, 고무신, 이 네가지로 화제의 당선자 명단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는 농사꾼 국회의원 강기갑(52) 당선자. 그는 요즘 서울에 올라오면 전농 사무실 한 켠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기업이 주는 불법자금을 어떻게 할거냐구요?(웃음) 아무래도 우리나라엔 아직까지 민주노동당에게 불법자금을 줄 배짱 좋은 기업이 없을 것 같은데요. 우리한테 주면 바로 신고될 게 뻔하니깐요"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에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 "자본"에 강 당선자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강 당선자가 돈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현재 그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 중 마이너스 재산 부분에서 2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사 짓는 사람이라면 수백, 수천의 농가부채가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죠. 농가부채 갚으려고 국회의원 됐다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사리사욕이 있었다면 이 일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해 한-칠레 FTA 국회비준을 저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을 이끌어오던 강 당선자는 정치적 결합을 선언한 민주노동당에서 농민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로 나설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30여년 농민운동의 길을 걸어오던 그에겐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니였다. 아직도 풀어야 할 농촌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투쟁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 당선자가 우리의 상식을 깨는 것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국회의원이라면 으례히 입는 양복과 구두, 그리고 커트머리도 거부하고 있다.
"양복이 어떤 옷입니까? 서양에서 온 의상인데 왜 반드시 입으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저도 개량한복을 입고 있지만 고유의 옷과 유사하고 공기도 잘 통해서 건강에도 좋고 그렇습니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은 싫다고 말하는 너무나도 솔직한 털보 농민 강기갑은 본인의 자연에 따르는 삶을 이렇게 비유했다.
"조물주가 왜 코와 입사이에 수염을 만들었겠습니까? 다 필요했기 때문이죠. 조물주가 준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아침마다 매일 날카로운 쇠붙이로 박박 긁어 까는것은 자연스럽지 않는 일이죠."
항상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강 당선자는 자신이 평소에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의정활동을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겉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러한 그의 의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당당함일 것이다.
하지만 강 당선자는 무조건 이것만을 주장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본인과는 다르게 생각하는자가 정중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면 신중히 고려해보겠다는 강 당선자는 "부드러운 직선"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틀에 박힌 농사 거부하는 농사꾼 강기갑
강 당선자는 선택이라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농사는 천직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그런 강 당선자에게도 대학이 가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농고를 나와 농대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 학력고사에서 쓴잔을 마시고 최종 농사꾼으로 살기를 결정했다.
털보농민 강기갑은 농사꾼 세계에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품종을 정해주고 이것은 하지마라 이것은 해라하는 강압적 농촌행정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강제농정, 강제행정이 너무 많아서 농사를 자유롭게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통일벼 안심으면 읍사무소 직원이 나와 못자리를 밟아 버리는가 하면 농사꾼들이 힘든 농사지으면서 한잔씩 하려고 담군 농주도 세무소에서 나와서 막 온집안을 뒤집고 적발되면 불려가서 세금내고... 나무 베서 방 때면 산림계에서 나와 난리를 치고, 이런 제반현상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불만"이 생겼다는 강기갑 당선자, 그길로 바로 카톨릭 농민회의 교육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농사꾼은 버리지 않았다. 농사역시 그는 평범하게 짓지 않았다.
"야산을 개간해서 과수농사를 했는데 퇴비가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처음엔 일일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퇴비를 구하러 다녔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축산업을 동시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의 분비물은 과수의 퇴비로 과수원에서 나온 풀은 소의 먹이가 되고, 한마디로 유기농에 가까운 복합영농을 하고 있는 것이죠."
민주노동당, 아직은 농민목소리 작아..앞으로 높여야 할 듯
전농은 지난 해 하반기 어렵게 민주노동당과 정치적 결합을 조직적으로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농민회 사이엔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민주노동당 들어가보니 농민을 챙기고 의식하고 강조하는 것이 좀 취약한 것이 사실입디다. 하지만 이것은 당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농민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앞으로 농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결합할 때만이 민주노동당안에서의 농민 목소리가 커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 당선자는 전농에서 기본안을 마련한 이번 총선 농업정책 공약안을 민주노동당이 80%수준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어떤 당보다 농민의 목소리를 높게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강 당선자는 농민단체 중 현재 전농만이 조직적 결합을 하고 있는데 이후에 더 많은 농민단체들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큰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역 현장으로 갈수록 전농이 아닌 타 농민단체의 회원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지역의 흐름들을 중심으로 상급단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죠"
집에서 가끔 반란 일어나기도 하지만 든든한 내 아내
수십년간의 농민운동, 그리고 이제는 초선 국회의원. 그의 전화기는 늘 바쁘게 노래를 부르고 그의 하얀 고무신의 생은 짧게 끝난다.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명의 아들과 입학을 앞둔 딸, 막 돌이 지난 막내아들을 둔 아버지이고 14살차이의 애틋한 아내를 둔 남편이다. 그는 또 야산을 개간해 축산업과 과수농사를 하는 사계절이 모자란 농사꾼이다.
"아내 역시 농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기 때문에 나의 이런 일들이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줍니다."
강 당선자는 아내에 대해 묻자 거침없이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아내도 평범한 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임을 실토하기도 했다.
"잘 이해해주는 편인데 그래도 내가 너무 심하게 집에 못들어가고 바쁜 농사철에 농사일을 전혀 하지 못하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때때로 이런 어려움이 존재하기도 하지요"
"외계인" 처럼 나타난 털보농민, 그에게도 변화는 있다
기존의 언론들에게 "외계인"처럼 나타난 털보농민 강기갑 당선자. 틀에 박힌 사고를 당당히 거부하면서 자신의 것을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그에게도 국회의원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없어진 것이다. 기자는 기억한다. 지난 해 한-칠레 FTA 국회비준반대 투쟁 당시 심한 지역사투리로 발언을 강하게 이어가던 강 당선자의 발언을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던 것을.
하지만 그는 당선자가 된 이후 연이은 언론들과의 인터뷰, 방송 등으로 한풀꺽인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강한 억양은 사라지고 가끔씩 나오는 지역 방언이 전부인 그의 말투만이 국회의원 강기갑으로 달라진 것이였다.
"한칠레 통과되면 농민들 다 죽습니더. 그런데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죽일라 캅니더. 이대로는 안되는기라요. 그래서 농민들의 정치세력화가 꼭 이뤄져야 하는깁니더. 국민들 멕이 살리고 식량주권 지킬라꼬 해온 우리 농민들을 이리 버리면 안되는 깁니더."
2003년 10월 국회앞 집회 도중, 당시 전농 경남도연맹 의장이던 강기갑 당선자가 내뱉은 피맺힌 말이다.
김주아 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4-24-04]
[인터뷰] 농사꾼 출신 민주노동당 강기갑 국회의원 당선자

긴 수염, 덥수룩한 머리, 생활한복, 고무신, 이 네가지로 화제의 당선자 명단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는 농사꾼 국회의원 강기갑(52) 당선자. 그는 요즘 서울에 올라오면 전농 사무실 한 켠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기업이 주는 불법자금을 어떻게 할거냐구요?(웃음) 아무래도 우리나라엔 아직까지 민주노동당에게 불법자금을 줄 배짱 좋은 기업이 없을 것 같은데요. 우리한테 주면 바로 신고될 게 뻔하니깐요"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에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 "자본"에 강 당선자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강 당선자가 돈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현재 그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 중 마이너스 재산 부분에서 2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사 짓는 사람이라면 수백, 수천의 농가부채가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죠. 농가부채 갚으려고 국회의원 됐다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사리사욕이 있었다면 이 일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해 한-칠레 FTA 국회비준을 저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을 이끌어오던 강 당선자는 정치적 결합을 선언한 민주노동당에서 농민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로 나설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30여년 농민운동의 길을 걸어오던 그에겐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니였다. 아직도 풀어야 할 농촌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투쟁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 당선자가 우리의 상식을 깨는 것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국회의원이라면 으례히 입는 양복과 구두, 그리고 커트머리도 거부하고 있다.
"양복이 어떤 옷입니까? 서양에서 온 의상인데 왜 반드시 입으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저도 개량한복을 입고 있지만 고유의 옷과 유사하고 공기도 잘 통해서 건강에도 좋고 그렇습니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은 싫다고 말하는 너무나도 솔직한 털보 농민 강기갑은 본인의 자연에 따르는 삶을 이렇게 비유했다.
"조물주가 왜 코와 입사이에 수염을 만들었겠습니까? 다 필요했기 때문이죠. 조물주가 준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아침마다 매일 날카로운 쇠붙이로 박박 긁어 까는것은 자연스럽지 않는 일이죠."
항상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강 당선자는 자신이 평소에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의정활동을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겉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러한 그의 의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당당함일 것이다.
하지만 강 당선자는 무조건 이것만을 주장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본인과는 다르게 생각하는자가 정중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면 신중히 고려해보겠다는 강 당선자는 "부드러운 직선"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틀에 박힌 농사 거부하는 농사꾼 강기갑
강 당선자는 선택이라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농사는 천직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그런 강 당선자에게도 대학이 가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농고를 나와 농대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 학력고사에서 쓴잔을 마시고 최종 농사꾼으로 살기를 결정했다.
털보농민 강기갑은 농사꾼 세계에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품종을 정해주고 이것은 하지마라 이것은 해라하는 강압적 농촌행정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강제농정, 강제행정이 너무 많아서 농사를 자유롭게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통일벼 안심으면 읍사무소 직원이 나와 못자리를 밟아 버리는가 하면 농사꾼들이 힘든 농사지으면서 한잔씩 하려고 담군 농주도 세무소에서 나와서 막 온집안을 뒤집고 적발되면 불려가서 세금내고... 나무 베서 방 때면 산림계에서 나와 난리를 치고, 이런 제반현상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불만"이 생겼다는 강기갑 당선자, 그길로 바로 카톨릭 농민회의 교육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농사꾼은 버리지 않았다. 농사역시 그는 평범하게 짓지 않았다.
"야산을 개간해서 과수농사를 했는데 퇴비가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처음엔 일일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퇴비를 구하러 다녔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축산업을 동시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의 분비물은 과수의 퇴비로 과수원에서 나온 풀은 소의 먹이가 되고, 한마디로 유기농에 가까운 복합영농을 하고 있는 것이죠."
민주노동당, 아직은 농민목소리 작아..앞으로 높여야 할 듯
전농은 지난 해 하반기 어렵게 민주노동당과 정치적 결합을 조직적으로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농민회 사이엔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민주노동당 들어가보니 농민을 챙기고 의식하고 강조하는 것이 좀 취약한 것이 사실입디다. 하지만 이것은 당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농민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앞으로 농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결합할 때만이 민주노동당안에서의 농민 목소리가 커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 당선자는 전농에서 기본안을 마련한 이번 총선 농업정책 공약안을 민주노동당이 80%수준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어떤 당보다 농민의 목소리를 높게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강 당선자는 농민단체 중 현재 전농만이 조직적 결합을 하고 있는데 이후에 더 많은 농민단체들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큰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역 현장으로 갈수록 전농이 아닌 타 농민단체의 회원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지역의 흐름들을 중심으로 상급단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죠"
집에서 가끔 반란 일어나기도 하지만 든든한 내 아내
수십년간의 농민운동, 그리고 이제는 초선 국회의원. 그의 전화기는 늘 바쁘게 노래를 부르고 그의 하얀 고무신의 생은 짧게 끝난다.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명의 아들과 입학을 앞둔 딸, 막 돌이 지난 막내아들을 둔 아버지이고 14살차이의 애틋한 아내를 둔 남편이다. 그는 또 야산을 개간해 축산업과 과수농사를 하는 사계절이 모자란 농사꾼이다.
"아내 역시 농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기 때문에 나의 이런 일들이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줍니다."
강 당선자는 아내에 대해 묻자 거침없이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아내도 평범한 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임을 실토하기도 했다.
"잘 이해해주는 편인데 그래도 내가 너무 심하게 집에 못들어가고 바쁜 농사철에 농사일을 전혀 하지 못하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때때로 이런 어려움이 존재하기도 하지요"
"외계인" 처럼 나타난 털보농민, 그에게도 변화는 있다
기존의 언론들에게 "외계인"처럼 나타난 털보농민 강기갑 당선자. 틀에 박힌 사고를 당당히 거부하면서 자신의 것을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그에게도 국회의원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없어진 것이다. 기자는 기억한다. 지난 해 한-칠레 FTA 국회비준반대 투쟁 당시 심한 지역사투리로 발언을 강하게 이어가던 강 당선자의 발언을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던 것을.
하지만 그는 당선자가 된 이후 연이은 언론들과의 인터뷰, 방송 등으로 한풀꺽인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강한 억양은 사라지고 가끔씩 나오는 지역 방언이 전부인 그의 말투만이 국회의원 강기갑으로 달라진 것이였다.
"한칠레 통과되면 농민들 다 죽습니더. 그런데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죽일라 캅니더. 이대로는 안되는기라요. 그래서 농민들의 정치세력화가 꼭 이뤄져야 하는깁니더. 국민들 멕이 살리고 식량주권 지킬라꼬 해온 우리 농민들을 이리 버리면 안되는 깁니더."
2003년 10월 국회앞 집회 도중, 당시 전농 경남도연맹 의장이던 강기갑 당선자가 내뱉은 피맺힌 말이다.
김주아 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4-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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