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격장 폐쇠 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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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8-09 00:00 조회1,4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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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4일 ‘신효순·심미선’ 추모비 앞에서 농약을 먹고 음독자살을 기도했던 이용남(50·경기도 파주시) 현장사진연구소 소장을 29일 오후 파주시청 부근에서 만났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은 예전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없던 어지럼증도 생겼으며 두 달 동안 제대로 활동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시 활동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당시 그는 왜 음독자살을 기도했을까. 아직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 의문에 대해 그는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을 넘기고서야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음독 이유에 대해 “스토리사격장 안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친구 아버님(우재욱)에게 미군과 국방부의 토지 강제 수용으로 발생한 농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노인네가 지뢰라도 안고 죽겠다는 심정을 여러 번 피력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하겠다는 절박감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이후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깨달은 교훈이란 스토리사격장과 관련해 “절대로 타협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미군 문제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한국민이 미군에게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50년 동안 미군기지 근처에서 살면서 오만한 자세로 국민을 대하는 것에 대해 내가 침묵할 수 없고, 침묵한다는 것이 이 땅의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국가 정체성 문제에 대해 “지금 정체성은 미군기지로 삶의 흔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뿌리깊은 정체성을 찾아줘야 한다”면서 “민족 고유의 땅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게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엉뚱한 것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국가 정체성을 찾는 방법의 하나로 스토리 사격장 폐쇄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스토리사격장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정치권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역설하면서 미군 훈련장의 면적과 훈련일 수를 정확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군기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조사한 뒤 한국군과 미군이 훈련장을 같이 쓰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평소 ‘거리의 사진가’ ‘반미사진가’ 등 그를 설명할 때 으례 붙던 수식어도 이제는 ‘사진운동가’로 바뀌었다. ‘사진운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유로는 “ 내가 사는 파주에서는 사진가로는 지역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운동가가 되겠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바꾼 것이 아니라 미국이 나한테 강요한 것”이라며 “중립은 양쪽의 힘의 균형이 엇비슷했을 때 작용하지만, 점령되고 압박된 상태에서 중립된 가치는 허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로 될 때까지 ‘사진운동가’로 남았다가, 미군 문제가 해결된 그날 다시 “사진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사진전과 스토리사격장 문제 해결를 위한 국제연대 활동에 나서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국제 연대활동의 한 방법으로 오는 10월17일부터 미국 뉴욕 피에스1 갤러리에서 파주 등 한국의 미군 피해와 환경 파괴, 실향민들의 삶 등을 주제로 한 작품 40점을 두달 간 전시할 계획이다.
그는 “주한 미군 문제를 이제는 미국에 직접 가서 알리겠다”며 “다시는 음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2004/07/30>
검게 그을린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은 예전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없던 어지럼증도 생겼으며 두 달 동안 제대로 활동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시 활동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당시 그는 왜 음독자살을 기도했을까. 아직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 의문에 대해 그는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을 넘기고서야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음독 이유에 대해 “스토리사격장 안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친구 아버님(우재욱)에게 미군과 국방부의 토지 강제 수용으로 발생한 농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노인네가 지뢰라도 안고 죽겠다는 심정을 여러 번 피력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하겠다는 절박감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이후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깨달은 교훈이란 스토리사격장과 관련해 “절대로 타협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미군 문제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한국민이 미군에게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50년 동안 미군기지 근처에서 살면서 오만한 자세로 국민을 대하는 것에 대해 내가 침묵할 수 없고, 침묵한다는 것이 이 땅의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국가 정체성 문제에 대해 “지금 정체성은 미군기지로 삶의 흔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뿌리깊은 정체성을 찾아줘야 한다”면서 “민족 고유의 땅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게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엉뚱한 것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국가 정체성을 찾는 방법의 하나로 스토리 사격장 폐쇄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스토리사격장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정치권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역설하면서 미군 훈련장의 면적과 훈련일 수를 정확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군기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조사한 뒤 한국군과 미군이 훈련장을 같이 쓰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평소 ‘거리의 사진가’ ‘반미사진가’ 등 그를 설명할 때 으례 붙던 수식어도 이제는 ‘사진운동가’로 바뀌었다. ‘사진운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유로는 “ 내가 사는 파주에서는 사진가로는 지역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운동가가 되겠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바꾼 것이 아니라 미국이 나한테 강요한 것”이라며 “중립은 양쪽의 힘의 균형이 엇비슷했을 때 작용하지만, 점령되고 압박된 상태에서 중립된 가치는 허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로 될 때까지 ‘사진운동가’로 남았다가, 미군 문제가 해결된 그날 다시 “사진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사진전과 스토리사격장 문제 해결를 위한 국제연대 활동에 나서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국제 연대활동의 한 방법으로 오는 10월17일부터 미국 뉴욕 피에스1 갤러리에서 파주 등 한국의 미군 피해와 환경 파괴, 실향민들의 삶 등을 주제로 한 작품 40점을 두달 간 전시할 계획이다.
그는 “주한 미군 문제를 이제는 미국에 직접 가서 알리겠다”며 “다시는 음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200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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