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천소학교 1일 개교식 개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4-09-14 00:00 조회1,46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평양 9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에서 9월 1일 새로 건설된 룡천소학교와 룡천농업전문학교에서 만사람의 축복속에 개교식이 진행되였다.
이 학교들은 지난 4월 22일 룡천역에서 발생한 뜻밖의 렬차폭발사고로 가장 혹심하게 파괴된 대상들이였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4개월 남짓한 기간에 제일먼저 복구되여 뜻깊은 개교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본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수백베터 떨어진 곳에 나란히 건설된 소학교(연건평 근 5,000㎡)와 농업전문학교 (연건평 3,000㎡)는 4층,3층짜리 현대적건물들로서 원래 건물보다 거의 2배나 확장되였다.
교사들의 매 교실마다에는 현대적인 교구비품들이 갖추어져있다.
재난당시 주민들이 생활안착과 피해복구로 경황이 없어할때 3일만에 배움의 종소리를 울리게 하였던 당과 정부에서는 이 학교들의 새 교사를 빨리 세우고 개교할수 있도록 학교건설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였다.
그 어느 대상보다 이 학교들이 빨리 훌륭하게 일떠서 개교식을 하게 된것은 후대들에 대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끝없는 사랑과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옳바른 교육시책의 결실이다.
하기에 렬차폭발시 심한 부상을 입고 평양의 김만유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소생되여 개교행사에 참가한 소학교 2명의 학생과 그 부모들은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어버이사랑에 대하여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개교식에서 교직원,학생들은 후대들에 대한 당과 국가의 믿음과 사회주의교육제도의 고마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교육사업과 학과학습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둘 한마음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개교식에 이어 첫수업이 진행되였다.(끝)
......................................................................
[관련보도:조선신보 2004.9.3]
《부흥의 상징》으로 일떠선 룡천소학교
《제2의 창립기념일》 맞이한 감격 드높이
【룡천발 리상영기자】 4월 22일에 일어난 폭발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룡천소학교가 9월 1일, 이전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일떠섰다.
개교식을 맞이한 룡천소학교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다시 피여났고 새 교사에는 글읽는 그들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오늘은 룡천의 명절날》
새로 일떠선 룡천소학교
개교식이 진행된 9월 1일, 여름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등교해온다. 밝은 풀색으로 색칠된 아담한 새 교사가 학생들을 맞이한다.
새로운 교복을 차려입은 학생들의 등에는 푸른 색, 록색, 빨간 색 등 다양한 색채로 빛나는 새 책가방이 메여져있다. 총련 혹가이도동포들이 지원금으로 마련한 책가방들이다. 신입생이 된것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새로 건설된 모교에서 다시 동무들과 함께 배울수 있다는 기쁨이 넘쳐있다.
4층짜리의 새 교사에는 콤퓨터실, 음악실, 공작실, 도서실을 비롯한 각종 다목적교실들이 꾸려졌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학생들이 배우는 30개의 교실에는 콤퓨터기재와 방송시설이 갖추어져있고 지하에는 탁구실과 체육실, 위생시설들이 꾸려져 있다.
룡천소학교 개교식에 참가한 교직원, 학생들과 관계자들
개교식날의 소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관계자들뿐만아니라 일반주민들에게도 《개방》되였다. 소학교의 개교는 룡천역폭발사고가 일어한 후 복구건설에 모든 힘을 기울여왔던 이곳 주민들에게 있어서도 큰 경사이다.
교사입구에서 접수를 하던 젊은 녀성교원은 《오늘은 룡천의 사람들에 있어서 명절과 같은 날이지요》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길가던 사람들도 새로 건설된 교사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교사안으로 들어간다. 중학교 학생들도 현대적으로 꾸려진 소학교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시설들을 돌아본다.
《앞으로 이 교사에서 공부를 잘 하여 자기 희망을 꽃피워나가겠어요》
개교식에서 결의토론을 한 김영미학생은 어머니 김명숙씨의 손을 잡으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말하였다.
사랑과 지성 깃든 학교
개교식이 끝나자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새 교사에서 진행되는 첫 수업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이기도 하다.
자연과목 수업이 진행된 4학년 8반 교실. 학생들은 자기 부모를 찾느라 저마다 뒤를 돌아본다. 긴장된 표정을 짓고있었던 학생들도 어머니의 모습을 찾은 순간 만면에 웃음을 띠운다.
4개월만에 모교에서 진행되는 수업. 학생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교과서를 읽으며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다. 수업에서는 총련혹가이도동포들이 보낸 콤퓨터설비가 《활약》하였다. 최신식 설비를 활용한 수업에 학생들도 신이 나는듯하다.
콤퓨터뿐만이 아니다. 책걸상, 텔레비죤, 흑판, 학생들의 학용품, 교실의 모든것이 학생들을 위해 새롭게 마련되였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들이 갖추어진 학교를 아마 평양에서도 보기 드물지요》
새로 마련된 5대의 탁구대에서 련습에 땀을 흘리는 룡천소학교 학생들
최병렵교장은 새로 건설된 룡천소학교를 《우리들의 학교》라고 불렀다.
《재일동포들의 민족애가 넘치는 지원은 학교의 건설에 커다란 도움이 되였습니다. 해외동포들뿐만이 아닙니다. 온 나라 인민들과 남녘동포들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원… 룡천소학교는 그들의 힘이 있어 다시 일떠서게 되였습니다.
헤아릴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과 지성이 깃든 룡천소학교를 조선에서 으뜸가는 학교로 꾸리는것이 우리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소망이고 목표입니다.》
오후는 학생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소조활동의 시간이다.
룡천소학교는 탁구와 축구를 잘 하는 학교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져있다. 탁구실에는 새로 마련된 5대의 탁구대에서 련습에 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었다.
저저마다 《학교이름을 떨치는 탁구명수가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밝고 희망에 넘쳐있었다.
상실의 아픔 이겨내여
학생들과 교원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있어서 《제2의 학교창립기념일》은 저절로 마련된것이 아니였다. 이날은 상실의 아픔과 시련을 이겨낸 그들의 4개월간을 돌이켜보는 날이기도 하였다.
어제까지 책상을 나란히 하여 함께 배우던 동무가 하루아침사이에 자기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였다.
2학년 1반을 담임하는 최창숙교원은 이 동안 학생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안정시켜 교수사업을 보장하는데 전력하였다고 말하였다.
소학교 교원들은 룡천중학교와 린근지역 소학교의 교실을 빌려 수업을 보장하였다. 부상을 입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원들이 병원이나 집을 찾아가 개별수업도 하였다.
폭발사고로 심한 상처를 입어 거의 50일동안 의식을 잃었던 박철진학생은 신의주와 평양에서 치료를 받아 이날 어머니와 함께 등교하였다.
《새로 건설된 소학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우리 아들에게 그 아픔의 몇배, 몇십배나 되는 행복하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마련해줄것입니다.》
어머니인 정금실씨는 아들을 보고 말하였다. 박철진학생도 《오래간만에 동무를 만나서 기뻤다》며 새로 마련된 배움터에서 마음껏 배울것을 결의다지고있었다.
《우리는 앞날을 내다보고 락천적으로 삽니다. 슬픔이 다 가셔진것은 아니지만 소학교의 개교는 학생들에게 더 큰 용기와 신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최창숙교원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개교식의 날을 맞이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말하였다.
소학교 교직원들은 새학기에 원족,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있다.
한편 콤퓨터실, 도서실을 비롯한 미진된 교내시설의 건설을 하루빨리 끝내고 학교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사업도 동시에 밀고나간다.
룡천소학교는 새 출발의 기운에 넘쳐있다. 《비극의 상징으로부터 부흥의 상징으로.》 학생들의 새로운 배움터는 상실의 아픔을 이겨낸 룡천군의 입구에 세상에 보란듯이 서있다.
(리상영기자 sang-yong@korea-np.co.jp)
[출처 조선신보 2004/09/03]
이 학교들은 지난 4월 22일 룡천역에서 발생한 뜻밖의 렬차폭발사고로 가장 혹심하게 파괴된 대상들이였다.

본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수백베터 떨어진 곳에 나란히 건설된 소학교(연건평 근 5,000㎡)와 농업전문학교 (연건평 3,000㎡)는 4층,3층짜리 현대적건물들로서 원래 건물보다 거의 2배나 확장되였다.
교사들의 매 교실마다에는 현대적인 교구비품들이 갖추어져있다.
재난당시 주민들이 생활안착과 피해복구로 경황이 없어할때 3일만에 배움의 종소리를 울리게 하였던 당과 정부에서는 이 학교들의 새 교사를 빨리 세우고 개교할수 있도록 학교건설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였다.
그 어느 대상보다 이 학교들이 빨리 훌륭하게 일떠서 개교식을 하게 된것은 후대들에 대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끝없는 사랑과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옳바른 교육시책의 결실이다.
하기에 렬차폭발시 심한 부상을 입고 평양의 김만유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소생되여 개교행사에 참가한 소학교 2명의 학생과 그 부모들은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어버이사랑에 대하여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개교식에서 교직원,학생들은 후대들에 대한 당과 국가의 믿음과 사회주의교육제도의 고마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교육사업과 학과학습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둘 한마음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개교식에 이어 첫수업이 진행되였다.(끝)
......................................................................
[관련보도:조선신보 2004.9.3]
《부흥의 상징》으로 일떠선 룡천소학교
《제2의 창립기념일》 맞이한 감격 드높이
【룡천발 리상영기자】 4월 22일에 일어난 폭발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룡천소학교가 9월 1일, 이전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일떠섰다.
개교식을 맞이한 룡천소학교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다시 피여났고 새 교사에는 글읽는 그들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오늘은 룡천의 명절날》

개교식이 진행된 9월 1일, 여름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등교해온다. 밝은 풀색으로 색칠된 아담한 새 교사가 학생들을 맞이한다.
새로운 교복을 차려입은 학생들의 등에는 푸른 색, 록색, 빨간 색 등 다양한 색채로 빛나는 새 책가방이 메여져있다. 총련 혹가이도동포들이 지원금으로 마련한 책가방들이다. 신입생이 된것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새로 건설된 모교에서 다시 동무들과 함께 배울수 있다는 기쁨이 넘쳐있다.
4층짜리의 새 교사에는 콤퓨터실, 음악실, 공작실, 도서실을 비롯한 각종 다목적교실들이 꾸려졌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학생들이 배우는 30개의 교실에는 콤퓨터기재와 방송시설이 갖추어져있고 지하에는 탁구실과 체육실, 위생시설들이 꾸려져 있다.

개교식날의 소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관계자들뿐만아니라 일반주민들에게도 《개방》되였다. 소학교의 개교는 룡천역폭발사고가 일어한 후 복구건설에 모든 힘을 기울여왔던 이곳 주민들에게 있어서도 큰 경사이다.
교사입구에서 접수를 하던 젊은 녀성교원은 《오늘은 룡천의 사람들에 있어서 명절과 같은 날이지요》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길가던 사람들도 새로 건설된 교사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교사안으로 들어간다. 중학교 학생들도 현대적으로 꾸려진 소학교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시설들을 돌아본다.
《앞으로 이 교사에서 공부를 잘 하여 자기 희망을 꽃피워나가겠어요》
개교식에서 결의토론을 한 김영미학생은 어머니 김명숙씨의 손을 잡으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말하였다.
사랑과 지성 깃든 학교
개교식이 끝나자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새 교사에서 진행되는 첫 수업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이기도 하다.
자연과목 수업이 진행된 4학년 8반 교실. 학생들은 자기 부모를 찾느라 저마다 뒤를 돌아본다. 긴장된 표정을 짓고있었던 학생들도 어머니의 모습을 찾은 순간 만면에 웃음을 띠운다.
4개월만에 모교에서 진행되는 수업. 학생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교과서를 읽으며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다. 수업에서는 총련혹가이도동포들이 보낸 콤퓨터설비가 《활약》하였다. 최신식 설비를 활용한 수업에 학생들도 신이 나는듯하다.
콤퓨터뿐만이 아니다. 책걸상, 텔레비죤, 흑판, 학생들의 학용품, 교실의 모든것이 학생들을 위해 새롭게 마련되였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들이 갖추어진 학교를 아마 평양에서도 보기 드물지요》

최병렵교장은 새로 건설된 룡천소학교를 《우리들의 학교》라고 불렀다.
《재일동포들의 민족애가 넘치는 지원은 학교의 건설에 커다란 도움이 되였습니다. 해외동포들뿐만이 아닙니다. 온 나라 인민들과 남녘동포들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원… 룡천소학교는 그들의 힘이 있어 다시 일떠서게 되였습니다.
헤아릴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과 지성이 깃든 룡천소학교를 조선에서 으뜸가는 학교로 꾸리는것이 우리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소망이고 목표입니다.》
오후는 학생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소조활동의 시간이다.
룡천소학교는 탁구와 축구를 잘 하는 학교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져있다. 탁구실에는 새로 마련된 5대의 탁구대에서 련습에 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었다.
저저마다 《학교이름을 떨치는 탁구명수가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밝고 희망에 넘쳐있었다.
상실의 아픔 이겨내여
학생들과 교원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있어서 《제2의 학교창립기념일》은 저절로 마련된것이 아니였다. 이날은 상실의 아픔과 시련을 이겨낸 그들의 4개월간을 돌이켜보는 날이기도 하였다.
어제까지 책상을 나란히 하여 함께 배우던 동무가 하루아침사이에 자기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였다.
2학년 1반을 담임하는 최창숙교원은 이 동안 학생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안정시켜 교수사업을 보장하는데 전력하였다고 말하였다.
소학교 교원들은 룡천중학교와 린근지역 소학교의 교실을 빌려 수업을 보장하였다. 부상을 입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원들이 병원이나 집을 찾아가 개별수업도 하였다.
폭발사고로 심한 상처를 입어 거의 50일동안 의식을 잃었던 박철진학생은 신의주와 평양에서 치료를 받아 이날 어머니와 함께 등교하였다.
《새로 건설된 소학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우리 아들에게 그 아픔의 몇배, 몇십배나 되는 행복하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마련해줄것입니다.》
어머니인 정금실씨는 아들을 보고 말하였다. 박철진학생도 《오래간만에 동무를 만나서 기뻤다》며 새로 마련된 배움터에서 마음껏 배울것을 결의다지고있었다.
《우리는 앞날을 내다보고 락천적으로 삽니다. 슬픔이 다 가셔진것은 아니지만 소학교의 개교는 학생들에게 더 큰 용기와 신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최창숙교원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개교식의 날을 맞이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말하였다.
소학교 교직원들은 새학기에 원족,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있다.
한편 콤퓨터실, 도서실을 비롯한 미진된 교내시설의 건설을 하루빨리 끝내고 학교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사업도 동시에 밀고나간다.
룡천소학교는 새 출발의 기운에 넘쳐있다. 《비극의 상징으로부터 부흥의 상징으로.》 학생들의 새로운 배움터는 상실의 아픔을 이겨낸 룡천군의 입구에 세상에 보란듯이 서있다.
(리상영기자 sang-yong@korea-np.co.jp)
[출처 조선신보 2004/09/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