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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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5-01-02 00:00 조회1,4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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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근본적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
[인터뷰] 장상환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 초대 소장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가 25일 공식 출범한다. 민주노동당의 부설연구소이기도 한 진보정치연구소는 본격적인 진보진영의 "씽크탱크(think-tank)"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본격적인 의미의 정치연구소를 차린 것은 90년대 초반 민청련 부설의 민족민주운동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로 평가된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은 장상환 경남대 교수를 만났다. 장상환 교수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민주노동당 창립 시기부터 정책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진보정당의 건설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
그러나 인터뷰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부터 장 소장은 민중의소리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표현했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일문일답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아래에서 파란색 글씨는 기자의 질문, 짙은 푸른색 글씨의 ""로 인용된 부분은 장 소장의 답변이다)
-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민중의소리>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잠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마 국가보안법에 ‘올인’하는 모습, 더 정확하게 하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조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문제라고 보신 듯 하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서 듣고 싶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포지션을 가져야 한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과제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협력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민중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등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인데, 군부독재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중의 요구수준은 이미 이 단계를 넘어갔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 이른바 민중민주주의, 혹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40대의 여당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냈었다. 이들이 이렇게 돌아서게 된 것은 이들 세대가 겪어야 하는 문제, 즉 자녀교육 문제, 내집마련문제, 노부모 부양문제에서 현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 문제도 그렇다. 지금 출산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데 정규직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이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이 이렇게 심각해져 있다. 민주노동당은 여기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가야한다.
이걸 나는 근본적인 이슈라고 생각한다. 앞서 열린우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문제들에 비해서 이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물론 국가보안법은 물론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표현의 제약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껴서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태라고 보아도 좋다. 여기에 지나치게 무게를 싣는 것은 옳지 않다. 이렇듯 과거에 중심을 두었던 이슈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틀을 고집하면서 이슈를 선정하고 정치행동의 방향을 잡아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 투쟁에 "올인"하다시피한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의 입장에서 듣기에 상당히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좀 더 자극적인 보충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는 더 "불편해졌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다"
- 워딩(Wording)만 놓고 보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유사하다. 김종필 전 총재는 예전에 ‘말’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으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만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말했었다.
"그런 식으로 토론하는 것은 옳지않다. 김종필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과도한 힘을 실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워딩만 놓고 ‘한나라당과 같지 않느냐, 그러므로 잘못’이라는 지적은 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할 때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성과가 70%고, 잘못한 것이 30%라는 말이다. 정확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모두 다 옳고, 모두 다 틀리고 이런 것은 없다. 감성적으로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일단 정확한 의미는 분명해졌다. 국가보안법이 갖는 의미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 그런만큼 진보진영이 여기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장 소장은 인터뷰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줄곧 표현했는 데, 그 의미는 인터뷰 끝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인터뷰는 애초의 목적대로 진보정치연구소의 이념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인터뷰 시작부터 조금 예민한 주제를 다룬 것 같다. 이번 인터뷰는 원래 진보정치연구소의 출범을 앞두고 진보정치연구소가 추구하는 사회경제적 체제대안에 대해 들을 예정이었다. 소장께서는 그 동안 성장과 분배라는 전통적인 좌우 논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자는 희망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이것을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하고 있는 데, 이 말의 의미를 말해달라.
"우선 좌파와 우파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다. 좌우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반대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된다.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이냐 아니냐와는 관계가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좌파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평등을 핵심적인 가치로 한다. 사람에게는 능력과 개성의 차이가 있고, 따라서 각자의 역할이 다르게 된다. 좌파는 이것을 수평적 분업관계로 본다. 즉 역할의 차이가 있지만 상하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현실의 제도와 정책을 바꾸어서 각자의 능력이 다르다고 하여도 평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파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불평등을 당연시 한다. 이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이 우파의 생각이다. 이것은 국제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데 강대국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미국에 의해 세계지배를 인정한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우월한 힘이나 지위를 갖게 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내에서 위,아래를 따지고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파적 가치에 따른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소련이나 북한의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좌파정권이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우파적 가치가 작동했다고 본다."
"좌파는 "평등", 우파는 "불평등"을 기본 가치로 한다"
-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셨다.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분배와 성장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다르다. 본원적 축적의 단계, 즉 기술 혁신보다는 노동력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를 추가로 투입하는 것이 그대로 성장으로 나타나는 시기에는 생산결과를 분배해 버리면 투자할 재원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 성장을 늘려나가기 위해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결금지법, 농민에 대한 높은 세금과 같은 제도가 이럴 때 성립했다. 수요, 공급의 측면에서 보아도 이런 시기에는 수요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건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바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발전 초기에는 불평등이 성장에 기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서 핵심은 인적자원이다. 사람의 창의적 능력,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저 노동자의 숫자를 늘리고 기계를 늘리는 것으로는 성장이 되지 않는다. 이 때는 평등이 중요하다. 분배가 악화되어 불평등이 심해지면 우선 교육이 잘 되지 않는다.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면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실패할 경우에 자신을 지탱해 줄 안전판이 없기 때문이다. 안전판이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투자를 할 수 있고, 또 인적자본이 형성된다. 이럴 때 성장이 가능하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측면에서도 내수 소비가 위축된 것이 문제다. 왜 소비가 위축되었나. 임금이 양극화되고, 평균적으로는 떨어졌다. 사회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장래가 불안한 노동자들이 반 강제적으로 저축을 하고 있다. 소비에 돌릴 돈이 없다. 이러니 불황이 극복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분배의 개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시기라고 본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말한다."
- 역사적 경험이 있나
"좋은 예가 있다. 흔히 우리가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가 된 데는 박정희의 공이 크다고들 한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흔히 발견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내에 발전을 한 데는 농지개혁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필리핀의 경우를 보면 50년대에는 우리보다 欖뭅?데 70년대에 오면 이미 우리와 상당한 격차가 생겼다. 필리핀에서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주 계급이 그 때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토지의 평등한 분배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그 결과 교육열이 크게 높아져서 70년대에 오면 공장노동자 중에서 문맹자가 없었다.
불평등이 자본주의 초기의 성장에 나름의 역할을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평등이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분배와 성장은 오랜 좌우논쟁의 주제였다. 한 때 분배쪽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였던 노무현 정부는 집권 6개월만에 이른바 "2만불 시대"를 주창하면서 성장 일변도의 정책으로 옮겨갔다. 노무현 정부의 주장에서 핵심은 "아직 (나누어 먹을) 파이가 작다"는 것이었는데, 이 주장은 박정희-전두환-김영삼 정권내내 일관된 논리였다. 다만 김대중정부는 IMF 뒤치닥거리로 이런 주장 한 번 펴 볼 기회가 없었다.
"구매력 수준으로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없다"
- 어떤 학자들은 분배에 의한 성장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1인당 GDP가 1만5천불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아닌가
"환율 변동의 영향이긴 하지만 올해 1인당 GDP는 1만4천불에 달할 것으로 보며, 2007년에는 2만불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환율 변동에 따른 것이긴 하다. 그러나 구매력(PPP:Purchasing Power Parity)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 우리의 1인당 구매력 수준은 1만8천불에 달한다. 일본이 2만5천불이니까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크기, 즉 GDP에서 정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7% 정도다. OECD평균이 41%이고, 스웨덴 같은 나라는 50% 이상이다. 국가의 역할은 결국 ‘복지국가’라는 말로 표현된다. 숫자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는 ‘복지국가’의 역할이 지나치게 작다. 국가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최소한 OECD평균 수준까지는 가야한다고 본다."
"복지국가"라는 말은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는 전혀 "좌파적"인 단어가 아니다. 교과서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이상향처럼 그려졌다. "좌파"가 불온시되던 때에 복지국가는 우파 이념의 승리를 말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는 "복지국가"는 좌파적 처방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언뜻 듣기로는 케인즈와 유사하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처럼 많은 좌파 경제학자들이 오늘에 와서 케인즈적인 처방을 내리고 있다. 김 교수는 진보평론을 통해 ‘복지국가’라는 말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과거 좌파는 케인즈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지 않았나?
"케인즈 주의는 불황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이었다. 케인즈주의는 정부재정과 이자율을 조정함으로써 공황과 같은 극심한 불황에 대처해왔는 데 70년대에 불황과 함께 나타난 인플레이션으로 결국 신자유주의의 반격을 받았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적 재정, 금융정책이 불황을 막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유도했다고 비판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낮추고, 고용을 유연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그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케인즈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기업과 금융기관이 사적으로 운영되는 한, 정부의 정책이 먹혀들어가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가할 때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이라고 한다면 ‘케인즈주의+노동자들의 경영 참가+금융기관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케인즈주의만 가지고는 어렵다.
사실 이런 대안 이전에 우리는 복지국가의 경험 조차 없다. 보통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자유주의-케인즈주의-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겪어왔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케인즈주의적 정책, 즉 복지국가의 경험이 없다. 이걸 생략하고 바로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에는 있는 보호망이 없다. 출산률 저하가 그 단적인 증거다. 보호망없이 신자유주의로 가다보니 노동력 재생산 자체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유지조차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생략된 복지국가를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케인즈 플러스 알파"
- 사회경제체제를 놓고 한나라당과는 논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중요한데,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 주류는 김대중 정권 이래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노선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이 노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반독재 민주주의다. 경제적으로 보면 과거 ‘관치(官治)’의 폐해를 바로잡자는 것인데, 물론 관치의 폐해라 불린 만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시장경제라는 표현에 있다. 시장에 다 맡기면 불평등으로 간다. 불평등, 불안정, 불황 이런 것들은 시장경제에서 필연적이다. 이 문제점들을 국가가 나서서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형마트는 시 외곽으로 보낸다. 싼 물건을 대량으로 사려면 자동차를 타고 마트를 찾아가는 수고는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택가 가운데 있는 슈퍼나 구멍가게들도 살 수 있다. 우리는 시내 한 중간에 대형마트가 마구 들어선다.
요즘 자주 보도되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 같은 것도 그렇다. 노동자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기업이 자기회사 주식을 산 후에 소각한다. 기존의 주주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이런 일을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가해서 막아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현 집권세력은 상당히 불안하다. 이현재 부총리의 입장이 다르고,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장이 다르다. 단순한 차이라기보다 색깔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는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정기국회 마지막날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은 재벌들과 한나라당의 상당한 반대속에서 강행 처리되었다.
-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최근 통과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지할 것 같다. 그런가
"대체로 찬성한다."
-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반대했다. 그 논리는 외국자본에게는 무제한 허용되어 있는 자본활동의 자유를 국내 자본에게만 불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장악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 안된다. 지금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비중이 40%가 넘고, 주요 대기업에서 지배주주로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큰 문제가 맞다. 그러나 이걸 시정하는 방법은 외국자본에게도 제한 조치를 다시 도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외국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만큼 국내 자본에도 풀어야 한다는 것은 막가자는 것일 뿐이다. 서로 제한없이 붙어보자는 것인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안면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 정운영 논설위원은 좌파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장 소장과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정운영 선생이 중앙일보에 오래 계시고, 그러다보니 대중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처지를 듣는 기회가 줄어들어서 그런 발언을 한다고 생각한다."
- 학계에서는 진보적인 학자들끼리도 서로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풍조가 있다.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비판하는 경우도 드물고...
"비판이 보도되어도 좋다. 안면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돌아가신 박현채 선생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지주계급 문제였다. 박 선생은 농촌 분석에서 지주계급을 자주 거론했는 데, 내가 다녀보니 농촌에는 이미 지주가 없었다. 없는 데 자꾸 거론하면 어떻게 하나. 실사구시적으로 보아야지, 고정된 이념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현채 선생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는 "대선배"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장 소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으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 지금 농촌에는 뚜렷하게 세력화되어있는 지주계급이 없다. 이것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본격적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부터 쭉 그래왔던 현상.
장 소장은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실사구시" 이상의 원칙이 없다는 것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실제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연구해보니 "그러했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이미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의 논쟁적인 주제로 돌아가보고 싶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관계. 그러나 기왕이면 당장의 실천과제를 놓고 하는 논쟁보다는 각 당의 사회계급적 기반의 차이를 조명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소장 역시 그런 방향에서 답변을 내주었다.
- 다시 처음의 논쟁적인 주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장 소장께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열린우리당의 경제정책은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지향한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은 중산층이나 의욕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지지할 만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약자의 입장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유럽적인 사회보호를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더 좀 나간다면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1차 목표다. 그러나 유럽식 복지국가가 못하고 있는 것도 해 보고 싶다.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가 주력해야 할 것에 주력하면 자연스럽게 정면으로 대결할 수 밖에 없다. 대립을 기본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열린우리당에게 ‘촉구’할 일도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자신의 본업을 소흘히 하면서 많은 힘을 엉뚱한 데 돌리면 안된다. 대중들이 그러한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
"힘은 정확함에서 나오고, 정확함은 실사구시적 태도에서 나온다"
-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다. 이 인터뷰는 진보정치연구소 창립을 기념한 것이니 만큼 진보정치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지 듣고 싶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경우에는 정책연구소가 하나의 정치기관으로 비쳐진다. 실제 선거전략을 만들기도 하고...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연구소는 어떤가
"한국정치는 현실변화보다 뒤쳐진다. 그 결과 지금 정당간의 갈등은 각자의 지지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으로 정쟁을 벌이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정당법이 국고보조금의 30%을 정책연구비용으로 쓰게끔 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지난 번 선관위 주최의 토론회에 나가보니, 패널들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연구소장에게 당의 정체성과 의원들의 자질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더라. 사실 이런 일은 각 당의 정책위원회나 연수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게 잘 안되니까 국고로 유지되는 정책연구소에 이걸 주문할 수 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상대적으로 당의 정체성이나 의원자질 문제가 없다. 정책연구소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진보정치연구소는 정치와 학계의 중간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 우리 당의 이념적 지향에 걸맞는 정책을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정치전략과 같은 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시기 바란다
"모든 생각은 과거의 사실에 입각해서 형성된다. 그러나 사회는 변한다. 사회변화에 빨리 따라가야지 과거의 사실에만 눈을 돌리고, 이 때 형성된 생각만 고집하면 안된다. 힘은 정확함에서 나온다. 정확하자면 실사구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기성의 사회이론이 실사구시적 자세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결국 기존의 이념, 이론에 대해서는 ‘상대적 정당성’만을 인정해야 한다."
독자들중에서는 장 소장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화가 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는 장 소장이 인터뷰 내내 보여준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원칙은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정무 기자
[출처:민중의 소리2004년12월12일]
[인터뷰] 장상환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 초대 소장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가 25일 공식 출범한다. 민주노동당의 부설연구소이기도 한 진보정치연구소는 본격적인 진보진영의 "씽크탱크(think-tank)"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본격적인 의미의 정치연구소를 차린 것은 90년대 초반 민청련 부설의 민족민주운동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로 평가된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은 장상환 경남대 교수를 만났다. 장상환 교수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민주노동당 창립 시기부터 정책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진보정당의 건설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

그러나 인터뷰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부터 장 소장은 민중의소리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표현했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일문일답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아래에서 파란색 글씨는 기자의 질문, 짙은 푸른색 글씨의 ""로 인용된 부분은 장 소장의 답변이다)
-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민중의소리>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잠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마 국가보안법에 ‘올인’하는 모습, 더 정확하게 하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조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문제라고 보신 듯 하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서 듣고 싶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포지션을 가져야 한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과제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협력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민중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등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인데, 군부독재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중의 요구수준은 이미 이 단계를 넘어갔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 이른바 민중민주주의, 혹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40대의 여당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냈었다. 이들이 이렇게 돌아서게 된 것은 이들 세대가 겪어야 하는 문제, 즉 자녀교육 문제, 내집마련문제, 노부모 부양문제에서 현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 문제도 그렇다. 지금 출산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데 정규직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이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이 이렇게 심각해져 있다. 민주노동당은 여기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가야한다.
이걸 나는 근본적인 이슈라고 생각한다. 앞서 열린우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문제들에 비해서 이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물론 국가보안법은 물론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표현의 제약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껴서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태라고 보아도 좋다. 여기에 지나치게 무게를 싣는 것은 옳지 않다. 이렇듯 과거에 중심을 두었던 이슈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틀을 고집하면서 이슈를 선정하고 정치행동의 방향을 잡아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 투쟁에 "올인"하다시피한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의 입장에서 듣기에 상당히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좀 더 자극적인 보충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는 더 "불편해졌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다"
- 워딩(Wording)만 놓고 보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유사하다. 김종필 전 총재는 예전에 ‘말’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으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만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말했었다.
"그런 식으로 토론하는 것은 옳지않다. 김종필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과도한 힘을 실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워딩만 놓고 ‘한나라당과 같지 않느냐, 그러므로 잘못’이라는 지적은 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할 때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성과가 70%고, 잘못한 것이 30%라는 말이다. 정확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모두 다 옳고, 모두 다 틀리고 이런 것은 없다. 감성적으로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일단 정확한 의미는 분명해졌다. 국가보안법이 갖는 의미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 그런만큼 진보진영이 여기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장 소장은 인터뷰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줄곧 표현했는 데, 그 의미는 인터뷰 끝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인터뷰는 애초의 목적대로 진보정치연구소의 이념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인터뷰 시작부터 조금 예민한 주제를 다룬 것 같다. 이번 인터뷰는 원래 진보정치연구소의 출범을 앞두고 진보정치연구소가 추구하는 사회경제적 체제대안에 대해 들을 예정이었다. 소장께서는 그 동안 성장과 분배라는 전통적인 좌우 논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자는 희망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이것을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하고 있는 데, 이 말의 의미를 말해달라.
"우선 좌파와 우파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다. 좌우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반대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된다.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이냐 아니냐와는 관계가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좌파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평등을 핵심적인 가치로 한다. 사람에게는 능력과 개성의 차이가 있고, 따라서 각자의 역할이 다르게 된다. 좌파는 이것을 수평적 분업관계로 본다. 즉 역할의 차이가 있지만 상하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현실의 제도와 정책을 바꾸어서 각자의 능력이 다르다고 하여도 평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파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불평등을 당연시 한다. 이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이 우파의 생각이다. 이것은 국제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데 강대국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미국에 의해 세계지배를 인정한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우월한 힘이나 지위를 갖게 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내에서 위,아래를 따지고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파적 가치에 따른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소련이나 북한의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좌파정권이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우파적 가치가 작동했다고 본다."
"좌파는 "평등", 우파는 "불평등"을 기본 가치로 한다"
-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셨다.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분배와 성장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다르다. 본원적 축적의 단계, 즉 기술 혁신보다는 노동력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를 추가로 투입하는 것이 그대로 성장으로 나타나는 시기에는 생산결과를 분배해 버리면 투자할 재원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 성장을 늘려나가기 위해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결금지법, 농민에 대한 높은 세금과 같은 제도가 이럴 때 성립했다. 수요, 공급의 측면에서 보아도 이런 시기에는 수요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건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바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발전 초기에는 불평등이 성장에 기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서 핵심은 인적자원이다. 사람의 창의적 능력,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저 노동자의 숫자를 늘리고 기계를 늘리는 것으로는 성장이 되지 않는다. 이 때는 평등이 중요하다. 분배가 악화되어 불평등이 심해지면 우선 교육이 잘 되지 않는다.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면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실패할 경우에 자신을 지탱해 줄 안전판이 없기 때문이다. 안전판이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투자를 할 수 있고, 또 인적자본이 형성된다. 이럴 때 성장이 가능하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측면에서도 내수 소비가 위축된 것이 문제다. 왜 소비가 위축되었나. 임금이 양극화되고, 평균적으로는 떨어졌다. 사회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장래가 불안한 노동자들이 반 강제적으로 저축을 하고 있다. 소비에 돌릴 돈이 없다. 이러니 불황이 극복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분배의 개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시기라고 본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말한다."
- 역사적 경험이 있나
"좋은 예가 있다. 흔히 우리가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가 된 데는 박정희의 공이 크다고들 한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흔히 발견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내에 발전을 한 데는 농지개혁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필리핀의 경우를 보면 50년대에는 우리보다 欖뭅?데 70년대에 오면 이미 우리와 상당한 격차가 생겼다. 필리핀에서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주 계급이 그 때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토지의 평등한 분배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그 결과 교육열이 크게 높아져서 70년대에 오면 공장노동자 중에서 문맹자가 없었다.
불평등이 자본주의 초기의 성장에 나름의 역할을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평등이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분배와 성장은 오랜 좌우논쟁의 주제였다. 한 때 분배쪽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였던 노무현 정부는 집권 6개월만에 이른바 "2만불 시대"를 주창하면서 성장 일변도의 정책으로 옮겨갔다. 노무현 정부의 주장에서 핵심은 "아직 (나누어 먹을) 파이가 작다"는 것이었는데, 이 주장은 박정희-전두환-김영삼 정권내내 일관된 논리였다. 다만 김대중정부는 IMF 뒤치닥거리로 이런 주장 한 번 펴 볼 기회가 없었다.
"구매력 수준으로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없다"
- 어떤 학자들은 분배에 의한 성장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1인당 GDP가 1만5천불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아닌가
"환율 변동의 영향이긴 하지만 올해 1인당 GDP는 1만4천불에 달할 것으로 보며, 2007년에는 2만불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환율 변동에 따른 것이긴 하다. 그러나 구매력(PPP:Purchasing Power Parity)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 우리의 1인당 구매력 수준은 1만8천불에 달한다. 일본이 2만5천불이니까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크기, 즉 GDP에서 정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7% 정도다. OECD평균이 41%이고, 스웨덴 같은 나라는 50% 이상이다. 국가의 역할은 결국 ‘복지국가’라는 말로 표현된다. 숫자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는 ‘복지국가’의 역할이 지나치게 작다. 국가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최소한 OECD평균 수준까지는 가야한다고 본다."
"복지국가"라는 말은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는 전혀 "좌파적"인 단어가 아니다. 교과서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이상향처럼 그려졌다. "좌파"가 불온시되던 때에 복지국가는 우파 이념의 승리를 말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는 "복지국가"는 좌파적 처방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언뜻 듣기로는 케인즈와 유사하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처럼 많은 좌파 경제학자들이 오늘에 와서 케인즈적인 처방을 내리고 있다. 김 교수는 진보평론을 통해 ‘복지국가’라는 말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과거 좌파는 케인즈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지 않았나?
"케인즈 주의는 불황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이었다. 케인즈주의는 정부재정과 이자율을 조정함으로써 공황과 같은 극심한 불황에 대처해왔는 데 70년대에 불황과 함께 나타난 인플레이션으로 결국 신자유주의의 반격을 받았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적 재정, 금융정책이 불황을 막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유도했다고 비판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낮추고, 고용을 유연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그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케인즈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기업과 금융기관이 사적으로 운영되는 한, 정부의 정책이 먹혀들어가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가할 때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이라고 한다면 ‘케인즈주의+노동자들의 경영 참가+금융기관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케인즈주의만 가지고는 어렵다.
사실 이런 대안 이전에 우리는 복지국가의 경험 조차 없다. 보통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자유주의-케인즈주의-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겪어왔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케인즈주의적 정책, 즉 복지국가의 경험이 없다. 이걸 생략하고 바로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에는 있는 보호망이 없다. 출산률 저하가 그 단적인 증거다. 보호망없이 신자유주의로 가다보니 노동력 재생산 자체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유지조차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생략된 복지국가를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케인즈 플러스 알파"
- 사회경제체제를 놓고 한나라당과는 논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중요한데,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 주류는 김대중 정권 이래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노선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이 노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반독재 민주주의다. 경제적으로 보면 과거 ‘관치(官治)’의 폐해를 바로잡자는 것인데, 물론 관치의 폐해라 불린 만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시장경제라는 표현에 있다. 시장에 다 맡기면 불평등으로 간다. 불평등, 불안정, 불황 이런 것들은 시장경제에서 필연적이다. 이 문제점들을 국가가 나서서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형마트는 시 외곽으로 보낸다. 싼 물건을 대량으로 사려면 자동차를 타고 마트를 찾아가는 수고는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택가 가운데 있는 슈퍼나 구멍가게들도 살 수 있다. 우리는 시내 한 중간에 대형마트가 마구 들어선다.
요즘 자주 보도되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 같은 것도 그렇다. 노동자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기업이 자기회사 주식을 산 후에 소각한다. 기존의 주주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이런 일을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가해서 막아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현 집권세력은 상당히 불안하다. 이현재 부총리의 입장이 다르고,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장이 다르다. 단순한 차이라기보다 색깔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는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정기국회 마지막날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은 재벌들과 한나라당의 상당한 반대속에서 강행 처리되었다.
-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최근 통과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지할 것 같다. 그런가
"대체로 찬성한다."
-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반대했다. 그 논리는 외국자본에게는 무제한 허용되어 있는 자본활동의 자유를 국내 자본에게만 불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장악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 안된다. 지금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비중이 40%가 넘고, 주요 대기업에서 지배주주로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큰 문제가 맞다. 그러나 이걸 시정하는 방법은 외국자본에게도 제한 조치를 다시 도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외국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만큼 국내 자본에도 풀어야 한다는 것은 막가자는 것일 뿐이다. 서로 제한없이 붙어보자는 것인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안면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 정운영 논설위원은 좌파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장 소장과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정운영 선생이 중앙일보에 오래 계시고, 그러다보니 대중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처지를 듣는 기회가 줄어들어서 그런 발언을 한다고 생각한다."
- 학계에서는 진보적인 학자들끼리도 서로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풍조가 있다.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비판하는 경우도 드물고...
"비판이 보도되어도 좋다. 안면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돌아가신 박현채 선생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지주계급 문제였다. 박 선생은 농촌 분석에서 지주계급을 자주 거론했는 데, 내가 다녀보니 농촌에는 이미 지주가 없었다. 없는 데 자꾸 거론하면 어떻게 하나. 실사구시적으로 보아야지, 고정된 이념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현채 선생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는 "대선배"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장 소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으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 지금 농촌에는 뚜렷하게 세력화되어있는 지주계급이 없다. 이것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본격적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부터 쭉 그래왔던 현상.
장 소장은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실사구시" 이상의 원칙이 없다는 것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실제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연구해보니 "그러했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이미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의 논쟁적인 주제로 돌아가보고 싶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관계. 그러나 기왕이면 당장의 실천과제를 놓고 하는 논쟁보다는 각 당의 사회계급적 기반의 차이를 조명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소장 역시 그런 방향에서 답변을 내주었다.
- 다시 처음의 논쟁적인 주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장 소장께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열린우리당의 경제정책은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지향한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은 중산층이나 의욕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지지할 만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약자의 입장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유럽적인 사회보호를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더 좀 나간다면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1차 목표다. 그러나 유럽식 복지국가가 못하고 있는 것도 해 보고 싶다.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가 주력해야 할 것에 주력하면 자연스럽게 정면으로 대결할 수 밖에 없다. 대립을 기본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열린우리당에게 ‘촉구’할 일도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자신의 본업을 소흘히 하면서 많은 힘을 엉뚱한 데 돌리면 안된다. 대중들이 그러한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
"힘은 정확함에서 나오고, 정확함은 실사구시적 태도에서 나온다"
-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다. 이 인터뷰는 진보정치연구소 창립을 기념한 것이니 만큼 진보정치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지 듣고 싶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경우에는 정책연구소가 하나의 정치기관으로 비쳐진다. 실제 선거전략을 만들기도 하고...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연구소는 어떤가
"한국정치는 현실변화보다 뒤쳐진다. 그 결과 지금 정당간의 갈등은 각자의 지지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으로 정쟁을 벌이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정당법이 국고보조금의 30%을 정책연구비용으로 쓰게끔 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지난 번 선관위 주최의 토론회에 나가보니, 패널들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연구소장에게 당의 정체성과 의원들의 자질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더라. 사실 이런 일은 각 당의 정책위원회나 연수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게 잘 안되니까 국고로 유지되는 정책연구소에 이걸 주문할 수 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상대적으로 당의 정체성이나 의원자질 문제가 없다. 정책연구소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진보정치연구소는 정치와 학계의 중간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 우리 당의 이념적 지향에 걸맞는 정책을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정치전략과 같은 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시기 바란다
"모든 생각은 과거의 사실에 입각해서 형성된다. 그러나 사회는 변한다. 사회변화에 빨리 따라가야지 과거의 사실에만 눈을 돌리고, 이 때 형성된 생각만 고집하면 안된다. 힘은 정확함에서 나온다. 정확하자면 실사구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기성의 사회이론이 실사구시적 자세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결국 기존의 이념, 이론에 대해서는 ‘상대적 정당성’만을 인정해야 한다."
독자들중에서는 장 소장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화가 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는 장 소장이 인터뷰 내내 보여준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원칙은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정무 기자
[출처:민중의 소리2004년12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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