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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수배자 아빠가 딸 돌잔치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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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5-08-01 13:44 조회2,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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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비록 신랑은 국가보안법이 지명하는 대한민국 0순위 수배자이고 신부는 98년에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북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2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 때문에 남들처럼 멋진 샹들리에가 있는 결혼식장이 아닌 대학 강당에서 식을 올렸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결혼식을 본 적이 없었다.

<##IMAGE##> 그로부터 1년6개월여가 지난 오늘(7월31일) 한양대학교에서 그때의 신랑 신부가 또다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그들의 딸, 민에게 선물했다. 바로 7년째 수배인 범청학련 남측본부 윤기진 의장과 통일연대 황선 대변인의 딸 윤민의 돌잔치였다.

윤민. 이제 돌을 맞은 민이는 다른 돌쟁이들처럼 멋진 호텔에서 화려한 음악과 축포가 터지는 돌잔치는 아니었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아이도 받아보지 못한 부모의 사랑,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서의 첫 생일을 맞았다.

민이의 돌을 축하하려고 모인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광장 장기수 어르신들을 비롯해 각 단체 어르신들과 회원들은 통일을 열망하는 7천만 우리 민족의 축하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민이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민이를 보면서 자신도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연신 기쁨의 마음을 감추지를 못했다.

누구나가 다 그랬다. 국가보안법 수배자라는 이유로 남같은 돌잔치를 펼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아니라 곧 다가올 통일의 새시대에서 자신의 부모를 자랑스러워 할 민이의 내일을 기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돌잔치에는 웃음과 축하의 인사가 끊이지를 않았을 게다.

물론 민이네 가족은 아직 다른 가족들같지는 않다. 돌잔치 때 아빠 얼굴을 낯설어하지 않게 하려고 전날 하루종일 아빠 윤기진 의장은 딸 민이와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그제서야 겨우 민이는 ‘아빠, 아빠, 아빠’라고 연신 내뱉을 수 있었다.

사실 민이는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배웠다.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아빠지만 민이의 기억속에서는 언제나 아빠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민이 할머니와 황선 대변인의 소망 때문이다.

민이네 집에 가면 온천지에 윤기진 의장의 사진이 있다. 혹시라도 민이가 아빠 얼굴을 까먹을까봐 민이 할머니와 황선 대변인은 시간이 날때마다 사진을 가르키며 ‘아빠 아빠’라고 민이에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아빠를 보면 울어대던 민이지만 지금은 곧잘 아빠를 외워대고 윤기진 의장을 봐도 예전처럼 낯설어 하지 않는다.

비록 수배로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민이의 아빠와 엄마는 민이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는 민족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사진=안선영>

<##IMAGE##> 처음 아빠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땠냐는 심경을 묻자 윤기진 의장은 특유의 미소와 함께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왜 그런 걸 묻습니까’라며 대답을 피했다. 사실 그걸 물어봐야 알까.

민이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아빠, 성깔있는 모습마저 하늘의 축복마냥 보고 있으면 즐겁기만 아빠. 아빠 윤기진은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아빠에 품에 안겨서 잠이 들거나 손을 잡고서 걸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언제라 할 것 없이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른 아빠들처럼 맘껏 안아주지도 못하고, 잘못했을 때는 혼을 내지도 못하지만 아빠 윤기진 의장은 평범한 부녀지간마저 용납하지 않는 현실에 슬퍼하는 아빠가 아니다.

‘강산도 그 모양이 바뀐다는 십여 년의 청춘시절을 감옥과 수배생활로 보내고 있는’ 윤기진 의장에게는 딸 민이가 자주 민주 통일의 길을 더욱 더 잘 지키고 버티어 내야 할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가 된 것이다. 민이에게 먹구름 뒤덮인 조국이 아니라 맑고 푸른 하늘의 조국을 안겨주고픈 마음이 있기에 늦은 밤 잠자고 있는 딸의 고운 볼에 얼굴을 부빌 수 없는 현실에서도 절로 웃음이 내고 뱃심이 두둑해진다.

통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현실을 보면서 민이의 미래가 얼마나 밝을 것인가를 순간마다 깨닫게 해주는 민족에게 고맙다는 엄마 황선 대변인의 말처럼 아빠 윤기진 의장도 민이에게 조국의 통일이라는 큰 선물을 한아름 안고 민이를 꼭 껴안아줄 그날을 열어줄 민족에게 고마운 그 마음이 깊어 눈에 넣어도 안아플 민이와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을 웃으면서 이겨내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행복한 부녀지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이네 가족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민이 동생 돌잔치때는 학교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떠들썩하게 해보자고….

아니, 돌잔치를 준비했던 김영호(범청학련 남측본부 후원회 ‘통일청춘’ 사무국장)씨의 말처럼 오는 10월에 태어날 민이 동생 출산 때는 고생하는 아내의 손을 남편 윤기진 의장이 꼭 잡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윤 민의 첫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윤 민에게 아버지로서 해 준 것도 없는데 일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 우리 민이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라는 말에 공감이 크게 됩니다. 누구를 닮았는지 성깔은 조금 있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하늘의 축복 마냥, 보고 있으면 즐겁기만 합니다.

<##IMAGE##>민이는 ‘엄마’ 보다 ‘아빠’라는 단어를 먼저 외우고 다닙니다. 아빠를 모르고 자랄 것이 걱정되시는 어머니와 대변인이 벽에 제 사진을 걸어두고서 항상 연습을 시킨 덕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저에게는 낯을 그리 가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저를 향해 ‘아빠’ ‘아빠’를 연속해서 불러주었습니다. 그 기분 아실 분은 아실 겁니다.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아빠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거나 손을 잡고서 걸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면 언제라 할 것 없이 민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낮잠을 잘 시간이겠구나, 밖으로 나가자고 할머니를 조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지어집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민이에게도 고맙고 남편 없이, 아들 없이 민이를 보살피는 가족들도 고맙습니다. 비슷한 처지에서도 민이와 우리 가족을 먼저 걱정해 주는 주변의 동지들도 고맙습니다.

강산도 그 모양이 바뀐다는 십여 년의 청춘시절을 감옥과 수배생활로 보내고 있는 저에게 자주민주통일의 이 길을 더욱 더 잘 지키고 버티어 내야 할 강력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습니다.

저는 우리 민이에게 먹구름 뒤덮인 조국의 어둡고 무거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맑고 푸른 하늘의 조국을 물려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세상에 없는 행운인양 느껴질 만큼 사람들이 희망의 노래로 흥성거리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삼천리강토를 건설해 낼 것입니다.

딸 민이도 아빠에게 많은 것을 주었고 저도 민이에게 줄 것이 참 많아서 우리는 행복한 부녀지간입니다.


2005년 7월 30일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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