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균 선생 유언: "판문점에 유해 뿌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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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5-06-22 17:38 조회3,7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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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평화통신 종합] "민족분단과 갈등이 없는 새 세상에서 다시 환생하시라"
지난 주말 서거하신 고 서정균 선생님의 영결식이 21일 오후 8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내 한국장의사에서 있었다.
<##IMAGE##>고인을 바라보는 마지막인 이날 영결식은 미주지역 민주민족운동 인사와 외국인 평화운동단체 활동가 100여명이 조문한 가운데 도안 스님의 집례로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영결식은 평소 고인을 존경하고 따르든 김정열(전 열림 편집인)씨가 사회를 맡고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였으며 고인의 후배이자 오랜 활동의 동지였던 은호기 선생이 추도사를 하였다. 그리고 노래지기의 김은경, 김하림씨가 고인의 생을 기리며 조가를 바쳤다.
도안 스님은 총명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던 고인을 회고하며 민족자주와 통일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업으로 인해 반드시 극락세계를 거쳐 민족분단과 갈등이 없는 새 세상에서 다시 환생하시라고 명복을 빌었다.
생전 고인과 함께 했던 여러 추억과 일화를 서두로 시작한 추도사에서 은호기 선생은 고인을 자신이 진보활동을 해나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날카로운 이론가, 뜻을 굽히지 않은 깔끔한 언론인, 치밀한 조직력을 가진 실천가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조국의 자주와 통일에 헌신하는 우리들의 자세야 말로 고인을 뜻을 받드는 것이라며 오늘의 엄중한 역사 속에서 떠나는 고인 앞에 우리 굳건히 일어서자고 호소하며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고인이 저세상에서 나마 많은 채찍질을 해달라고 하였다.
<##IMAGE##>워싱턴 디시에서 대를 이어 민족, 통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인의 장남 서혁교씨는 조문인사에서 최근 6.15선언의 성과에 아버님이 안심하고 눈을 감으셨으리라 생각한다며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민족의 소원이 성취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날 영결식에는 전민특위 북측본부, 남측본부, 해외본부의 공동 화환과 범민련 재미본부,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재미동포전국연합, 미주동포전국협회를 비롯한 미주지역 민족민주 통일운동 단체 및 인사들로부터 많은 조화가 보내져 왔다.
고인의 유해는 22일 오전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화장을 하였고 평소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해가 남북분단의 상징 지점인 판문점에 뿌려질 예정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범민련 재미본부 대외협력위원장인 미망인 이화영 여사, 장남 서혁교(미주동포전국협회 사무국장), 며느리 심영주, 딸 서승희 사위 피터 돌리타, 손자 서보민, 서보원이 있다.
<##IMAGE##>서정균 선생의 약력
1937년 5월 20일 경북 달성에서 출생
경북사대부중,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 1971년 이민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해외한민보』와 통협의 기관지 『조국』발행
저서로는 해외한민보에 실렸던 글을 중심으로 사회변혁과 통일문제를 역동적으로 다루고 있는 『변혁과 통일』(1989년 간)이 있으며 단체활동으로는 70년대부터 재미민주한인협회, 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등의 결성과 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고 2000년대 이후 운명하시기전까지 전민특위 서부지역위원장, 범민련 재미본부 사무국장, 부의장, 고문 등을 역임 하셨다.
고인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하에서 조작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과 관련하여 입국이 불허되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고향땅을 30여년이 지나도록 밟지 못한 채 결국 지난 6월 18일 새벽 지병으로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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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거하신 고 서정균 선생님의 영결식이 21일 오후 8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내 한국장의사에서 있었다.
<##IMAGE##>고인을 바라보는 마지막인 이날 영결식은 미주지역 민주민족운동 인사와 외국인 평화운동단체 활동가 100여명이 조문한 가운데 도안 스님의 집례로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영결식은 평소 고인을 존경하고 따르든 김정열(전 열림 편집인)씨가 사회를 맡고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였으며 고인의 후배이자 오랜 활동의 동지였던 은호기 선생이 추도사를 하였다. 그리고 노래지기의 김은경, 김하림씨가 고인의 생을 기리며 조가를 바쳤다.
도안 스님은 총명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던 고인을 회고하며 민족자주와 통일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업으로 인해 반드시 극락세계를 거쳐 민족분단과 갈등이 없는 새 세상에서 다시 환생하시라고 명복을 빌었다.
생전 고인과 함께 했던 여러 추억과 일화를 서두로 시작한 추도사에서 은호기 선생은 고인을 자신이 진보활동을 해나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날카로운 이론가, 뜻을 굽히지 않은 깔끔한 언론인, 치밀한 조직력을 가진 실천가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조국의 자주와 통일에 헌신하는 우리들의 자세야 말로 고인을 뜻을 받드는 것이라며 오늘의 엄중한 역사 속에서 떠나는 고인 앞에 우리 굳건히 일어서자고 호소하며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고인이 저세상에서 나마 많은 채찍질을 해달라고 하였다.
<##IMAGE##>워싱턴 디시에서 대를 이어 민족, 통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인의 장남 서혁교씨는 조문인사에서 최근 6.15선언의 성과에 아버님이 안심하고 눈을 감으셨으리라 생각한다며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민족의 소원이 성취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날 영결식에는 전민특위 북측본부, 남측본부, 해외본부의 공동 화환과 범민련 재미본부,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재미동포전국연합, 미주동포전국협회를 비롯한 미주지역 민족민주 통일운동 단체 및 인사들로부터 많은 조화가 보내져 왔다.
고인의 유해는 22일 오전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화장을 하였고 평소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해가 남북분단의 상징 지점인 판문점에 뿌려질 예정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범민련 재미본부 대외협력위원장인 미망인 이화영 여사, 장남 서혁교(미주동포전국협회 사무국장), 며느리 심영주, 딸 서승희 사위 피터 돌리타, 손자 서보민, 서보원이 있다.
<##IMAGE##>서정균 선생의 약력
1937년 5월 20일 경북 달성에서 출생
경북사대부중,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 1971년 이민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해외한민보』와 통협의 기관지 『조국』발행
저서로는 해외한민보에 실렸던 글을 중심으로 사회변혁과 통일문제를 역동적으로 다루고 있는 『변혁과 통일』(1989년 간)이 있으며 단체활동으로는 70년대부터 재미민주한인협회, 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등의 결성과 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고 2000년대 이후 운명하시기전까지 전민특위 서부지역위원장, 범민련 재미본부 사무국장, 부의장, 고문 등을 역임 하셨다.
고인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하에서 조작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과 관련하여 입국이 불허되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고향땅을 30여년이 지나도록 밟지 못한 채 결국 지난 6월 18일 새벽 지병으로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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