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만수대 창작사-인민화가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6-08-22 12:07 조회3,86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평양에 소재한 만수대 창작사를 찾았다. 기자의 소감을 이렇게 적어 보았다. 예술은 국경을 초월하여 지구촌을 넘나든다. 북의 미술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포근하게 다가간다. 북의 미술은 또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대중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준다. 그래서 북의 미술은 대중들의 가슴에 부담없이 안긴다.
<##IMAGE##> 북의 예술의 전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만수대 창작사」의 정원에는 조각예술로 장식되었다.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있는 미술관을 들어서면 그 오른쪽에 나란히 인민화가들의 방이 위치하고 있다. 그 첫 방이 인민화가 선우영의 방이, 그 다음이 인민화가 김승희 방이, 그리고 인민화가 정창모의 방이 차례로 보인다.
서방세계는 이북을 미개의 나라로 묘사하지만 정작 북을 방문하여 이들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면 북은 미개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도 모범적인 예술의 나라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기자가 만나 본 만수대창작사 소속 인민화가들, 정창모, 선우영, 김승희 등은 세계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이들의 작품들을 통해 직감하게 된다. 이들은 우선 2005년 10월 중국에서 열린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정창모, 선우영 화가들은 이 대회에서 나란히 금상을 수상해, 세계 화단으로부터 지대한 주목을 받았다. 이북 미술이 이북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북에서 말하는 ‘조선화’는 현대적인 예술적 감각을 통해 그리고 채색과 힘찬 필치, 그리고 노련한 기교를 통해 주제를 유감없이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IMAGE##>
-정창모 인민예술가는 이남 출신 화가이다. 그는 1931년 전라북도 전주 태생으로 75세의 원로 화가이지만 아직도 그의 미술활동은 정력적이다. 그는 1977년 공훈예술가, <##IMAGE##> 1989년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부드럽고 유연한 색채로 통일감 있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화와 화조화가 주종을 이룬다. 미술전문 평론가들은 그의 기법에 대해 몰골화법이 특징이라고 평한다. 그는 지난 2005년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그의 작품, ‘남강의 겨울’로 금상을 수상하여 국제사회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정창모는 1938년에 전주 완산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의 크레용화 <아침해>가 당시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었다. 이 일로 해서 학교에서는 그의 이름대신 <꼬마화가>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가난한 생활은 미술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실현시킬 수 없게 하였다. 6.25때 인민의용군에 입대한 그는 전투속보를 발간하고 연극 <정각 5시 30분> 등 무대작품의 장치물을 만들었으며, 부대에서 조직한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놓으면서 점차 미술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1963년에 평양미대를 졸업하고 평양교원대학(당시, 현 사범대학) 교원으로, 그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창<##IMAGE##> 모는 일관 이석호(경기 안성출생. 1904. 2. 10 ∼ 1971. 11. 17)의 실기 지도를 받은 1965년부터 풍경화 창작에서 남다른 성과를 나타내게 된다. 1975년에 이르러 조선화 분야에서 정창모의 위치는 확고해지고 주요 주제와 풍경그림에 대한 창작과제가 집중되었다. 1980년대 중엽이후 화조화의 영역으로 주제를 확대하여 진달래, 모란, 들국화, 포도, 작약, 유자 등과 고려, 이조자기 등을 배합하여 창작한 정물형식의 몰골화조는 그의 특기이며 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창모는 이석호, 정종여, 김용준(대구출생. 1904. 2. 3 ∼ 1967. 11. 3) 이후 시기 몰골화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필력을 보여주었고, 그의 우수한 풍경화들은 현대 조선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정창모는 화조몰골을 위주로 한 3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으며, 그 중 국보로 평가돼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1백여 점, 국보적 가치를 갖는 우수 작품은 4백여 점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명작을 그렸다.
<##IMAGE##>-선우영 인민예술가는 1946년생으로 1989년에 공훈예술가, 그리고 1992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현재 만수대 창작사 조선화 창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북의 대표적 조선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국가소장품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특징들은 선이 강렬하며 동시에 세련된 기교, 그리고 진실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전문가들은 그의 작품들은 밀도 있는 세화기법으로 그린 주제화, 풍경화, 동물화가 독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그의 작품,‘백두산 천지’로 금상을 수상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IMAGE##> -김승희 인민예술가는 재일동포 출신 화가로 1959년 일본에 제1차 귀향 선을 타고 이북으로 온 인물이다. 그는 요즘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봉산탈춤 같은 민속 풍경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난 해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발행한 참가 작품들을 나열한 책자에 가장 첫 자리에 소개되어 국제사회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IMAGE##> -젊은 화가 탁효연의 유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만수대창작사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의 유화 작품들이 독특한 특징들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는 1969년 생으로 37세에 불과하지만 이미 이북의 유화 미술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1990년 평양미술대학 유화 과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에서 유화(혹은 서양화가)를 그리는 미술가로 활약해 오면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회 입상하는 등 이북 내에서 착실히 실력을 연마해 왔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은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11월 17일 창립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직속의 이북 내 최고최대의 창작단체이다. 평양시 평천구역 정평동에 위치한 만수대창작사에는 조선화창작단, 유화창작단, 벽화창작단, 조각창작단, 수예창작단, 보석화창작단, 만년화창작단, 공예창작단, 도자기창작단, 출판화창작단, 부동산개발창작단 등 각 분야별로 세분된 20여개의 창작단과 제작단에 100여명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와 4,500여명의 성원(창작가와 지원인원,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 및 고려무역상사 포함)들이 소속되어 회화, 조각, 공예, 출판미술, 산업미술, 건축장식미술 등 각종 순수예술과 공예 예술품을 창작하고 있으며, 유명 월북화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가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되어 있다.
<##IMAGE##>
<##IMAGE##>
<##IMAGE##> 북의 예술의 전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만수대 창작사」의 정원에는 조각예술로 장식되었다.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있는 미술관을 들어서면 그 오른쪽에 나란히 인민화가들의 방이 위치하고 있다. 그 첫 방이 인민화가 선우영의 방이, 그 다음이 인민화가 김승희 방이, 그리고 인민화가 정창모의 방이 차례로 보인다.
서방세계는 이북을 미개의 나라로 묘사하지만 정작 북을 방문하여 이들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면 북은 미개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도 모범적인 예술의 나라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기자가 만나 본 만수대창작사 소속 인민화가들, 정창모, 선우영, 김승희 등은 세계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이들의 작품들을 통해 직감하게 된다. 이들은 우선 2005년 10월 중국에서 열린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정창모, 선우영 화가들은 이 대회에서 나란히 금상을 수상해, 세계 화단으로부터 지대한 주목을 받았다. 이북 미술이 이북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북에서 말하는 ‘조선화’는 현대적인 예술적 감각을 통해 그리고 채색과 힘찬 필치, 그리고 노련한 기교를 통해 주제를 유감없이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IMAGE##>
-정창모 인민예술가는 이남 출신 화가이다. 그는 1931년 전라북도 전주 태생으로 75세의 원로 화가이지만 아직도 그의 미술활동은 정력적이다. 그는 1977년 공훈예술가, <##IMAGE##> 1989년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부드럽고 유연한 색채로 통일감 있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화와 화조화가 주종을 이룬다. 미술전문 평론가들은 그의 기법에 대해 몰골화법이 특징이라고 평한다. 그는 지난 2005년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그의 작품, ‘남강의 겨울’로 금상을 수상하여 국제사회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정창모는 1938년에 전주 완산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의 크레용화 <아침해>가 당시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었다. 이 일로 해서 학교에서는 그의 이름대신 <꼬마화가>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가난한 생활은 미술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실현시킬 수 없게 하였다. 6.25때 인민의용군에 입대한 그는 전투속보를 발간하고 연극 <정각 5시 30분> 등 무대작품의 장치물을 만들었으며, 부대에서 조직한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놓으면서 점차 미술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1963년에 평양미대를 졸업하고 평양교원대학(당시, 현 사범대학) 교원으로, 그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창<##IMAGE##> 모는 일관 이석호(경기 안성출생. 1904. 2. 10 ∼ 1971. 11. 17)의 실기 지도를 받은 1965년부터 풍경화 창작에서 남다른 성과를 나타내게 된다. 1975년에 이르러 조선화 분야에서 정창모의 위치는 확고해지고 주요 주제와 풍경그림에 대한 창작과제가 집중되었다. 1980년대 중엽이후 화조화의 영역으로 주제를 확대하여 진달래, 모란, 들국화, 포도, 작약, 유자 등과 고려, 이조자기 등을 배합하여 창작한 정물형식의 몰골화조는 그의 특기이며 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창모는 이석호, 정종여, 김용준(대구출생. 1904. 2. 3 ∼ 1967. 11. 3) 이후 시기 몰골화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필력을 보여주었고, 그의 우수한 풍경화들은 현대 조선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정창모는 화조몰골을 위주로 한 3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으며, 그 중 국보로 평가돼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1백여 점, 국보적 가치를 갖는 우수 작품은 4백여 점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명작을 그렸다.
<##IMAGE##>-선우영 인민예술가는 1946년생으로 1989년에 공훈예술가, 그리고 1992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현재 만수대 창작사 조선화 창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북의 대표적 조선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국가소장품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특징들은 선이 강렬하며 동시에 세련된 기교, 그리고 진실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전문가들은 그의 작품들은 밀도 있는 세화기법으로 그린 주제화, 풍경화, 동물화가 독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그의 작품,‘백두산 천지’로 금상을 수상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IMAGE##> -김승희 인민예술가는 재일동포 출신 화가로 1959년 일본에 제1차 귀향 선을 타고 이북으로 온 인물이다. 그는 요즘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봉산탈춤 같은 민속 풍경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난 해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발행한 참가 작품들을 나열한 책자에 가장 첫 자리에 소개되어 국제사회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IMAGE##> -젊은 화가 탁효연의 유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만수대창작사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의 유화 작품들이 독특한 특징들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는 1969년 생으로 37세에 불과하지만 이미 이북의 유화 미술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1990년 평양미술대학 유화 과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에서 유화(혹은 서양화가)를 그리는 미술가로 활약해 오면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회 입상하는 등 이북 내에서 착실히 실력을 연마해 왔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은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11월 17일 창립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직속의 이북 내 최고최대의 창작단체이다. 평양시 평천구역 정평동에 위치한 만수대창작사에는 조선화창작단, 유화창작단, 벽화창작단, 조각창작단, 수예창작단, 보석화창작단, 만년화창작단, 공예창작단, 도자기창작단, 출판화창작단, 부동산개발창작단 등 각 분야별로 세분된 20여개의 창작단과 제작단에 100여명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와 4,500여명의 성원(창작가와 지원인원,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 및 고려무역상사 포함)들이 소속되어 회화, 조각, 공예, 출판미술, 산업미술, 건축장식미술 등 각종 순수예술과 공예 예술품을 창작하고 있으며, 유명 월북화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가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되어 있다.
<##IMAGE##>
<##IMAGE##>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