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열 박사, <통일뉴스>국제통신 칼럼 맡아 29일부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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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3-29 00:56 조회2,7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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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미국서 25년 동안 생활하며 자주민주통일 운동에 참여하던 정기열 목사(54. 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철학박사)가 3월29일부터 남녘 인터네트 언론 <통일뉴스>에서 "국제통신"이라는 칼럼을 맡아 집필하게 되었다. 정 박사는 지난 시기 월간 말지, 민족21 등에서도 정력적인 집필활동에 참가해 해 내외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전민특위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국제사회 인사들을 조직하여 미군범죄 만행을 폭로하고 규탄하는데 앞장서 왔다. 국제통신-1에서는 브레제진스키(Zbigniew Brzezinski) 박사의 논문 "미국,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당하다’를 번역하여 소개했다. 그의 첫 글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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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전자우편주소: jokuk1korea@yahoo.com
브레제진스키 박사 논문 ‘미국,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당하다’ <##IMAGE##> 오늘부터 <정기열 교수의 국제통신>이 연재된다. 정기열 교수는 그간 미국에서 25년간 생활하면서 줄곧 해외통일운동을 해 왔으며, 귀국후 최근에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특히 한반도 통일문제과 동북아 평화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 교수는 <국제통신> 란을 통해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으면서 중요한 해외 글(기사ㆍ칼럼ㆍ기고ㆍ논문 등)의 번역.분석과 아울러 칼럼 등을 자유롭게 쓸 계획이다. 독자들의 많은 격려와 성원을 기대한다. / 편집자 주 <분석과 소개> 브레제진스키 교수의 글 <‘테러와의 전쟁’에 의해 테러를 당함>을 번역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즈비그뉴 브레제진스키 교수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고위관료 출신의 정치학자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함께 은퇴 이후에도 계속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전직 고위관리 중의 하나다. 그의 영향력은 키신저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안보와 국제관계문제에 있어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글은 아마도 브레제진스키 박사가 작심하고 쓴 글 같다. 워싱턴 포스트 일요일 판인 3월 25일자에 실린 이 글은 "21세기 이념으로서의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입안하고 실천한 신보수주의자들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대단히 노골적이고 신랄한 비판의 글이다. 이전 세기의 반공주의(communism)는 21세기의 테러주의(terrorism)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과거 세기까지 "공산주의와의 전쟁"(War on Communism)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테러주의와의 전쟁"(War on Terrorism)이 있다. 두 전쟁 다 큰 틀에서 입안자와 실천가가 같다.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입안자와 실천가는 미국이다. "분리와 정복"(divide and conquer)이라는 고전적인 지배이념으로서의 과거 "반공이념"(anti-communism as an ideology))과 오늘 또 다른 "분리와 정복" 이념으로서의 "반테러이념"(anti-terrorism as another ideology)은 마치 이명(異名) 일인(一人)과도 같다. 독자들은 이 번역기사에서 이전 세기 동서냉전시대를 지배했던 "반공이념"과 21세기 초 벽두부터 온 세상을 테러공포에 젖게 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지배이념 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브레제진스키 교수의 글은 온 세상을 미국의 일방주의적 군사통치하에 두려는 "신보수주의자"들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오늘 미국과 세상을 어떤 지경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는지를 놀랍도록 솔직하고 용감하게 지적한 글이다. 글의 저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전직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사실이 놀랄 정도다. 먼저 이 글이 미국을 신주(神呪)처럼 모시는 친미보수인사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특히 지난 반세기 한국사회를 지배한 극심한 반공분단논리와 빨갱이논쟁에 좋은 참고의 글이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 글은 아마도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글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최근 저서로는 "두 번째의 기회: 세 명의 대통령과 초강대국 미국의 위기"(Second Chance: Three Presidents andthe Crisis of the American Superpower)(영문)가 있다. 저자의 영문원고가 너무 길어 우리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은 중간중간 생략했다. <번역> ‘테러와의 전쟁’에 의해 테러를 당함 : 도대체 어떻게 해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세 단어로 된 이 주문이 미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IMAGE##>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사회를 불안에 떠는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즉 불안문화(culture of fear)를 만들어낸 것이다. 끔찍한 9.11 사건이 터진 뒤 부시 행정부가 만들어낸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세 단어의 국가주문(national mantra)은 미국사회의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문구는 그러나 우리를 테러로 공격할 수 있는 광신도(역자 주: 저자가 사용한 영어의 fanatics라는 단어는 본래 종교적 혹은 정치적 광신도를 뜻하나 이 글에서 저자는 아마도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을 뜻했을 것이다)들의 실질적인 도전에 효과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 세단어가 우리 모두에게 입힌 피해는 아프간의 동굴들에서 광신도들이 준비한 9.11공격이 꿈꾼 그 어떤 최상의 상황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크다. 문구의 단어들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문구는 그 어떤 특정한 지리적인 상황도, 그렇다고 우리들의 가상적이 누구인지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못한다. "테러리즘"이란 어떤 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혹은 전투수행의 한 방법일 뿐이다. 특히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문구의 애매모호함은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계산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끝없이 반복함으로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다. 즉 불안에 떠는 문화의 출현을 적극 고무한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앞서게 하며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원하는 정책방향에로 대중을 손쉽게 동원케 한다. 9.11의 충격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가정(假定) 사이의 심리적 연결(psychological linkage) 없이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선택한 결정은 결코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2004년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이 받았던 지지는 "전쟁 중에 최고지휘관을 중도하차 시키지 않는다"는 인식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주입함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테러위험이 있다"는 의식을 대중들 속에 은연중 만연시켜 필요에 따라 정치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급기야 자기 스스로 예언을 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self-fulfilling prophecy) 역사적 사실을 도용한 거짓설화까지 만들어냈다. "테러와의 전쟁"이 마치 과거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에 대항해 싸운 미국의 투쟁과 비슷하다고까지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나치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이 알-케이다 조직과는 전혀 다르게 당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들이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겼다. 이런 류의 예언과 거짓설화에 기초해서 오늘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전쟁준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은 결국 미국을 이라크와 이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아마도 파키스탄까지 뛰어들게 만드는 끝이 안 보이는 전쟁에로 내몰 것이다. (중략) 우리는 미국본토에 대한 또 다른 테러공격 때 발생할 수 있는 공황(패닉)상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며 불확실하고 잠정적인 테러공격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난 5년 국가차원에서 쉴 새 없이 이루어진 테러공격 가능성에 대한 세뇌(brainwashing)의 결과다. 이것은 영국, 스페인, 이태리, 독일, 일본을 포함한 몇몇 나라들이 우리와 비슷한 테러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테러위협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더 절제된 반응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IMAGE##>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알-케이다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까지 했다. 국가안보기업들과 대중언론매체들 그리고 영화예술산업까지 불안심리를 조장하는데 한몫 하면서 테러관련 사업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평소에 테러전문가들로 불리는 테러관련기업들 또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 테러위협을 극대화한다. 하기야 그들의 당면한 과제가 대중이 끝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확신케 하는 것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끔찍한 테러폭력행위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를 보여주는 친절한 청사진까지 준비된 그럴듯한 테러각본과 발표들은 웃돈을 받기까지 하며 대우를 받는다. 오늘 미국이 오히려 더 불안해졌고 더 큰 피해망상(paranoia)에 빠져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의회는 2003년 테러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중요한 대상들을 160개라고 지정했었다. 그러나 테러관련 기업들의 활발한 의회로비 덕분에 그 수는 해마다 급증했다. 2003년 말에 1,849개로, 2004년 말에 28,360개로, 그리고 2005년 말에는 무려 77,769개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보데이터베이스라는 것은 오늘 테러가능 대상 건물수를 시카고의 시어즈 타워와 일리노이스 애플, 포크 훼스티발 등을 포함해 모두 300,000만개 이상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중략) 미국정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인들의 피해망상증을 부추겼다. 한 예를 들어보자. 국도를 달리는 길 위에 대문짝만하게 나붙은 전광판들은 하나같이 "수상한 사람들을 신고하라"고 한다(도대체 모슬렘을 상징하는 터반(turban)을 쓴 운전자들을 신고하라는 말인가?). 몇몇 대중매체들이 일반인들의 불안심리를 조장하는데 한몫하고 있는 것 또한 불문가지다. 케이블방송들과 몇몇 신문잡지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할 끔찍한 (테러)각본들을 만들고 찾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 대중매체들은 소위 "테러전문가"들을 동원하여 테러각본의 정당성을 설교하고 세상에 종말론적 위험이 임박해 있다며 대중의 불안심리를 극대화한다. 물론 "턱수염"(역자 주: 모슬렘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을 기른 테러리스트들이 이들 테러각본들에서 주요 악한들로 그려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각본들이 노리는 일반적인 효과 역시 미국인들의 목숨을 노리는 불확실한 테러위협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며 불안감을 높이는 것이다. 영화산업 또한 이 일에 뛰어들었다. TV연속극과 영화들은 아랍인들과 때로 그들의 종교행위까지 악마화하고 "이슬람혐오증"(Islamophobia)을 확산하여 대중들의 불안심리를 고조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영상매체들과 특별히 신문만화들에서 아랍사람들은 마치 나치시절의 유대인차별운동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최근에 와서는 일부 대학의 학생조직들 또한 이런 류의 선동에 가담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끔찍했던 유대인 대학살 범죄를 다시 끄집어내어 역으로 (이슬람에 대한) 인종차별과 종교적 혐오심을 자극하는 악의적인 연결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테러와의 전쟁"에 의해 조성된 사회환경은 아랍계 미국인들을 법적으로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부당한 차별에 시달리게 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아주 충직하고 성실한 미국시민들이다. 한 경우를 더 들어보자. 아랍계 미국인들의 권익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가 막강한 유대계 미국인 권익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위원회(AIPAC) 조직을 모방해서 활동하려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한 사건이 있다. 몇몇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은 CAIR회원들을 심지어 "테러리스트 대변인들"이라고까지 몰아 부치며 그들의 실내토론행사에 하원건물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모슬렘여행객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일반 모슬렘들조차도 미국을 증오하게 되는 현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인종간 종교간 대화와 건설적인 관계형성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미국정부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미국사회의 인권문제는 더 심각하다. "불안문화"는 사람들이 인내심을 잃게 하고 외국인을 의심하게 되고 (인권과 관련해서) 정의(正義)의 근본가치들을 망각한 불법적인 온갖 조례들을 난무케 했다. (중략) <##IMAGE##> 언젠가 미국인들은 공황(패닉)상태에서 인내심을 잃은 다수가 소수에게 행한 횡포의 미국역사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한편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심각하게 망가뜨렸다. 모슬렘들에게 미군이 이라크 민간인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과 이스라엘군대가 팔레스타인사람들의 인권을 짓밟는 모습은 같은 것으로 비쳐진다. 모슬렘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TV뉴스를 보고 있는 모슬렘을 분노케 하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아랍사람 일반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밑도 끝도 없이 희생되고 있는데 대한 분노다. (미국에 대한) 분노와 반감은 이제 모슬렘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27개 국가에서 28,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한 BBC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제관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라들"로 이스라엘, 이란, 미국이 뽑혔다. 아! 누군가에게 바로 이들은 "새로운 악의 축"(the new axis of evil)이 될 것이다. 9.11사건은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국제연대를 이룰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특정한 테러조직망을 근절시키고 테러를 끝없이 양산케 하는 정치적 분쟁들을 종식하기 위해 합리적인 모슬렘세력을 포함한 모든 온건세력들의 세계연대는 미국이 거의 혼자 "이슬람-모슬렘 파시즘"(Islamo-fascism)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떠드는 선동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확신에 찬 그러나 이성적인 미국(reasonable America)이 될 때 테러리즘은 비로소 설 땅을 잃을 것이며 진정한 세계의 안전은 확보되어 갈 것이다. "히스테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Enough of this Hysteria)! 피해망상을 그만 멈추어라(Stop this paranoia)!"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미국의 지도자는 오늘 어디에 있는가? 미래의 테러공격 가능성을 전면 부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 잃어버린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자 모두 우리의 전통에 진실하게 양심을 세워 서보자. |
*필자 전자우편주소: jokuk1korea@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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