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셔먼》호사건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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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9-03 12:30 조회2,4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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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호사건은 1866년 미국군함 《셔먼》호가 대동강에 침입한 사건을 말한다.
《셔먼》호의 침입은 우리 나라에 대한 미제의 피묻은 침략력사의 첫 시작이였다.
이미전부터 아시아대륙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자 조선에 대한 침략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미국침략자들은 먼저 《셔먼》호를 조선에 침입시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보려고 하였다.
《셔먼》호는 증기기관과 돛을 겸용하고 추진기까지 달린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무장함선이였다.
화약과 포탄, 수많은 저격무기와 탄알 등을 싣고 90여명의 인원을 태운 《셔먼》호는 1865년에 미국을 떠나 다음해 7월(음력 6월)에 중국 천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조선에 가는 평화적인 상선으로 가장한 후 그곳을 떠나 1866년 8월 16일(음력 7월 7일) 대동강어구에 침입하였다.
침략자들은 비법적으로 정탐과 수심측량을 하면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며칠후 평양의 한사정앞(쑥섬과 양각도 사이)에까지 이르렀으며 8월 27일(음력 7월 18일)에는 평양감영의 2명의 조선군인들을 살해하고 중군 리현익을 랍치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은 8월 27일(음력 7월 18일) 평양감영대표와의 담판에서 자기들을 평양성에 들여놓으며 쌀 1,000섬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이 강도적인 요구가 거부당하자 침략자들은 로골적인 략탈과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침략자들의 오만무례한 행위에 격분한 조선인민은 투쟁에 궐기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의 호소에 호응하여 투쟁에 일떠선 평양인민들과 군인들은 선생님의 지도밑에 결사대를 뭇고 적선을 불태워버리기 위한 화공전을 준비하였다.
9월초(음력 7월말)에 결사대는 《셔먼》호를 향해 일제히 불배를 띄워 내려보냈다. 그리하여 《셔먼》호는 불붙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화약고가 폭발하고 침략선은 대동강에 침몰되였다. 배에 탔던 놈들은 전투과정에 사살되거나 불에 타죽고 나머지는 강으로 뛰여들어 도망치다가 붙들려 처단되였다. 이와 같이 김응우선생님의 화공전술과 평양군민들의 용감한 투쟁에 의하여 미국의 침략무리들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
그때까지 미국의 해외침략력사에서 중무장한 근대적인 전투함선이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격침된 사실은 없었으며 이것은 오직 조선에서 처음으로 있은 커다란 사변이였다.
《셔먼》호사건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가장 야만적이고 파렴치한 날강도무리이고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온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조선인민은 《셔먼》호의 침략을 반대하는 항쟁에서 애국적헌신성과 민족적기개를 남김없이 시위하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
《셔먼》호의 침입은 우리 나라에 대한 미제의 피묻은 침략력사의 첫 시작이였다.
이미전부터 아시아대륙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자 조선에 대한 침략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미국침략자들은 먼저 《셔먼》호를 조선에 침입시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보려고 하였다.
《셔먼》호는 증기기관과 돛을 겸용하고 추진기까지 달린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무장함선이였다.
화약과 포탄, 수많은 저격무기와 탄알 등을 싣고 90여명의 인원을 태운 《셔먼》호는 1865년에 미국을 떠나 다음해 7월(음력 6월)에 중국 천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조선에 가는 평화적인 상선으로 가장한 후 그곳을 떠나 1866년 8월 16일(음력 7월 7일) 대동강어구에 침입하였다.
침략자들은 비법적으로 정탐과 수심측량을 하면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며칠후 평양의 한사정앞(쑥섬과 양각도 사이)에까지 이르렀으며 8월 27일(음력 7월 18일)에는 평양감영의 2명의 조선군인들을 살해하고 중군 리현익을 랍치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은 8월 27일(음력 7월 18일) 평양감영대표와의 담판에서 자기들을 평양성에 들여놓으며 쌀 1,000섬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이 강도적인 요구가 거부당하자 침략자들은 로골적인 략탈과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침략자들의 오만무례한 행위에 격분한 조선인민은 투쟁에 궐기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의 호소에 호응하여 투쟁에 일떠선 평양인민들과 군인들은 선생님의 지도밑에 결사대를 뭇고 적선을 불태워버리기 위한 화공전을 준비하였다.
9월초(음력 7월말)에 결사대는 《셔먼》호를 향해 일제히 불배를 띄워 내려보냈다. 그리하여 《셔먼》호는 불붙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화약고가 폭발하고 침략선은 대동강에 침몰되였다. 배에 탔던 놈들은 전투과정에 사살되거나 불에 타죽고 나머지는 강으로 뛰여들어 도망치다가 붙들려 처단되였다. 이와 같이 김응우선생님의 화공전술과 평양군민들의 용감한 투쟁에 의하여 미국의 침략무리들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
그때까지 미국의 해외침략력사에서 중무장한 근대적인 전투함선이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격침된 사실은 없었으며 이것은 오직 조선에서 처음으로 있은 커다란 사변이였다.
《셔먼》호사건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가장 야만적이고 파렴치한 날강도무리이고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온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조선인민은 《셔먼》호의 침략을 반대하는 항쟁에서 애국적헌신성과 민족적기개를 남김없이 시위하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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